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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우미는 탈출하고 싶었다. 모든 곳에서 탈출하고 싶다기보다 순간순간을 탈출하고 싶었다.
의류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옷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 이런 옷이 너랑 잘 어울려. 이런 옷을 사서 입어. 네가 고른 그 옷은 왠지 너랑 잘 어울리지 않아. 그런 옷은 네가 소화를 못 시켜. 네가 가진 옷 중에 네가 고른 그 옷과 어울리는 옷은 없어. 그래서 자주 입지도 못할 테니까 그냥 이런 옷을 사. 그러면 네가 가진 옷과 잘 매치해서 일주일 코디를 바꿔서 입을 수 있어. 그러면 기존의 느낌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느낌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이런 옷을 입어. 알겠지? 패션 잡지를 구독하지만 그 목적이 인터뷰를 읽는 과정에 있는 우미로서는 패션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우미로서는 그냥 입고 싶은 옷을 멋대로 입고 싶은 우미로서는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반찬이 먼저 나온다. 배추김치도 나오고 두부조림도 나오고 샐러드도 나오고 호박전도 나오고 생선도 나오고 시금치나물도 나오고 콩나물무침도 나오고 수육도 나오고 어묵볶음도 나온다. 그리고 밥이 나오고 국이 나오고 찌개도 나온다. 밥 한 숟갈에 반찬을 세 네 번 먹어야 반찬을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너 집에서 밥은 해 먹니? 반찬은 해 먹니? 반찬 뭐 할 수 있어? 콩나물무침? 두부조림? 어묵볶음? 뭐든 네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해. 밖에서 밥을 먹어도 되지만 조미료가 너무 들어가서 몸에 안 좋거든. 그러니까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해. 알았지? 육수를 우려내는 과정이 귀찮아서 육수 맛을 내는 우미로서는 맛을 잘 낼 줄 몰라서 항상 간장이고 된장이고 고추장이고 소금이고 설탕이고 고춧가루이고 후추이고 올리고당이고 온갖 양념을 듬뿍 넣는 우미로서는 밖에서 먹는 음식과 집에서 먹는 음식의 조미료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우미로서는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었다.
탁자 위에는 흰 입김이 나는 커피가 두 잔. 너 커피는 얼마나 마시니? 많이 마시니? 이왕이면 원두커피를 마셔. 믹스커피는 프림이고 설탕이고 많이 들어서 몸에 별로 좋지 않아. 그러니까 원두커피를 마셔. 아, 집에 커피머신이 없지? 그러면 그냥 가루커피만 파는 데가 있더라. 그거 사서 설탕 넣지 말고 마셔. 조금이라도 건강에 신경 써야 하지. 그리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건강에 안 좋으니까. 뭐냐, 몸속에 흐르는 호르몬을 건드려서 쉬어야 할 때도 멀쩡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니. 쉴 때는 쉬어 줘야지. 안 그래? 이미 믹스커피와 커피숍에서 커피머신으로 내리는 커피의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우미로서는 커피 한 잔을 매일 아침 먹어야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 우미로서는 노래를 화이트 비지엠으로 틀어놓듯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우미로서는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었다.
순간순간이 힘들지도 않았고 괴롭지도 않았는데 탈출하고 싶었다.
*위 글은 개인 블로그에 올린 내용과 동일합니다.
* 이 책을 읽고 왠지 <도시의 시간>의 우미가 떠올랐고, 탈출하고 싶어하는 우미가 떠올랐고 그래서 우미가 탈출하고 싶어하는 감상을 적는다.
* <인터내셔널의 밤>과 <도시의 시간> 전체 주제와는 무관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