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피버 피치 - 개정판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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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로 유명한 닉 혼비의 에세이 <피버 피치(Fever Pitch)>. 2005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난 9년만에 나온 제2판을 읽었다. 축구에 대한 책이 아니라 팬이 된다는 것에 대한 책.

 

중동 산유국의 왕족, 러시아 올리가르히, 신흥국의 대부호들의 타이쿤 게임이 되어버린 EPL판에서 근면성실로 악전고투하며 버티는 중산층 개룡남같은 아스널과 아르센 벵거에 대해 자세히 다뤘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2판에서 보강된 내용에만 약간 등장.

 

책을 다 읽었어도 그나마 관심있는 기아 타이거즈의 주전 라인업도 모르는 나로서는 와닿지 않더라.

 

그저 닉 혼비의 아스널을 정치인, 종교로 바꿔 생각하며 읽으니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 막장드라마를 본방사수파, 훌리건과 정치인빠, 광신도들 중에서 사회에 피해를 덜 주는 집단이 어딜까? 본방사수파 다음이 훌리건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단정을 하기에 앞서 언제 EPL 시합을 구경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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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홍위병
션판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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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대해 딱히 기대를 하는 건 없지만 적당한 탐색거리를 지닌 잠망경과 1인 라디오방송을 결합한 것 같은 페이스북은 내게 잘 맞는 것 같다.

 

특히 일면식도 없는 관계인데도 내가 모르는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눈 밝고 고마운 분들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달리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분들은 나보다 훨씬 바쁘게 살면서도 더 풍부하고 깊이있는 책을 읽으셔서 나처럼 읽는 책마다 포스팅하며 다른사람들을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1966년 열두 살의 나이로 문화혁명을 맞이했던 션판이 1984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까지 겪은 인생의 항로와 그가 만났던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 전체가 최상급의 블랙 코메디이고, 동시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중국버전이기도 하다.  어떻게 동시에 이 두가지를 담고 있는지.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로 솔직하게 썼기에 가능한 아이러니라고 생각된다.

구한말부터 최소한 1987년까지 굴곡진 현대사를 겪어온 이웃나라사람이기에 션판과 그의 주변사람들의 생존에의 열망과 머리싸움, 인내심이 얼마나 강인한 것인지 우리네 윗세대들을 떠올려가며 공감할 수 있었다.

 

중국의 부정부패가 개혁개방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하는게 얼마나 잘 모르는 소리인지. 그리고 '꽌시'문화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꽌시' 챙기는게 비효율적인 에너지 낭비고 나 살고싶은 대로 알아서 사는게 최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서 개인으로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기까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그나마 우리가 앞서가고 있지만.) 상처가 아물고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떨쳐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알겠지만 그걸 내가 꼭 이해해줘야할 의무는 없다. 이런 책을 읽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공감은 안되는게 내 문제다.

 

이 책을 정독하게 되면 아래 인용한 413쪽이 남다르게 읽히리라 생각해서 길지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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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쪽

 

여권 발급처 관리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 곧 시작되었다. 그 전쟁은 실제 전쟁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요구했다. 단호감, 용기, 위험 부담의 감수, 전략, 무기 등등. 나는 전통적인 중국식 '무기'를 모두 동원했다. 수류탄(술), 권총(담배), 지뢰(훈제 소시지), 시한폭탄(훈제 닭) 등이 그 싸움에서 특히 효과적이었다.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무기의 종류가 달라졌다. 치밀한 사전 준비도 필요했다. 적을 만나기 전 나는 미리 상대가 좋아하는 담배나 술 종류를 확인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이면 어떤 고기를 좋아하는지 알면 되었다. 때로는 선물을 거부하는 '청렴한' 관리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우회 전술이 사용되었다. 제일 친한 친구나 상사를 공략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청렴하다 해도 친구나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련한 장군이자 전략가로서 나는 치밀하게 계획을 진행시켰다. 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노출시켜도 안 되었다. 그저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만 만들면 될 일이었다.

 

첫 단계는 내 인적 관계망을 가동해 여권 발급처 관리인 커와의 연결선을 찾는 것이었다. 연결선은 루루에게서 시작되었다. 루루가 어머니 친구이자 시내의 제3인민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무 선생님을 소개시켜준 것이다. 중요한 연결점이었다. 중국의 관계망 게임에서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청진기(의사)와 운전대(운전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관계망의 신경줄이나 다름없었다. 무 선생님은 도와주겠다고 했다. 

 

무 선생님께 신세를 진 환자 중에 텐진 부시장의 비서인 주 여사가 있었다. 무 선생님은 주 여사가 휴가를 내고 싶을 때마다 진단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소개 편지와 선물을 들고 찾아가자 주 여사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아요."라고 말했다. "무 선생님의 친구는 곧 제 친구지요." 주 여사는 책상에 앉아 전화번호가 잔뜩 적힌 커다란 공책을 꺼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주 여사의 친구 지 여사는 교통경찰인 차이 반장을 알고 있었다.

 

몇 번 저녁식사를 대접한 후 나도 차이 반장과 안면을 텄다. 그리고 관계망이 완성되었다. 차이 반장이 여권 발급처의 커와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커의 형제 한 사람이 교통 단속에 걸렸을 때 봐준 적이 있다고 했다. 차이 반장은 내 여권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해주기로 약속했다. 관계 하나하나마다 비싼 돈이 들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차이 반장과 저녁식사를 하고 나자 수중에 겨우 30위안이 남았을 뿐이었다. 저금을 다 써버린 셈이었다.

 

두 주 뒤인 9월 말, 배지 부장이 당장 여권 발급처로 가라고 했다. 커는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차이 반장의 친구라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살짝 나무랐다. "미리 알았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말이요. 자, 여기 여권을 받으시고. 당신은 정말 운이 좋구먼.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여권 발급 절차를 일시 중단하라는 정부 지시가 지금 막 내려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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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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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목록 중 한 권인 하루끼의 논픽션.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의 지하철. 사린가스를 유출시킨 사람들과 그로 인해 가스에 중독되어 피해를 본 62명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빽빽한 체험담들이 589쪽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그들이 기억하는 그 날의 사건에 대한 얼개들은 대부분 비슷해서 읽으면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휴일과 휴일 사이에 낀 월요일 아침에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서 짐짝처럼 출근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그들이 일과 자신의 생활에 대해 가지는 마음가짐이 하루끼가 기록을 통해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색깔로 나타난다. 보통 언론에서 나오는 사망자 O명, 부상자 OO명이라는 단신기사나 피를 흘리는 사람, 온 몸에 호스를 달고 있는 중환자실의 풍경, 울부짖는 희생자 가족의 절규 등등 맥락과 구체적인 상황을 생략한 진부한 화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사린 가스 배포 사건 이후로 9개월 후부터 1년 9개월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펴낸 이 책이 작년 4월 16일의 사건을 겪은 우리 나라에도 필요하다.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의자놀이>도 비슷한 책이었지만 분량이 너무 짧았다.


그리고 하루끼의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한 62명에 대해서는 물론 자위대나 공직에 있다는 이유 또는 철도회사에 재직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인터뷰를 한사코 회피한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침묵도 그림자처럼 비추고 있다. 이런 일에서는 절대 나서지 않는 사람들.


저자 서문에 해당하는 "지표 없는 악몽 -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가가려 하는가"를 600페이지 이상의 인터뷰들을 읽은 뒷 자리에 배치한 덕분에 하루끼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쓰고 싶은데 출근시간이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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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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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의 첫 단편집. 보통은 책을 읽자마자 바로 서평을 올리는데 이 책은 어느 한 단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다시 다른 단편을 찾아 읽게되더라. 

한권으로 묶인 이 단편집은 주로 구멍으로 상징되는 "죄책감"과 "솔직함" 그리고 "배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준다. "죄책감"을 느끼는 감각은 예민하되 자기가 감당못하는 상황을 "솔직함"이라는 핑계로 상대에게 떠넘지기 않은 "배려"를 아는 성숙함. 여기에 인생에 종종 끼어드는 장난같은 우연에 대한 너그러움까지 있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이건 비겁함이나 부덕으로 매도할 게 아니다. 

단편들을 두 세번씩 읽은 지금도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다. 

단편소설은 1/18 스케일의 피규어처럼 정밀한 구조물이라 내가 항상 하듯 몇몇 구절을 따오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모리스 미니의 라디에이터 그릴만 떼어내서 보여준다고 전체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래도 이 한문장은 적어두고 싶다.

96쪽

"모든 물리학자에게는 자기 너머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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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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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극 돔 기지에서 일년 동안 기거한 아홉 명의 대원들의 요리를 전담했던 이가 쓴 유쾌한 에세이. 번역한 글인데도 톡톡 튀는 표현들이 았다.

 

피로를 풀어줄만한 책일거라 생각하고 집어든 선택이 맞긴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눈이 침침하고 졸린데도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덕분에, 장난꾸러기 악동같은 저자로부터 다음 날의 피곤이라는 고약한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날아갔으니 millions of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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