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5 - 미스터리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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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 의구심은 역사책을 읽고 싶다는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긴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을 들어준 역사가들에 대한 논란도 있지 않은가? KBS 교양프로그램의 하나인 '역사스페셜'은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를 보는 안목을 대중화시켰다고 본다.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는 물론이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전설, 무덤 속에 묻혀있던 지난 삶의 흔적, 비바람 속에 방치됐던 동강난 비석 등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이 크게 돋보였던 것이다. <역사스페셜> 시리즈는 바로 그 프로그램을 원작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 시리즈 가운데 특히 '미스터리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부제의 <역사스페셜5>가 흥미를 끄는 것은 이긴 자들의 역사서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그렇고, 조선 최고의 역적으로 꼽히는 정여립이 그렇다. 특히 정여립의 역모가 당쟁의 격화 속에서 반대파인 서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그 조작에 <사미인곡>을 쓴 송강 정철이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놀랄 뿐이었다.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동아시아 국제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는 또 어떤가. 학교 때 시험점수를 받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한 사람은 장보고'라는 것만을 달달 외운 나로서는 장보고가 신라와 일본, 중국을 잇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무역사업을 독점했고, 지금도 일본과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역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적 나태함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거란 80만 대군을 담판으로 물리쳤다는 서희, 임진왜란 때 포로의 신분으로 일본에 성리학을 전한 강항, 일본 불교가 신처럼 추앙하는 파계승 원효, 지금도 중국을 감동시키는 최치원, 만주 땅에 금나라 건설의 씨를 뿌렸다는 마의태자, 원나라 황실에서 권력을 휘두른 고려 출신의 기황후, 실존인물로 알려지고 있는 이몽룡 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을 둘러싼 가려진 역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역사스페셜5>의 큰 덕목은 단조로운 인물사의 한계를 넘어 참신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제기된 인물들을 보다 정당하게 재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를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가령 기생 홍랑과 사대부 최경창의 사랑을 다룰 때 그들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기생들의 상황과 그들에 대한 인식까지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상 프로그램을 글로 번역(?)하여 책으로 꾸며냈다는 태생적 한계이다. 영상으로 보여준 것을 다시 글로 설명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아쉬움은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이만큼 주는 책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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