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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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김영준님의 첫 저서. 어제 택배로 받아 자정쯤까지 단숨에 읽었다. 페친을 맺은지 좀 되다보니 영준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접한 내용들도 꽤 많지만 그래서 속도가 붙은 건 아니었다. 읽었던 내용이라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이미 접했던 내용들도 김정운씨가 <에디톨로지>에서 주장하듯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달력은 완전히 다르니.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입장,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 이렇게 알기 쉽게 정론(正論)만 추려모은 책이 또 있을까?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어오면서 부동산과 상권의 입지에 대해서는 <공간의 가치>를 쓰신 박성식님을, 자영업의 오퍼레이션에 대해서는 페북의 은거고인 Johoon Lee님을 으뜸으로 꼽고 있었다. 두 분 다 면식도 없지만 한 분은 건축을 전공하시고 부동산 디벨로퍼 분야에 종사하셨고, 다른 한 분은 십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유수의 대기업들에 오퍼레이션 컨설팅을 해오신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part 2. 기회로 위장한 위기>에서 유행 아이템 사업의 주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는 박성식님이 한국의 대도시 상권은 왜 이렇게 수명이 짧은지를 설명할 때 감탄했던 느낌이, <part6. 상권이 움직이는 방식>과 <part7. 젠트리피케이션> 부분을 읽으면서는 Johoon Lee님의 역작 포스팅 '부동산에 대한 소고 - 삼위일체를 바탕으로'를 읽었을 때의 깊은 감동을 다시 맛보는 듯 했다.

대단한 점은 저자 김영준님은 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업계의 플레이어가 아닌 관찰자라는 차이가 있다. 생업이 따로 있는 관찰자가 단행본을 읽고 일반에도 공개된 자료를 분석하고, 행인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앞의 두 분에 견줄만한 비슷한 시야를 쌓아온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2007년에 블로그 개설 이래로 십 년 동안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지만, 아카데미아의 세계 안에 있어 운공 중에 기혈이 들끓고 사마외도의 행공법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줄 명문정파의 사부나 사형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말의 말미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을 이해하고 자기 밥그릇을 명확하게 챙기도록' 하고 싶다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점도 빼어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더 인상깊었다. 이 책에 참고자료로 언급된 단행본 중에 8권을 읽었지만 읽은 걸 자기의 말로 풀어놓지 못하는 자의 질투심아 제발 사라져라.)

반쯤 읽었을 때는 좋은 책인데 왜 제목을 <골목의 전쟁>이라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제목을 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굳이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인 '골목'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비하는 사람과 많지 않은 자본과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자가 된 이들 모두 '골목'에 주목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역할을 넘나드는 경험은 살면서 많이들 해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시작할 때 급여생활자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이른 은퇴에 몰리는 시점이 되기 전에는 자영업자의 생활을 경험하기 힘들다. 주택의 임대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퇴직을 앞두고 평생 모은 돈을 상가에 투자해서 은퇴 후 자산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상권과 상가의 입지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이는 누구의 게으름도, 잘못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근대화와 도시화의 시기가 그만큼 짧아서 생긴 일이니. 선진국들도 다 경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왕성한 소비자인 나는 좀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팁을 얻었고, (원래 나한테는 안맞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은퇴하더라도 자영업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고 재차 다짐했다.또 혹시 투자할 자산이 좀 쌓이더라도 상권을 분석하고 투자할 상가를 고를 때는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신중하리라 마음 먹었다.(아마 모기지 다 갚고 나면 은퇴해서 역모기지로 살아갈테니 고민할 상황은 별로 안생기겠지만 ㅎㅎ)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변에 제2의 길을 찾는다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겠다는 친구는 우선 말리되 마음을 못돌릴 것 같으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창업한 지인이 있으면 이 책을 선물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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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쪽

기존의 개인 임대업자는 단지 입지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많은 상권의 침체에서 보듯이, 이들으 건물과 상권에 대한 가치평가 능력이 낮고, 입지적 우위만으로 상권이 가진 부가가치를 빨아들여 왔다. 그에 반해 대형 쇼핑몰은 기획가 운영을 바탕으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것을 단지 규모가 크다고 규제한다면 이는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기업 임대업자에 대한 규제이자 개인 임대업자에 대한 보호와 우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골목 상권과는 무관한 일이다.

215쪽

상권은 누구의 것인가? 상권은 상가건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건물과 그곳에서 영업하는 가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230쪽

그런데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규직의 최대 특혜는 높은 연봉도 안정성도 아닌, 바로 금융 접근성이다.

248쪽

문제는 사람들이 평균을 물러서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자,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못해도 평균은 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평균 이하인 50%의 존재를 간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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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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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자영업자가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하기에 매우 훌륭한 책. 쉬운 표현과 생생한 사례를 사용해서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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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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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주목하지 않지만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거울이 되는 에도시대에 대한 풍부한 사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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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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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야마본진 신상목 사장님의 두 번째 저서입니다. 월간조선에 <일본物語(모노가타리)> 연재글을 자료로 해서 엮은 한국인들은 잘 모르기 쉬운 에도시대 사회문화사네요. 저는 페이스북에 일부 원고들을 맛보기로 포스팅해주실 때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출판을 기다렸던 책입니다. 요즘처럼 감정적인 반일주의가 극심한 시점이라 더 반갑고, 출간 직후 판매량이 많아서 흐뭇하군요.
 
예를 들어 신슈미소(아이치현)와 센다이미소라는 필수 식재료시장을 놓고 벌어진 기술혁신과 증대된 소비자 효용의 구체적인 실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막부에 대한 일정한 의무만 이행하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릴 수 있었던(심지어 자역 화폐 발행까지 ㅎㄷㄷ) 각 번들 사이의 경쟁이 보다 근대에 가까운 사회를 만든 것이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일본의 시대구분을 따라서 한국사학계에서도 조선시대를 '근세'로 분류하긴 하지만 낙성대학파의 실증연구에 판판히 깨져나가는 국사학계의 사회경제사 선행연구들을 떠올리면 일본과 같이 근세를 겪었다고 말하는 건 국뽕이라 생각합니다. 일본한테 뒤쳐졌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고요.
 
전세계의 인류가 AD 1세기 무렵 로마시민권자들이 누리던 삶의 평균적인 수준을 다시 회복한게 (그것도 유럽에 한해서)14세기 이후라고 하니까요.(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사회발전지수 참조)
이 책의 목차에 등장하는 에도의 탄생, 참근교대제, 목판출판문화, 뉴스와 광고의 원형, 이노 할아버지의 지도, 서양언어 사전 편찬, 도자기 등등의 일일이 언급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페이스북에 연재하시지 않았던 부분도 많고요.
 
신사장님을 통해서 <해체신서>의 위대함에 대해 듣고나서 몇 달 후에 아키타현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첨부한 사진들처럼 에도시대 사무라이 마을 가쿠노다테(1620년대 조성)의 청류가에서 사본을 보니 더 그 느낌이 더 각별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의 수탈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서세동점의 시대에 악착같이 대응했던 에도시대 일본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도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신사장님은 끝부분인 제17장과 18장에서 화폐제도와 에도시대 체제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동시대 서양이 아닌 다른 지역 국가들 모두 같은 실정이었습니다. 즉, 일본이 웅덩이의 최강자인 악어로 진화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악어가 된 원인이 꼭 에도시대에서 기인할 필요는 없지만요.)
 
신사장님의 첫 책 <일본은 악어다>도 재미있게 읽었던 입장에서는 에도시대부터 동양에서 독보적으로 앞서나갔고 전후에 경제적 부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웅덩이 안에서만 최강자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한 말씀들을 기대했거든요. 예를 들어 일본의 월등한 관광인프라와 오퍼레이션 수준때문에 해외여행을
점점 더 가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향으로 인한 국제적인 인적 교류에서의 상대적
소외라던가 말이죠.(다음 번 책 소재로 남겨두셨을 수도 있죠.)
 
외교관, 국비유학생, 중앙부처의 과장급 공무원, 우동 장인(쇼쿠닌), 여러
명을 고용 중인 사업체의 대표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우리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시는 분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에게 비춰주는 거울같은 소중한 책이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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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쪽
 
여행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동에 필요한 교통망, 숙박시설, 치안, 희구의 대상이 되는 명소 명물, 유희 또는 도락거리가 존재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일시적이나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의 시간과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전근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행 대중화의 조건이 충족되고 제약이 제거되었다. 일본은 18세기 중엽에 이미 연간 100만이 넘는 여행객들이 전국을 누비는 세계 최고의 여행천국이었다.
 
208쪽

일본 정부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 현지에서 '기립공상회사'라는 반관반민 성격의 무역회사를 급조하여 보증서를 발급하였다. 급조된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회사 형태 조직의 유용성을 체험한 관계자들은 이듬해 도쿄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공예품과 미술품을 위주로 일본 물산을 해외에 수출하는 업무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일본식 무역진흥공사(JETRO)의 원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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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매장과 온라인 중고서점덕분에 다시 찾게된 알라딘의 18주년을 축하합니다. 지금의 경쟁력을 잊지 말고 강점유지에 투자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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