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이아주소
최형주, 이준영 엮음 / 자유문고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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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5 - 미스터리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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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 의구심은 역사책을 읽고 싶다는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긴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을 들어준 역사가들에 대한 논란도 있지 않은가? KBS 교양프로그램의 하나인 '역사스페셜'은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를 보는 안목을 대중화시켰다고 본다.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는 물론이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전설, 무덤 속에 묻혀있던 지난 삶의 흔적, 비바람 속에 방치됐던 동강난 비석 등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이 크게 돋보였던 것이다. <역사스페셜> 시리즈는 바로 그 프로그램을 원작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 시리즈 가운데 특히 '미스터리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부제의 <역사스페셜5>가 흥미를 끄는 것은 이긴 자들의 역사서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그렇고, 조선 최고의 역적으로 꼽히는 정여립이 그렇다. 특히 정여립의 역모가 당쟁의 격화 속에서 반대파인 서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그 조작에 <사미인곡>을 쓴 송강 정철이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놀랄 뿐이었다.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동아시아 국제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는 또 어떤가. 학교 때 시험점수를 받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한 사람은 장보고'라는 것만을 달달 외운 나로서는 장보고가 신라와 일본, 중국을 잇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무역사업을 독점했고, 지금도 일본과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역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적 나태함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거란 80만 대군을 담판으로 물리쳤다는 서희, 임진왜란 때 포로의 신분으로 일본에 성리학을 전한 강항, 일본 불교가 신처럼 추앙하는 파계승 원효, 지금도 중국을 감동시키는 최치원, 만주 땅에 금나라 건설의 씨를 뿌렸다는 마의태자, 원나라 황실에서 권력을 휘두른 고려 출신의 기황후, 실존인물로 알려지고 있는 이몽룡 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을 둘러싼 가려진 역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역사스페셜5>의 큰 덕목은 단조로운 인물사의 한계를 넘어 참신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제기된 인물들을 보다 정당하게 재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를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가령 기생 홍랑과 사대부 최경창의 사랑을 다룰 때 그들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기생들의 상황과 그들에 대한 인식까지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상 프로그램을 글로 번역(?)하여 책으로 꾸며냈다는 태생적 한계이다. 영상으로 보여준 것을 다시 글로 설명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아쉬움은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이만큼 주는 책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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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순례자
김춘추 지음 / 문학수첩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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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시인이 최근 '유년의 그 등 푸른 심해를 헤매고 헤매다 재수 좋게 작살로 잡은 기억의 활어'로 다섯 번째 시집 《어린 순례자》를 발간했다. 그는 자신의 어항에 든 이 활어들을 날 회로 먹든 매운탕으로 먹든 조림으로 먹든 독자의 처분대로 하라는 말도 곁들였다. 그럼 시인이 권하는 대로 싱싱한 날 회로 먹어보자. 희야에게 고추를 달아주는 몽정기 이번 시집에는 몇몇 시에 국한된 얘기지만 (또, 이런 표현을 써도 좋을지 모르지만) 유년기에서 바라보는 아득한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 있어 독자의 읽는 즐거움을 키우고 있다. 유년의 기억이기에 시공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오히려 상상의 폭은 훨씬 자유롭다.

한여름밤 원두막, 아이들은 수박 서리에 바쁘고 '모기장 안에서는/구름 속에서 볼일을 다 본/달이 킥킥 웃으며/내려다보는 줄 모른 채 기어이/두 그림자 엉켜 한 그림자 되고 있다('古夜' 중에서).' 정작 수박을 탐내는 척하면서 달빛을 통해 훔쳐보는 아이들의 킥킥거림이 능글맞다. '고추를 도둑 맞았으니/소피도 앉아서 보는 가여운/희야를 생각다가 그날 밤 내 꿈에서/난, 싫다는/희야에게 기어이 내 고추를 달아주었다('고추 이야기' 중에서)'는 데서는 남자라면 한번쯤 경험했을 몽정의 그 첫 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자가 떠나면 인적이 끊기는 상여집도 기억으로 살아난다. 시인의 기억에는 '손금에도 없는 인연으로/겨울 다리 밑에서 눈과 눈이 만난/눈썹 없는 총각과/역시 눈썹이 한 올도 없는 처녀가/가랑잎 긁어 모아/달디단 꿈 같이 꾸던 집('상여집' 중에서)이 상여집이다. 천형의 문둥병을 앓아야 했던 남녀의 눈물겨운 사랑에 '밤이나/낮이나 삘-릴리리/봄 버늘피리 소리에/겨울이/문 밖에서 눈만 흘기다 가는 집'이 그곳인 것이다. 상여가 흰 버스로 바뀐 지금 아득한 얘기로 남는, 동네에서 가장 외진, 사시사철 뭇 영혼의 냉기가 감돌던 집이다.

하필 밤나무골에 과부촌이 하필 밤나무골에 과부촌이 있었던가. '밤꽃 핀다야/우얄꼬/과부댁은 인두로 허벅지 지지니('小曲' 중에서).' 시에서 과부와 밤나무는 동일시된다. '아랫도리 구멍이 크게 나/남몰래 들쥐나 다람쥐가/들어가 새끼라도/치면 큰일이다 싶어/누군가가 밤송이로/콱 틀어막아 놓은, 젊지도/늙지도 않은 그 밤나무가('동행' 중에서)' 생각나 그곳을 찾은 시인은 '곡기를 끊고 시름시름 앓는/꼴이 안쓰러워 하늘이' 데리고 갔다는 서글픈 뒷얘기를 듣고 만다. 과거 우리의 관습이 만들어냈던, 삶을 죽이는 삶의 질곡이 아닐 수 없다. 보릿고개를 넘느라 꿔다 먹은 쌀 서말에 서방을 맞아야 하는 처녀의 아픈 얘기도 있다. '이제는 없는 하늘나라/첫 동네에서 눈썹이/가장 아름다운 큰애기별이/머리를 올린다네('처서가 지나면' 중에서).' 유년이었음에도 부당하다 느꼈기에 기억에 맴도는 것은 아닐지. 아마도 풋풋한 첫사랑이었을 게다. 고향마을 여울의 바윗돌이 시인에게 '니, 수박 향 찐한/그 가이내 찾아왔제('숨긴 사랑' 중에서)' 묻는다. 그러나 시인은 '미친 놈!' 내뱉으며 오십 년 전 은어 새끼의 뒷날 족보를 캐러 왔노라며 '그 가이내'를 부인하고 만다. 그런데 몇 번 읽다보니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옛 여울을 찾았다가 첫사랑을 떠올린 것인가, 아니면 첫사랑을 떠올리다 여울까지 닿은 것인가. 풍경과 정서가 갖는 서열의 모호함이다. 그 때문에 하나의 시론(詩論)으로도 읽힘직하다.

보리고개 넘던 한국적 정서 몇 편 시에서 에로티시즘적인 묘사를 단편적으로 모아본 데서도 느낄 수 있지만, 전체 시집의 표현 하나 하나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1944년 남도에서 태어난 시인이 한국전쟁을 비극적인 가족사로 몸소 겪고 보리고개를 넘어가며 보낸 유년기를 증언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처럼 '점심 잘 먹은 대낮에('낮달' 중에서)'도 '외사촌 큰누야가/몰래 갖다 준 참봉댁 송편' 맛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킬 수 있는 것이 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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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시선(솔의 시인) 3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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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은 있다> 같이 제목이 <...다>의 종결어로 끝나는 책들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병이 있었다. 유행을 따르면 속물근성이 붙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허만하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것은 그런 식의 제목 때문에 한참을 망설인 끝이었다.

1. 존재의 관계를 표현한 '틈'

그러나 이 시집은 나의 속물 걱정을 일축했다. 예전에 놓아버렸던 감수성의 갈피들을 하나하나 일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를 대 보라고? 구구한 얘기는 접고 실제로 이 시집에서 '틈'이라는 제하의 시 한 수를 놓고 보자.

시인은 세상에서 맺어지는 온갖 관계들을 틈이라는 공간적 단어 속에 집약하고 있다. 그 틈은 연인의 포옹에서도 발견되고, 뼈와 살, 영혼과 육신 사이에도 존재한다. 현실(빵)과 이상(꿈) 사이에 벌어져 있는 아득함도 틈으로 인식되고, 이국적인 원두커피의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에도 틈이 보인다. 더구나 틈 사이를 조절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향내와 밀크 사이의 틈을 저어 원두커피를 완성해내는 스픈은 시를 짓는 있는 시인 자신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존재는 틈이다'라는 진술로 틈이 곧 존재의 필연적인 양상임을 일깨운다.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관계라는 것의 사이에는 항상 틈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 시인은 틈을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시인의 진술은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나 고고학적 탐구의 결과를 보고하는 양식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세상의 기미(미묘한 움직임)를 간파했더라도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그 깨달음을 시로써 말해야 하는 것이다.

2. 변혁의 가능성을 품은 '틈'

어느새 '틈'이라는 어휘는 그의 시를 움직이는 핵심어가 되어버린다. 이 시집에는 잘려나간 산허리의 모습이 몇 번 등장하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지층의 속살에서도 틈이 존재한다. 그 틈에서는 지상을 거쳐갔던 온갖 욕망들이 세월을 지운 채 엄연하게 살아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틈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지상을 거쳐간 자들의 욕망을 측정해보고 그 욕망이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시 '바위의 적의'에서도 틈은 중요한 모티브이다. 바위의 단단한 틈 사이로 '갈맷빛 물이 솟구쳐 바다가 되고' 들풀을 길러내어 세상이 부활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틈은 세상을 바꿀 가능성의 공간이다.

허만하의 시 역시 틈이다. 그의 시는 자신의 인식과 자신이 선택한 시어 사이의 틈에 다름 아닌 것이다. 마치 시니피어(기의)와 시니피앙(기표)의 관계를 연상시키는데, 시니피어와 시니피앙의 틈이 해체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음을 인정한다면 틈은 진정 혁명이 잠재한 곳일 수밖에 없다.

<장자>에 나온 얘기 한 토막을 곁들여보면 틈의 의미를 좀 더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옛날 중국 땅에 칼 잘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나 칼을 잘 썼던지 수십년간 소를 잡아도 칼 가는 법이 없었단다. 날이 항상 시퍼렇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뼈와 살의 틈 사이로 날을 집어넣어 칼질을 하기 때문에 칼날이 무뎌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틈에 대한 인식론은 상당히 오랜 계보를 가지고 있을 듯하다.

3. 마음에 쏙 드는 하나의 시구

나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시구 하나를 발견하고는 한동안 읽기를 멈추고 말았다. '이름없는 절터에서'라는 제하의 시에서였다. '서라벌 터전에 서면 나그네도 절터의 메타포에 불과하다'라는 시구가 발걸음을 잡았던 것인데, 그 구절이 나의 눈에 쟁쟁하게 살아 있다.

얼마전 별세한 서정주의 시를 읽다가 '내가 꽃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꽃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시를 보고는 무릎을 친 적이 있었는데, 그와 맞먹는 감동이었다. 우리 선조의 옛시에서도 자연과의 동화를 자연과의 합일을 이만큼 표현한 예는 드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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