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인 조르바 청목정선세계문학 7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김종철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희랍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청목 / 9000원

 

아주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책 팔아 여섯 딸을 키운다는 그 헌책방에서 사게 되었다.

옛날 번역본이라 글자체가 작고 구부러졌는데 뭐 나쁘지 않다,

예전엔 죄다 이런 식의 책을 읽었는데 사람들은 참으로 간사하다,

요즘엔 읽기 불편하다며 꺼리기 일쑤니까.

나야 뭐, 고등학교 때 책읽던 기분도 다시 들고 해서 좋았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지만 경험으로 삶의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태백산맥을 마지막으로 만나보지 못할 듯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그 이름은 조르바.

 

이 책은 어쩌면 카잔차키스가 나에 대해 세계에 대해 사람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에 쓰여진 것일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조르바 할아범 참 멋있다.

 

<조르바의 말들>

82쪽.

두목, 사람들을 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둬요.

그 사람들 눈을 뜨게 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뜨게 했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감은 놈은 감은 대로

내버려둬요, 꿈꾸게 내버려두란 말이오!

 

우매한 민중에게 진리를 감춘채

도덕과 종교로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극우파의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99쪽.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며

구별해 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곤두설 짓도 나는 조국을 위한답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목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뭣 때문이냐구요?

그들이 불가리아 놈이나 터키 놈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 썩을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썩 꺼져 버려, 이 멍청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렇게 보지요.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는 것뿐입니다.

나이가 더 들게 되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이것도 개의치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나는 모두 불쌍해요.

모두가 똑같아요.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들만 보면

뭉클해져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여기 또 하나 가련한 인생이 있구나,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 사람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죽어 널빤지처럼 땅 밑에 꼿꼿하게 누워서는 흙으로 돌아간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 될 테니까...중략....

" 내 조국이라고 했습니까? 당신은 책에 나와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모두 믿나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입니다.

조국 같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면하기 힘들어요.

하느님이 돌보셔서,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다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이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싸우고 죽이고 사랑하면서 내가 펜과 잉크 속에서 배우려던 것들을 몸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의자에 붙어앉아 고독과 싸우며 풀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산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칼 한 자루로 풀어버린 것이다.

 

<두목의 말>

83쪽.

나는 타파해야 할 게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할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걸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며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면서 매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아직 미래의 세계는 오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자아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 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인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 해도 암호 이상의 예언을 할 수는 없다.

암호가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하다.

 

99쪽.

내 인생은 낭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걸레로 모두 지워 버리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은 아주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359쪽.

세계란 무엇일까? 세계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덧없는 인간의 목숨이 어떻게

세상의 목표를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단 말인가?

조르바의 생각으로는 인간이나 사물의 목표는 쾌락을 성취하는 데에 있었다. -어떤 이는 정신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둘은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육체가 소멸하고 난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육신의 잔재가 남아 있을까?

만약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생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소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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