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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 지음 / 해나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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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비인간과 인간을 나누는 상황에서 내 기준에 과학은 비인간에 가까운 단어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었고 나아가 인간 대 과학의 대결처럼 느껴졌다. 계산과 정확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은 인간의 감정이나 한계를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영역처럼 보인다. 그래서 과학은 늘 차갑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전대호의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에서는 이러한 나의 인식과 달리 인간과 과학을 잇는다. 과학에도 역사와 철학이 있고 우리가 선택해온 길과 그로 인해 상상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한 저자의 글은 과학을 여러 층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4장은 당면한 우리의 근미래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토마스 쿤의 ‘쿤 상실’ 개념을 통해 과학의 진보 이면에 사회적, 인문적 차원의 상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대목이 무척 인상 깊었다. AI에 대해서는 기술 자체보다 변화하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화가 가속되며 불가피한 ‘자동화’의 문제나 인간과 AI와의 협업 문제 역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결국 과학은 인간과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오랜 기간 많은 책을 번역했던 경험이 있다. 덕분에 책에 담긴 내용에 깊이가 있으나 문장이 복잡하지 않고 단정하게 느껴진다. 책의 초반부는 가볍게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철학의 밀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분량은 적어 보이나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책을 읽는 도중 스스로 머릿속으로 아는 과학자 이름을 나열해봤다. 책을 읽고 난 후 철학자와 과학자 리스트를 추가했다. 그리고 느낀다. 그들의 열정과 과학의 인간다움, 더불어 철학에 대해. #과학을인간답게읽는시간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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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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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마약 카르텔을 다룬 시리즈 <나르코스>나 영화 <시카리오>를 보면 폭력의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카르텔 대 카르텔의 이권 다툼이나 범죄 조직을 소탕하려는 정부기관과의 충돌로, 총을 쏘고 전쟁을 벌여도 어쨌든 그들끼리의 전쟁이다. 그래서 폭력의 대상은 조직 내부자들 혹은 적대 세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딸을 잃은 엄마의 추적 실화’로 소개된 탓에 처음에는 영화 <테이큰>처럼 특수한 비극을 마주한 부모의 불굴의 의지 정도로 상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의 배경인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의 작은 마을 산페르난도를 구글 이미지로 찾아보면 한적한 시골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마을이 아니다. 납치와 살인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포가 생활화된 공간이이다. 딸을 잃은 건 미리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편이, 아들이, 딸이, 형제나 자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일상인 곳이다.

‘사라짐’은 잔혹하고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폭력이라는 점에서 비열한 전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시신이 없으면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리암 가족의 경우처럼 누군가가 사라지는 사건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준다. 과거에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들도 공포의 연속이었지만, 적어도 유족들이 시신과 유품을 수습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들의 가족들은 고인의 마지막을 애도할 기회마저 빼앗겼다. p.105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실종 사례들은 이 지역을 장악한 ‘세타스 카르텔’의 잔혹한 통치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마약 거래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의 대상은 경쟁 조직 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까지로 확대된다. 카르텔은 납치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삼아 반복했고 폭력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산페르난도에서는 누군가 사라지면 그저 또 한 명이 사라진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능한 기관은 눈치를 보며 조사하지 않고 국가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남겨진 가족들이 스스로 범인을 추적하고 사라진 이들의 유골을 수습한다. 미리암의 불굴의 투지가 성과를 얻었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들지않았다. 실종된 피해자가 10만명이 넘는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예견된 결말로 치닫는 책을 읽으며 그저 범죄와 폭력의 도시 산페르난도의 현실이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죽음과 시신 훼손이 일상이 된 곳에서는 당국의 무능함과 냉담함과 무관심도 일상이 된다. 너무 지친 피해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국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폭력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악순환이었다. p.318

4년간 100건이 넘는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두려움이란 말 따위>를 완성한 아잠 아흐메드의 저력 역시 미리암 로드리게스 못지않다. 다만 진술자에 따라 반복되는 내용이 있고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읽는 데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이 이야기는 영상화되면 매우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이란말따위 #아잠아흐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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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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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정재승 #김경일 #추천도서

올해 뮤지컬과 영화로 모두 재미있게 본 <위키드>에서 마법사는 이런 식의 말을 한다. ‘나는 진짜 위대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훌륭하다고 하니 나는 훌륭한 사람이죠. 동물 억압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세 문장 가운데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얼핏 보면 셋 모두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문장은 ‘헛소리’에 해당한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거짓말은 첫 번째 문장뿐이고 나머지 둘은 각각 설득용 헛소리와 회피성 헛소리다. 헛소리와 거짓말의 큰 차이는 진실에 대한 태도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하는 것이지만 헛소리는 애초에 진실 여부 자체에 관심이 없는 발화다. 그렇기에 헛소리는 말장난과도 구분된다. 조 피에르는 <집단 망상>에서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념을 확장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헛소리를 다룬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책이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헛소리뿐 아니라 병리적 망상과 일반인이 흔히 겪는 인지 왜곡을 설명한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과도한 자신감, 직관에 대한 과신, 확증편향, 동기화된 추론, 인식적 불신 같은 요소들이 개인의 믿음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심리학적, 의학적으로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이 컸다.

이어 저자는 오늘날 사회가 이런 경향을 얼마나 증폭시키는지 살펴본다. 학술 출판 시장, TV 뉴스 같은 언론의 변화,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디지털 에코 체임버 현상 등을 짚어가며 탈근대주의와 유사과학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설명한다. 믿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뢰하며 그 바탕에는 오히려 ‘인식적 불신’이 놓여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진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명확한 답을 찾으려는 욕구 때문에 음모론에 빠지기도 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사회가 왜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사람들이 왜 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지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미국 정치와 인종 문제를 깊이 다루며 트럼프 당선 배경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한국 사회 또한 정치적 반대편을 보는 태도에서 비슷한 이념적, 감정적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익명의 명언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곧 우리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도록 내버려둘 필요도 없고, 의견 차이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으며, 마음을 바꿔 이념에 대한 헌신에서 물러서는 걸 자아의 죽음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 자신이 지속적이고 변치 않는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아는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증거에 따라 믿음을 수정할 수 있고, 다른 관점을 수용함으로써 이념과 이념적 소속 집단을 바꾸면서도 여전히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실에 기반한 믿음을 현실에 맞춰 수정하고 믿음을 조정해 서로 보다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본래 자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자아로 성장하고,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p.395

저자는 지적 겸손, 인지적 유연성, 분석적 사고가 잘못된 믿음을 피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워싱턴 대학교에 ‘헛소리 간파하기’라는 이름의 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헛소리가 얼마나 난무하고 또 얼마나 쉽게 용인되는지 새삼 실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문해력, 가짜뉴스 판별이 유행어처럼 떠오르는 요즘, <집단 망상>은 그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될 것 같다. #집단망상 #조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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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 시야를 열어주는 휴머니즘의 대답들
앤드루 콥슨 지음, 허성심 옮김 / 현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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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앤드루 콥슨의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는 인본주의를 주제로 한 대담집이다. 원제는 What I Believe로, 동명의 팟캐스트에서 2020년부터 진행한 대화를 엮었다.

인본주의적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며 역동적이다. 모든 사상과 가치, 신념은 언제나 질문받을 수 있고 끊임없이 수정될 수 있다.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불변의 전통이나 절대적인 권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하나의 대화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이 그 의미 있는 대화의 여정에 여러분이 함께하도록 돕는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p.10

처음에는 ‘인본주의’라는 단어가 철학적인 장벽처럼 느껴져서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인본주의를 ‘휴머니즘’으로, 인본주의자를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니 훨씬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그 말이 주는 온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믿는다’는 표현은 신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저자는 빈번하게 종교적 세계관과 인본주의적 관점을 대비시키며 초월적 존재보다 인간 내부의 윤리와 서로를 향한 연대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몇 년 전이었다면 생소했을 수 있었겠지만 창비클럽 1기에서 ‘연대’를 접한 뒤라 이번 책을 읽으며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책에는 스티븐 핑커, 이언 매큐언 같은 익숙한 이름부터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까지 서른 명이 넘는 다양한 인사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진 이들이 각자의 인본주의를 이야기하는데 결국 그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 다양성에 대한 공감, 세상을 이해하려는 열정이 놓여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의 질문 방식이다. 앤드루 콥슨은 단순히 질문자가 아니라 사유를 끌어내는 안내자에 가까웠다. 대담자들은 유년기의 경험, 삶을 대하는 가치관,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이뿐만 아니라 협력, 표현의 자유, 예술의 가치, 회복 탄력성, 평등, 기후 위기 등 굉장히 폭넓은 일상 주제에 대한 고찰도 함께 이루어진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시야를 넓혀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읽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자연스레 ‘무엇이 나를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대담 참여자의 저서가 함께 소개되어 있어 인상 깊었던 참여자들의 책을 읽고 싶어진다. 또 읽을 책 목록이 늘어났다. #무엇이우리를인간답게하는가 #앤드루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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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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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

김멜라의 <리듬 난바다>는 제목부터 낯설다. 소설에서 말하는 ‘리듬’이 무엇인지, ‘난바다’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해 단서를 찾으려 할 즈음, 작가는 흡입력 있는 문장과 서사로 독자를 자신이 만든 허구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허구와 현실의 세계는 정확히 연동한다.
한쪽의 실재감을 옅게 하면 다른 쪽의 실재감도 같이 옅어진다. p.87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와 실시간 방송이라는 장치다. 등장인물 둘희는 <더 없이 오래 사는 따개비>와 <배부른 구름>을 반복해서 보고 해석하며 감독에게 빠져든다. 은유와 의도적인 연출로 질문에 다가가는 영화와 달리 실시간 방송 <욕+받이>의 출연자 반응이나 시청자 댓글은 연출자가 통제할 수 없는 날것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 대비 속에서 인물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흔들리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려 하는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읽는 내내 두 영화와 라이브 방송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리듬 난바다>에는 사랑 이야기와 사회적 현실이 함께 존재한다. 로맨스 알레르기가 조금 있는 사람인 나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서사는 폭넓은 결을 갖고 있다. ‘보편적 평등법’과 ‘혐오 표현 금지법’을 오가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어줄테니 죄를 가져오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가져갈 죄가 없다. ‘츠히(Zhi)’를 보는 둘희와 증오를 필요로하는 한기연, 모순적인 인물들이 보게되는 환영과 착시를 독자는 함께 느낀다.

그리고 그 카드에 적힌 문구는 내 삶에 새겨져 눈앞에 착시를 드리웁니다.
삶은 스물네 컷의 환영, 우리 같이 진실한 꿈을 꿔요.
이 나뭇결의 뒤틀림을 없애면 나의 세계도 함께 쪼개져버릴 것 같습니다. p.479

소설의 각 장은 물때라는 순환 단위로 구성된다. 1물부터 13물까지 사건이 이어지지만 일직선이 아니라 교차된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때가 바뀔 때마다 시점이 이동하고 독자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장면과 인물을 연결하게 된다. 13물 이후 다시 1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간이 세대를 거치며 무엇을 쌓고 무엇을 부수는지에 대한 변화의 리듬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의 상형문자 그림과 법원 판결문, 인물들이 주고받은 이메일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인물들의 정체 역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나도 소설 속 대칭어를 따라해본다. 사랑과 이별, 정치와 법, 영화와 라이브, 태풍경보와 돈키호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딸기 내음과 함께 먼바다, 곧 나온바다의 물결 위에서 넘실댄다. 결국 리듬 난바다라는 낯선 조합의 의미는 끝까지 읽고 나서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낯섦이야말로 김멜라 작가가 던지는 가장 진실한 질문이며 독자가 각자의 세계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도록 남겨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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