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남 카운셀링 - 은근히 고민되는 기상천외 상담소
서나래.한기연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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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든 이유 두가지. '은근히 잘되리라'라는 문구. 모든 일이 정말 은근히 티나지 않게 다 잘 되면 세상에 바랄게 어디 있겠냐는 심정으로 저 말이 가슴에 팍 와닿으면서 나에게도 은근히 잘 되는 일들이 생기길 빌면서. 또 하나는 서나래라는 작가 이름. 요즘도 딱히 인터넷으로 카툰이나 만화를 즐겨 보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강추하는 작품들은 한번쯤은 찾아 보고 마음에 들면 한동안은 챙겨 보게 된다. 몇년 전, 대학생일 때 친구 하나가 극찬을 하던 카툰이 있어서 어디 한번.. 이란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그동안 연재되었던 것을 다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카툰이 바로 <낢이 사는 이야기>.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서나래씨 작품이었더랬다. 제목 또한 '은근남'... 은근한 남자? 어떤 캐릭터일까 궁금증을 유발하고 카운셀링이라니 어쩌면 내 고민도 이 많은 고민 중에 포함되어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득 안고서 첫페이지부터 출발을 하는데.... 

솔직히 <낢이 사는 이야기>의 그림체와 <은근남 카운셀링>의 그림체가 많이 달라서 우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남자 캐릭터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꽃일 줄이야!!!! 이렇게 뒷통수를 때리다니.. 하지만 그건 유쾌한 반전같아서 기분이 상큼하고 좋았다. 어린 아이들이 꽃을 그릴 때(지금의 나도 마찬가지) 그리는 가장 전형적인 꽃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은근남은 은근한 눈빛과 은근한 움직임으로 피상담자와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게 처음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하더니만 약간 중독성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 나오는 상담내용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독자들이 올린 사연들인데 해결방법이 유치하거나 말이 안 되는 것도 꽤(!) 있지만, 의외로 진지하게 상담해준 내용들도 꽤(!) 있다. 그런데 읽어보다 보면 결국 해결방법이란 것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직접적인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어떤 남자에게 은근남이 얘기해주기를.. 어떤 계기가 있어서 아마도 감정을 회피하던 것이 점점 감정이 무뎌지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잘 느껴보세요.. 감정을 못 느끼니 감정에 귀를 잘 기울이고 잘 느껴봐라.. 이것이 해답인 것이다. 소심한 사람들, 다른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등등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바로, 솔직하게, 자신있게, 천천히, 조금씩 시도해보아라. 이것이다. 은근남도 이 한권을 통틀어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뜬금없고, 어이없고, 피식거리는 이야기들도 종종 있었지만 말그대로 카툰이고 만화니까 가능한 유머들이라 한두번 피식거리다가 중독되어 은근히 생각나기도 하고 그랬다. 띠지에 적혀 있는 '은근히 잘되리라'라는 문구는 잘라내서 사무실에 모니터 밑에다가 붙여 놓았다. 재미있는 건,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업무처리도 잘 안 되고 힘들었는데 이 문구를 붙여놓고 한번씩 되뇌이던 중 한 달도 안 되어 인사이동이 있어서 모든 고민이 깨끗하게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불러온 좋은 결과라고 생각이 든다. 정말 모든 일이... 은근히 잘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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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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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 작가인 듯하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처음 만난 그의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몇일 지나지 않아 새로 발간되는 그의 새 작품들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 나온 <성녀의 구제>는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그의 작품이었다. 솔직히 제목에 나오는 '성녀','구제'라는 단어와 표지에 그려져 있는 '성녀'의 그림에 너무 종교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지라 살짝 거부감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지껏 만나온 그의 작품에서 종교와 관련 있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아 얼른 손을 뻗어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가독성이 엄청나다. 본의 아니게 다른 작가와 비교하게 되었는데, 최근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을 읽고 있었는데 왠지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아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반을 훌쩍 읽게 되더니 뒷날 나머지 반을 읽어버렸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한 IT회사 사장인 마시바 요시다카가 자신의 집에서 독살된 것을 내연녀인 와카야마 히로미가 발견한다. 부인인 아야네는 그 시점에 친정에 가 있었고, 친정에 가기 직전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한다. 이유는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아기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 아비산을 언제, 어디에, 누가 타놓았는지 미궁에 빠져있던 이 사건은 데이도대학의 갈릴레오 교수 유가와가 사건에 흥미를 가지면서 수사가 활발히 진행된다. 과연 우쓰미의 직감대로 부인인 아야네가 범인인가, 아니면 부인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구사나기의 직감이 맞는가. 유가와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비산이라는 독이 타져있는 물로 끓인 커피를 마시고 숨진 요시다카. 아비산이 어떻게 물에 타져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지리한 수사가 계속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정수기의 구조나 독이 함유되고 난 후 주전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장면은 스리슬쩍 훌훌 넘겨가며 읽기도 했지만 전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방해하지는 않았다. 요즘 추리소설의 트렌드가 그렇듯, 이 소설도 범인이 누구인지를 소설 도입부에 미리 밝히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해야 할 생각은 도대체 왜!!! 무엇이 범인을 살인을 하게끔 했는지와 과연 어떻게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 두 가지이다. 워낙에 재밌게 구성되어 있고, 술술 읽혀지도록 쓰여있기 때문에 후루룩 읽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런 생각을 차근차근 하며 읽으면 소설의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하나. 마시바 요시다카는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찾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그에게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만난지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그에게 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나 의미가 클까? 세상에 아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클리닉에 다니고, 이혼하고, 대리모가 생기고 하는 걸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입장에서는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문제라서 그런지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가득하다. 

어쨌든 히가시노 게이고는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추리소설이 단순한 추리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다작이 언제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될지 끝을 알 수 없으나 읽을 책이 아직 많이 남은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참, 중간에 주인공이 노래를 듣고 있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가수가 '후쿠야마 마사하루'였다. 이런 걸 유머라고 해야 하나, 재치라고 해야 하나. 드라마와 영화에서 유가와 교수를 맡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걸까, 독자들에게 드라마와 영화를 홍보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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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 라디오
정현주 지음 / 소모(SOMO)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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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라디오라는 매체 특유의 따뜻함과 잔잔함이 좋았던 것 같다. 주목받는 디제이가 아니라 디제이가 하는 시같은 한 구절 한 구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더 궁금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는 도대체 어떤 감성을 지니고 있길래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지어내는가 하고 시기와 부러움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라디오 작가는 아무래도 디제이의 뒤에 숨어있는 공로자이기에 나같은 청취자들에게 알려지기란 쉽지 않은데 내가 특히나 이름을 기억하고 행보를 따라가고 있는 작가가 한 명 있는데 그 작가가 바로 '정현주'이다. 그녀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등록해놓고 자주 들어가서 그녀의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 그 작가가 또 한권의 책을 펴냈다. 제목은 <스타카토 라디오>.
 
흠.... 그런데 책이 썩 이쁜 것 같지는 않다. 갈색 표지에 타자기만 덩그러니 있고 '스타카토 라디오'라는 책 제목만 정직하게 찍혀있는 이 책은 요즘 온갖 일러스트로 화려하게 꾸며진 다른 책들에 비해 좀 소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른 책들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이 책을 펼쳐보니 글자도 조금 작은 편이다. 그러니 왠지 집중해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책을 좀더 가까이 찬찬히 보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에 한발짝 한발짝 조심조심 다가가게 되었다.
 
라디오 작가 정현주의 에세이인 이 책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들, 그녀가 좋아하는 그녀의 친구들, 라디오작가로 살아가는 나날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잔뜩 실려있다. 나는 원래 정현주라는 이 작가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일상과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실제 사랑은 어떨까 궁금해 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녀도 똑같은 사람이며, 그녀도 나에게는 꿈의 직업인 라디오작가가 그녀에게는 생업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직장내 인간관계 등)을 겪고 있으며, 그녀에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여럿 있어 그들에게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라디오작가답게 소소하고 일상적인 문체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너무 사소한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어차피 에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나의 꿈은 라디오작가'였다'. 이제 20대 후반에 이미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일하고 있는 내게 라디오작가라는 꿈은 한발짝 한발짝 멀어지고 있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현실도 직시해야 하기에 '라디오'작가의 꿈은 어릴 때의 꿈으로 살짝 마음 한켠에 접어두고 나는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작가'. 소설이든 에세이든 뭐든 그냥 쓰고 싶다.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라는 그녀의 말처럼 나도 매일 매일 뭔가를 쓰다보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가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뭔가를 쓴다면. 그녀의 작은 책이 또다른 용기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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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가 행복할까? 패리스가 행복할까? - 서른 살 여자 연우, 리얼한 행복을 찾아 나서다
황선희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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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가 행복할까? 패리스가 행복할까?

이렇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 있다. 누가 행복할까? 책제목을 읽자마자 든 생각은 답이 너무 뻔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프라 윈프리가 더 행복한 거 아니겠냐고.. 그런데 다시 한번 돌이켜보니, 어쩌면 패리스 힐튼도 자기 나름대로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남의 행복과 불행을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 않겠나.. 우리가 보기에 생각없이 행동하고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 마음대로 사는 부잣집 철없는 아가씨인 것 같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을 것이고, 생각도 있을텐데. 이렇게 먼 나라(?)의 여성 자기계발서의 책 제목으로 등장한다는 걸 그녀가 안다면 과연 기분이 좋을까. 이래서 괜히 그녀가 덜 행복한 건 아닐까 라는 미안한 마음까지. 
 

어쨌든 이 책의 첫인상은 그랬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착하지 못한 책. 나한테는 그랬다. 그럼 그런 도발적인 책제목 아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을까? 찬찬히 읽어보았다. 책에는 서른 살 연우가 나온다. 그녀는 작은 까페를 열겠다는 꿈을 가지고 평범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여의도의 한 커피전문점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 어느날 애인에게 차이고 만다. 그것도 그녀가 차려고 하기 일보직전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얘기하는 이별의 이유는 좋은 여자인 너보다 멋진 여자인 그녀를 선택하겠다는 것. 여기서부터 그녀의 고민은 시작된다. 좋은 여자와 멋진 여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자를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멋진 여자가 될 수 있을까? 등등. 그녀는 대학 때 믿고 의지했던 선배에게 메일을 보내서 물어보기로 했다.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 <논스톱>, 예능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많은 코너들을 집필했던 이 책의 작가는 이 땅의 수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를 알고, 멋진 여자, 위대한 여자를 목표로 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의도는 좋았으나 솔직히 구성이나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설문조사를 하게 되고 그 결과를 일일이 설명해주고 더 파고들어가는 방식이 이 책의 기획의도를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아 아쉬웠다. 좀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방법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반복되는 단어나 문장의 나열이 거슬리기도 했다. 정통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를 바라면 안 되는 걸까.

구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향해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실천하며 용서와 희생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닌 그런 여자가 되어라.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현실에 안주하고 그저 평범한 여자만 되어도 세상 사는데 별 무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책임하게 나를 내버려두고 있는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본다. 나도 멋진 여자, 위대한 여자가 되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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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김윤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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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속에 오고가는 마음,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닿이지 않는 아픔 등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고 말했지만, 좀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남녀문제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분명 쌍방통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차리고 보니 나만 그를 향해 일방통행으로 그것도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달리고 있더라는. 그래서 일시정지를 하고는 얼마 안 되는 만남의 기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되짚어보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대체 모르겠더라는. 결국 내 탓을 하고, 역시 난 어쩔 수 없어, 를 연발하며 쓴 소주잔을 찾고 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거창하게 <영애씨, 문제는 남자가 아니야>. 영애씨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자를 지칭하는 이름. 중학교 때였던가? 길거리 전봇대마다 붙어있던 '선영아 사랑해'의 선영이에서 이젠 영애씨로 바뀌어 버린 이름. 그 영애씨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너 자신이라고, 너 자신에 자신감을 가지고, 우선 너를 스스로 사랑하고, 보다 당당해지고, 보다 현명해지면 된다고, 힘을 내라고, 그 남자만 이 세상 남자가 아니라고, 세상에는 그 남자보다 훨씬 멋지고, 잘나고, 따뜻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다시 시작하라고, 훌훌 털어버리라고, 난 너를 믿는다고...... 이런 말을 기대했다.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분명 그런 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여자'라는 존재와 '여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책 표지에 있는 "다시 사랑하고 싶은 이 땅의 100만 그녀들을 위한 '여자마음 사용설명서'" 라는 문구 그대로. 하이힐과 플랫 슈즈, 긴 생머리와 샤기 커트, 이혼녀와 노처녀와 유부녀 등등 여자들을 굳이 구분하려 들려면 구분할 수 있는 그런 단서들에 대해서 여자들이 갖는 마음, 그걸 선택한 여자의 마음 등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프롤로그에 붙인 제목인 "이거 너무 솔직한 거 아냐? - 여자들의 속마음에 관한 대담하도록 적나라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 책은. 

책에 밑줄 긋거나 접거나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항상 포스트잇을 붙여놓곤 한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드는 어떤 책에는 마치 고3 수험생의 참고서처럼 포스트잇이 색색별로 쫙 붙어 있기도 하다. 헌데 이 책을 읽을 땐 포스트잇이 곁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내 맘을 그대로 얘기해주는 문장이 있어서 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착한 여자에서 벗어나 '거절 잘 하는 여자'가 되라고 말하는 '나도 이제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편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내가 '잘라'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전혀 상처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계에 아무런 균열도 일지 않았다는 것이다."(111쪽)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져서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착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착하기 때문에 했던 일들이 사실은, 상대방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내가 거절한다 한들 또한 그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지면에서 한줄의 글로 확인하는 기쁨이란. 

저자가 패션지 기자를 하면서 인터뷰했던 여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내가 반한 세 여자, 배종옥과 공효진 그리고 엄정화' 편에도 밑줄 그은 문장이 나온다. "새로운 '여자'를 이 땅에 끄집어내는 공효진은 배우로서든, 여자로서든 결정적 역할로 남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늘어지지 않는, 삶을 추동하는 긴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209쪽) 공효진에 대해서 저자가 칭찬하는 이야기들에 우선 공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저 문장에서 나오는 말. 여자로서 결정적 역할로 남아야 한다...... 그냥 저 말이 심장에 콕 박혔다는 느낌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결정적 역할로 남아있는 선명한 한 여자가 되고 싶다.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고, 일에 있어서는 결정적 역할로 남아있는 한 사람이고 싶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내가 과연 그렇게 남아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겠지? 그러려면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으로 안주해있다가는 근처에도 못 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도록 일어서야겠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너 자신이었어. 그깟 남자 없이도, 꼭 그 남자가 아니어도 너는 스스로 충분히 눈부시고 아름다울 수 있어. 혼자 빛을 발하도록 이제 그만 털어버리고 일어나, 그리고 화려하게 꽃피는 거야. 그 때 너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니 마음을 열어주는거야. 할 수 있겠지?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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