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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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워낙 많이들 읽으신 책인 것 같아서 봤는데 생각보다 영 실망했다. 무조건 300페이지를 채워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설명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이다보니 반복되는 부분이 많고 생각의 흐름이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덕분에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프로이트의 인과론적 해석에 기반한 트라우마이론을 비판하며 대두된 아들러의 목적론적 해석이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기초적인 아이디어들을 이미 얇은 자기계발서적인 <The Present>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통해서 접한 다음이라 그런지 별로 감흥이 없었다. KTX에서 볼 다른 책이 있었더라면 끝까지 읽지도 않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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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쪽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120쪽

 

스스로 손목을 긋는 아이를 보고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하면서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을걸세. 하지만 손목을 긋는 행위를 했을 때 주변 사람 - 예를 들어 부모 -이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보게. 그러면 저절로 행위의 배후에 있는 '목적'이 보일 걸세. 그리고 인간관계가 복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면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투쟁을 위해 싸움을 걸어왔을 때는 절대 응해서는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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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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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The intimate bond라..번역판 제목도 괜찮고요.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님의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많이 배웠던 터라 이 책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책이네요.


이 책은 가축이 된 동물인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를 다룹니다.(그런데 페이건 교수님은 돼지는 간략히만 언급하고 넘어가시고, 닭은 거의 안다루시더군요. 이미 <치킨로드>라는 책이 있어서 그러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느 동물들에 대해서는 여타 인류학이나 생태학 책들을 통해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나귀(고대의 픽업트럭)와 낙타(사막의 배)가 얼마나 유용한 동물이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이나 <슈렉>에 괜히 당나귀가 나오는 게 아니었지만 시골 살면서도 당나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지라.

 

책은 두 가지 포인트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데 첫번째가 인간과 가축이 된 동물과의 관계의 양상을 되짚어 보는 내용이라면, 두번째는 인간과 가축이 된 동물과의 관계가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입니다. 특히 전 신석기혁명을 농업으로 인해 인류의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이 가축떼를 거느리게 되면서 동물을 관리하기 위한 영구 정착지, 동물에 대한 소유권(혼인 등 여러 관계를 맺는 징표로 사용될 수 있는 처분권을 포함하는), 상속의 문제, 목초지의 통제와 방목권, 와 같은 것들이 필요했고, 역사의 방향타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책을 읽기 전해는 인식하지 못했네요.

인류가 농업을 시작했더라도 잉여생산력 자체가 형편없었던 시절에 가축이라는 수단이 없었더라면 과연 유력자가 출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홍기빈씨의 <소유는 춤춘다>을 읽었을 때처럼 재산법의 근간이 되는 소유권의 연원을 생각해보게 되는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 <아바타>나 <늑대와 춤을>에 등장하는 수준으로 동물들과 친밀한 유대를 맺으며 공준하는 생태주의적인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인간들이 축력과 바이오매스 외에 모든 현대적인 에너지원을 포기해야 실현가능할 듯 싶은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그러한 고단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설령 생태학적인 한계로 인해 그러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지급의 십분의 일이나 될까 싶습니다.게다가 저도 인간 족속인지라 인간 노예 30명의 가치가 훈련된 말 한 마리와 등가로 교환되었던 힛타이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여담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가축화된 동물들에 예외없이 적용되는 '여분의 수컷들 솎아내기'가 있던데 인간 수컷으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한무제 때 장건이 대완국(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계곡)에서 발견한 한혈마(汗血馬)가 기생충에게 피를 빨리는 고통때문에 여느 말보다 더 질주했던 말이라니..적토마에 대한 환상이 확 깨졌습니다.(혼자 망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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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쪽

 

결국 가축은 강력한 사회적 수단이었다. 매우 단시간 내에, 새로 사육을 시작한 가축 무리에서 나온 여분의 수컷들은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특히 마을 축제에서 산 채로, 혹은 도살되어 의미 있는 선물로 쓰였다. 나날이 불어나는 가축 떼를 보유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와 덕망을 얻었고, 가축은 살아 있는 재산이 되었다.

 

여기서 재산은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가축과 그 가축이 풀을 뜯는 목초지의 상속도 민감한 문제였다. 사냥감과 달리 동물은 집과 목초지처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이었다. 땅에 대한 소유권은 부계 또는 모계를 따라 다음 세대가 물려받았다. 상속 과정은 확고한 규칙으로 자리 잡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땅의 소유권과 방목권은 처음부터 세심하게 보호되었다. 특히 먹성 좋은 가축이 주변 경관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더 확실하게 대처했다.

 

312쪽

 

가장 유명한 경주마는 이클립스(Eclipse)다 1754년에 컴벌랜드 공작인 윌리엄 오거스터스 왕자가 교배한 무적의 경주마는 18회나 우승을 차지했고, 경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250km를 걸었다. 이클립스는 17개월 동안의 경주마 생활을 마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마가 되었다. 이후 이클립스의 새끼들이 자라 350~400마리가 경주에서 우승마가 되었다. 오늘날 영국 순혈마의 약 95%가 이클립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346쪽

 

1860년 무렵에는 저렴한 강철이 대량 생산되면서 승합마차가 선로 위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보다 마차의 승차감이 훨씬 좋아졌다. 이제 말은 더 먼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고 3~10배 더 많은 사람을 운반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철도의 표준궤가 마차의 궤간에서 유래했던 연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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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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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게 가장 좋아하는 학자를 꼽으라면 아마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접한 <제3의 침팬지(1991)>와 <총,균,쇠(1997)>, 졸업무럽 읽었던 <문명의 붕괴(2005)> 모두 생각의 지평을 넓혀줬던 인상깊었던 책이거든요. 생리학에서 출발하셔서 조류학, 인류학, 생태학, 지리학, 진화생물학까지 섭렵하셨고, 십여 가지 언어를 구사하시는 이 시대의 석학이시죠.

다이아몬드 교수님의 최근작 <The World until Yesterday: What Can We Learn from Traditional Societies?(2012)>를 어젯밤 완독했습니다. 이 책은 소위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들에게 39개의 전통(수렵채집,농경) 부족사회가 체득한 지혜들을 소개하고, 지금 세대와 후손들이 어떤 것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제 곧 팔순인 석학께서 자신의 손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르침을 구술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젖떼기와 우는 아이달래기, 놀이도구와 친구, 이중언어 사용, 현대인의 비전염성 질병과 관련된 염분과 당분의 과다섭취와 운동부족 등에 대한 우려 등은 영유아 자녀교육에 관심있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거인의 생각이 흘러가는 흐름을 느끼며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물줄기세례를 받고나니 복잡한 세상일들이 내는 소음에서 한발 떨어져 편안해져서 좋네요.

인생에서 7%의 시간을 뉴기니에서 보내면서 총천연색 경험을 했고, 나머지 93%의 시간을 회색빛 현대문명지에서 보내며 계속 뉴기니를 떠올린다는 교수님의 소회를 보니 현대인들이 왜 등산이나 캠핑같은 자연을 찾는 아웃도어를 좋아하는지 알겠더군요.(부쉬크래프트매니아나 생존주의자들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돌을 쪼개 돌칼을 만들어쓰던 뉴기니의 부족민부터 이십대의 미국인인 막내아들까지 타임머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다이아몬드 교수님같은 소수의 인류학자가 아니고서는 수천년 동안 인류가 경험해온 다양한 사회를 자신의 시야에 담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만화가 최규석씨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던 것처럼 저는 아직 삼십대지만 어릴 적에 남도 끝자락의 면단위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농사를 짓는 외갓집이 가깝다보니 수업 끝나고 자주 가서 놀았죠.

초등학교 1학년인 제게 외할아버지는 소나 염소의 고삐를 쥐어주시며 방죽(저수지)에 가서 풀 좀 먹이고 오라고 시키셨고, 일 없으면 놀지 말고 꼴이나 좀 베어오라고 하셨는데 오는 길에 길을 막고 있는 다른 소나 성질사나운 염소때문에 이도저도 못하고 끙끙대던 기억이 나네요.

마을 또래들은 코흘리개여도 다들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요. 쪽대(반두)를 가지고 놀러가서 농로나 도랑을 쳐서 미꾸리나 드렁허리, 각시붕어, 돌고기, 왜몰개 등을 잡아와서 반찬거리로 쓰거나 닭모이로 던져주곤 했죠. 좀 부지런떨어서 아침 저녁으로 저수지를 한바퀴 돌면 물가로 올라오는 우렁이를 대야 한가득 잡을 수도 있었고, 대나무로짠 닭장에서 족제비한테 물려죽은 닭 잡아먹고 남은 닭뼈 챙겨서 계곡으로 놀러가면 그 날 저녁엔 가재 삶아먹었죠.

수완좋은 친구덕분에 동백씨를 주워모아 머릿기름으로 쳐줬던 동백기름 짜는 집에 팔거나, 솔잎이 수북하게 쌓인 땅을 파서 굼벵이나 사슴벌레 애벌레를 잡아서 한약방가서 팔아서 용돈 벌기도 했었고요.

마을에 살던 삼촌과 이모들이 저를 돌봐주셨고 사촌들이나 동네 친구들하고 놀다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몰랐던 어린 시절 추억을 간만에 떠올려 봤네요.

개인적으로는 종교에 대한 제9장 '전기뱀장어는 종교의 진화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가 주는 통찰력이 이 책에서 가장 좋더군요.

에필로그를 제외한 마지막 장인 제11장 '염분과 당분, 비만과 나태'를 읽으며, 여름철 기온이 높은 벼농사지역이다 보니 뭐든 짰던 반찬들, 광주로 전학와서야 햄버거와 피자를 처음 먹어봤던 기억, 지난번 건강검진 때 확인한 BMI지수와 늘어진 뱃살(시골살 때는 나름 그동네의 풀무치 학살자였는데...) 정상치의 끝단 근처에 있는 혈압수치까지 다이아몬드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물론 애정어린 충고입니다.

참고논문까지 합치면 번역판으로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보니 들고 읽기도 무겁고 해서 읽는데 좀 오래 걸렸지만 국가사회 이전의 인류집단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들이 체득한 지혜는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용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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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전통적인 사회의 보상 과정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후로도 작은 사회에서 평생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 할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중략) 국가 사회에서는 분쟁 해결 과정이 느린 데다 적대적이며, 당사자들이 그 후로도 만날 가능서잉 거의 없는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분쟁 해결 과정이 관계의 회복보다 잘잘못을 따지는 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또한 국가의 이해관계가 피해자의 이해관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270쪽

식량이 충분하지 않는 전통 사회에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젖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열량을 소비하기 때문에 지방 수치가 그 임계값을 항상 밑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수렵채집 사회에서 수유하는 어머니와 달리, 서구 산업사회에서 수유하는 어머니가 섹스를 하면 두 가지 이유에서 임신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로는 수유의 빈도가 너무 낮아 수유성 무월경을 유도할 정도로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산모들이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서 수유로 많은 열량을 소비해도 체지방수치가 배란을 위한 임계치를 항상 웃돌기 때문이다.

310쪽

수렵채집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그곳의 아이들이 성정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서구학자들과 내가 소규모 사회 구성원들의 정서적인 안정감과 자신감, 호기삼과 자주성, 조숙한 사교능력에 충격을 받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략)
수렵채집 사회를 비롯한 소규모 전통 사회에서 살았던 서구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에 따르면, 그곳의 아이들이 양육되는 방법 덕분에 그런 부러운 자질들이 발달하는 것이다. 즉 긴 수유 기간, 오랫동안 부모 옆에서 잠을 자는 풍습, 대리 부모를 통해 아이에게 훨씬 많이 제공되는 사회적 본보기들, 돌봄이들의 끊임없는 신체 접촉을 통한 사회적 격려, 아기의 울음에 대한 돌봄이의 즉각적인 반응, 체벌의 최소화 등의 결과로 그곳 아이들이 얻는 정서적 안정감과 격려가 그런 자질들의 근원적인 힘이다.
(중략)
1만 1,000년 전, 국지적으로 농업이 도래하기 전까지 전 세계인이 수렵채집인이었고, 5,400년 전까지는 누구도 국가 정부 하에서 살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실험해서 얻어낸 양육법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415쪽

내 미국인 친구는 뉴기니에서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던 새로운 무리사회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만나려고 지구의 절반을 날아갔지만, 그들의 절반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미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로 이주해 티셔츠를 입고 지내는 모습을 보았을 분이다. 그들은 "먹을 쌀이 있고, 모기가 없다!"라는 말로 이주한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483쪽

종교는 흔히 다섯 가지의 속성을 지녀야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1)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2)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며 그 운동에 동참하는 회원들, 3) 비용이 많이 드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헌신, 4) 행동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규칙들, 5)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현실의 삶에 개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540쪽

위험으로 무릅쓰고 종교를 다른 식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이런 정의를 제안하고 싶다. "종교는 어떤 특성들의 집합체로, 그 특성들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과, 그 특성들을 똑같은 형태로는 공유하지 않는 인간 집단을 구분한다. 특히 세 가지 특성-초자연적인 설명,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서 비롯된 불안감의 완화, 고통스런 삶과 예견된 죽음에 대한 위안의 제공- 중 하나 혹은 그 이상, 때로는 세 가지 모두가 언제나 공유돼야 한다. 초기 단계 이후에 종교는 규격화된 조직, 정치적인 순종, 자신과 같은 종교에 속한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아량, 타종교를 믿는 집단과 벌이는 전쟁의 정당화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646쪽

혈액에서 포도당 농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인슐린을 신속하게 분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인슐린을 신속하게 분비하도록 명령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음식물로 섭취한 포도당이 소변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혈액의 농도를 높일 틈도 없이 포도당을 지방으로 격리할 수 있다. 때때로 식량이 풍부할 때 이런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음식을 한층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지방을 저장하고 신속하게 살을 찌운다. 따라서 그 후에 닥치는 기아의 시기를 한층 여유롭게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유전자는 풍요와 기아가 예측할 수 없이 반복되던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는 유익했겠지만, 현대 세계에서는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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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6
박훈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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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께서 추천하신 책인데 오래 기억만 하고 있다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세종도서라고 직장 도서실에 기부해준걸 얼른 빌려와서 읽었습니다. 과연 추천받을만한 책이군요.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답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본사를 워낙 날림으로 읽고 공부를 안해서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에서 봤던 로주 등 오오쿠에서 일하는 쇼군의 수족들과 번의 운영체제 등을 접했던게 이 책을 읽는데 꽤 도움을 줬습니다. 

저자 박훈 교수님이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주로 개항기 일본의 대외인식과 정치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기리야마 본진의 신상목 사장님께서 월간조선에 연재하시는 도쿠가와 시대 일본의 경제사와 사회문화사에 관한 글들과 같이 묶어서 보시면 도쿠가와 막...부말부터 일본의 개항기에 전체적인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1장 <도쿠가와 체제의 구조와 특징>이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주더군요. 많지 않은 분량으로 도쿠가와 막부체제의 핵심을 쉽게 설명해주시네요. 저는 사무라이들이 다이묘가 거주하는 조카마치(성하촌)에 거주하는 도시민으로 봉록만을 받을 뿐 토지소유권도 없고 조선의 양반이나 중국 신사층처럼 향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것도 몰랐고, 사무라이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7%가량이나 되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서리계층과 비슷한 지위의 하급사무라이들이 200년의 평화시기 동안 신분 상승의 기회가 막혀있었다니. 

18세기에 비단, 차, 도자기의 국내생산까지 성공해서 굳이 은을 유출하는 대외무역을 할 필요가 없고 에도의 인구는 당시 세계 최대인 100만,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제공했던 조닌(상인)들이 형성한 200여개의 조카마치가 있는 도시화율이 상당한 전근대의 평화로운 자급자족 국가가 일본이었군요. 

나카사키의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서 자카르타발 풍설서를 통해 당시 세계의 정세를 상세하게 입수했고, 출판문화가 발전하여 재야의 식자층들도 전국7웅을 빗대어 러시아,오스만튀르크, 무굴제국, 유럽, 청, 일본이 대치한 세계의 구도를 인식하고 나름의 방책들을 쏟아냈던 것들을 읽으니 동시대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심지어 요시다 쇼인은 막부의 해금정책을 한탄하면서 "하물며 내가 평생 뛰어다니더라도 동서 경도 30도, 남북 위도 20도의 바깥을 나가지 못함에랴."라고 한탄했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구요. 지식인들이 이정도로 세계정세에 밝았으니 1848년 아편전쟁의 패배에서 실제로 패했던 청나라보다 더 강한 위기의식을 가질만 했네요.(심지어 도쿠가와 막부는 미국이 곧 함대를 파견하여 개항을 요구할 것이고, 함대 사령관의 이름이 페리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니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한 후 해밀턴 아일랜드라고 이름붙이고 주둔한 사실은 커녕 거문도가 도대체 어디 붙어있는 섬인지 파악도 못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재조지은 뽕을 맞은 덕에 청나라가 발원지인 만주를 봉금한 이래로 쓰시마 해적들 수준말고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위기가 닥치면 조공책봉 체계에 따라 중국에 기대면 되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13세기 몽골군 외에는 외부 침략을 받을 일이 없었죠. 고립국가여서 안보를 의존할 주변국도 없었고요.(우리나라가 도와줄 의사도 능력도 없었지만 일본도 전혀 기대도 안했더군요.)

전근대의 항해술로 도하가 쉽지 않았던 바다(심지어 반절 이상은 망망대해 태평양)로 보호되어왔던 나라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아편전쟁의 통해서 서양의 발달된 항해술과 함포의 위력을 전해듣고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텐진은 그저 관문일 뿐이었고 내륙 수운으로도 식량 조달이 가능했던 베이징이나, 비슷하게 강화도가 쑥대밭이 되더라도 구형 불랑기포로 놓으면 한강 양쪽에서 양이선을 공격할 수 있었고 한강의 흘수선도 낮고 모래톱때문에 자칫하면 대동강의 제너럴 셔먼호처럼 좌초될 수 있어서 수도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의 투사가 어려웠던 조선의 경우와 달랐더군요. 

당시 일본의 수도인 에도는 지금의 도쿄만 깊숙하게 위치해 있는 인구 100만의 도시였고, 그 인구들은 연안 선박이 조달하는 식량과 물자들로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무장한 이양선들이 우라가와 훗쓰 사이를 봉쇄하면 에도가 당장 혼란에 빠지고, 바로 상륙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실제로 1853년에 페리 제독도 우라가에서 무력시위를 벌였고요.(도쿠가와 막부의 금제 중 하나가 번들의 해군 육성을 막기 위해 쌀 500석 이상을 실을 수 있는 선박 제조를 못하게 하는 것이어서 군함이 없었으니.)

저는 막말의 양이론자들을 우리나라 최익현과 같은 쇄국론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개국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시기상조라고만 봤을 뿐이더군요. 부럽게도 막부말의 로주 아베 마사히로가 15년 동안 리더쉽을 발휘하며 서양 사정에 밝은 인재들을 발탁해왔다는 점에서 무능한 고종과 민자영 척족일파들과 비교하면서 한 번 더 한숨을. 

종가인 쇼군가와 작은 집 격인 고산케라는 방계의 존재. 쇼군과 가까운 집안이고 참근교대도 하지 않고 일년 내내 에도에 머무르며 상징적으로 부쇼군의 권위를 인정받았으나 막부의 주축으로부터는 방계의 방계 격으로 폄하받고 견제당했던 '내부 균열자' 미토 번의 존재. 도쿠가와 나리아키와 중소규모 후다이번 출신인 로주의 정치적 한계에 대한 분석 등도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 재미있더군요.

제4장 <유학의 확산과 '사대부적 정치 문화'의 형성>은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언급되었을 때는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했었는데 여기까지 읽어온 내용, 그리고 저자가 자신이 직접 읽었던 자료들을 제시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들을 보니 결국 납득이 되더라구요. (원래부터 아는게 없으니 수긍하는게 당연하기도)

무엇보다 도쿠가와 막부의 엄격한 질서가, 유학을 배우는 기회가 제공한 인적 네트워크와 공론에 대한 관념을 통해 서리 격이었던 하급 사무라이들을 조선의 사대부처럼 정치 열풍으로 이끌었고, 그들이 중국이나 조선과 달리 향촌사회 거주자가 아니라 교류가 손쉬운 도시주민이었다는 점이 막말 정치격동의 핵심이었다는 분석이 탁월했습니다. 그 외에 막부말 유학이 퍼지는 모습들도 다른 책에서 접해보지 못한 내용들이었고요. 

저자의 분석처럼 막부의 대정위임론과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대정봉환에 이 하급 사무라이들이 공부한 유학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제가 이런 결론에 동의하게 될 줄은 읽기 전엔 상상도 못했는데... 

예전에 한명기 교수님의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를 읽었을 때처럼 이런 학자가 되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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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쪽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필자는 유럽 근대의 성취와 그 획기적 의으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필자는 유럽 근대가 그 이전의 어떤 시기보다도 획기적인 변화를 인류사에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근대의 획기적 의의를 인정하는 것과,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사를 근대화라는 가치 기준 하에서 연구하는 방법론에 찬성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225쪽

필자가 메이지 유신을 공부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 후 한국의 눈부신 발전으로 '근대화'도 '일본 모델'도 매력이 떨어져 갔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우리가 메이지 유신을 객관적으로, 또 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글이 그런 논의의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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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 완결판, 두 제국 군주의 리더십 대격돌!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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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형오씨의 이 책 <술탄과 황제>에 대해서는 출간 당시 언론에 호평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약간 코웃음을 치면서 당시엔 읽어볼 생각도 안하고 넘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5선을 하면서 18대 국회의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가 전반기 국회의장 임무를 마치고 은퇴하고 나서 펴낸 역사교양서가 얼마나 충실할까 싶었거든요.

 

시기적으로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전직 대법관이 편의점을 열어서 화제가 되었던 것과 비슷한 뉴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의도 정치를 20년가량 해왔던 사람이 1453년 이후로 무수한 전문 학자들이 연구해온 주제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책을 썼다는 패기가 만용으로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제게 잘 쓴 교양 역사서 이상의 인상을 줬습니다. 이 책의 내용보다 (비록 박사학위 소지자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아 소속이라고 볼 수 없는 이가 전공자에 필적할만한 교양서적을 펴낸 국내 사례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존경할만한 이 시대의 어른이고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의 저력이라고 생각됩니다.(국회의장 퇴임 후 방문교수로 이스탄불에 체류하는 동안 전직 국회의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현지 공관 등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적극적인 지원을 받긴 한 것 같지만요.)

 

어차피 전문성으로는 평생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서적을 뛰어넘기 어려운 제약을 일단 신선한 형식으로 참신한 구성으로 돌파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책 구성의 아이디어를 얻은 순간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간절히 이 주제에 천착했고 책으로 펴내고 싶었는지가 느껴지더군요.

 

책에 등장하는 많은 그림들과 연표, 서지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약간의 서평을 곁들인 적지 않은 참고문헌 목록들 역시 저자가 이 책을 쓰기위해 들인 노력을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내보여줍니다.

 

게다가 ‘골든 혼과 갈라타 언덕(http://hyongo.com/2020)’과 ‘루멜리 히사르(http://hyongo.com/1984)’처럼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지형지물들에 대해서 QR코드로 자신의 블로그 포스팅으로 연결해서 독자들이 자신이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답사기 포스팅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6년도 아니고 2012년에 나온 책에 말이죠.

 

QR코드로 연결된 우리나이로 70세인 전직 국회의장이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http://hyongo.com/ 인데 포스팅이 1974개나 있네요. ’디지로그(Digital+Analog)’의 인상깊은 사례였습니다. 많지 않은 선수로 국회의장이 된 것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심지어 올해 3월에 이 책의 개정증보판까지 내셨네요. 개정판 제목은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정말 존경스러운 열정입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총평하면 예전에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그녀의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를 섞어놓은 느낌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은 훨씬 더 충실한 것 같았고요. 저자의 의도대로 오스만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당시 심리와 인물의 개성에 대해서 잘 묘사하기도 했더군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첫째로 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아니지만(물론 술탄의 외교전략과 이에 대한 황제의 대응도 나오긴 합니다만) 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터키의 동맹 및 중립외교로 인해, 예상된 침공에 대한 구원요청의 실패와 황제의 로마카톨릭과 정교통합에 대한 반발, 베네치아 공화국의 늦은 결정 등 외교적으로 전쟁의 승패가 상당부분 결정되어 있었죠. 패배자임에도 훌륭했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부족했던 점이 이 부분이 아닐지. 인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지만 그가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과 ‘배일외교’는 국내적으로는 호소력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콘스탄티누스 11세와 겹쳐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다음 대통령은 국제정치에 대한 훈련이 좀 되어 있는 분이길...

 

둘째로 역시 종교는 인간의 진화의 산물이구나 싶었습니다. 공방의 당사자가 무신론자들의 집단(혹은 그나마 가장 가까운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고 가정해보니 과연 종교라는 발명품 없이 다른 밈(문화적 유전자)들만으로 이렇게 서로 사력을 다한 공격과 방어가 조직되고 지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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