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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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목록 중 한 권인 하루끼의 논픽션.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의 지하철. 사린가스를 유출시킨 사람들과 그로 인해 가스에 중독되어 피해를 본 62명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빽빽한 체험담들이 589쪽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그들이 기억하는 그 날의 사건에 대한 얼개들은 대부분 비슷해서 읽으면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휴일과 휴일 사이에 낀 월요일 아침에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서 짐짝처럼 출근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그들이 일과 자신의 생활에 대해 가지는 마음가짐이 하루끼가 기록을 통해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색깔로 나타난다. 보통 언론에서 나오는 사망자 O명, 부상자 OO명이라는 단신기사나 피를 흘리는 사람, 온 몸에 호스를 달고 있는 중환자실의 풍경, 울부짖는 희생자 가족의 절규 등등 맥락과 구체적인 상황을 생략한 진부한 화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사린 가스 배포 사건 이후로 9개월 후부터 1년 9개월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펴낸 이 책이 작년 4월 16일의 사건을 겪은 우리 나라에도 필요하다.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의자놀이>도 비슷한 책이었지만 분량이 너무 짧았다.


그리고 하루끼의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한 62명에 대해서는 물론 자위대나 공직에 있다는 이유 또는 철도회사에 재직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인터뷰를 한사코 회피한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침묵도 그림자처럼 비추고 있다. 이런 일에서는 절대 나서지 않는 사람들.


저자 서문에 해당하는 "지표 없는 악몽 -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가가려 하는가"를 600페이지 이상의 인터뷰들을 읽은 뒷 자리에 배치한 덕분에 하루끼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쓰고 싶은데 출근시간이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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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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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의 첫 단편집. 보통은 책을 읽자마자 바로 서평을 올리는데 이 책은 어느 한 단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다시 다른 단편을 찾아 읽게되더라. 

한권으로 묶인 이 단편집은 주로 구멍으로 상징되는 "죄책감"과 "솔직함" 그리고 "배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준다. "죄책감"을 느끼는 감각은 예민하되 자기가 감당못하는 상황을 "솔직함"이라는 핑계로 상대에게 떠넘지기 않은 "배려"를 아는 성숙함. 여기에 인생에 종종 끼어드는 장난같은 우연에 대한 너그러움까지 있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이건 비겁함이나 부덕으로 매도할 게 아니다. 

단편들을 두 세번씩 읽은 지금도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다. 

단편소설은 1/18 스케일의 피규어처럼 정밀한 구조물이라 내가 항상 하듯 몇몇 구절을 따오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모리스 미니의 라디에이터 그릴만 떼어내서 보여준다고 전체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래도 이 한문장은 적어두고 싶다.

96쪽

"모든 물리학자에게는 자기 너머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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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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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극 돔 기지에서 일년 동안 기거한 아홉 명의 대원들의 요리를 전담했던 이가 쓴 유쾌한 에세이. 번역한 글인데도 톡톡 튀는 표현들이 았다.

 

피로를 풀어줄만한 책일거라 생각하고 집어든 선택이 맞긴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눈이 침침하고 졸린데도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덕분에, 장난꾸러기 악동같은 저자로부터 다음 날의 피곤이라는 고약한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날아갔으니 millions of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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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장기보수시대 - 미처 몰랐던 징후들
신기주 지음 / 마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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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칼럼을 쓰는 신기주 기자가 <에스콰이어>에 2년 동안 연재했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그런 탓에 통일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번 정권 출범 후 발생한 27개의 사건들을 통해서 시대의 징후를 분석한다. 저자는 '시장의 구멍들', '퇴행하는 사회', '기울어진 미디어', '속물스러운 정치'라는 네 가지 국면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이미 구조적인 보수화의 경로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짧은 칼럼의 틀에서 많은 걸 설명하려다보니 논리의 비약도 있고, 견강부회 격으로 터무니없어 보이는 설명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통찰력이 있는 글쟁이라 눈이 썩어버릴 것 같은 헛소리는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올해 2월에 찍어낸 책이라 시사성도 있고. 커피 한잔 값으로 지난 2년 동안의 일들을 간단히 돌이켜 보는 기회를 얻은 정도?

 

아래의 꼭지들이 특히 괜찮았다. 땡땡이 다음은 내가 붙인 설명. 이 저자의 <사라진 실패>도 한번 보고 싶은데 중고매물로 안나오네.

 

- 인간 부품이 필요없어진 시대 : 기업의 이끌어갈 10%의 정예를 골라내기 위해 90%를 도태시키는 혹독한 경쟁을 시키는 대기업
- 지식기반 하청경제 : 제조업과 건설기반의 하청경제의 논리로 지식기반산업에서 이뤄지는 하청방식으로 인한 폐해
- 서울대 해체 국면 :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똑똑이인 엘리트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똑똑이만 만드는 서울대
- 한국인으로 사는 걸 원하지 않는 한국민만 사는 나라 : 이중국적의 딜레마
- MBC는 어떻게 무너졌나?
- 안철수 현상을 감당하지 못한 안철수
- 오바마가 아시아에 눈을 돌리는 이유
- 보상이 없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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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쪽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사다리를 내려줄 수 없게된 한국 경제구조가 찾아 헤맨 거짓 희망이었다.
(중략)
어쩌면 그 빈자리는 오락이 아니라 뉴스가 채우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대중이 가짜 사다리에 속으리란 보장은 없다. 올라갈 수 없다면 끌어내리면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 역시 아직은 새로운 판타지를 개발하지 못했다. 허전해진 시청자의 마음을 대신 달래주고 있는 건 온갖 파파라치 사진과 연예계와 권력자들의 가십이다.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추락할 때 대중들은 상승감을 느낀다.

 

118쪽

 

한국은 유럽처럼 국적에서 자유로울 수도, 미국처럼 국적을 당당하게 세일즈할 수도 없다. 한국은 건국 이래로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병영국가화됐다. 이제껏 국가 동원 체제로 경제 전쟁을 치러왔다. (중략) 당연히 한국 국적은 혜택과 자격의 권리증서라기보단 의무와 책임의 채무증서에 가깝다.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처럼 한국도 국민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앞으로의 국가 발전은 자국의 인적 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것만으론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120쪽

 

한국은 내파국가다. 더 이상 근대국가 모델을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데도 그걸 통해 여전히 국민 동원을 해야 하는 나라의 한계다. 이중국적에 대해서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국적은 신성하지 않다. 국가가 한낱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개념은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당대의 논리였지 현대의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다. 애국심보다 중요한 건 한국이라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다. 한국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적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되고 싶어야지 한국인인게 형벌이어선 안 된단 얘기다.

 

228쪽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군수 산업 입장에서 보면 수출이 아니라 내수다. 미군이 미국 무기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적국인 이라크에 무기를 팔 수는 없다. 재래식 무기는 소모품이지 큰 돈도 안된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니란 얘기다. 미국 군수 산업이 무기 수출로 돈을 벌려면 미국이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대리전이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보단 전쟁 위기 상태여야 한다. 위기와 긴장이 고조되면서 각국이 더 많은 국방 예산을 미국 무기 구매에 써야 한

다. 물론 그 나라가 값비싼 미국 무기를 구매할 만큼 충분한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239쪽

 

근대국가에서 병역은 시민권을 얻는 통과의례였다. 국가가 국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줬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에선 군 입대를 거부당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군대에 가는 게 국민 개개인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상이 없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 징병제와 예비군 제도 때문에 20대를 군대 문화에 젖어서 보내지만 아무도 군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국가의 방기와 국민의 무책임이 군대를 거대한 자원 낭비의 진원지로 만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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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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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페친의 독서목록을 통해 알게 된 소설.


어제 출장가는 길에 읽기 시작해서 백여 페이지쯤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대충 훑어보듯 읽어버리기는 아까운 책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퇴근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읽었다.


앤드류 포터가 쓴 단편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15년 후에 나온 후속작이랄까.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을 통해 이어지기는 하지만 장편이라기 보다는 13편의 연작 모음같은 느낌이다.


줄거리는 랍스터로 유명한 북동부 끄트머리 메인 주의 크로스비라는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사건이라고는 소읍에 사는 중년과 노년에게 흔한 일들밖에 없다.


하지만 교토의 보물인 고려다완이나 담백한 평양냉면처럼 굳이 특별하게 짜낸 플롯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 이 소설이 평범한 삶에 대해서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하는지. 일시적인 위로를 주는 감상이나 군더더기인 의미부여같은 붓터치는 한번도 없다고 느꼈다.


책을 덮고 나니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분별심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저 하루하루 내 할 일이나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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