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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김윤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속에 오고가는 마음,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닿이지 않는 아픔 등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고 말했지만, 좀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남녀문제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분명 쌍방통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차리고 보니 나만 그를 향해 일방통행으로 그것도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달리고 있더라는. 그래서 일시정지를 하고는 얼마 안 되는 만남의 기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되짚어보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대체 모르겠더라는. 결국 내 탓을 하고, 역시 난 어쩔 수 없어, 를 연발하며 쓴 소주잔을 찾고 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거창하게 <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영애씨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자를 지칭하는 이름. 중학교 때였던가? 길거리 전봇대마다 붙어있던 '선영아 사랑해'의 선영이에서 이젠 영애씨로 바뀌어 버린 이름. 그 영애씨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너 자신이라고, 너 자신에 자신감을 가지고, 우선 너를 스스로 사랑하고, 보다 당당해지고, 보다 현명해지면 된다고, 힘을 내라고, 그 남자만 이 세상 남자가 아니라고, 세상에는 그 남자보다 훨씬 멋지고, 잘나고, 따뜻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다시 시작하라고, 훌훌 털어버리라고, 난 너를 믿는다고...... 이런 말을 기대했다.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분명 그런 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여자'라는 존재와 '여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책 표지에 있는 "다시 사랑하고 싶은 이 땅의 100만 그녀들을 위한 '여자마음 사용설명서'" 라는 문구 그대로. 하이힐과 플랫 슈즈, 긴 생머리와 샤기 커트, 이혼녀와 노처녀와 유부녀 등등 여자들을 굳이 구분하려 들려면 구분할 수 있는 그런 단서들에 대해서 여자들이 갖는 마음, 그걸 선택한 여자의 마음 등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프롤로그에 붙인 제목인 "이거 너무 솔직한 거 아냐? - 여자들의 속마음에 관한 대담하도록 적나라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 책은.
책에 밑줄 긋거나 접거나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항상 포스트잇을 붙여놓곤 한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드는 어떤 책에는 마치 고3 수험생의 참고서처럼 포스트잇이 색색별로 쫙 붙어 있기도 하다. 헌데 이 책을 읽을 땐 포스트잇이 곁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내 맘을 그대로 얘기해주는 문장이 있어서 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착한 여자에서 벗어나 '거절 잘 하는 여자'가 되라고 말하는 '나도 이제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편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내가 '잘라'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전혀 상처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계에 아무런 균열도 일지 않았다는 것이다."(111쪽)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져서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착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착하기 때문에 했던 일들이 사실은, 상대방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내가 거절한다 한들 또한 그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지면에서 한줄의 글로 확인하는 기쁨이란.
저자가 패션지 기자를 하면서 인터뷰했던 여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내가 반한 세 여자, 배종옥과 공효진 그리고 엄정화' 편에도 밑줄 그은 문장이 나온다. "새로운 '여자'를 이 땅에 끄집어내는 공효진은 배우로서든, 여자로서든 결정적 역할로 남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늘어지지 않는, 삶을 추동하는 긴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209쪽) 공효진에 대해서 저자가 칭찬하는 이야기들에 우선 공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저 문장에서 나오는 말. 여자로서 결정적 역할로 남아야 한다...... 그냥 저 말이 심장에 콕 박혔다는 느낌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결정적 역할로 남아있는 선명한 한 여자가 되고 싶다.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고, 일에 있어서는 결정적 역할로 남아있는 한 사람이고 싶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내가 과연 그렇게 남아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겠지? 그러려면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으로 안주해있다가는 근처에도 못 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도록 일어서야겠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너 자신이었어. 그깟 남자 없이도, 꼭 그 남자가 아니어도 너는 스스로 충분히 눈부시고 아름다울 수 있어. 혼자 빛을 발하도록 이제 그만 털어버리고 일어나, 그리고 화려하게 꽃피는 거야. 그 때 너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니 마음을 열어주는거야. 할 수 있겠지?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