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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도서제공 #서평 #정재승 #김경일 #추천도서
올해 뮤지컬과 영화로 모두 재미있게 본 <위키드>에서 마법사는 이런 식의 말을 한다. ‘나는 진짜 위대한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훌륭하다고 하니 나는 훌륭한 사람이죠. 동물 억압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세 문장 가운데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얼핏 보면 셋 모두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문장은 ‘헛소리’에 해당한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거짓말은 첫 번째 문장뿐이고 나머지 둘은 각각 설득용 헛소리와 회피성 헛소리다. 헛소리와 거짓말의 큰 차이는 진실에 대한 태도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하는 것이지만 헛소리는 애초에 진실 여부 자체에 관심이 없는 발화다. 그렇기에 헛소리는 말장난과도 구분된다. 조 피에르는 <집단 망상>에서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념을 확장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헛소리를 다룬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책이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헛소리뿐 아니라 병리적 망상과 일반인이 흔히 겪는 인지 왜곡을 설명한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과도한 자신감, 직관에 대한 과신, 확증편향, 동기화된 추론, 인식적 불신 같은 요소들이 개인의 믿음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심리학적, 의학적으로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이 컸다.
이어 저자는 오늘날 사회가 이런 경향을 얼마나 증폭시키는지 살펴본다. 학술 출판 시장, TV 뉴스 같은 언론의 변화,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디지털 에코 체임버 현상 등을 짚어가며 탈근대주의와 유사과학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설명한다. 믿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뢰하며 그 바탕에는 오히려 ‘인식적 불신’이 놓여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진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명확한 답을 찾으려는 욕구 때문에 음모론에 빠지기도 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사회가 왜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사람들이 왜 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지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미국 정치와 인종 문제를 깊이 다루며 트럼프 당선 배경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한국 사회 또한 정치적 반대편을 보는 태도에서 비슷한 이념적, 감정적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익명의 명언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곧 우리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도록 내버려둘 필요도 없고, 의견 차이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으며, 마음을 바꿔 이념에 대한 헌신에서 물러서는 걸 자아의 죽음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 자신이 지속적이고 변치 않는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아는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증거에 따라 믿음을 수정할 수 있고, 다른 관점을 수용함으로써 이념과 이념적 소속 집단을 바꾸면서도 여전히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실에 기반한 믿음을 현실에 맞춰 수정하고 믿음을 조정해 서로 보다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본래 자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자아로 성장하고,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p.395
저자는 지적 겸손, 인지적 유연성, 분석적 사고가 잘못된 믿음을 피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워싱턴 대학교에 ‘헛소리 간파하기’라는 이름의 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헛소리가 얼마나 난무하고 또 얼마나 쉽게 용인되는지 새삼 실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문해력, 가짜뉴스 판별이 유행어처럼 떠오르는 요즘, <집단 망상>은 그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큰 도움이될 것 같다. #집단망상 #조피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