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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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님께서 펴낸 <대리사회>가 지난 목요일에 도착했데 오늘 다 읽었네요. 디자인을 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연두색 표지에 각 챕터 제목과 삽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카카오앱색 노란색 무늬, 원고 사이사이에 옥스포드 노트에 쓴 일기처럼 등장하는 짧은 수필들까지 와이즈베리라는 출판사의 정성이 많이 들어갔더군요.

 

책의 내용들은 지방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이미 접했던 내용들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1936년 '레프트북클럽'이라는 출판사의 원고청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듬해 조지 오월의 기념비적인 르포르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다음 스토리펀딩에 참여하여 이 책을 예약한 덕분에 대리운전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세상에 나오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하네요. 게다가 저자 서명이 들어간 초판 1쇄본을 얻을 수도 있었고요.

 

이 책이 온전히 대리운전업계에 대한 르포르타주만은 아닙니다. 지방시의 후일담인 부분과 더 폭넓은 주제에 대한 수필로 보이는 부분들도 중간중간 등장하지요. 모쪼록 이번 <대리사회>가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이 책은 내가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고 한 김민섭 작가님의 야심이 펼쳐져 나가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읽고난 소회를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권한을 정하지 않은 대리권 수여시 권한행사의 범위가 보존행위 등(민법 제118조)에 국한되는 것은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에어컨 설치기사님, 가전 A/S기사님 등) 이 부분은 점차 사실인 관습으로 채워질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폐된 차주의 차안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리운전기사님들께서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시트와 사이드미러 등의 조정 등의 행위를 당당하게 행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운전에 필요한 쾌적한 오감의 유지를 위해 방귀와 트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또는 작업)환경 통제권도 확보하셔야 하고요 ^^; 대리운전기사라는 업을 자신의 누군가를 위한 일회적인 대리행위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한 생업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한 요구사항이 아닐까요?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서 잠시 피팅을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면 차주가 불쾌하실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리운전업이 법률상 단순 자유업으로 분류될 뿐이어서 여객운수업 체계에 들어가지있지 않은 공백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일회적인 만남에서 매번 이러한 관계설정을 해야하는 부담이 큰 점은 이해하지요. 참고로 대리운전도 법체계에 포섭하자는 논의가 지난 제2004년 제17대 국회 때부터 있었고(http://naph.assembly.go.kr/billDisplay.do?billId=028906, 정의화 전 국회의장께서 대표발의), 제20대 국회에서도 2016. 8. 22. 자로 원혜영의원이 <대리운전업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하여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http://naph.assembly.go.kr/billDisplay.do?billId=PRC_O1H6Q0J8Y2I2U1M7P2F2O5J9G1O3I3). 원혜영 의원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읽어보니 대리운전업계가 '약 3,800개 업체, 약 8만명 이상의 운전자가 일평균 47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네요.

 

책의 화두가 '대리'인데 대리운전행위는 법적으로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여 성립'하는 도급계약이고, 수급인인 대리운전기사님에게 원활한 업무수행을 하도록 차주가 기사님께 목적지까지의 이동에 필요한 운전행위 부분에 대해서 대리권을 설정해준 것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이 부분이 뭉뚱그려져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보니 차주의 대리운전 청약에 따른 대리기사의 승낙으로 성립하는 자유로운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따른 것이고, 양자간의 역학관계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가변적인 일뿐 갑을 관계는 아닙니다. 저자님께서 양자의 입장을 다 서술하시기는 하셨지만 아무래도 대리운전기사의 입장이다보니 내용상 대리운전기사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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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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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본 책입니다. 작가쪽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직업상 글쓸 일이 많고 여러 페친께서 추천해주신 책이어서 속성 글쓰기 교습을 받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적었던 내용들을 복습해보는 셈치고 노트필기를 공유해봅니다.(저장용 목적도 있어서 좀 깁니다.)

 

그리고 문장론에 대한 세계적인 인기작가의 책을 번역하는 부담스러운 일을 수행해주신 김진준 번역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는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제게 큰 영향을 줬던 <총,균,쇠>를 번역하셨던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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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68쪽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94쪽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펀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141쪽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을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148쪽

 

능동태는 문장의 주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수동태는 문장의 주어에게 어떤 행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주어는 그저 당하고 있을 뿐이다.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150쪽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163쪽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176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183쪽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191쪽

 

여러분에게는 우선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고,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오래 실천하면 할수록 글쓰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213쪽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근시안이 된다. 묘사가 지나치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묘사하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분의 주된 소임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220쪽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29쪽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략) 여러분은 꾸며낸 이야기를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표현하겠다고 이미 독자들에게 약속한 셈이니까.

 

247쪽

 

소설을 쓸 때 여러분은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숲을 보아야 한다. 모든 책에 상징성과 아이러니와 음악적인 언어 따위를 잔뜩 퍼담을 필요는 없다(산문은 운문과 다르니까). 그렇지만 모든 책에는 -적어도 읽어볼 만한 책이라면- 뭔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초고를 쓰는 도중이나 그 직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품을 수정하면서 해야 할 일은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256쪽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258쪽
글을 빨리 써내려가면 - 즉 필요에 따라 이따금씩 등장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스토리 따위를 다시 확인하는 일 말고는 줄곧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노라면 - 처음에 품었던 의욕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다.
이 초고 - 스토리만 있는 원고- 는 누구의 도움도(또는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써야 한다.

 

262쪽

 

처음 해보는 사람이라면 자기 원고를 6주 동안 묵혔대가 다시 읽어보는 일이 매우 신기하고 또한 신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략) 그 동안 6주의 회복기를 가졌으니 이제 플롯이나 등장 인물의 성격에서 명백한 허점들을 발견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졌을 것이다.
276쪽
내가 '수정본 = 초고 -10%' 공식에서 배운 것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어느 정도는 압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10% 정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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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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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페친님의 추천이었는지 기억이 안네요. 제가 소설을 쓸 일은 별로 없지만 보고서는 앞으로 계속 써나가야 하기 때문에 저널리스트인 다치다나 다카시씨의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별로 두껍지도 않긴 했지만 예상보다 짧은 30분밖에 안걸리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씨가 1983년도에 1년간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인데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2009년에 번역해서 발간했거든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스크랩법과 문구용품들에 대한 세세하지만 무쓸모한 설명을 읽느니 산타크로체님의 블로그를 보는게 훨씬 도움이 되지요.(예전 저널리스트들이 제대로 취재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충분히 전달되긴 했습니다.) 이렇게 날린 부분이 절반은 됩니다. 게다가 무의식 운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신뢰성이 떨어져 보이는 부분도 휙휙 넘겼고요.

 

다치바나식 속독법을 썼다면 이 책도 아예 사지 않았어야 했고, 샀더라도 몇 페이지 읽어보고 바로 던져버렸어야 하는 책이지만 나름 가치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기자로서 취재해오면서 인터뷰나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온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노하우들은 유용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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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쪽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101쪽

 

읽어나가는 중에 읽을 가치가 없는 시원찮은 책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책은 바로 읽기를 중단하고 버린다. 그래도 애써 산 것이니 뭐니 해서 쩨째한 근성을 발동하여 무리하게 다 읽으려고 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좋다. 돈을 손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마저 손해보게 된다. 앞으로 허접한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기 위해 지불한 수업료라고 여기고 깨끗이 버리는 게 낫다. 물론 앞서도 얘기했지만 차근차근 읽지는 않더라도 책의 마자믹까지 페이지를 넘겨보는 과정은 거친 다음 버리는 게 좋다.

 

122쪽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상대로부터 들어야 할 것을 미리 알아두는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경우의 당연한 전제인지라, 뭐 특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아무 것도 없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지엽적인 테크닉론이다.

 

125쪽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묻는다는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할 때는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해 자신도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140쪽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경험을 쌓으면 '정중하게 정곡을!'이 가장 좋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묻는다.

 

193족

 

문체는 옷이다. 문체에 의해 표면을 장식할 수는 있어도 실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문체는 즐기는 대상이지 그로부터 정보를 끌어내는 대상은 아니다. 문장을 요약하면 문체는 사라지지만 정보는 남는다.

 

198쪽

 

보충 작업과 잘라내기는 병행하기보다는 따로 하는 게 좋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잘라내기가 목적인데 보충을 한다는 건 목적에 역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잘라내기와 보충은 전혀 다른 목적 하에 이뤄지는 행위다. 잘라내기는 양적인 삭감, 보충은 질적인 향상이 목적이다. 질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잘라내는 것은 가능하니까, 일단 질적 향상이 추구될 여지가 발견되면 우선 그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가능한 질을 향상시켜두고 나서 가능한 한 질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양을 줄여가는 것이다.

 

199쪽

 

사람은 타인의 것은 객관적으로 신속하게 가치판단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것에 대해서는 그게 참 안 되는 존재다. 그러니까 잘라내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잘라내면서 연습하는 게 좋다.

 

215쪽

 

프로 취지기자가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을 접할 경우, 그 때 그는 누가 1차 정보의 소유자이고, 누가 2차 정보의 소유자인가를 최대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즉,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은 오로지 진정한 정보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이다.

 

218쪽

 

정보 음미의 기본은 그 정보의 출처를 생각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몇 차 정보인지를 생각해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정보를 그 정보 제공자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우리지널 정보원으로부터 그 정보 제공자에게 정보가 흘러들기까지의 프로세스 전체를 상상한다든가, 따져 묻는다든가 해서 그 프로세스에 뭐낙 의심쩍은 부분은 없는지, 정보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숙고해 본다. (중략) 또한 그 정보 제공자가 왜 그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그 동기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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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억울한가 -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유영근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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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신 부장판사님이 올 가을에 펴내낸 따끈따끈한 신간이네요. 로스쿨 입학하기 전 해에 국내에서 법률가들이 업계사람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펴낸 책들을 쟁여놓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법은 시대상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좋은 책들도 시간이 흐르면 낡아가는 느낌이 있으니 법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도 추천할만 하네요.

 

굳이 내용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전 이렇게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업역에서 성실히 일하고 고민하면서 모아둔 심득(心得)을 책으로 펴내는 게 우리 사회에서 권장해야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정말 가치있는 책은 아니기에 효율적인 독서는 못되더라도 누구나 높은 수준의 책들만 유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낮은 단계부터 시작한 거북이과 노력파인 저같은 사람을 키운 건 팔 할이 이런 소박한 집밥같은 책들이거든요.

 

읽으면서 서두의 문제제기가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까? 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거든요. 심지어 훈련된 판사인 저자 본인도 억울함을 느꼈던 상황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케이스를 법률적으로 설명하며 어떤 경우가 보편적으로 억울한 경우이고, 공감받을 수 있는지, 억울함의 토로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수용될 수 있는 한계선을 짚어가며 가끔은 확대경으로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저도 얼마전 사람없는 시골 지방도에서 딴 생각하다가 횡단보도가 있는 것도 못보고 노란색 점멸등이 빨간색 정지 신호로 바뀌는 순간에 미처 정지 못하고 쌩하고 지나친 적이 있거든요. 카메라에 찍힌 느낌이 들어 각오는 하고 있었죠. 그런데, 알고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과태료가 무려 13만원(범칙금으로는 12만원인데 벌점이 무려 30점이에요...사전납부 할인도 전혀 없고요. ㅠ.ㅠ ) 처음으로 받아본 과태료부과 사전통지서인데 13만원짜리라니 순간 저도 '억울'하더군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른과 달리 시속 50km 이하로 주행하는 차량과 충돌해도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장기손상을 입을 수 있는 어린이들의 신체적 취약성을 감안할 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은 중하게 처벌되는 것이 맞겠지요. 최근 5년 동안만 보더라도 어린이 통학로 안전에 대해 시설을 보강하고 처벌기준 및 단속을 강화해온 덕분에 연평균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1만 2천여건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는데도, 연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1년 80명에서 2015년 65명까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거든요. 결국 절대로 제가 억울할 일은 아닌거죠.(여러분도 저처럼 13만원 짜 리 과태료 부과 통지서 받지 않으시려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신호위반 조심하세요. ㅎㅎ)

 

제3장 <사실과 다른 판결이 나는 이유>와 제4장 거짓과 오해는 법을 공부하면서 제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들이더군요. 현업의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납득시킬 때 참고하면 유용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오랜 경험을 쌓은 판사가 직무 수행시 지니고 있는 정밀한 형량감각이 느껴졌고요.

 

다만, 현직 판사로서의 자기 검열 때문인지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안전한 코스로만 서술하신 것 같다는 아쉬움은 드네요. 사람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이유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여느 시민들의 억울함에 대한 형량감각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집단의 오너 등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들로 인해서 어그러지는 사례들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지강헌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 과거에 그랬던 사례들을 다루고, 법이론적으로 불가피하게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케이스들 위주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물론 유영근 판사님께서 실제로 논란이 된 사건의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 비판하는 위험성을 잘 알고 계실테니 그렇게 서술하셨겠지만, 잘못된 입법(구멍이 있거나, 의도적으로 편파적인)과 법원 외적인 영향을 받은 판결로 인해 시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이 수용될 수 있는 한계를 잘못 긋도록 소음을 내는 상황에 대해서도 내부자 입장에서도 비판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권한 행사와 관련해서 그런 부분이 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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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종말 - 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해나 로진 지음, 배현 외 옮김 / 민음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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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해나 로진은 남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되고 있고,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현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줍니다.로진은 많은 영역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젠더 격변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 리더 등 남은 영역에서도 머지않아 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요.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맘 테마처럼 센세이셔널한 접근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로진이 드는 논거들이 설득력이 없다고 물리칠 자신이 없었습니다. 딱히 개별 사례들의 타당성을 검증해야겠다는 생각도 안들었고요. 당장 제가 대학다닐 때도 여자 동기들이 평균적으로 훨씬 똑똑하고 성실했으며, 여성인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이 불리한 차별과 육아 및 가사 부담을 안고서도 자기 입지를 구축해가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거든요. 

여성들이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오래 집중하는 능력’ 등에서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 현대사회에 잘 적응하는지는 뇌과학의 전초기지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맡기렵니다. 전 요즘 십대나 이십대의 문화도 모르는데다 육아도 안하고, 저나 지인들이 인구 모집단에서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니까요.

법정출산휴가나 유급육아휴직제도도 없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많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데다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지만 대신 한국엔 징병제가 있죠. 그래서 한국이 미국의 젠더 갭의 유사한 추세를 단순히 후행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르바로이, 흉노, 흑인, 쿨리, 生口, 달리트(불가촉천민) 등 역사상 인간들이 열등한 존재라고 비웃었던 어떠한 타집단에 대한 차별도 영속적이지 않았고, 특정한 민족이나 부족이 보편적으로 우수한 집단으로 검증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인류의 절반이(그게 여성이건 남성이건) 일방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남자들이 지난 몇십 만년 동안 가졌던 우위를 같은 식으로 누리는 것도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에서 나오는 적면포창같은 특성 성별만 감염되는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 세대가 흐르면 남자들도 배우겠죠. 게다가 수요공급의 법칙도 작동할테니까요. 

저는 지금 1896년에 태어나 1948년 행려병자로 사망한 여성 나혜석씨에게 반세기 남짓 지난 지금 이런 책이 나왔고, 이 책에 한국여성들 이야기가 나온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최초로 구미를 여행해본 여성이라 칭해지는 반도 최초의 페미니스트께요.

김우영과 결혼하면서 네 가진 조건을 걸었고, 그 중 하나인 요절한 약혼자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혼여행지를 전남 고흥에 있는 옛 남친의 묘지로 정했던 여성. 1930년 이혼 직후 ‘이혼의 비극은 여성 해방으로 예방해야 하고 시험 결혼이 필요하다.’고 했던 여성.

그녀에게 당신이 살던 때로부터 백년도 채 안지나서 조선땅에서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이 공감을 얻고 있다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어서 이젠 자라날 아들들이 걱정되는 시대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 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婦德)을 장려한 것이다.” - <학지광 1914년 12월호>
“오직 기생 세계에는 타인 교제의 충분한 경험으로 인물을 선택할 만한 판단의 힘이 있고 여러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을 좋아할 만한 기회가 있으므로... 조선여자로서 진정의 사랑을 할 줄 알고 줄 줄 아는 자는 기생계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1923년 6월)”
“결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좋아하며 지내면 부도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남편과 더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활력을 얻는다.(1928년 제네바 체류 중 작성한 편지 중)”

책 중간(134쪽)에 <인생은 행운, 사랑은 불운: 일정하지 않은 수입의 충격이 결혼과 이혼에 미치는 영향(Lucky in Life, Unlucky in Love: The Effect of Random Income Shocks on Marriage and Divorce>란 연구 제목이 나오는데 빵 터졌습니다. 저도 제 글에 이런 매혹적인 제목을 붙여봤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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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쪽

바로 이것이 새로운 시소(seesaw) 결혼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부부들은 젠더평등이라는 외적인 잣대로 평가 받는 정의와 공정성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좇는 것은 개인의 자기성취이며, 배우자 각자가 결혼 생활 중 각자 다른 시점에 자기 성취를 이루고자 할 수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이루어진 시대는 창의적인 중산층이 유동적으로 직업을 바꾸고, 같은 직장에서 평생 일하기를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된 때이다.

248쪽

가장 정확한 범죄 척도인 사법통계국의 ‘전민범죄피해조사’는 강간을 비롯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범죄가 지난 35년 동안, 특히 과거 10년 동안 급격하게 감소했음을 보여 준다. 과거 12년 동안, 성인 및 청소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간, 폭력, 미수, 위협을 포함해 공식으로 보고된 모든 폭력 범죄의 실현율이 급락했다. 

330쪽

어느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상사가 커피를 타 오라고 시킨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용아가 대답했다. “상사가 제게도 커피를 타 준다면 저도 타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는 게 보였어요. 한국 기업에는 서열이 너무 많아요. 취업하면 문서 복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거예요. 좋은 학교를 나와 문서 복사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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