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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가 그의 독특한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겉표지의 그림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려고 했다.
파비오는 다른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10명의 할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파비오는 할아버지를 삼촌이라 부른다. 파비오는 학교에 가기 전까지 자신의 집이 지극히 정상적인 곳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집안이 저주에 걸려 결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6살의 소년이 이런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파비오의 아빠는 못 고치는 물건이 없는 만능맨이다. 거기다가 앨비스 프레슬리와 똑같이 생겨서 파비오는 아빠가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파비오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조금 줄이고 낚시와 수영, 버섯따기를 함께 한다. 파비오는 그런 아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레세페를 만들어 선보이던 날, 아빠의 프레세페가 우승하지 못하자 흥분한 동네사람들에 의해 성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아빠는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다.
열 살인 파비오가 아빠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아빠는 파비오가 플레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를 위해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플레인 아이스크림을 먹고 재미있는 책을 하루도 빼지 않고 읽어줬다. 아빠가 감동을 받아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의사마저도 소용없는 일이라 했지만 파비오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빠를 위해 자신이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리라.
파비오의 인생을 바꾸는 일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사온다. [지렁이 재배, 현대적이고 수익성 있는 지렁이 재배]
파비오에게 이 책은 인생의 안내서가 될 첫 번째 책이다. 나는 책 제목에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열 살이 된 아이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을 준다는 것인가? 파비오는 나의 예상을 산산이 조각냈다. 파비오는 책의 내용대로 지렁이를 재배해서 삼촌들과 동네 낚시꾼들에게 팔아 돈을 모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로 감동을 받는 것은 파비오에 대해 잘 모르는 얘기다. 파비오는 자신의 꿈인 성자가 되려면 많은 재산은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만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값만 받고 지렁이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는 관대해졌고 그 결과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매주 책 한 권을 아빠의 침대 머리맡에서 읽고 있는 어린 소년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감동적인가? 식물인간인 아빠도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2년 3개월이 지나 눈을 뜨더니 서서히 좋아져서 결국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들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 외에도 파비오가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요양원의 할머니들에게 해적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어 주었을 때 벌어졌던 이야기, 웃음을 잃은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공에 맞을까 봐 두려움이 많았지만 테니스코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 산으로 소풍을 갔을 때, 빵 두 조각 외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파니니를 도시락으로 가져온 리카르도와 있었던 에피소드.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파비오는 저주에서 벗어났을까? 그렇다. 파비오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마르티나가 생겼다. 그리고 그 모든 바탕에는 그의 인생의 지침서가 된 책들이 있다. 파피오의 집안의 남자들에게 진짜 저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한 것은 파비오 자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을 쓰려고 한다.
“내가 공부한 모든 것은 새로운 방 같았다. 난 그 방에 만족했지만 얼마 후 방 안에 창문이 하나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앞에 광활하고 완전히 낯선 파노라마가 펼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