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조갑제 지음 / 조갑제닷컴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잠자기 전에 몇 페이지만 보려고 집어들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새벽 세 시네요. 조갑제 대표님 개정판도 절판이니 제발 추가 출판 좀 해주세요. 책 구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ㅠ.ㅠ (출근 관계로 서평은 나중에. -> 이어서)

탐사보도의 걸작이더군요. 실력있는 기자가 4개월 동안 하나의 주제를 집중해서 파면 이런 걸작이 나오는군요. 저자가 "글을 잘 쓰기보다는 많이 발라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홈런을 치려면 스윙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뒷받침할 사례를 스스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특히 언론인과 법조인 그리고 그 길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사형제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도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형은 평화시에는 유일한 '합법적 살인'이고, 결과만 보면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는 데쓰노트에 피고인의 이름을 적는 '살인자'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죠.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란은 최근으로 올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 1997. 12. 30. 유영철씨라서 이미 20년이 지난 지금은 사형이 실제로 어떻게 결정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느낌을 받지 어렵죠. 이 책은 1979년 사형을 당한 오휘웅씨를 중심으로 하여 1987년 출간 당시까지 있었던 여러 케이스를 다루고 있어서 지금 나오는 책들보다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독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 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사회부 경험이 많은 민완기자의 집요한 취재경험들을 담고 있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당시 당사자의 실명을 익명으로 처리하지 않고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가 걱정될 정도로 말이죠. 수사 단계의 경찰, 기소단계의 검찰, 수사 및 공판 단계에서 진술한 증인들, 1심~3심 재판부와 심급별 변호인들, 재심신청을 담당했던 재판부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요.

심지어 저는 오휘웅씨 사건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별건고소로 구속기간까지 연장하면서 고문을 방관하고,  짜맞추기 수사로 억울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만들어낸 사건들의 수사검사, 기록상의 사실관계를 다퉈보지도 않고 무성의한 정상 변론에 치중했던 변호사, 기록을 제대로 살펴보고 판결서를 썼는지 의심되는 판사들의 이름과 기수, 학력 등을 토대로 현재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초동, 창원지법 등등에 사무실을 걸어놓고 있더군요. 다들 하나같이 자기 사진은 공개하지 않고 있었고요.

오휘웅씨의 대법원 국선 변호인이었던 이범렬 변호사(판사 재직 중 사법파동 때 퇴직)께서 하신 "나도 변호사를 해보니까 비로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기더라.",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변호사 중에서 판사가 선임되야 한다.", "당해보는 입장에 한 번 쯤 서본 사람이라야 당하는 사람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들도 머리에 콱콱 박히고요.

제10장 <고문과 자백>은 왜 형사소송법이 지금과 같은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 중에서도 단 한꼭지만 꼽는다면 이 챕터는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범인조작의 공식, 고문수사를 자행하는 경찰 수사관들의 심리와 제약요건, 허위자백에 속은 저자 본인의 경험 등을 말하는데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재심에서 피고인들의 무죄를 밝힌 박준영 변호사님의 사례를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 강압수사와 짜맞추기 수사에 의해 범인으로 만들어지는 건 엄혹하던 시절의 옛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전 민변 연수를 갔을 때 당시 유우성씨의 변호인이셨던 장경욱 변호사님께서 초면에 신출내기인 저와 동기들에게 국정원 사람에 대해서 이 책에 나오는 고문경찰과 비슷하게 묘사하시길래 내색은 안했지만 '이 분 옛날에 NL쪽 학생운동을 너무 많이 하신 분 아닌가? 요즘 시대에' 하면서 뜨악했었는데 얼마 후 국정원 직원들의 유우성씨 동생에 대한 고문, 유우성씨에게 유리한 증거의 은닉, 선양 총영상관까지 동원한 중국 공문서 조작등 희대의 간첩 조작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던 기억이 나네요.

빨리 다음 판을 찍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 언론인 조갑제씨가 왜 이렇게 극우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29쪽

형법 제66조에 사형은 교도소 안에서 교수형으로 하고, 군형법은 지정된 장소에서 총살로 집행하도록 정해 놓았다. 사형이 교수형과 총살형으로 정해진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다. 법에 명시된 것은 1905년 형법대전 제94조가 "사형은 絞(교)로 한다."고 못 박은 것이 처음이다. 교수형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사형 방법이다.

59쪽

심장이 멎는 것을 죽음으로 정의할 때 교수형의 경우 평균 사망시간은 교수 시작으로부터 14분쯤이라는 것이 일본 측 통계다. 개인차가 많아 최단 4분 35초, 최장 37분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어느 퇴직 교도소장은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4~15분이라고 말했다.

64쪽

사형집행에 참여한 직원들에겐 오후에 자유 시간을 준다. 집행이 끝났을 때 참여 직원들은 눈에 핏발이 서는 등 제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서둘러 구치소 근처의 술집으로 몰려간다. 깡소주만 1,2,3차로 밤새도록 퍼 마신다. 거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 전날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도. 아무리 합법적인, 또 사회정의를 위한 '살인'이라 해도, 그들의 손에 죽어간 사형수들은 오랫동안 부대끼면서 정이 들었던 얼굴들이다.

106쪽

어떤 자백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인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흔히 '비밀의 폭로'란 말이 쓰이고 있다. 즉, 진실된 자백에선 수사관도 미처 몰랐고, 현장에서도 드러나 있지 않았던, 범인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사실이 반드시 폭로된다는 것이다. 이 비밀의 폭로가 없는 자백은, 일단 그 신빙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논리다.

198쪽

많은 피고인들은 2심이 끝날 때 비로소 (형사)재판이 뭔가를 알게 된다고 한다. 공판정에서 자신을 어떻게 변호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인상을 재판부에 줄 수 있으며, 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재판은 피고인 자신의 죄상에 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검사, 변호사, 판사가 어려운 법률용어를 구상하면서 진행을 주도해 가고 피고인은 구경꾼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2심이 끝났을 때 무엇을 깨달았다 해도 너무 늦다. 사실심은 끝났고, 법리의 적용이 타당한지 여부를 따지는 상고심만 남겨둔 상태에서는 그 깨달음이 별 무소용인 것이다.

278쪽

오 씨가 사형수 대우를 받기 시작한 1975년 서울구치소에서는 복역수들이 불교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다. 개신교와 천주교만 목사와 신부들을 보내 선교를 하고 있었다. 불교에서 승려를 보내려고 해도 개신교와 천주교계, 그리고 교무계 담당직원들이 반발을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불교에서 선교를 시작한 것은 1976년 3월부터였다.)

368쪽

한국의 언론은 용어선택에서부터 인권의식이 결여돼 있고, 경찰의 수사풍토를 닮은 보도풍토를 이루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용의자 체포'는 박력도 없고, 자신도 없어 보이고, 모험을 해서라도 '진범 체포'라고 해야 한발 앞서간 취재라는 인상을 준다고 기자들은 믿고 있다.

378쪽

고문의 버릇을 익힌 경찰은 수사능력이 약해진다. 은밀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뒤를 쫓아 그 범인을 붙들었을 때는 이미 상당량의 증거를 손에 넣고 있는, 그런 식의 수사는 시간도 걸리고 이력도 많이 듦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일단 족쳐서 거기서 자백과 물증을 얻어내자는 식의, 쉽게 먹으려 드는 수사습관을 갖게 되면, 정교한 수사기술이 발달할 리가 없다.

428쪽

'자유 심증주의'란 어마어마한 재량권을 가진 판사는 자신만의 믿음으로써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그 확신에 도달하는 절차를, 현대에서는 형사소송법으로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절차야말고 인간이 오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수많은 누명 썼던 사람들의 한과 피가 스며 있는, 지혜의 보따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지금은 페북을 접으신 것으로 추정되는 예전 페친님께서 격찬하신 소설입니다. 과연 문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더군요. 바로 전에 읽었던 국내 유명 작가의 신작이 실망스런 태작이어서 다시는 이 사람 소설은 찾아보지 말아야지 다짐할 정도의 내상을 입었는데 치유가 잘 됐습니다.

 

어제 밤늦게 다 읽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 얼떨떨했습니다. 책을 덮을 때 내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읽었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잠자고 읽어나 다시 한 번 읽었네요. 다시 읽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줄리언 반스는 에이드리언 핀의 입을 빌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말로 가상의 인용처리를 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는 문장이죠.

 

두 번째 읽으며 당사자 본인의 증언이 없더라도 에이드리언 핀의 결단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부정확한 기록들을 꽤 찾을 수 있었습니다.(제 독해력이 이 소설을 겨우겨우 이해할 정도라도 돼서 다행입니다.) 헌트 선생의 역사학자들에 대한 변호가 일리가 있었던 셈이죠.

 

같이 살아갔던 친한 개인에 대한 기억과 예감도 이리 부정확한데 그러한 개인들이 연쇄사슬처럼 얽혀있는 역사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고 내 분석이 맞다고 뿌듯해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싶어 울적해지네요. 제가 관심 있고 좋아한다고 생각해온 역사가 무엇인지 그 바탕부터 다시 생각하게 해준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

 

26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101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162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속 보고 있는 용대운님의 <군림천하> 빼고 오랜만에 본 장르소설이네요.

좀비 전쟁 종료 직후에 세계각지를 돌며 인터뷰를 채록한 구술사인데 은근히 요즘 세계 각국의 상황에 대한 정치풍자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연예인, 변호사, 회계사 이런 사람들이 쓸모없는 잉여인력이 되고 농부와 목수 등 육체노동자들이 선호되는 기술인력으로 뒤바뀐 상황에 대한 묘사도 꽤나 인기에 한몫한 것 같고요. 저자가 일본 오타쿠인건 확실합니다. ㅋㅋ

전 서바이벌 매뉴얼이나 생존주의자 동영상에 혹하는 편이라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소물 재미있게 봤지만 취향을 좀 타긴 할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엊그제 읽었던 박 훈 교수님의 칼럼하고 이어진다고 느꼈던 중편소설입니다.이 작품으로 작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씨는 근 이십 년째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수상 당일도 편의점에서 아침 근무를 마치고 왔다고 하죠.

일본을 갈 때마다 편의점의 오퍼레이션은 도저히 다른 나라에서 따라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편의점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요. 일단 우리나라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근무시간에는 휴대전화는 꺼놓으라고 할 수 없으니. 게다가 직장 내 사생활에 대한 간섭도 우리나라와 달리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일만 잘하면 익명성에 숨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편의점 직원 일을 아주 잘해내고 있는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아침에 출근해서 편의점에서 빵을 먹고, 편의점에서 산 물을 마시고, 편의점 음식물을 먹고, 다음날 편의점에서 제대로 일하기 위해 잠을 청하는 게이코 후루쿠라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제가 생각했던 '개인주의자'의 이미지와 달라서 그 선언에 선뜻 동조를 못했습니다. 편의점 안드로이드가 되고자하는 개인을 개인주의자라고 해야할까요?

여담으로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사회 내의 사회적 규범에 맞출 것을 바라는 압력은 정말 막강하더군요. 비혼도 골드미스가 아닌 편의점 프리터가 선택하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니. 우리나라는 과연 다른가 생각해보니 딱히 대답을 못하겠네요. 

또, 시라하씨라는 일본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난 루저 남성들의 민낯은 일베하는 남성 캐릭터의 이미지와 어쩜 그리도 비슷한지. 외국인인 편의점 신참 직원 투안군이 '점원'에서 '무리의 수컷' 중 하나로 보이게 되는 부분에 대한 묘사도 기억에 남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중에서는 두 번쩨이고 소설로는 처음이네요. 읽고보니 원제 <The Course of Love>보다 번역판 제목이 더 어울리는 제목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맨 앞에 '도시 중산층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겠지만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만난 건축일하는 두 남녀가 만나고 결혼생활을 하는 이야기인데 중간중간 알랭 드 보통이 개입해서 그 상황에 대한 짤막한 해석들을 적어줍니다. 소설에 에세이가 끼워 들어간 셈이죠.

가까운 이가 결혼할 때 축의금 봉투 외에 따로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속표지에 '결혼기념일 3주년 후에 한 번 더 읽을 것'이라고 메시지도 적어서요. ㅋㅋ

비혼주의자나 DINK들도 중산층의 유자녀 결혼생활의 표준이 어떤지 흘낏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만 합니다. 어차피 본인 생각대로 살면 되니까요.
--------------

58쪽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65쪽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86쪽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대상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중략)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9족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146쪽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55쪽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조냊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