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경, 미라, 진숙, 서란, 자연.

다섯 여자의 이야기.

33세, 딱 '대한민국입니다' 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일 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 분위기의 노처녀들.

아주 오래전에 읽었지만 분명 '배수아의 냄새가 안 나는 못쓸 작품'이란 못된 평가 속에

묻혀 버렸을 게 뻔한 내용과 문체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이 작품은 '나도 쓸 수 있다, 이것들아~' 정도의 작품으로 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와 함께 희곡 또는 대본의 습작 연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181쪽부터 이어지는 여자 1,2,3 의 이야기.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언제나 그녀를 지독하게 과대평가하는

나의 오래된 습관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위와 같은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다.

교진과 유경의 연애가 나오는 부분을 모두 옮겨 놓고 싶을 만큼 그와 그녀의 현실이

와닿고 가슴 아프지만 아프지 않아야 하는 현실과 연애의 교차점.

대한민국의 어떤 작가도 대한민국의 '올드걸' 들을 이처럼 제대로 나타내 주지 않았다고

감히 생각하므로.  

 

배수아 그녀는 어쩌면 20대 여자보다 30대 여자에게 맞는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에게 맞는 작가' 이따위 것이 있다면 말이다.

20대에 난, 이 작품을 어떤 형태로 기억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똑같은 부분에서 난 흥분하고 반응한다는 사실.

책 귀퉁이를 접어 놓는 습관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반가운 이 책.

138과 139쪽의 이별에 관한 그녀의 글은 여전히 여전하다.

 

[그날 이후 나는 강철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유경, 네가 원하면 결혼하겠다."

처음으로 결혼이란 단어를 꺼내면서 교진이 나에게 한 말이다.

"너에게 달렸어. 나는 네가 원한다면, 좋다."

그때 이미 나는 교진을 처음 만나던 그런 소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갈등과 냉전의 시간들을 건너왔기 때문에 서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교진 말고도 세상에는 남자가 많음을 알게 되었고 이미 다른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도 경험한 다음이었다. 나는 교진이 나에게 주었던 것들, 언제나 단 한 번만 그럴 수 있는

봄날 같은 것, 그런 것들을 무시하려 애썼다. 내가 고뇌하고 있던 것은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이유로

꺼내질 수 있는 '결혼'이라는 문제였다. 교진이 이 세상 정의의 편에 서려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교진이 신의를 지키려면, 교진이 부잣집 딸이나 유혹하려고 돌아다니는 내세울 것이라고는

고학력뿐인 엘리트 사기꾼이 아니려면, 여자랑 같이 잔 다음에 나몰라라 하고 줄행랑치는 비열한이

아니려면, 아무 생각 없이 여고생을 유혹한 자제력이 결핍된 성욕 과잉의 남자가 아니려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을 예술이라고 믿고 있는 경박한 아티스트가 아니려면,

그는 나에게 '결혼'을 제의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오묘한 변수들이 많다. 교진과 내가 같이 잠잤던 것이 내가

미성년일 때 일어났다는 것, 교진을 사귀게 되면서 공교롭게도 엄마의 사업 실패와

주식 폭락으로 우리 집은 상당히 많이 가난해졌다는 것, 결국 교진은 학위를 포기하고

취업하기로 했다는 것, 교진이 유난히 고지식한 성격이며 사회 정의를 위한 집단적인

운동이 사생활의 청결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순진한 믿음이 강렬했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류로 가득한 답안을 써내려가는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른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교진조차도 미숙했으며

결정적인 것은 그때까지도 우리는 서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둔감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때 성장의 불안한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진과 나는 둘 다 존재를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이는 편에 속한 것이다. 단지 해석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진은 마지막 패를 나에게 넘겼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다.

 

"교진,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단지 너와 같이 잠잤다고 해서

내가 왜 너와 결혼까지 해야 하니? 그만 비켜줘, 나는 야망이 있는 여자야."

 

그랬다면 교진은 자신이 내 양에 차는 결혼 상대자가 못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사귄 것 같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이제 나에게도

나의 기호라는 것이 있어.  너무 오래된 것은 나 뭐든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랬다면 교진은 내가 싫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연애에 빠져서 설탕물 속을 헤매는 파리가 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진정 그렇게 말할 자신이 있는지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언어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말해 놓은 다음에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다른 언어는 없다.

나는 교진이 양심의 가책 없이 나를 떠날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희생자였을까?

교진이 홀가분하게 새로운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무엇보다 더 큰 자유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강렬했다.

이미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교진은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 꿈꾸는 인생도 너무 다르다.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져야 한다. 너무나 큰 폭력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그런 마지막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내놓을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

오, 교진과의 모든 기억들이 솥 안에서 망가진 푸딩처럼 으스러지며 막을 내렸다.

나는 타인에게 감정으로 의지하는 것의 뒷맛을 충분히 맛보았다.

다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강철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위와 같이 강철이 되겠다고 결심한 유경은 유부남과의 실수로 저지른 하룻밤의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털어 놓지도 상의하지도 못 한 채 다시 한 번 강철이 되겠다고 결심하듯 단행한다.

그와 가끔 데이트 하기로, 물론 잠자리가 기본이 되는 그런 삼십대의 데이트~ 

그녀의 상대는 길,

삼십대의 유부남으로 그녀가 아니어도 새로이 새로운 삼십대 여자를 꼬셔서 차에 태우는 그런 남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