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요리 본능 - 불, 요리, 그리고 진화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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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하게된 도약의 발판을 '화식(익혀먹음)'으로 논증한 뛰어난 번역서적이다. 그런데 이 책이 수준 미달의 편집자를 만나서 흙 속의 진주처럼 묻혀버렸다. 처음에는 번역자의 기본기 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옮긴이의 후기를 보니 출판사 편집자의 고집이 문제였던 것 같다.

 

<Catching Fire: How cooking made us human?> 이라는 훌륭한 제목을 뜬금없이 <요리본능>이라고 옮기다니. '화식'이나 '익혀먹기'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면 차라리 '조리'라고 하던가. 이 책의 뒷표지를 보면 내 판단이 지나친 억측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요리사다!!'라는 뜬금없는 카피나 아래 문장 모두 함량미달이다. 게다가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도 평소 그의 글과 달리 절반쯤은 쓸데 없는 소리고. 게다가 가장 어이가 없는 건 다른 ...추천자인 에드워드 권의 추천사다. 도대체 이 책하고 연관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쓴 게 뻔히 보이는 추천사를 그대로 실은 편집자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에드워드 권의 이름이 주는 후광을 이용하려고 했다지만 이런 똥글을 그대로 실어주는 건 패기를 넘어 자기 일을 내팽겨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좋은 책에 어울리지 않는 표지에 화가나서 말이 길어졌네. 이 글도 좀 길지만 평소에 생식을 하시거나 이를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침팬지를 연구한 영장류 인류학 전문가인 리처드 랭엄은 인류와 침팬지와 인류의 조상이 갈라진 가장 큰 원인을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익히지 않는 음식만 먹고 사는 사회는 없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화식가설로 약 200만년 전 하빌리스 중 일부가 성공적으로 이뤄낸 극적인 진화의 도약을 설명했다.

영장류의 경우 대부분의 신체기관은 체중을 이용하여 그 크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데 소화관은 섭취하는 먹을거리의 종류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인간의 경우는 소화관이 다른 영장류의 60% 남짓에 불과하다. 대신 인간의 뇌는 신체비율 대비 매우 크고 대사량과 무관하게 섭취하는 칼로리의 20%이상을 소모한다. 날기 위해 소화관을 짧게 하고 어깨근육에 투자한 새의 경우처럼 일종의 교환(trade-off)을 선택한 것이다. 먹을거리를 가능한 잘게 부수고 불의 열기로 익히면 영양소 흡수율이 평균적으로 23.4%가량 향상되고, 소화에 소모되는 칼로리가 10%정도 감소한다. 인간은 질기거나 단단한 먹을거리들을 불로 익힐 수 있는 덕분에 하루에 6시간 이상 음식을 씹으며 보내는 침팬지보다 훨씬 작고 나약한 턱근육과 작은 어금니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하루 중 음식을 씹는 시간은 1시간으로도 충분하다. 단단한 근육결합조직인 콜라겐이 6~70도에서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변성되는 예처럼 소화비용은 불을 이용한 조리를 통해 극적으로 줄어든다. 또한 횃불을 통해 인간이 밤시간에 자신을 천적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어 숲이 아닌 평지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나무를 타는데 유리한 신체는 땅을 파서 구근류를 찾는 팔근육과 직립해서 걷는 능력이 발달하였다. 인간은 불 덕분에 털이라는 효율적인 단열시스템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털이 없는 피부를 가지게 되었고, 그 대가로 얻은 빠른 체열발산능력덕분에 포유류 중에서도 월등한 지구력을 가지게 되었다. 밤새 꺼트리지 않고 불씨를 유지하며 포식자의 출현을 경보하는 불침번의 필요성은 사회성있는 개체의 자연선택을 촉진하였다. 섭취 및 소화시간의 극적인 단축은 장시간의 사냥시간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고기의 획득가능성과 성별 분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익힌 이유식은 영유아의 성장속도를 빠르게 하였고, 젖떼는 시기를 앞당겨 여성의 가임 터울을 단축시켜 인구증가에 기여했다.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가족의 구성도 배타적인 성적 파트너로서의 결합보다 남자는 주로 수렵을 통한 단백질 취득, 여자는 채집을 통한 탄수화물 취득이라는 차이와 불을 지키고 사냥을 마치고 왔을 때 고열량의 식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조리서비스의 제공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부분들처럼 명쾌하게 납득이 되지 않긴 하다. 하지만 조리의 접근성과 투입시간 및 노동량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고전적인 성별분업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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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북극 지방은 땔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로 요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여자들은 여름에는 잔가지로 불을 피우고 겨울에는 바다표범이나 고래의 기름으로 불을 땐 돌 냄비에 요리를 했는데, 겨우 불을 피워 눈을 물로 녹인 다음에도 고기를 익히는데 또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렇게 요리가 어려웠지만 고기는 늘 푹 익혔다. 스테판손은 1910년에 남긴 기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 사람들은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지만 이누이트가 덜 익은 고기를 먹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58쪽

 

생식주의자가 잘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품질이 예외적으로 높은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환경에서뿐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야생의 먹을거리를 날로 먹으면서도 잘 살아간다. 진화 식단의 단점에서 시작된 의심은 옳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환경에서 우리는 익힌 음식을 필요로 한다.

 

127쪽

 

다른 자료들을 보면 주위 생태계의 변화가 영구적이면 그곳에서 서식하는 종에게도 영구적인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게다가 그 변화는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에 고립된 동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중앙아메리카 본토 보어뱀은 벨리즈 연안의 섬으로 이주 한 지 8,0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포유동물을 잡아먹는 식습관이 완전히 바뀌어 새를 잡아먹게 되었다. 따라서 새를 사냥할 수 있는 나무 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몸통이 가능ㄹ어지고 암컷과 수컷 간의 몸집 차이도 없어졌으며 체중은 과거의 5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확연히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177쪽

 

연구가 잘 이루어진 9개의 집단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여자들이 구해온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열량의 비율은 16퍼센트에서 최대 57퍼센트에 이르렀다. 평균적으로 볼 때 여자들이 공급한 열량은 3분의 1, 남자들이 공급한 열량은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치 만으로는 남녀가 제공하는 양식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남녀가 각각 구해오는 양식의 상대적인 중요성은 1년 중 어느 시기냐에 따라 달라지고, 남녀가 제공하는 식량 모두가 서로의 건강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53쪽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음식의 영양 성분 표시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도 한 약정은 바로 애트워터 시스템이다. 이 체계를 발명한 윌버 올린 애트워터는 1844년에 태어나 19세기 말 코네티컷에 있는 웰슬리안 칼리지의 화학 교수가 되었다. 애트워트는 가난한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먹을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뜻깊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다양한 음식들이 제공하는 열량을 각각 알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261쪽

 

<국가표준 식품영양 DB>와 <음식의 성분>에 씌어진 자료를 모은 과학자들은 날음식이 익힌 음식에 비해 체내에서 실제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더 적고, 날음식의 비율이 높을수록 신체에서 이용되지 못하고 배출되는 비율도 높아진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구시대적인 근사치 측정 기술에 갇혀 있었고, 그 결과는 거짓말을 낳았다. 영양 성분표의 자료는 음식의 입자 크기는 중요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것은 에너지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증거 자료들이 풍부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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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파기
윤형중 지음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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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한겨레신문의 윤형중 기자님은 <공약파기>에서 지난 두 번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발표한 공약집이 어떻게 이행이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위 진보정권시기까지 다루고자 했는데 책의 분량이 넘쳐서 지난 두 정권으로 한정하셨다고 하네요.

 

지난 3월에 나온 따근따근한 신간이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5월 대선을 앞둔 한국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책이 언론에도 좀 더 반향을 일으키면 좋겠는데 언론계에서 의외로 현직 동업자가 쓴 책을 조명하는데 인색하지 않나 싶었던 터라 걱정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저는 한국 정치가 구조적으로 바뀌려면,그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정치의 중심에 정책, 선거의 중심에 공약을 두자는 것입니다.” 저자 자신도 기자지만 정치의 중심을 파워게임으로, 선거의 중심을 인물과 판세로 경마장식으로 보도하는 기성언론의 정치보도에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에이 공약이야 뭐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 부풀리고 지킬 수 있는 이상으로 호언장담하는 거 다들 아닌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윤형중 기자님을 따라 공약의 이력을 추척해보니 해도 정말 너무 했고, 과연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이런 식의 공약(空約)으로 치러도 되는 건지 같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다음 책도 기대되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뭐 할말 없지만 그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공약들을 정량적인 숫자로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 때 TV토론 포맷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약집을 텍스트로 해서 각 후보자들이 직접 선정한 시민 패널과 전문가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의 개인별 토론회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저는 다음 대통령이 지난 두 전직 대통령처럼 화려한 공약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금 유효한 천 개가 넘는 법률들 중에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사실상 규범력을 상실한 법률의 집행을 실효성있게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심한 공약 이행을 위한 추진력 확보도 어렵고, 대연정이나 의원빼가기 등 정치공학적인 논의에 매모될 필요 없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역할만 제대로 해달라는 거죠.

 

레퍼런스는 없지만 정치인들의 말바꿈과 정책백서나 보도자료들이 대강 얼버무리고 언급하지 않는 정책집행 실적의 이면을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좋은 책입니다. 오는 5월에 한 표를 행사하길 유권자들께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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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이미 존재하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제도화가 경제민주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공정거래법이나, 유통법, 상생법 등도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입법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58

 

물론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과 신고접수를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가운데 사법처리가 된 이들은 전체의 0.12%에 불과할 정도다. 나머지 99.88%는 시정명령에 따라 임금 미지급분을 주고서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적발되는 일이 드문데, 적발이 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기업들로서는 최저임금법을 지킬 이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253

 

새로운 정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재원 대책이다. 해마다 4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정책을 새로 만들며 이명박 정부는 재정부담을 지방교육청(3~5)과 지방정부(0~2)에 떠넘겼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때엔 내가 내줄게라고 말했다가 당선 이후엔 그냥 네가 내라로 표변했다. “아까랑 말이 다르지 않냐고 지방교육청이 따지자, 박근혜 정부는 그럼 네가 반드시 내야 한다는 법을 만들 테니, 그 법을 지켜라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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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일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데 옷, 그릇 등에서부터 시작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인테리어로 흘러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원목가구로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

여느 초보처럼 저도 신혼가구를 집성목이나 무늬목으로 디자인 예쁘게 뽑고 색깔도 포인트를 잘 주거나 화사하게 만든 공장 가구를 샀죠. 그런데 막상 4년을 써보니 그런 가구들은 흠집나면 못생겨지고, 레일이 뻑뻑해지거나, 짜맞춤이 부실해서 흔들흔들하더라구요.

그래도 책장과 협탁은 소나무 원목 공방에서 제대로 만든 물건을 샀더니 역시 가장 만족 스럽습니다. 공장 제품보다 두 배 비싼 이유가 괜한게 아니었죠. 물론, 카레 클린트처럼 고급스럽고 합리적인 가격의 가구 브랜드도 있지만요.

벼락부자가 속출하던 산업혁명시기 영국에서 귀족들이 새로 이사온 부르주아 이웃들을 뒷다마하던 소재 중 하나가 '저 집은 가구를 샀대.'였다는 말이 어떤 문화에서 나왔는지 알겠더군요.

이러던 차에 북미산 블랙 월넛 통판으로 만든 라이브엣지 테이블 실물을 보고 원목가구에 빠져들었습니다. 예술품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원목가구와 같은 공예품은 심미적인 만족과 함께 실제로 사용하는 만족감까지 주는 장점이 있어서 집에 예술품을 들이는 기분으로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요즘 2년 후에 입주할 아파트에 어울리는 원목가구로 뭐가 좋을지 미리 찾아보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원목가구 공방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14곳의 공방 또는 원목가구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의 과반수가 저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 목수들이더군요. 그래서 동년배들의 저와 다른 삶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저는 소개된 곳들 중 '프레그셋'과 '밀로드'가 가장 인상깊고 업에 대한 철학이 와닿더군요. 실물로 못보긴 했지만 사진으로 본 개별 작품중에서는 프레그셋의 'Whale Daybed'와 'Cloud Desk' 그리고, 밀로드의 'G shelf', 컴플리트 파이브의 MS-AV Board_01 거실장, 메이앤 공방의 락킹 체어 ROO, 정재원 가구의 'Heel Stool' 등이 맘에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기 나오는 원목가구 쇼룸도 구경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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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나무는 소중한 자원이다.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그것으로 만든 가구를 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오래 쓸 수 있는 디자인은 과하지 않은 것이다.

41쪽

서비스에서도 큰 차별점이 있는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구와 함께하는)'시간'이다. 사람들이 가구를 5년 정도 사용하다 버리고, 교체하는 케이스가 많다. 이케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올바른 소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우처 제도라는 것을 도입하게 됐다. 가구를 오래 사용할수록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다.

61쪽

디자인만 하면 가구를 예쁘게 잘 만드는 걸로 끝나지만 운영을 하고 배송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각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특성과 사이즈까지도 고려하게 된다.

77쪽

의자의 경우 기성품을 많이 사신다. 나도 그렇게 권해 드린다. 왜냐하면, 금액대가 훨씬 비싸니까. 사실 의자를 만드는 게 테이블 하나 만드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게 힘들다. 그렇다고 테이블 가격을 받을 수는 없다. 기성품들이 워낙 저렴하게 나온다.(공장제 카피 의자)

187쪽

보통 혼수를 여자가 해 가지 않나. 가구에 값을 지불하는 건 장모라 자연히 가구 디자인의 취향 역시 장모의 취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또 시댁 쪽에서는 "걔네 가구 어디서 해 왔대?"가 중요하다. (중략) 말하자면 디자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장모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개개인의 취향이 많이 가미됐고 이제는 비로소 디자인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258쪽

길종상가의 모든 가구는 평생 A/S가 보장된다. 이것도 물건을 더 튼튼하게 만들게 되는 원동력이다. 평생 A/S가 말이 쉽지, 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 아예 고칠 일이 생기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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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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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없이 산지가 오래 되서 맛집객들이 러시안 룰렛처럼 방영을 두려워한다는 <수요미식회>는 한 번도 못봤는데 이렇게 믿을만한 노포탐방기가 있었네요. 기자출신 요리사님이라 문장이 좋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박권일님께서 버크셔 K 돼지로 맛을 냈다는 돼지국밥집을 가봐야하는데)

 

전 노포의 매력을 도통 모르다가 일본 여행을 다니다보니 눈을 뜨게 되더군요. 안타까워하는 저자와 달리 전 피맛골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지만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인(혹은 될) 노포들을 답사한 민속지 같은 책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예전에 <쟁이><>이라는 책을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를 이렇게 잘 설명한 머리말도 접하기 쉽지 않아요.

 

저자는 백년 된 노포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노포의 역사를 말하려면 결국 일본의 영향에 대해 말해야하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화월당 외에 일본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노포들에 대해서는 전수자를 일본인이라고만 기술하고 있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뭐 자세히 쓴다고 독자들이 좋아하진 않겠지만요.

 

제주도의 식문화와 의례에서 돼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인류학자가 관찰한 파푸아뉴기니의 마링족 문화(Roy A. Rappaport,<Pigs for the Ancestors>)와 비슷한 점이 많아 범 폴리네시아 문화권인가 싶었고, 우리나라에 Meat Carving 전통이 있었다니 신기했습니다.

 

박권일씨는 노포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다음의 세 가지 꼽네요. ‘첫째, 당연히 맛이 있고, 특별한 비법보다 값을 깎지 않고 고정 거래처에서 산 질 좋은 재료를 쓴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하고 (상당수가) 매일 자기가 파는 음식을 먹는다. 셋째, 직원들이 오래(수십 년) 일한다.’

 

여기서 소개한 열여덟 곳의 노포 중에서 제가 가본 곳은 부산 할매국밥 뿐이더군요.(삼진어묵은 밥집은 아니니 제외) 아무 것도 모르고 일행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던 그곳에서 먹었던 토렴한 돼지국밥이 국밥의 원형처럼 느껴졌던 걸 떠올리니 저자가 추천한 식당들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구글맵에 좌표 찍으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이 곳 노포들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소명의식에 눌려 본인의 건강을 해치거나 직원들이 받아갈 적절한 급여까지 깎아서 맛을 추구하시지는 않으시면 좋겠네요. 생산자 잉여도 있어야죠. 그런 점에서 대구에서 차상남 사장님이 하시는 상주식당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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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좋은 파를 사는 데 정성을 들인다. 그러고는 손질도 꼼꼼히 한다. 진액을 다 빼야 텁텁한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또 대파의 흰 부분만 쓴다. 그래야 달고 시원한 국물이 나온다.

 

32

 

아무 맛이 없어, 그게 냉면이야.”

우래옥에서 50년 넘게 봉직한 김 전무는 이 전설의 산증인이다. 그에게 냉면의 맛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41

 

지금도 그는 냉면을 먹는다. 하루 한 그릇은 기본이다. 할아버지(창업주)냉면을 팔려면 늘 먹어보라!”했던 금언을 지키고 있다. 쉰두 해째 냉면을 먹는다. 그렇게 이 집의 맛은 지켜진다. 15000일 이상을 그는 냉면을 먹고 있는 것이다.

 

136

 

흔히 제1갈비뼈에서 제5갈비뼈를 본갈비, 6갈비벼에서 제8갈비뼈를 꽃갈비, 9갈비뼈에서 제13갈비뼈를 참갈비라고 부른다. 꽃갈비가 가장 부드러워 최적의 구이용으로 보고, 참갈비는 구이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대개 갈비탕으로 팔린다.

 

166

 

오뎅이란 일본에서는 두부, 어묵, , 곤약, 쇠심줄, 돼지고기, 소고기, 달걀 등의 온갖 재료를 가다랑어 포, 간장을 넣은 국물에 넣어 익혀 먹는 요리다. 어묵보다 다른 재료가 훨씬 많다. 어묵이란 오뎅에 들어가는 가마보코, 즉 생선 살을 갈아 익히고 굽거나 튀긴 재료를 말한다.

 

215

 

한국은 쫄깃함을 얻고 냄새도 없애기 위해 센 불에 삶고, 중국 족발은 오향으로 냄새를 잡고 은근하게 삶아 부드러움을 얻는 것이다.

 

310

 

다루멘은 비운(?)의 국수다. 원래 우동과는 아무 상관없는 중국의 겨울면이다. 뜨끈하게 맑은 육수에 말아낸 국수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본명을 고수하다가 이내 우동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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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파기
윤형중 지음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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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택 변호사님께서 선물해주신 <공약파기>. 임변호사님의 지인께서 펴내신 책같아서 약간 부담스러운 책선물이었답니다. 차라리 저자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면 평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닌 면이 있으니 혼자 정리해둬도 괜찮지만 이럴 땐 좀 애매하잖아요.

 

혹시 내용이 저와 안맞으면 어쩌나 고민하면서 집어 들었는데 예상(?)보다 매우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가려운 부분들을 긁어주는 국내 저자를 만나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윤형중 기자님은 <공약파기>에서 지난 두 번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발표한 공약집이 어떻게 이행이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위 진보정권시기까지 다루고자 했는데 책의 분량이 넘쳐서 지난 두 정권으로 한정하셨다고 하네요.

 

지난 3월에 나온 따근따근한 신간이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5월 대선을 앞둔 한국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책이 언론에도 좀 더 반향을 일으키면 좋겠는데 언론계에서 의외로 현직 동업자가 쓴 책을 조명하는데 인색하지 않나 싶었던 터라 걱정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저는 한국 정치가 구조적으로 바뀌려면,그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정치의 중심에 정책, 선거의 중심에 공약을 두자는 것입니다.” 저자 자신도 기자지만 정치의 중심을 파워게임으로, 선거의 중심을 인물과 판세로 경마장식으로 보도하는 기성언론의 정치보도에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에이 공약이야 뭐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 부풀리고 지킬 수 있는 이상으로 호언장담하는 거 다들 아닌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윤형중 기자님을 따라 공약의 이력을 추척해보니 해도 정말 너무 했고, 과연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이런 식의 공약(空約)으로 치러도 되는 건지 같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다음 책도 기대되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뭐 할말 없지만 그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공약들을 정량적인 숫자로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 때 TV토론 포맷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약집을 텍스트로 해서 각 후보자들이 직접 선정한 시민 패널과 전문가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의 개인별 토론회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저는 다음 대통령이 지난 두 전직 대통령처럼 화려한 공약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금 유효한 천 개가 넘는 법률들 중에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사실상 규범력을 상실한 법률의 집행을 실효성있게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심한 공약 이행을 위한 추진력 확보도 어렵고, 대연정이나 의원빼가기 등 정치공학적인 논의에 매모될 필요 없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역할만 제대로 해달라는 거죠.

 

레퍼런스는 없지만 정치인들의 말바꿈과 정책백서나 보도자료들이 대강 얼버무리고 언급하지 않는 정책집행 실적의 이면을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좋은 책입니다. 오는 5월에 한 표를 행사하길 유권자들께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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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이미 존재하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제도화가 경제민주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공정거래법이나, 유통법, 상생법 등도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입법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58

 

물론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과 신고접수를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가운데 사법처리가 된 이들은 전체의 0.12%에 불과할 정도다. 나머지 99.88%는 시정명령에 따라 임금 미지급분을 주고서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적발되는 일이 드문데, 적발이 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기업들로서는 최저임금법을 지킬 이유가 거의 없는 셈이다.

 

253

 

새로운 정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재원 대책이다. 해마다 4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정책을 새로 만들며 이명박 정부는 재정부담을 지방교육청(3~5)과 지방정부(0~2)에 떠넘겼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때엔 내가 내줄게라고 말했다가 당선 이후엔 그냥 네가 내라로 표변했다. “아까랑 말이 다르지 않냐고 지방교육청이 따지자, 박근혜 정부는 그럼 네가 반드시 내야 한다는 법을 만들 테니, 그 법을 지켜라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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