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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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중에서는 두 번쩨이고 소설로는 처음이네요. 읽고보니 원제 <The Course of Love>보다 번역판 제목이 더 어울리는 제목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맨 앞에 '도시 중산층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겠지만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만난 건축일하는 두 남녀가 만나고 결혼생활을 하는 이야기인데 중간중간 알랭 드 보통이 개입해서 그 상황에 대한 짤막한 해석들을 적어줍니다. 소설에 에세이가 끼워 들어간 셈이죠.

가까운 이가 결혼할 때 축의금 봉투 외에 따로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속표지에 '결혼기념일 3주년 후에 한 번 더 읽을 것'이라고 메시지도 적어서요. ㅋㅋ

비혼주의자나 DINK들도 중산층의 유자녀 결혼생활의 표준이 어떤지 흘낏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만 합니다. 어차피 본인 생각대로 살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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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쪽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65쪽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86쪽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대상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중략)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9족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146쪽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55쪽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조냊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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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세트 - 전3권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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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엠 에트 키르켄세스'가 라틴어로 '빵과 서커스'였구나. 읽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아닌지 싶었던 슬럼프에서 내게 배급된 판엠같은 책. 


물론 나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십대 후반 소녀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소재 자체가 리얼리티쇼라서 고전과 달리 친숙하고 1천 페이지가 넘는 삼부작을 다 읽으면서 책에 재미를 붙일 기회를 제공하니. 소녀들이 캣니스 애버딘과 자신을 동일시 해보는 경험이 꽤 괜찮을 것 같고. 아재들에겐 진부할 수 있지만 '빵과 서커스' 전략, 속주 분할통치 등 고대 로마 이래 유구한 전통을 지닌 정치가들에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약간의 판타지와 함께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주니. 


영화 <헝거 게임:판엠의 불꽃>에 캣니스 애버딘 역할로 매력적인 제니퍼 로렌스가 나왔다는 점이 끝까지 읽는데 큰 도움을 줬음. --; 제니퍼 로렌스는 금발보다 갈색머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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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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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님께서 펴낸 <대리사회>가 지난 목요일에 도착했데 오늘 다 읽었네요. 디자인을 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연두색 표지에 각 챕터 제목과 삽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카카오앱색 노란색 무늬, 원고 사이사이에 옥스포드 노트에 쓴 일기처럼 등장하는 짧은 수필들까지 와이즈베리라는 출판사의 정성이 많이 들어갔더군요.

 

책의 내용들은 지방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접했던 내용들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1936년 '레프트북클럽'이라는 출판사의 원고청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듬해 조지 오월의 기념비적인 르포르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다음 스토리펀딩에 참여하여 이 책을 예약한 덕분에 대리운전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세상에 나오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하네요. 게다가 저자 서명이 들어간 초판 1쇄본을 얻을 수도 있었고요.

 

이 책이 온전히 대리운전업계에 대한 르포르타주만은 아닙니다. 지방시의 후일담인 부분과 더 폭넓은 주제에 대한 수필로 보이는 부분들도 중간중간 등장하지요. 모쪼록 이번 <대리사회>가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이 책은 내가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고 한 김민섭 작가님의 야심이 펼쳐져 나가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읽고난 소회를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권한을 정하지 않은 대리권 수여시 권한행사의 범위가 보존행위 등(민법 제118조)에 국한되는 것은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에어컨 설치기사님, 가전 A/S기사님 등) 이 부분은 점차 사실인 관습으로 채워질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폐된 차주의 차안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리운전기사님들께서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시트와 사이드미러 등의 조정 등의 행위를 당당하게 행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운전에 필요한 쾌적한 오감의 유지를 위해 방귀와 트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또는 작업)환경 통제권도 확보하셔야 하고요 ^^; 대리운전기사라는 업을 자신의 누군가를 위한 일회적인 대리행위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한 생업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한 요구사항이 아닐까요?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서 잠시 피팅을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면 차주가 불쾌하실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리운전업이 법률상 단순 자유업으로 분류될 뿐이어서 여객운수업 체계에 들어가지있지 않은 공백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일회적인 만남에서 매번 이러한 관계설정을 해야하는 부담이 큰 점은 이해하지요. 참고로 대리운전도 법체계에 포섭하자는 논의가 지난 제2004년 제17대 국회 때부터 있었고(http://naph.assembly.go.kr/billDisplay.do?billId=028906, 정의화 전 국회의장께서 대표발의), 제20대 국회에서도 2016. 8. 22. 자로 원혜영의원이 <대리운전업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하여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http://naph.assembly.go.kr/billDisplay.do?billId=PRC_O1H6Q0J8Y2I2U1M7P2F2O5J9G1O3I3). 원혜영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읽어보니 대리운전업계가 '약 3,800개 업체, 약 8만명 이상의 운전자가 일평균 47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네요.

 

책의 화두가 '대리'인데 대리운전행위는 법적으로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여 성립'하는 도급계약이고, 수급인인 대리운전기사님에게 원활한 업무수행을 하도록 차주가 기사님께 목적지까지의 이동에 필요한 운전행위 부분에 대해서 대리권을 설정해준 것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이 부분이 뭉뚱그려져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보니 차주의 대리운전 청약에 따른 대리기사의 승낙으로 성립하는 자유로운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따른 것이고, 양자간의 역학관계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가변적인 일뿐 갑을 관계는 아닙니다. 저자님께서 양자의 입장을 다 서술하시기는 하셨지만 아무래도 대리운전기사의 입장이다보니 내용상 대리운전기사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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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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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본 책입니다. 작가쪽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직업상 글쓸 일이 많고 여러 페친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어서 속성 글쓰기 교습을 받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적었던 내용들을 복습해보는 셈치고 노트필기를 공유해봅니다.(저장용 목적도 있어서 좀 깁니다.)

 

그리고 문장론에 대한 세계적인 인기작가의 책을 번역하는 부담스러운 일을 수행해주신 김진준 번역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는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제게 큰 영향을 줬던 <총,균,쇠>를 번역하셨던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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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68쪽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94쪽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펀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141쪽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을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148쪽

 

능동태는 문장의 주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수동태는 문장의 주어에게 어떤 행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주어는 그저 당하고 있을 뿐이다.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150쪽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163쪽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176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183쪽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191쪽

 

여러분에게는 우선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고,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오래 실천하면 할수록 글쓰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213쪽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근시안이 된다. 묘사가 지나치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묘사하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분의 주된 소임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220쪽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29쪽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략) 여러분은 꾸며낸 이야기를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표현하겠다고 이미 독자들에게 약속한 셈이니까.

 

247쪽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모든 책에 상징성과 아이러니와 음악적인 언어 따위를 잔뜩 퍼담을 필요는 없다(산문은 운문과 다르니까). 그렇지만 모든 책에는 -적어도 읽어볼 만한 책이라면- 뭔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초고를 쓰는 도중이나 그 직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품을 수정하면서 해야 할 일은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256쪽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258쪽
글을 빨리 써내려가면 - 즉 필요에 따라 이따금씩 등장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스토리 따위를 다시 확인하는 일 말고는 줄곧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노라면 - 처음에 품었던 의욕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다.
이 초고 - 스토리만 있는 원고- 는 누구의 도움도(또는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써야 한다.

 

262쪽

 

처음 해보는 사람이라면 자기 원고를 6주 동안 묵혔대가 다시 읽어보는 일이 매우 신기하고 또한 신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략) 그 동안 6주의 회복기를 가졌으니 이제 플롯이나 등장 인물의 성격에서 명백한 허점들을 발견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졌을 것이다.
276쪽
내가 '수정본 = 초고 -10%' 공식에서 배운 것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어느 정도는 압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10% 정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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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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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친님의 추천이었는지 기억이 안네요. 제가 소설을 쓸 일은 별로 없지만 보고서는 앞으로 계속 써나가야 하기 때문에 저널리스트인 다치다나 다카시씨의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별로 두껍지도 않긴 했지만 예상보다 짧은 30분밖에 안걸리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씨가 1983년도에 1년간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인데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2009년에 번역해서 발간했거든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스크랩법과 문구용품들에 대한 세세하지만 무쓸모한 설명을 읽느니 산타크로체님의 블로그를 보는게 훨씬 도움이 되지요.(예전 저널리스트들이 제대로 취재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충분히 전달되긴 했습니다.) 이렇게 날린 부분이 절반은 됩니다. 게다가 무의식 운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신뢰성이 떨어져 보이는 부분도 휙휙 넘겼고요.

 

다치바나식 속독법을 썼다면 이 책도 아예 사지 않았어야 했고, 샀더라도 몇 페이지 읽어보고 바로 던져버렸어야 하는 책이지만 나름 가치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기자로서 취재해오면서 인터뷰나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온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노하우들은 유용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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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쪽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101쪽

 

읽어나가는 중에 읽을 가치가 없는 시원찮은 책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책은 바로 읽기를 중단하고 버린다. 그래도 애써 산 것이니 뭐니 해서 쩨째한 근성을 발동하여 무리하게 다 읽으려고 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좋다. 돈을 손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마저 손해보게 된다. 앞으로 허접한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기 위해 지불한 수업료라고 여기고 깨끗이 버리는 게 낫다. 물론 앞서도 얘기했지만 차근차근 읽지는 않더라도 책의 마자믹까지 페이지를 넘겨보는 과정은 거친 다음 버리는 게 좋다.

 

122쪽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상대로부터 들어야 할 것을 미리 알아두는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경우의 당연한 전제인지라, 뭐 특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아무 것도 없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지엽적인 테크닉론이다.

 

125쪽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묻는다는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할 때는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해 자신도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140쪽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경험을 쌓으면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묻는다.

 

193족

 

문체는 옷이다. 문체에 의해 표면을 장식할 수는 있어도 실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문체는 즐기는 대상이지 그로부터 정보를 끌어내는 대상은 아니다. 문장을 요약하면 문체는 사라지지만 정보는 남는다.

 

198쪽

 

보충 작업과 잘라내기는 병행하기보다는 따로 하는 게 좋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잘라내기가 목적인데 보충을 한다는 건 목적에 역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잘라내기와 보충은 전혀 다른 목적 하에 이뤄지는 행위다. 잘라내기는 양적인 삭감, 보충은 질적인 향상이 목적이다. 질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잘라내는 것은 가능하니까, 일단 질적 향상이 추구될 여지가 발견되면 우선 그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가능한 질을 향상시켜두고 나서 가능한 한 질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양을 줄여가는 것이다.

 

199쪽

 

사람은 타인의 것은 객관적으로 신속하게 가치판단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것에 대해서는 그게 참 안 되는 존재다. 그러니까 잘라내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잘라내면서 연습하는 게 좋다.

 

215쪽

 

프로 취지기자가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을 접할 경우, 그 때 그는 누가 1차 정보의 소유자이고, 누가 2차 정보의 소유자인가를 최대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즉,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은 오로지 진정한 정보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이다.

 

218쪽

 

정보 음미의 기본은 그 정보의 출처를 생각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몇 차 정보인지를 생각해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정보를 그 정보 제공자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우리지널 정보원으로부터 그 정보 제공자에게 정보가 흘러들기까지의 프로세스 전체를 상상한다든가, 따져 묻는다든가 해서 그 프로세스에 뭐낙 의심쩍은 부분은 없는지, 정보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숙고해 본다. (중략) 또한 그 정보 제공자가 왜 그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그 동기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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