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탄생 - 제국은 어떻게 태어나고 지배하며 몰락하는가
피터 터친 지음, 윤길순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피터 터친은 퍼트남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사회적 자본'이라는 훨씬 친숙한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동역학'의 주창자 답게 14세기에 살았던 이븐 할둔이 말한 '아사비야(집단의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치는 능력, 협력하는 능력)'라고 하는 개념과 문명의 단층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초민족 공동체인 제국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리고 왜 세대별로 부침을 겪고, 결국 몰랐하게 되는지, 몰락한 제국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다른 제국은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설명한다.

150명(던바의 수)이라는 사회적 채널 용량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사회집단을 나타내는 상징의 발명(ex토템)'이 갖는 중요성. 평등성과 손쉬운 사회적 계층이동, 그리고 공정성 규범의 엄격함과 같은 변경사회의 특성이 어떻게 집단의 장기적인 성공에 기여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재미난 착상에 다른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인용해서 이언 모리스 교수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통일장 이론을 펴나간다.

근데 내용도 방대하고 이에 대해 임명묵님이 훌륭한 서평을 남겼기 때문에 내가 그에 대한 열화버전을 쓰는 건 의미가 없다...(이거 보시면 댓글로 서평 링크 좀 달아주세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대 남한에 사는 하급 젠트리의 시선에서 피터 터친의 역사동역학(Cliodynamics) 이론을 적용해봤다. 남한이 초민족공동체인 제국은 아니지만.

남한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해양세력인 일본제국의 지배(반일과 극일의 아사비야 땔감을 남김 ㅋㅋ)와 미군의 진주를 통해 공산주의자들과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면서 집단 선택의 압력이 거센 문명의 단층선이자 변경이었다. 여기서 유전학의 돌연변이나 재조합과 유사해보이는 문화적 진화(속도*5)를 통해 지상목표였던 생존은 물론 세계사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북한이란 경쟁자때문에 취해졌던 상대적으로 소작인들에게 유리했던 토지재분배, 한국전쟁으로 인한 계급타파와 경제적 평등의 성취, 독재자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매판자본을 길들이고, 수출기율을 강제하여 빈곤한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여 전근대 국가에서의 영토확장과 같은 효과를 봤다. 엄청나게 높은 '아사비야'가 큰 몫을 했고.

카톨릭계 남부 저지대가 벨기에로 떨어져 나간 네덜란드처럼 위아래로 긴 반도국가에서 정복할 땅을 신경쓸 일이 전혀 없는 단괴형 국가가 된 게 오히려 축복이었던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그래도 지역감정이 있었지만요.) 게다가 박정희는 냉전시대 덕분에 우방국에 수출은 엄청나게 하면서도 공동체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과시적 소비를 할만한 물건들은 최대한 수입을 틀어막거나 높은 관세와 개별특소세를 부과했죠.

IMF위기 이후로 지금까지 남한엘리트의 선택과 행운은 탁월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높아지고, 소수의 코스모폴리턴과 개돼지들로 분화된 남한이라는 민족공동체의 '아사비야'는 이미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피터 터친도 로마제국의 사례를 들어 이런 시차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의 평화체제에 찬성하면서도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섣부르게 느껴집니다. 아예 섬나라인 일본과 달리 일시적인 섬나라였던 상황이 높은 '아사비야'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이는데 과연 남한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 차상위계층, 장애인과 시골의 독거노인들이 통일을 반길까요?

그리고 자녀들을 계속 엘리트집단에 남게 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군비경쟁이 격화되는 게 전세계적인 추세라지만 한국은 엘리트층 내부의 경쟁이 너무도 심해서 그나마 남아있는 사회적 자본을 말해주는 공동체의 유대들이 과연 다음 세대에서는 얼마나 남아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의 한 자녀 낳기 추세는 어찌보면 한 가구가 겨우 먹고살만한 자경농지가 상속을 통해 반으로 쪼개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영농 가구들의 생존전략인 것도 같고요. ㅎㅎ

중세 프랑스사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인용하는 내용들을 보다보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하이스패로우가 14~15세기 프랑스의 민중 선동가 에티엔 마르셀과 시몽 카보슈의 사례에서 따왔고, 볼튼 가문은 희생자들의 가죽을 홀딱 벗기는 '에코르셰르(ecorcheurs)'란 집단을 참고한듯 싶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문명의 단층선과 변경을 다루면서 위대한 '예케 몽골 울루스'에 대해서 이렇게 조금밖에 안다루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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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쪽

집단만이 다른 집단과 사회 전체를 억압할 수 있고, 그러려면 '억압자'집단이 내적으로 결속되어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억압은 협력을 토대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65쪽

협력과 무자비함 사이에는 본래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대량 학살과 같은 대규모의 무자비한 행위는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나 현대 사회에서나 오로지 내적으로 결속된 집단만이 저지를 수 있었다.

361쪽 : 묵시록의 네 기사가 가져오는 순환

우리는 지금까지 강한 제국은 안정과 내부 평화를 가져오지만 그 안에 혼란을 낳을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안정과 내부 평화는 번영을 가져오고, 번영은 인구 증가를 낳는다. 인구 증가는 인구 과잉을 낳고, 인구 과잉은 임금 하락과 지대 상승, 평민들의 1인당 소득의 감소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낮은 임금과 높은 지대가 상류층에 유례없는 부를 가져다주지만, 그들의 수가 증가하고 탐욕이 늘면 그들도 소득 감소를 겪기 시작한다. 생활수준의 하락은 불만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엘리트층은 국가에 의지해 고용과 추가 수입을 얻으려고 해 국가의 지출을 끌어올리지만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빈곤해져 세수는 줄어든다. 국가의 재정이 붕괴되면, 국가가 군대와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제약에서 풀려나 엘리트층의 갈등이 고조되어 내전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해 민중 반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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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과학 -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
이윤석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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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묻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원래 전공은 아닌데도 이런 과학교양서를 쓸 수 있다니. 이윤석시가 얼마나 많은 책을 깊이 있게 읽어온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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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과학 -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
이윤석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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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묻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원래 전공은 아닌데도 이런 과학교양서를 쓸 수 있다니. 이윤석시가 얼마나 많은 책을 깊이 있게 읽어온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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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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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김영준님의 첫 저서. 어제 택배로 받아 자정쯤까지 단숨에 읽었다. 페친을 맺은지 좀 되다보니 영준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접한 내용들도 꽤 많지만 그래서 속도가 붙은 건 아니었다. 읽었던 내용이라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이미 접했던 내용들도 김정운씨가 <에디톨로지>에서 주장하듯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달력은 완전히 다르니.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입장,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 이렇게 알기 쉽게 정론(正論)만 추려모은 책이 또 있을까?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어오면서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에 대해서는 <공간의 가치>를 쓰신 박성식님을,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는 페북의 은거고인 Johoon Lee님을 으뜸으로 꼽고 있었다. 두 분 다 면식도 없지만 한 분은 건축을 전공하시고 부동산 디벨로퍼 분야에 종사하셨고, 다른 한 분은 십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유수의 대기업들에 오퍼레이션 컨설팅을 해오신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part 2. 기회로 위장한 위기>에서 유행 아이템 사업의 주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는 박성식님이 한국의 대도시 상권은 왜 이렇게 수명이 짧은지를 설명할 때 감탄했던 느낌이, <part6. 상권이 움직이는 방식>과 <part7. 젠트리피케이션> 부분을 읽으면서는 Johoon Lee님의 역작 포스팅 '부동산에 대한 소고 - 삼위일체를 바탕으로'를 읽었을 때의 깊은 감동을 다시 맛보는 듯 했다.

대단한 점은 저자 김영준님은 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업계의 플레이어가 아닌 관찰자라는 차이가 있다. 생업이 따로 있는 관찰자가 단행본을 읽고 일반에도 공개된 자료를 분석하고, 행인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앞의 두 분에 견줄만한 비슷한 시야를 쌓아온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2007년에 블로그 개설 이래로 십 년 동안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지만, 아카데미아의 세계 안에 있어 운공 중에 기혈이 들끓고 사마외도의 행공법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줄 명문정파의 사부나 사형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말의 말미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을 이해하고 자기 밥그릇을 명확하게 챙기도록' 하고 싶다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점도 빼어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더 인상깊었다. 이 책에 참고자료로 언급된 단행본 중에 8권을 읽었지만 읽은 걸 자기의 말로 풀어놓지 못하는 자의 질투심아 제발 사라져라.)

반쯤 읽었을 때는 좋은 책인데 왜 제목을 <골목의 전쟁>이라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제목을 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굳이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인 '골목'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비하는 사람과 많지 않은 자본과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자가 된 이들 모두 '골목'에 주목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역할을 넘나드는 경험은 살면서 많이들 해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시작할 때 급여생활자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이른 은퇴에 몰리는 시점이 되기 전에는 자영업자의 생활을 경험하기 힘들다. 주택의 임대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퇴직을 앞두고 평생 모은 돈을 상가에 투자해서 은퇴 후 자산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상권과 상가의 입지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이는 누구의 게으름도, 잘못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근대화와 도시화의 시기가 그만큼 짧아서 생긴 일이니. 선진국들도 다 경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왕성한 소비자인 나는 좀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팁을 얻었고, (원래 나한테는 안맞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은퇴하더라도 자영업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고 재차 다짐했다.또 혹시 투자할 자산이 좀 쌓이더라도 상권을 분석하고 투자할 상가를 고를 때는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신중하리라 마음 먹었다.(아마 모기지 다 갚고 나면 은퇴해서 역모기지로 살아갈테니 고민할 상황은 별로 안생기겠지만 ㅎㅎ)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변에 제2의 길을 찾는다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겠다는 친구는 우선 말리되 마음을 못돌릴 것 같으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창업한 지인이 있으면 이 책을 선물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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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쪽

기존의 개인 임대업자는 단지 입지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많은 상권의 침체에서 보듯이, 이들으 건물과 상권에 대한 가치평가 능력이 낮고, 입지적 우위만으로 상권이 가진 부가가치를 빨아들여 왔다. 그에 반해 대형 쇼핑몰은 기획가 운영을 바탕으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것을 단지 규모가 크다고 규제한다면 이는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기업 임대업자에 대한 규제이자 개인 임대업자에 대한 보호와 우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골목 상권과는 무관한 일이다.

215쪽

상권은 누구의 것인가? 상권은 상가건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건물과 그곳에서 영업하는 가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230쪽

그런데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규직의 최대 특혜는 높은 연봉도 안정성도 아닌, 바로 금융 접근성이다.

248쪽

문제는 사람들이 평균을 물러서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자,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못해도 평균은 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평균 이하인 50%의 존재를 간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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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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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자영업자가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하기에 매우 훌륭한 책. 쉬운 표현과 생생한 사례를 사용해서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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