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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잡은 인생 - 삶의 가동 범위를 넓히는 본격 건강 독려 프로젝트
한승혜 지음 / 디플롯 / 2025년 7월
평점 :
몇 년 전에 작가님께서 취미운동으로 폴댄스를 시작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종종 밀롱가를 언급하셨기에 탱고를 추셨고 날씬하시니 즐겁게 하시겠구나 싶으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가로 폴 두 개를 이용한 평균대 운동으로 한 학기 실기시험을 치르면서 봉을 잡아봤을 뿐이지만, 정말 잘하는 친구들의 실력이 빠르게 늘어가는 과정, 그들이 보여준 멋진 체조 동작들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한승혜작가님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저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여성들이 볼 때 불편한 부분들을 잡아내는 시선과 섬세한 표현들에 감탄했거든요. 그런데 폴댄스는 실제로 한 번도 본적이 없고, 영화에서 배경으로 폴댄서가 나올 때의 분위기(?)로만 접한 제게 폴댄스의 인상은 그냥 요가를 하면 되는데 굳이 왜 (세미)네이키드 요가를 해야하지?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취향은 모순적이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면서 고배기량 디젤차를 몰거나 취미가 골프일 수도 있고, 저도 책의 메시지처럼 인간의 다층적인 부분들을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요.
이런 의구심을 갖고서 책을 폈는데, 읽으면서 선입견은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즐거움이 다 다른데, 남들이 어떻게 볼까 의식하며 선택지를 좁히다보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시야를 넓히는 경험은 점점 하기 힘들어질테니 그러지 말자고요.
제가 12년전에 3단 폴딩방식의 브롬톤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이동과 운동이 결합된 생활을 체험했고, 지금도 주변에 자주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대화로 제가 느끼는 만족감과 추천의 이유, 브롬톤 자전거로 인해서 변화된 제 모습 등을 전달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이럴 때 <시작은 브롬톤>(블리, 2016) 책을 추천하죠. 앞으로, 브롬톤을 이용한 단기 캠핑, 장기간의 투어링 팁과 매력에 대한 책도 누가 한 번 써주면 좋겠다 싶고요.
괴로워 보이는 운동을 왜 계속하는지 궁금한 분들, 폴댄스에 관심이 있지만 머뭇거렸던 분들, 저처럼 폴댄스에 선입견이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운동을 통해서 몸의 근육과 함께 마음의 근육을 쌓으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더 확장되는 경험이 담겨있습니다.
폴댄스에 대한 체험정보와 개인적인 부분을 함께 넣어서, 삶에는 어두운 부분들이 많이 있고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지만, 살면서 행복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소개해주는 유쾌하고 다정한 에세이의 모범이 되는 책이에요.
최근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지인에게 책처방전으로 선물했는데, 모쪼록 잘 읽어줬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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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쪽
이는 마치 자연 풍광이나 예술품을 보고 감탄하는 것처럼 몸이 지닌 물성 자체를 그대로 긍정하게 된 것에 가깝다. 나의 몸이든 타인의 몸이든. 몸에 있는 다양한 상처와 주름, 흉터, 타투, 각자의 몸이 지닌 개성들, 이런 것들을 성적인 시선 혹은 대상화하는 시선 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182쪽
그런 의미에서 폴을 만난 뒤 새로 품게 된 목표 중 하나는 칭찬에 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쑥스럽다는 핑계로, 입에 발린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가식적이라는 핑계로 저 멀리 치워두거나 미뤄두거나 생략했던 말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다. 예쁘다고, 잘했다고, 멋지다고, 대단하다고. 단순히 빈말에서 그치지 않고 부모가 아이를 지켜보듯 누군가를 공들여 바라보면서 더 좋아진 점, 더 나아진 점, 더 예뻐진 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부드러운 눈과 입을 가지고 싶다.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 타인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197쪽
아이를 데리고 다녀도 좋다는, 아이가 출생한 후에도 양육자의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는, 아이가 있더라도 삶의 범위가 제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어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236쪽
누군가의 폴링이 급한 이유는 물론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근력이 부족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마음 또한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성격이 급하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건 마음의 힘, 즉 마음의 근력이 부족하다는 말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