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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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up in the air>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탈 때의 느낌을 잘 묘사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륙 직후 좌석안전띠 불이 꺼질 때 창 밖을 내다보면 도로를 달리는 차 한대와 나무 한 그루가 다 보이는데 대략 도시의 크기가 감이 잡힌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개미집처럼 관찰하면서 '아 부질없다. 뭘 그리 지지고 볶고 싸울 필요가 있는지.'라는 느낌은 다들 받아봤으리라.

 

이 책은 지금은 일본의 손꼽히는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우주를 체험한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한 글들을 정리하여 묶어 낸 책이다. 인류 200만년 역사상 익숙하게 지내온 지구 환경 밖으로 처음 나간 이들의 특이한 체험에 대해 썼다. 1981년도에 게재된 글이지만 그 후 아직도 달에 인류를 보낸 나라도 없는 실정이라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미국 정부가 NASA, 군부대, 수십 개의 대학과 기업들의 협력을 얻어 '머큐리'-'제미니'-'아폴로' 계획을 진행해간 궤적을 보니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것이고, 이런 일을 맡아서 할 때 정부가 잘 할 수 있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발사된 보이저 1호, 보이저2호가 지금도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하면서 초당 20byte씩의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오고 있다는 사실에도 감탄.

 

우주비행사들이 비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력관리와 NASA에서의 다방면의 교육과 훈련, 이해받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가정의 위기 등에 관한 내용부터 우주비행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적 문제들, 휴스턴 관제센터의 역할, 우주비행 시도 중에 겪었던 다양한 사고들과 이에 대한 대처들 이런 에피소드들 모두가 내가 어린 시절 한 때 겪었던 우주비행에 대한 동경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래비티>도 다시 보고 싶고 아직 못본 <아폴로 13호>도 이번 연휴 때 볼 예정이다.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인 우주비행이 이를 겪은 사람들에게 미친 정신적인 영향과 관련해서는 지구 궤도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이 있는지, 우주선을 벗어나 달에서 걸어본 적이 있는지, 혹은 우주유영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초 단위로 할 일이 정해져있는 촘촘한 스케줄 중에서 아무런 방해없이 그저 우주의 광경을 바라볼 시간을 가졌는지 여부에 따라서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같은 부류끼리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은퇴한 우주비행사들이 요 몇년간 채산성을 갖춰 OPEC를 긴장시키고 있는 오일샌드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최전선의 분야에서 만들어내는 성과가 나같은 일반인에게 전달될 때까지의 시간적 간격에 대해 가늠해보게 된다. 분야별로 어느 정도 편차는 있겠지만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가늠해보는 지표로 자신의 지식과 일반인의 지식과의 시간적 격차를 사용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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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쪽

 

(다치바나 다카시) 육안으로 그렇게 지구가 잘 보이나?

 

(월터 쉬라) "보인다. 놀랄 정도로 잘 보인다. 예를 들어 대양을 항해하고 있는 배의 흔적이 보인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 어느 쪽도 커다란 폭이 없는데도 잘 보인다. 색채와 명도의 대비가 있으면 아주 작은 것까지 보인다. 베트남 상공에서는 전쟁터에서 서로 쏘고 있는 포의 불빛이 보였다."

 

257쪽

 

(유진 서넌) 우주선 안에 갇혀 있는 것과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체험이다. 우주선 밖으로 나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눈앞에 우주 전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의 정중앙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던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 때의 충격에 비하면 지구 궤도를 떠나 달로 향하는 것이나 달 위를 걷는다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258쪽

 

(다치바나 다카시) 지구 궤도를 떠나 달로 향할 때는 어떤가?

 

(유진 서넌) "그 때의 광경은 각별하다. 인간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지구를 볼 수가 있다. 지구와 멀어짐에 따라 대륙과 대양이 한눈에 조망되었다가, 마침내 지구의 둥근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가 한 눈에 보인다. 전 인류가 내 시야에 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눈 앞의 청색과 백색의 구체 위에서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감동적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해 뜨는 지역과 해 지는 지역이 동시에 보이고, 지구가 회전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세계가 조금씩 내 눈앞에서 그 생을 전개하고 있다. 나도 그 세계에 속한 일원이지만, 나는 여기에 있고 나머지 모든 세계는 나에게 보여지며 거기에 있다. 나는 사람이면서 눈만은 신의 눈을 가지고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지구는 점점 아름다워진다. 그 색깔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328쪽

 

(다치바나 다카시) 우주 체험이기 때문에 특별한 건 없었나?

 

(에드가 미첼) "이런 건 말할 수 있다. 신비적 종교 체험의 특징은 거기에 항상 우주 감각(cosmic sense)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우주가 최고의 장소이다. 역사상 위대한 정신적 선각자들은 지상에서 우주 감각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범속한 사람이라도 우주 감각을 지닐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그게 우주이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허무는 완전한 암흑으로서, 존재는 빛으로서, 즉물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존재와 무, 생명과 죽음, 무한과 유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라는 추상 개념이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즉물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된다. 역사상의 현자들이 정신적 지적 수련을 거쳐 겨우 획득할 수 있었던 감각을 우리들은 우주 공간으로 나가는 행위를 통해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체험이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체험은 인류 진화사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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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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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올라가봤던 가장 높은 산이라고는 설악산 대청봉 뿐이고 공룡능선을 엉덩이로 내려왔던 왔을 정도다. 그러니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전문 혹은 아마추어 산악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고. 


이 책은 1996년 5월의 에베레스트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묵묵히 차분한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옴진리교 신자들의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유포에 대한 하루키의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처럼 최대한 사건과 관련된 여러가지 요소들을 충실히 언급하고 있다. 


근 이십년전 사건에 대한 충실한 사실전달과 묘사는 에베레스트 등정의 의미에 대해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광우병보도와 MBC파업, 50억 모금을 바탕으로 출범했던 국민TV의 좌초. 이런 굵직굵직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쓴 책들이 필요한데 단편적이고 편파적인 책들, 개인의 시각에 매몰된 회고록들만 많다. 이 책과 손정목씨의<서울도시계획이야기>같은 책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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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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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시민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을 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인상깊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자기 나름의 생사관을 정했을 때 '어떻게 살 것인지'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거였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빗 케슬러가 공저한 <인생수업>도 죽음이 임박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괜찮은 책이라 꼼꼼히 읽고 싶어서 영어 페이퍼백으로 보기까지 했다. 요즘 읽었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와 논픽션 <암-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 죽음에 느낀 바도 많았고. 

현대의학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이 책에서 수많은 중환자를 접해온 외과전문의로서의 경험과 자신의 가족사를 오가며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썼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 책을 다 읽고서, 아침까지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일단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적절한 나이에 은퇴해서 마음껏 책 읽으며 텃밭을 일구고, 닭과 같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가축들을 키우고 싶다. 단독주택에 살게되면 정원일과 자잘한 집수리 등은 좋은 운동거리가 되어주고, 텃밭야채와 방사해서 기른 닭이 낳은 계란을 챙겨준다며 편하게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명분도 생기리라. 느리고 엉성하더라도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생명과 더불어 자립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나 내 육체와 정신이 오래된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듯 쇠락하는 날이 올 것이다. 처음에는 운전을 못하게 될 것이고, 더 나빠지면 보행기 없이는 걷지 못하는 날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휠체어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나는 어차피 감각형 인간이 아니라 사색형이라 몸으로 하는 것보다는 생각을 하는게 좋다. 두 눈과 양쪽 귀 중에서 하나만 남아있으면 견뎌볼 생각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유동식을 삼키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그럭저럭(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비뇨기가 안좋아져서 방광 카데타를 차거나 장루를 다는 것도 괴롭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치매가 와서 하루 대부분을 정신이 나가서 보내거나, 전신마비가 와서 욕창을 막기 위해 남이 몸을 돌려주고 닦아줘야할 상황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는 않다. 병원에서 온몸에 바늘을 꽂은 채로 수주~수개월을 더 살려고 평생 의료비의 반절 이상을 쓰고 싶진 않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점을 내가 정해서 의료진과 가족들에게 어려운을 결정을 내리는 부담을 지워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정도가 되면 로마시대 사람들처럼 스스로 곡기를 끊은 채로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전이된 암과 같이 고통스러운 회생 가능성이 낮은 만성질병에 걸렸다면 완화치료만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DNR(심폐소생술 거부)와 장기기증 서약서를 유언장과 함께 미리 작성해둘 예정이다. 

내가 뇌졸중이나 교통사고와 같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어느 정도 절제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내 몸의 안전을 위협할 위험한 운동이나 부주의한 행동들도 자제하려고 하고 있고. 이런 준비가 효과가 있어서 평균수명만큼 살게되면 내 몸과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여명은 보너스로 생각하고 감사히 누리다가 내 집에서 죽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말년에 고독과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종교에 귀의하는 일 없이 끝까지 무신론자인채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p.s. Johoon Lee 며칠전 인용하신 재미난 문구가 아툴 가완디가 자신의 조부인 시타람 가완디를 대상으로 했던 묘사였군요. Sangjin Han 현재 고령자들이 자가운전을 못하게 되면 수요응답교통수단, 전동휠체어, 보행기, 회당 10만원의 129 구급차 등을 이용하게 되지요.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중 핵심적인 부분인 이동권의 유지를 위해서 자가운전에 대한 능력이 일부저하된 고령운전자들에 대한 면허 갱신시 불승인/승인 판정 사이에 최고속도를 50km로 설정한 속도제한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하는 면허 갱신과 같은 제도는 어떨까요? 이러한 단계는 여러 단계로 부여할 수도 있고요. 전동휠체어 만큼 단순하면서도 훨씬 안전한 마이크로모빌리티도 고령자를 위한 유용한 교통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허재창 너네 스타트업 사업모델 좋더라. 개인이 사후에 자기가 온라인에 남긴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관리회사로 양도하고 회사는 따로 데이터관리비용을 받지 않되, 저작물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수익은 관리회사에게 귀속되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사업모델은 어떨까? 이걸로 Business method특허/실용신안을 인정받을 확률은 희박할 것 같은데 혹시 프로그램적으로 구현해서 권리가 발생하게 되면 밥이나 사주렴. ㅋㅋ 이 아이디어는 자신이 남긴 발자취들이 기술변화가 생겨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회사가 서비스종료 또는 폐업하거나, 월드 와이드 웹이 더이상 사용되는 경우에도 접근가능한 인류의 지식창고에 영속적으로 보존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에 기반한 거야. 요즘 회자되는 '잊혀질 권리'랑은 상반되는 것 같은데 혹시 이미 비슷한게 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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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쪽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사람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188쪽


"문화는 엄청난 관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그래서 바로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죠. 문화는 그 지속성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문화에는 혁신의 싹을 질식시키는 힘이 있어요."


194쪽


1970년대 초, 심리학자 주디스 로딘과 엘렌 레인저 박사는 코네티컷의 한 요양원에 사는 주민 모두에게 화분을 하나씩 주는 실험을 했다. 주민 절반에게는 화분에 물을 주게 했고, 그들의 삶에서 무언가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 어떤 혜택을 주는지에 관한 강의를 듣도록 했다. 나머지 절반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대신 화분에 물을 주게 했고, 환자의 복지는 직원의 책임이라는 강의를 듣게 했다. 1년 반이 흐른 후,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 그룹-그것이 화분 하나처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은 더 활동적이고, 정신이 맑았으며, 더 오래 살았다. 


199쪽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모두 단순한 기쁨이 주는 안락함을 찾게 된다. 동료애와 우정, 규칙적인 일상, 맛있는 음식,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온기 같은 것 말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 축척하는 것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얻는 행복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야망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끼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남기고 갈 것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다는 것을 의미있고 가치 있게 느끼도록 해주는 목적을 우리 밖에서 찾고자 하는 깊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227쪽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쇠약해지고 의존적이되면 그러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생각하게 됐다. 


237쪽


미국에서는 메디케어 비용의 25%가 생의 마지막 1년에 접어든 5%의 환자에게 사용되고, 또 그 가운데 대부분은 거의 아무런 효과가 없는 최후 1~2개월에 집중된다. 


240쪽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말고도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다. 조사를 해보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기술에 의존한 의학적 처치는 그런 욕구를충족시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대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다. 


257쪽


사람들은 의사들이라면 이 수많은 환자들을 이끌 준비가 잘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해가 되는 요인이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첫째, 의사들의 견해 자체게 비현실적일 수 있다. 사회작자 니컬러스 크리스터키스는 말기 환자 500여 명의 주치의들에게 자신의 환자가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는지 물은 다음 환자들의 병세를 추적했다. 그 결과 63%의 의사들이 환자의 생존 기간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작게 잡은 의사들은 17%에 불과했다. 평균적으로 530% 과대평가되어 있었다. 의사가 환자를 더 잘 알수록 오차 범위가 커졌다. 


263쪽


나는 말기 질환 환자를 만날 때마다 굴드와 그의 글을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희박하더라도 항상 긴 꼬리를 그리며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는 법이다. 그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내가 보기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다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확률이 높은 결과에 대해서도 준비해야만 한다. 문제는 현대 의학 시스템과 문화가 그 긴 꼬리를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마치 복권과도 같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몇 조 달러에 달하는 체제를 만들었으면서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희망은 계획이 아니다. 그리나 우리가 가진 계획은 희망밖에 없다. 


274쪽


설문지의 내용은 네 가지 핵심적인 문제로 압축된다. 삶의 현재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들이다. 


1.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 삽관이나 기계적인 인공호흡기와 같은 공격적 치료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3. 항생제 투약을 원하십니까?

4.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관이나 정맥 주사로 영양 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362쪽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를 가진 듯하다. 하나는 매 순간을 동일한 비중으로 견뎌내는 '경험하는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흐른 후 최악의 시점과 종료 시점 단 두 군데에만 거의 모든 비중을 실어서 평가하는 '기억하는 자아'다. 기억하는 자아는 심지어 마지막 순간이 완전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할 때조차도 '정점과 종점'에 고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391쪽


조금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녁식사 테이블로 밀고 갔다. 아버지는 망고, 파파야, 요거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 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학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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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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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불확실성>이다. 


뭔가 내부고발자의 수기같은 느낌을 주는 번역판 제목과 달리 이 책은 환자로서 병원을 찾게 되는 대중들에게 의사를 기르는 시스템과 병원의 실제업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미국의 의료라고 하면 <식코>식으로 의료시스템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데 이런 책을 읽어보지 않고서 남의 나라 의료시스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의사가 완벽한 존재도 아니고, 다양한 이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치료과정에서 불거지는 어려움, 기술발전으로 인한 치료법의 개선사례 등이 흥미롭다. 협업으로 따지면 항공회사, 타인의 삶을 좌우할 결정을 결국은 홀로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변호사업계에도 고스란히 통용될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도 많더라.


이 책을 읽고서 읽기 전보다 현대의학을 보다 신뢰하게 되었다. 조금 고루해보이지만 엄격한 위계와 도제식 지식전수를 강조하는 보수적 교육에 대한 시각 변화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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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쪽

레지던트가 혼자 집도를 한다면 그 대상은 환자들 중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일 경우가 많다.

이는 의사 수련에서 참 난감한 진상이다. 법원 판결은 말할 것도 없고 전통윤리나 공공도덕의 측면에서도 최상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권리는 의사의 수련이라는 목적보다 분명 상위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습대상이 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숙련된 의사을 원한다. 하지만 만일 미래를 위해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결국 학습은 소독방포 아래서, 마취 하에서, 때로는 암묵적으로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이 딜레마는 비단 수련 중인 레지던트나 전임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학습과정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82쪽

의사들이 자신의 실수에 대해, 비록 환자들에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의사들끼리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 <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또는 간단히 "M&M컨퍼런스"라고 하는 것으로 미국의 거의 모든 수련병원에서 대개 매주 한 번씩 열린다. 이 제도가 존속될 수 있는 것은 빈번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증거개시(legal discovery)요구로부터 회의록을 보호하는 법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외부인 방청을 금하고 비공개로 진행되는 이 회의에서 그들은 자신의 책임 아래 발생한 과실과 불의의 사고 및 사망 사례를 검토 비평하고, 책임소재를 가리고, 다음을 위해 개선책을 모색한다.


89쪽

과실을 범하는 것은 매도되어야 마땅한 일은 아니지만 다소간의 수치심은 따른다. 사실 M&M 정신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매우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M&M 컨퍼런스의 존재 자체, 그것이 매주 스케쥴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는 과실이 의학의 불가피한 일부분임을 인정하는 증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96쪽

항공업계에서는 조종사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데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불충분하다는 것에 대한 대책으로 심각한 기기고장이나 기능불량을 직접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조종사들에게 매년 의무적으로 위기상황 시뮬레이션훈련을 받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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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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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투자분석가 중 한 명의 책이거니 하고 읽을 생각을 안했던 책.


팔로잉하는 페친을 통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에 대해 알게 되어 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세계를 보는 시각 중 상당부분을 배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책은 얼마만인지.


소소한 지식을 깨닫는 여느 책들의 즐거움이 동전 줍기와 같다면, 이 책처럼 내가 무엇을 못봤는지 알게 해주는 책은 눈을 하나 더 뜨게 해준 것처럼 압도적인 충족감을 준다.


이 책을 통해서 뭘 알게 되었다고 적다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은 책. <블랙 스완>에서 언급된 다른 책들과 저자의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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