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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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지금은 페북을 접으신 것으로 추정되는 예전 페친님께서 격찬하신 소설입니다. 과연 문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더군요. 바로 전에 읽었던 국내 유명 작가의 신작이 실망스런 태작이어서 다시는 이 사람 소설은 찾아보지 말아야지 다짐할 정도의 내상을 입었는데 치유가 잘 됐습니다.

 

어제 밤늦게 다 읽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 얼떨떨했습니다. 책을 덮을 때 내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읽었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잠자고 읽어나 다시 한 번 읽었네요. 다시 읽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줄리언 반스는 에이드리언 핀의 입을 빌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말로 가상의 인용처리를 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는 문장이죠.

 

두 번째 읽으며 당사자 본인의 증언이 없더라도 에이드리언 핀의 결단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부정확한 기록들을 꽤 찾을 수 있었습니다.(제 독해력이 이 소설을 겨우겨우 이해할 정도라도 돼서 다행입니다.) 헌트 선생의 역사학자들에 대한 변호가 일리가 있었던 셈이죠.

 

같이 살아갔던 친한 개인에 대한 기억과 예감도 이리 부정확한데 그러한 개인들이 연쇄사슬처럼 얽혀있는 역사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고 내 분석이 맞다고 뿌듯해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싶어 울적해지네요. 제가 관심 있고 좋아한다고 생각해온 역사가 무엇인지 그 바탕부터 다시 생각하게 해준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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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101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162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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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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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보고 있는 용대운님의 <군림천하> 빼고 오랜만에 본 장르소설이네요.

좀비 전쟁 종료 직후에 세계각지를 돌며 인터뷰를 채록한 구술사인데 은근히 요즘 세계 각국의 상황에 대한 정치풍자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연예인, 변호사, 회계사 이런 사람들이 쓸모없는 잉여인력이 되고 농부와 목수 등 육체노동자들이 선호되는 기술인력으로 뒤바뀐 상황에 대한 묘사도 꽤나 인기에 한몫한 것 같고요. 저자가 일본 오타쿠인건 확실합니다. ㅋㅋ

전 서바이벌 매뉴얼이나 생존주의자 동영상에 혹하는 편이라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소물 재미있게 봤지만 취향을 좀 타긴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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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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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읽었던 박 훈 교수님의 칼럼하고 이어진다고 느꼈던 중편소설입니다.이 작품으로 작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씨는 근 이십 년째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수상 당일도 편의점에서 아침 근무를 마치고 왔다고 하죠.

일본을 갈 때마다 편의점의 오퍼레이션은 도저히 다른 나라에서 따라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편의점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요. 일단 우리나라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근무시간에는 휴대전화는 꺼놓으라고 할 수 없으니. 게다가 직장 내 사생활에 대한 간섭도 우리나라와 달리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일만 잘하면 익명성에 숨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편의점 직원 일을 아주 잘해내고 있는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아침에 출근해서 편의점에서 빵을 먹고, 편의점에서 산 물을 마시고, 편의점 음식물을 먹고, 다음날 편의점에서 제대로 일하기 위해 잠을 청하는 게이코 후루쿠라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제가 생각했던 '개인주의자'의 이미지와 달라서 그 선언에 선뜻 동조를 못했습니다. 편의점 안드로이드가 되고자하는 개인을 개인주의자라고 해야할까요?

여담으로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사회 내의 사회적 규범에 맞출 것을 바라는 압력은 정말 막강하더군요. 비혼도 골드미스가 아닌 편의점 프리터가 선택하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니. 우리나라는 과연 다른가 생각해보니 딱히 대답을 못하겠네요. 

또, 시라하씨라는 일본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난 루저 남성들의 민낯은 일베하는 남성 캐릭터의 이미지와 어쩜 그리도 비슷한지. 외국인인 편의점 신참 직원 투안군이 '점원'에서 '무리의 수컷' 중 하나로 보이게 되는 부분에 대한 묘사도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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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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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중에서는 두 번쩨이고 소설로는 처음이네요. 읽고보니 원제 <The Course of Love>보다 번역판 제목이 더 어울리는 제목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맨 앞에 '도시 중산층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겠지만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만난 건축일하는 두 남녀가 만나고 결혼생활을 하는 이야기인데 중간중간 알랭 드 보통이 개입해서 그 상황에 대한 짤막한 해석들을 적어줍니다. 소설에 에세이가 끼워 들어간 셈이죠.

가까운 이가 결혼할 때 축의금 봉투 외에 따로 이 책을 선물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속표지에 '결혼기념일 3주년 후에 한 번 더 읽을 것'이라고 메시지도 적어서요. ㅋㅋ

비혼주의자나 DINK들도 중산층의 유자녀 결혼생활의 표준이 어떤지 흘낏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만 합니다. 어차피 본인 생각대로 살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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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쪽

결혼이 실용적인 면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65쪽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86쪽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대상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중략) 다시 말해,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89족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146쪽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 - 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155쪽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조냊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날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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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세트 - 전3권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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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엠 에트 키르켄세스'가 라틴어로 '빵과 서커스'였구나. 읽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아닌지 싶었던 슬럼프에서 내게 배급된 판엠같은 책. 


물론 나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십대 후반 소녀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소재 자체가 리얼리티쇼라서 고전과 달리 친숙하고 1천 페이지가 넘는 삼부작을 다 읽으면서 책에 재미를 붙일 기회를 제공하니. 소녀들이 캣니스 애버딘과 자신을 동일시 해보는 경험이 꽤 괜찮을 것 같고. 아재들에겐 진부할 수 있지만 '빵과 서커스' 전략, 속주 분할통치 등 고대 로마 이래 유구한 전통을 지닌 정치가들에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약간의 판타지와 함께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주니. 


영화 <헝거 게임:판엠의 불꽃>에 캣니스 애버딘 역할로 매력적인 제니퍼 로렌스가 나왔다는 점이 끝까지 읽는데 큰 도움을 줬음. --; 제니퍼 로렌스는 금발보다 갈색머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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