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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돌콩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0
홍종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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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돌콩

 

 

-완성이란 끝

 

 

 

 

 

제목처럼 달려라라는 말에서 책을 읽는 내내 박진감이 느껴졌다. 글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지만 내가 직접 풀밭을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마다 공일이가 말을 타고 달릴 때의 묘사나 긴박함이 직접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에 살아서 집 주변에 소, 말을 보는 것은 극히 드물다. 영화 스피드에서처럼 내가 직접 ‘어어’거리며 몸을 흔들며 장면에 집중하듯이 공일이가 말을 타는 장면에서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오공일’이라는 캐릭터를 보았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은 불쌍하다였다. 작은 마을에서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공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가족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을뿐더러, 싸움질을 벌이느라 항상 뛰어다니는 아이. 그런 공일에게 꿈이라는 것은 가깝지는 않은, 조금은 먼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일에게 조금의 변화가 찾아온 것은 ‘우공일’.

 

우공일의 등에 탐과 동시에 공일에게는 작은 꿈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일이는 그것이 자신의 꿈인지, 원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 채 지내다 기수 후보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게 된다. 만약 기수 후보생이 아니라 다른 직업분야에 관련된 후보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면 공일이가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정도로 우공일은 공일이에게 삶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 무언가를 던져주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공일이가 신체조건에서 모집범위에 있었다는 것이 한몫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와의 인연이나 마찬가지다. 그 일로 공일이는 기수 후보생에 발탁돼서 일이 잘 풀리는 듯싶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구제역에 우공일만 감염된 상태가 되어버렸다. 왜 하필 우공일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점에 대해 짜증이 났다. 우공일만 얼른 격리를 시킨다면 다른 소들은 무사하다는 상황 자체도 공일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뜻이 있지는 않을까. 우공일은 공일이에게 처음으로 꿈, 자신감을 심어준, 그것을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찾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다. 우공일이 있어서, 덕분에 공일이가 기수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공일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공일과의 이별로써 공일이는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공일이가 더 기수의 꿈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공일이에 대한 장점, 좋은 환경 등을 나타내지 않는다. 제일 불리한 조건 아래 살아가는 한 아이의 이야기로 꿈을 찾아 달려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들에겐 유치해 보이고 작게 보일지라도 공일이에게는 딱 맞는 다마스. 그저 공일이는 남들과 조금, 아주 조금 다를 뿐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를 뿐. 완벽을 향해 무언가를 빚어나간다는 것보다는 앞에 보이는 목표물을 향해, 꼭 완벽하지 않더라도 도전적인 정신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바라지 않더라도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책에선 돌콩을 가녀린 줄기지만 한 번 잡으면 끊어져도 꽉 잡고 있는 것, 작은 데 단단하게 익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일에게는 돌콩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작고, 겉으로 보기엔 약해 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단단하고 끈기가 대단한 녀석. 공일과 비슷하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공일에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제목처럼 항시 멈추지 않고, 어떤 장애물이 걸림돌이 되어 나타난다 해도 달려 완성이라는 메달을 거머쥐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외모, 신체, 배경은 아무런 이유, 조건으로 완성이라는 골을 어지럽히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작고 왜소한 돌콩일지라도, 반대로 우락부락한 돌일지라도. 그것은 내 노력,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흘리는 땀이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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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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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 있는 여섯 개의 단편은 마치 내가 시골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줄 읽었을 뿐인데 흙을 밟는 느낌, 자그마한 새싹이라던가 시원한 바람과 그곳에서는 벌레조차 귀엽게 보이는. 그런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싱그러운 책이었다.

 

시골에 내려가면 볼 수 있는 동물, 야생동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이야기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서 때마침 오늘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숲에서 인간의 손길을 받지 않은 채 야생에 길든 동물의 이야기였다. 그 누구의 관심, 보호를 받지 않은 채 살아간다. 자연은 자연 그 상태여서 아름다운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살아가야만 했던 동물이, 우리에게는 그 모습이 익숙했던 동물이 하얀 눈밭 위를 가로지르며 뛰어다닌다. 멋지다, 그렇게 생각했다. 더 긴말은 필요 없고 멋지다. 그걸 멋지다고 굳이 표현해야 했을까? 주관적인 견해가 따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멋지다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우습다 생각했다. 인간이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사회집단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 누구도 멋지다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도 똑같은 것이다. 자연과 어울리며 흙을 뛰어다니고 무리지어 다니고. 언제부터 그것을 멋지다고 표현할 만큼 우리 눈에 익숙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어쩌면 너무 잔인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생태계의 구조를 담담하게 그렸다.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고의 사슬을 누군가가 자세히 묘사했다면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구조 때문에 생태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모습을 표현한 것에 대해 나 또한 그 장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원래 생태란 그런 것이다. 징그럽다, 무섭다 느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먹이사슬은 작가, 읽는 독자 또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정도로 동물의 삶에서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요즈음 들어 곤충이 너무나 싫어졌다. 원래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혐오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곤충의 껍질, 무늬, 생김새. 심지어 모기, 파리조차 비명이 새어나갈 정도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갈수록 그런 작은 생명을 두려워하고 멀리 피하려 하는 내가 실망스럽기도 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는 당연히 그것들이 익숙할 리 없다. 요즘엔 만화책에서만 볼 수 있는, 어린아이들이 직접 곤충 채집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우리 동네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삭막하고 이웃과 이웃 사이의 벽이 두꺼운 도시라는 곳에서 잠자리를 잡는다며 그물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탁한 공기가 숲에 들어간 것처럼 상쾌하게 느껴졌다.

 

동물의 자유가 억압될수록 인간은 자연, 생태라는 커다란 무리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어 무리를 나누고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여 무조건 자기 멋대로만 하려는.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 동물 자체를 사랑하고 자연 그대로 내보내려는 사람, 그리고 그 반대인 사람. 당연히 그 둘 사이의 갈등, 대립이 있지만 결론은 전자로 끝을 맺는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책과는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다른 이야기였다. 분명 작가가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동물이 내 귀에 직접 대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오리, 수달, 족제비, 살쾡이, 들쥐, 개. 인간과는 다르게 자란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고 인간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태어난 갓 아이는 어른,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아기가 잠을 자는 순간도 놓쳐선 안 되고 성장은 동물의 배가 될 정도로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물은 다르다. 인간이 인간에게 공들인 시간만큼을 그들이 가질 수 있었는가? 아니다. 성장, 발육이 빠른 만큼 동물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도 인간보다도 빠르다. 그런 동물을 감히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 수저를 쥐는 것도, 언어를 배우는 것도 우리에게는 몇 년이라는 숫자가 필요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빠르게 습득한다. 그들끼리도 문화가 공존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파괴해가는 인간은 하나의 작은 나라를 무너뜨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면 이 땅의 주인이라 칭할 자는 누가 되었을지, 참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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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9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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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제목부터가 내용을 연상케 했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삽화는 분명 동물들을 위한 축제인 듯 보이지만 내용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안타까움만 자아냈다.

 

중간마다 책갈피를 꽂지 않고 한 번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구성과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름이 있었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라 해서 결국 마무리는 그것들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뻔한 결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은 겉만 몇십 번을 보아도 알 수 없다.

 

 

나도 기억이 난다. 조류독감, 그리고 구제역. 항상 테레비전을 틀 때마다 나오는 장면은 하나의 거짓말도 없이 똑같았다. 흰색 옷을 입은 사람 여럿이 동물을 잡아다 끄는 장면, 그리고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

단어만 들어도 귀를 꾹 막게 된다. 살처분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숨을 바삐 쉬어가는 생명을 어떻게 땅에 묻을 수 있는지. 이 책은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 동물의 모습을 잘 묘사해 읽어나가기가 수월했다.

 

첫 번째 이야기 삼겹살에서, 주인공의 오빠는 구제역이 퍼졌을 당시 직접 가축을 살처분을 하게 된다. 돼지 위에 돼지가 떨어지고.. 이 문장만을 읽었을 때에는 웃기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용상의 흐름으로는 전혀 유쾌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슬플 뿐이다.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가 음성지원서비스처럼 귀 안을 후벼 팠고 그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군인 두명.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영화든 책이든 인간보다 못한 인간을 돼지로 형상화하는 경우가 있다. 동물 중 인간이 아닌 네발로 걸어 다니는 가축, 뚱뚱하고 더럽고 위를 쳐다보지 못하는 가축.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주제를 내세우고 싶을 때  소,말 보다는 돼지를 앞세운다. 그런데 본문 중, 살처분을 시키는 과정에서 돼지를 구멍에 파 던지다가 두 명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된다. 갇히게 된 셈이다.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돼지로 보였다는 표현이 있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럽고 냄새난다며 평소에는 싫어하다 그것이 식탁 위 반찬으로 올려지면 좋아라하고 열심히 먹어대는 삼겹살.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돼지의 생명을 빼았는다는 등의 이유로 끔찍해하지 않는다. 왜? 원래부터 우리가 먹어왔던 것이니까. 그런데 구제역으로 인해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던 그때. 어쩌다 우리가 그것들을 살처분해야 했는지 원인을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가 그것을 '구제역'이라고 칭해야 했는지를 말이다. 간단하다. 인간이 초래했던 일이었다. 언제부터 동물이 조그마한 우리 안에 갇히며 살아야 했고 자연의 이치, 흐름을 거슬러야 했는지. 구제역의 원인에 대해 무조건 인간의 잘못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영향'을 끼친 것은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인간이 돼지로 보인다는 말은 작가의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재산이 날아간다 해서 눈물을 흘린 걸까? 그저 돈 때문에? 물건이든, 생명이 깃들여있는 무엇이든 오랫동안 그것과 함께하고,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 애착과 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들이고 함께한 시간이 세월이다. 세월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고 시간 또한 항시 앞으로 나아가는 녀석이기 때문에 과거로 갈 수 없다. 재산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시작해 불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은 다시 돌이켜 시작할 수 없다. 피붙이 같았던, 자식 같았던. 세월은 보장할 수가 없다.

 

 

 

인간이 돼지로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형태로 몇 번이고 모든 생명에게 다가온다. 그것에 의해서 죽음은 꼭 그 뒤를 따랐고, 결국 인간들은 바이러스를 이겨낼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바이러스, 그 자체를 없앨 약.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종플루가 발생했던 과거에서, 이제 미래에는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한 바이러스가 인간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또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막아낼 도리를 만들어내고  이겨낼 것이다. 나 또한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당시 걸린 ‘피해자’중 한 명이었지만 이겨냈으니.

 

그러나 가축만은 아무런 약 없이 살처분만이 도리였던 그때. 인간이 사건, 어느 실수로 그것을 반성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는 데에는 너무 많은 생명의 희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 몇 번이나 더 많은 동물의 죽음이 있어야 할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언젠간 또다시 찾아올 테니, 그 점이 슬플 뿐이다.

 

 

몇 마리의 닭에서 그의 몇 배로 불어난 닭의 생명. 몇 마리의 돼지에서 그의 몇 배로 불어난 돼지의 죽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태어났을 때는 다람쥐로 태어났지만 키워준 어미 같은 존재가 고양이라는 이유로 그의 습성을 따르려는 다람쥐. 내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는 중요치 않다, 어떠한 방식으로 자라났는지 그것이 매우 무섭다. 나를 낳아준 부모와 나를 키워준 부모에 대한 정의 정도가 조금씩은 다르듯. 자신이 늑대인 줄 알고 숲에서 늑대처럼 '어릴 때부터' 생활하고 생존했던 늑대 소년, 소녀처럼. 그들은 언어를 배우고 글을 쓰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환경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너무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많이 잊는다. 짐승과 인간의 연관성을. 더 나아가 동식물과 인간의 연관성을 말이다. 인간의 곁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사라지면 인간 또한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또 사람들은 많이 착각한다. 자연이 사람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을 따라가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자로 보이는듯할지라도 '결국'엔 사람이 자연을 따라가게 돼 있다. 자연이 사람을 따라갈 수 있다면 점점 뜨거워져만 가는 지구를 이전의 지구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러지 못할까?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정착할 수 있게 하여준 자연의 고마움을 잊은 채 그것과 어울려 가길 바란다면 너무 큰 바람이 아닐까? 점점 잃어만 가는 자연과 사람 간의 균형에서 이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도 엄연한 자연의 일부인데 왜 자연으로부터 분리를 원하는 것일까.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리석은 믿음, 판단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구제역, 조류독감, 신종플루. 모두 과정일 뿐이다. 결과물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까.

 

영화에서 보았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처절한 비명이 땅속에서 들려오지는 않을지. 생존자만을 위한 세상이 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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