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 있는 여섯 개의 단편은 마치 내가 시골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줄 읽었을 뿐인데 흙을 밟는 느낌, 자그마한 새싹이라던가 시원한 바람과 그곳에서는 벌레조차 귀엽게 보이는. 그런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싱그러운 책이었다.

 

시골에 내려가면 볼 수 있는 동물, 야생동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이야기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서 때마침 오늘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숲에서 인간의 손길을 받지 않은 채 야생에 길든 동물의 이야기였다. 그 누구의 관심, 보호를 받지 않은 채 살아간다. 자연은 자연 그 상태여서 아름다운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살아가야만 했던 동물이, 우리에게는 그 모습이 익숙했던 동물이 하얀 눈밭 위를 가로지르며 뛰어다닌다. 멋지다, 그렇게 생각했다. 더 긴말은 필요 없고 멋지다. 그걸 멋지다고 굳이 표현해야 했을까? 주관적인 견해가 따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멋지다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우습다 생각했다. 인간이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사회집단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 누구도 멋지다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도 똑같은 것이다. 자연과 어울리며 흙을 뛰어다니고 무리지어 다니고. 언제부터 그것을 멋지다고 표현할 만큼 우리 눈에 익숙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어쩌면 너무 잔인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생태계의 구조를 담담하게 그렸다.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고의 사슬을 누군가가 자세히 묘사했다면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구조 때문에 생태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모습을 표현한 것에 대해 나 또한 그 장면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원래 생태란 그런 것이다. 징그럽다, 무섭다 느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먹이사슬은 작가, 읽는 독자 또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정도로 동물의 삶에서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요즈음 들어 곤충이 너무나 싫어졌다. 원래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혐오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곤충의 껍질, 무늬, 생김새. 심지어 모기, 파리조차 비명이 새어나갈 정도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갈수록 그런 작은 생명을 두려워하고 멀리 피하려 하는 내가 실망스럽기도 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는 당연히 그것들이 익숙할 리 없다. 요즘엔 만화책에서만 볼 수 있는, 어린아이들이 직접 곤충 채집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우리 동네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삭막하고 이웃과 이웃 사이의 벽이 두꺼운 도시라는 곳에서 잠자리를 잡는다며 그물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탁한 공기가 숲에 들어간 것처럼 상쾌하게 느껴졌다.

 

동물의 자유가 억압될수록 인간은 자연, 생태라는 커다란 무리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어 무리를 나누고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여 무조건 자기 멋대로만 하려는.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 동물 자체를 사랑하고 자연 그대로 내보내려는 사람, 그리고 그 반대인 사람. 당연히 그 둘 사이의 갈등, 대립이 있지만 결론은 전자로 끝을 맺는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책과는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다른 이야기였다. 분명 작가가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동물이 내 귀에 직접 대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오리, 수달, 족제비, 살쾡이, 들쥐, 개. 인간과는 다르게 자란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고 인간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태어난 갓 아이는 어른, 부모의 보살핌 없이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아기가 잠을 자는 순간도 놓쳐선 안 되고 성장은 동물의 배가 될 정도로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물은 다르다. 인간이 인간에게 공들인 시간만큼을 그들이 가질 수 있었는가? 아니다. 성장, 발육이 빠른 만큼 동물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도 인간보다도 빠르다. 그런 동물을 감히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 수저를 쥐는 것도, 언어를 배우는 것도 우리에게는 몇 년이라는 숫자가 필요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빠르게 습득한다. 그들끼리도 문화가 공존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파괴해가는 인간은 하나의 작은 나라를 무너뜨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면 이 땅의 주인이라 칭할 자는 누가 되었을지, 참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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