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 꽃길따라 거니는
이익섭 지음 / 신구문화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부 맞춤법, 2부 어휘, 3부 방언, 4부 문법, 5부 한글과 한국어, 6부 말과 글,
이렇게 이루어진 잘 쓰여진 책.
우리 말과 글에 관한 책은 보통 맞춤법에 치우치기 마련인데
평소 쓰던 것을 그저 엮어냈다는 책이 이렇게 잘 꾸려지다니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4부까지는 그냥저냥 아는 것들로 이루어져서 복습하는 셈치고 읽기에 좋았다.
5부와 6부는 한 번 더 읽어도 좋을 듯한데, 흔히 착각하기 쉬워서 한글과 한국 말을 같은 것이라 여기는 부분이 평소 얼마나 답답했는지 저자의 마음이 듬뿍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특히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던 과거에 대한 지독히도 독한 반발의 의견이나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기 쉬운 잘못된 정보를 정확한 근거를 이용해 고쳐 준다거나 하는 부분들은 읽는 자의 속까지 시원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음은 책 내용이다.

'공용어'란 글자 그대로 공적인 용도에 쓰이는 말이라는 뜻으로 주로 행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뜻은 동회에서 스피커로 주민에게 "옥천동 주민 여러분, 동회에서 알려 드립니다. 오늘 저녁 8시에..."와 같이 방송을 할 때도 영어를 써야 하고, 세금 통지서며 투표용지며, 입장표며 각종 증명서 등에도 반드시 영어가 병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전철이나 비행기 안에서 영어로도 안내 방송을 하는 방식이 우리 생활 전반에 확산되는 것이라고 보면 대개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나라 말을 두고도 영어나 남의 나라 말을 공용어로 쓰는 일이 왜 일어날까요? 우선 그런 나라들의 사정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인도(인구 7억 8천만)를 한 예로 볼까요.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그때까지의 공용어였던 영어를 자국어로 대체하려 했으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인도에는 자그마치 300개 이상의 언어가 있는데다가 그중 가장 세력이 크고 대표적인 힌두어도 그 사용자의 비율이 고작 29.6%밖에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헌법으로 힌두어를 공용어로 정하면서 향후 15년 안에 영어를 완전히 힌두어로 교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1967년 영어를 힌두어와 함께 공용어(부공용어)로 인정하지 않을 수 ㅡ 없었습니다.

이 인도의 경우에서 보듯이 제 나라 말을 두고도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나라들을 보면 자기 나라 말만으로는 행정을 펴 나갈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 나라들입니다. 인도 외에 가까이는 필리핀, 싱가포르를 비롯하여 멀리는 카메룬, 감비아, 가나, 구야나, 케냐,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나미비아, 말라위, 키리바시, 보츠와나, 도미니카, 자메이카, 시라 레온, 피지, 브루나이 등등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나라들을 보면 거의가 이름도 제대로 못 들어 본, 한 마디로 불쌍한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스스로 나서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하였을까요? 이들의 희망이라면 오히려 자기들 토착어를 공용어로 격상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프랑스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쟁취해낸 일도 그렇고(특히 퀘벡에서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격상시킨 것으로는 성이 안 차서 1977년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어만을 공용어로 인정하고 영어를 공용어 자리에서 밀어내는 법안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스페인에서 카탈로니아어가 공용어를 되찾은 일이나 영국의 웨일즈 지역에서 자기들 말을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게 만든 일이나 공용어 지위를 놓고 투쟁을 벌이는 쪽은 열세에 있는 쪽이지요. 당당히 군림하고 있는 제 언어를 두고 제발 영어도 공용어로 들어와 주세요 하는 일은 도무지 상상키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세계 곳곳에서 학자들이 구름처럼 우리나라로 몰려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으로 요상한 괴짜 나라도 있구나, 참 특수한 케이스도 있구나 그러면서 연구를 하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사회언어학 전공서에서는 다투어 우리나라의 사태를 흥미진진한 특수 케이스로 다루려고 들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만을 쓰면 그걸 못 알아들어 불편을 느낄 사람이 몇%나 될까요? 그러고 보면 사실 전철에서까지 영어 안내 방송을 하는 것은 지나친 친절이요 낭비일지 모릅니다. 더욱이 온 국민이 한국어로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 웃음거리도 이런 웃음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문부성장관이던 모리와 나가이가 영어 또는 프랑스어를 일본의 국어(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창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의 지성인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받아들여졌을 리가 없었겠지요. 결국 소란만 피우다 무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고 가끔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하면 이름은 남기는 게 신기합니다. 그래서 괴짜 짓들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한 선배 교수가 겪었던 경험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다, 한국? 그게 어디에 있는 나라냐, 어디에 있다, 너희 고유한 말이 있는가, 있다, 그럼 고유한 문자도 있는가, 있다, 학교에서 그걸로 공부하느냐, 물론이다, 대학에서도 그걸로 된 책으로 공부하느냐, 물론 그렇다. 그랬더니 그 후부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는 평가하는 데 그 나라 고유의 말과 문자가 있고, 그것으로 고등교육이 실시되는가가 중요한 몫을 하는 것이지요. 교보문고에 쌓인 그 많고 많은 책을 보세요. 대학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급 서적들을 보세요. 제 나라 말과 제 나라 고유의 문자로 이만큼 높은 수준의 문화생활을 누리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인가 동남아를 순회하고 와서 그 나라들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걸 보고 무슨 대오각성이라도 한 듯 영어 교육 강화를 외쳐 대기 시작하였는데 부러워할 것을 부러워해야지요. 제 나라 말 하나 지키지 못한 그들의 딱한 처지에 오히려 동정이나 보내며 우리는 좀 의젓한 길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처럼 온 나라 국민이 한 가지 말을 하며 사는 나라는 드뭅니다. 대부분 다언어국가로서 그로 인한 고민을 안고 있는데 우리는 그 면에서 큰 복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말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세계 12위의 막강한 언어가 아닙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무엇이 아쉬워 스스로 초라하고 딱한 처지의 대열로 전락하겠다고 하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너무너무너무 맞는 말만 하셔서 여기에 남긴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것.  

89쪽 밑에서 2줄 : 오래만에 -> 오랜만에 

119쪽 밑에서 3줄 : 벌려 놓은 음식 -> 벌여 놓은 음식 

127쪽 밑에서 9줄 : 절대적이 -> 절대적인 

168쪽 밑에서 10줄 : 주어 오다 -> 주워 오다 

237쪽 4줄 : 못 맞추면 -> 못 맞히면 

265쪽 1줄 : 기괴망칙 -> 기괴망측 

270쪽 1줄 : 하였겠을까요? -> 하였을까요? 

335쪽 1줄 : 일까 마는 -> 일까마는 

336쪽 10줄 : 인쇄된 -> 인쇄되지 않은  

338쪽 12줄 : 애기 -> 얘기 

371쪽 밑에서 8줄 : 그런데다가 -> 그런 데다가 

376쪽 밑에서 4줄 : 들어가는 데도 -> 들어가는데도 

377쪽 1줄 : 약보고 -> 얕보고 

389쪽 밑에서 3줄 : 덜 쓴 쓴다고 -> 덜 쓴다고 

394쪽 밑에서 4줄 : 두번째 ->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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