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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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돈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돈 많은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강력한 신분계급과 그 세습이 우리 사회의 강력한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빈부격차를 벌리고 있건 말건,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

돈이 많이많이 생기면 공기좋은 너른 땅에 방이 100개쯤은 있는 건물을 올릴 것이다. 각각 방에는 화장실과 서재로 쓸 수 있는 넉넉한 거실, 아담한 침실이 있을 거고, 거실에는 듬뿍 햇살이 들어올 것이다. 단촐한 주방이 있을 테지만 식사는 좋은 식자재와 건강을 고려해 짠 식단이 제공되는 넓은 레스토랑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식당을 꽤 신경써서 만들 거니까. 방으로 배달도 되는 질좋은 술과 안주제공 서비스 및 세탁서비스도 제공할 거고. 다양한 루트의 산책로가 있는 너른 정원이 보이는 곳에 근사한 바도 만들고.

이 건물에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여성들을 무료로 입주시킬 예정이다. 사람들은 최대 3년까지 집걱정 없이 자기 인생을 계획하고, 구체화시킬 행동을 하고, 살 만한 힘을 얻어 나가면 된다. 더 돈이 많다면 하와이나 칠레에 거대망원경 몇 개 사서 천문학자들에게 주고 싶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같은 도서관도 짓고 싶다. 보이스피싱과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를 없앨 사업에 필요한 만큼 돈을 대주고, 종편을 엿먹일 종편을 설립해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언론에게 돈을 펑펑 퍼줄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멋지지 않음? 문제는 돈이 사람을 변질시킨다는 것. 그많은 돈을 가진 내가 계속 제정신일 수 있을까? 그 돈을 가지고도 지금처럼 발랄하고 명랑할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하기 쉬운 일들을 그 돈많은 재벌가 자식들은 왜 안 할까.

조우리 연작소설 <이어달리기>에서 나를 내내 매혹시켰던 건 성희의 유산이었다. 말로만 돕는 게 아니라 실제 도움이 되도록 충분히 돈을 썼다. 좋은 어른인 성희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스스로 자신만의 파도에 오르도록, 둘둘둘 커피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되도록, 구르기에 성공하도록, 이어달리며 배턴을 전해받도록 진심을 다해 돕는다. 성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대가 없이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세계에 다가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모라 불리지만 진짜 이모의 친구였을 뿐이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 착한 어른이고 시한부 삶을 정리하며 자신의 유산을 적절하게 건낼 뿐이다. 이런 어른을 만난 적 있었던가. 꿈같은 이야기들인데 그저 좋다.

존중받고 환대받은 아이들은 이어달리며 또 근사한 어른이 되어 간다. 빨간 풍선이 달린 설가타거북까지 그 관계를 이어가도록 돕는다. 여성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넘쳐흐른다. 그 사이 사랑과 신뢰가 있고, 편지와 미션이 있다.

성희는 1인실 침대의 머리맡에 작은 사막에서 수영과 거북이 함께 작은 사진을 담은 액자를 놓아 두었다. 기나긴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둘의 모습. 거북에게 빨간 풍선을 매어주던 날. 성희는 거북에게도 미션을 주었다. 수영이를 부탁해. 오래오래 같이 살아줘. 변함없이. 고요하게. 75쪽

성희의 마음은 담백한 행운이나 환타지 같은 환대를 믿지 않는 까칠한 심성소유자인 나의 차가운 마음마저 노골노골하게 만들었다. 자기는 죽어가면서도 거북에게 이런 미션을 주는 이모라니. 성희 이모. 부디 저의 이모가 되어주세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늘 성실하게 잘 듣는 역할을 하는 데 익숙한 아름에게 마지막으로 이어진다. 배턴을 건내주지 못하고 이어달리기의 고리를 잇지 못하던 아름은 끝내 미션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 많은 편지를 보내며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성희의 이야기. 봄이 오기 전에 미리 따뜻한 마음이 되어보고 싶다면 여성들의 이어달리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아름이 책을 들고 성희를 찾아갔을 때, 성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아름은 언젠가 성희가 그랬던 것처럼, 성희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이모, 나 미션 완료했어."

"그래? 어떤 보상을 주면 좋을까. 원하는 걸 말해봐."

아름은 기꺼이 대답했다.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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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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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화의 투박한 붓터치가 이렇게 섬세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최다혜의 책 <아무렇지 않다>는 선과 면, 색이 만든 다양한 감정들을 진중하게, 섬세하게 쏟아낸다. 소설가 박서련의 '최다혜 작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로서도 알지 못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내가 짓는 표정'이란 말에서 그도 그렇게 느꼈구나, 공감했다. 작가는 결국 자기 표정에, 자기가 보는 자기 비슷한 타인의 표정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오래 지켜보아야,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얼마나 노력해보아야, 매끄럽지 않은 선 하나로 이리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림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눈동자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눈맞춤해본다.

이 책의 표정들만 모아 놓아도 기나긴 이야기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바퀴벌레가 쏟아지는 꿈을 견디고, 예기치않은 지출과 느닷없는 불행을 감수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결국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보는 시간들을 누구든 버텨오지 않았으리. 그렇게 버티면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또 방법을 찾아나서는 지현, 은영, 지은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너무 쓸쓸한 책이다.

이들의 쓸쓸함은 혼자 버텨낸다는 데 있다. 여성 서사에서 무례하게 끼어들곤 하는 남자친구 따위는 없다. 자립을 위해 버티고 살아내면서 온전히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유지한다. 이 쓸쓸함이 언젠가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이 책에서 좋았던 그림. 머리 말리며 지각이다...와 함께 각종 욕을 쏟아내던 기억. 씻고 돈 쓰러가자는 생각으로 설레며 욕실 문을 열던 기억.

2년이나 그렸다는 작가의 그림들이 많이많이 팔려서 이 세상에서 작가가 무던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무례한 세상 언어에 길들지 않고 홀로 버텨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더 강해지기를.

불행은 늘 초대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불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능이라 말하거나...불행해 마땅한 존재로 개인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정말 속상하는 것은, 불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저항할 힘이 없어 스스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마라, 스스로 무례해지지 마라'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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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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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다면 뭐든 있어도 좋겠다. 시, 소설, 산문, 논평, 성명서, 결의문, 기자회견문 그 무엇이라도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거라면 그저 고맙다. 다른 끼니도 그렇지만 직장 안 다니기 시작한 후 점심은 특히 혼자 먹는다. 직장에서 같이 먹어야 했던 점심에 대한 성토는 안 해야 겠다. 글이 안 끝날지도 모르니.



혼자 밥먹기는 평화로워 좋다. 사먹는 밥이면 더 좋다. 내가 해먹어야 하는 경우 점심시간 외에 점심준비시간이 필요하다(233쪽). 점심준비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뭘 먹을지 생각하는 시간과 마트에 가서 식자재를 사오는 시간도 필요하다. 귀찮고도 귀찮은 일이다. 애써 준비해먹든 사먹든 먹는 시간 중간에, 혹은 후식을 먹기 전 짬이 났을 때 이 책을 들여다보면 될 것 같다. 작자 자신이 점심 혼자 먹는 이야기도 있고, 혼자 점심 먹는 사람 심심할까봐 자기 얘기를 잼나게 풀어놓은 작가도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노동자(25쪽) 얘기도, 같이 밥먹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나누어야 할 스몰토크에 대한 팁도 있다(49쪽). 효도를 위해 정기적으로 점심 함께 먹기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짐(60쪽)이나, 타인을 먹이는 점심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90쪽)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세라의 이야기는 예술 작품 가지고 풀어서 읽는 내내 그림을 검색해가며 읽었다. 정지돈의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어서 다 읽을 때까지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일어나지 못했다.



요즘에도 이런 원시적인 이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로 치과의사를 놀래킨 정지돈은, 스케일링이라고는 평생 받아본 적 없는 이 상태로 결국 충치와 사랑니를 치료받는데, 반체제적이고 저항적인 작가들은 모두 일찍이 이가 빠졌고 가지런한 치아를 빛내는 건강한 미소 따위를 증오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고 나서 치과치료에 대한 저항감과 반체제 성향이 무슨 상관있는지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일종의 과장, 수사, 담론이라는 사실을. 가지런한 이를 자본주의와 마케팅, 가식적인 부르주아들의 상징이자 거대 기업과 국가가 획책한 의료 산업 매커니즘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부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랑니를 뽑아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이 곧 사랑니를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의 인식이 건치와 반체제의 불화를 야기하며, 우리의 인식이 신체와 사회와 제도를 기묘한 방식으로 엮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232쪽

뜬금없는 인식 탓을 함으로써 이야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나는 빵터졌고, 이로써 먹은 밥이 시원하게 소화될 수 있도록 도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지금 다시 읽어도 웃기네. 난 이병헌을 싫어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수긍했다. 이병헌을 싫어하는 게 내 왜곡된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가지런한 치아가 싫다. 가지런한 치아는 뭔가 인조인간, 부동산 광고 속에 나오는 포토샵형 인간을 떠올리게 해서 싫은 게 아니라 이병헌을 떠올리게 해서 싫다. 그렇다고 내가 배우 이병헌이나 인간 이병헌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왜곡된 인식 속에서 말이다....
232쪽



운동의 무용함을 내내 주장하다가 헬스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된 이야기(236쪽)나, 길티플레저를 위해 몰래 읽고 몰래 쓰자는 주장(240쪽)도 병맛인데 나름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이어서 발터벤야민이 발톱의 야인이 된 과정은 다시 한 번 빵터짐을 선사할 것이니, 점심으로 배부른 배를 쓸어서 어루만지며 오후 시간을 웬지 좋은 기분으로 보낼 것 같은 흡족한 마음으로 절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며 인사도 해야지. 심심한 점심시간 함께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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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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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인도 이야기 <인도수업>. 인도 북부에서 3개월 지낸 시간의 기억이 무럭무럭 뭉게뭉게 마음에서 올라온다. 벌써 10년이 지난 기억. 저자는 인도로 떠난 지 20년 만인 2013년에 귀국했다고 한다. 공대 나와서 무슨 일로 인도까지 가서 20년씩이나 지냈을까. 캘커타대학에서 용수보살의 중관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음...무슨 말인지 모른다.

단순한 인도기행이 아니다. 그야말로 <인도수업>이다. 불교가 탄생하던 시절의 인도와 지금의 인도는 다르다는 것(29쪽), 매번 부처님 고향 가지고 싸우던 일이 그것 때문이었구나. 여러 언어를 가지고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아가는 인도사람들(32쪽). 철길을 건너는 소를 살리기 위해 기관사가 탈선까지 하는 나라인데 고급레스토랑에선 소고기스테이크를 판다(35쪽). 호주나 뉴질랜드 산 소는 신성하지 않다고 한다. 아우 진짜. 이 인도스러운 뻔뻔함. 진짜 못말린다. 저자의 표현은 인도를 이해하기에 유용하다. 일단 살고 보고 그 정당성을 치장한다.

신성함 뒤에 감추어진 '일단 살고 보는', 그리고 그 정당성을 치장하는 자세를 이해하면 참과 거짓의 경계마저 허무는 인도인의 삶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

브라만 거지와 호텔 이발사가 카스트로 섞일 수 없다. 직업의 분화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카스트는 인간차별, 인간혐오의 그림자가 짙다. 하긴 인도인들의 정당성 치장 정도를 고려하면 별다를 것도 없다. 인도에서 지내던 시절, 인도남자들은 내게 인도가 여성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유엔 통계까지 들이밀어도 여성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우기고 정당성을 치장한다. 예수님도 힌두교 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우기고 나서 정당성을 치장하니 빨리 포기하면 시간도 절약된다.

바라나시는 겨울철에 가면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우기 성지순례를 권하는 조언(51쪽)은 챙겼다. 바라나시는 언젠가 꼭 가보려 마음먹고 있으니까.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한 후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드가야는 성지순례하는 관광객으로 늘 붐비는데, 부처님이 깨달은 이 곳에 과거엔 납치가 주요사업이라 할 정도로 치안이 엉망이었다 한다 (75쪽). 부처님의 깨달음은 어디가고 사람들은 또 '일단 살고 보기 위해' 열심이다. 그래도 저자가 부처님의 연기법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시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불교에 대해 암것도 모르는데.

삼예논쟁을 통해 정리된 티벳 불교, 생활불교의 특징을 지닌 티벳 밀교의 이야기를 지나 불살생과 육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구르족을 도축장에 수입해 살생을 대신했다는 얘기, 티벳의 영광을 과장한 그레이트 티벳 얘기가 이어지면서 계속 불교에 대한 가르침이 나온다. 쩝. 어렵다. 투크르로 넘어가면서 내용은 좀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중요한 가르침 하나는 챙겼다.

티벳속담 가운데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라는 게 있다. 살생할 수밖에 없다면 자그만 축생들을 잡아 많은 살업을 짓지 말고 고산 들소 한 마리를 잡아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라는 뜻이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티벳 스님은 이 때문에 달걀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곡물 구하기가 어려워 육식을 할 수밖에 없는 티벳에서 불자라면 결국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꼭 필요한 살생이라도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 야크라는 하나의 생명을 달걀로 치면 수백의 생명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다만 무정란인 계란이 생명이라면 이 생명은 어떻게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닭 오십 마리 먹느니 소 한 마리 먹으면 마흔 아홉의 목숨을 아끼는 걸까. 부질 없는 생각도 따라온다. 핵심은 살생을 되도록 피하라는 말씀일 테다.



인도에서 살며 잠시 한국에 다녀갈 때 버스 터미널에서 마주친 한 젊은 친구가 물었다.

"도를 아십니까?"
''야, 지금 인도에서 왔다!"

그러자 놀란 표정으로 인도의 도 상황을 묻더니 잠시 후 불쌍한 표정으로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며 자장면이나 사 먹을 수 있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먹고 사는 게 곧 도이지 다른 게 도이겠는가.

그러게, 그러하니 도에 열나 정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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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K - ‘진짜 선진국’ 대한민국을 위한 박노자의 불편한 제안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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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을 꾸준히 읽은 지 꽤 오래 되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드는 감정은 늘 질투심이다. 뭐야, 한국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식은 한국의 진보보다 진보적이고 한국의 노동계급보다 계급적이잖아. 레드컴플렉스도 없잖아. 자본친화적 경향에서 자유롭잖아. 게다 한국말도 나보다 잘하는 거 같네. 아우씨...부러울 수밖에 없다. 내면의 검열관 없이 한국사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니.



나도 그처럼 눈치 안보고 과격하게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가. 익명을 기반으로 사회적 약자만 족처대는 더러운 키보드 권력들, 치졸한 좆우월주의자들, 넘사벽 국가권력이나 경찰권력들, 그 다양한 권력이 연합해 내 머리 속의 검열관 왕좌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적절하게 겁줘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게 하려고.



그는 노동귀족이라는 말에 담긴 신자유주의의 노동계급갈라치기 전략(39쪽)이나, 어느 진보연하는 학자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이석기 전 의원의 징역 상황(59쪽)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도 깐다. 그토록 한국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니...그 자유로 그는 우리는 알고 싶지도 않은, 관심도 없는, 국뽕이나 차올라서 언급하는 K들 속에서 <당신이 몰랐던 K>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정체성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다. <당신이 몰랐던 K> 책날개에 쓰인 약력을 보면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소련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고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이런 여러 층위의 복합적인 정체성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을 가지게 했을까? 한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오래 살았던 나라에 애정을 갖는 것이나 그 나라 말을 잘 쓰는 것, 그 나라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비판의식을 갖는 것 등은 또 다른 문제다. 미국이나 유럽 출신 백인들은 한국에 산 지 10년이 넘어도 한국말을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한국인들과 친해지면 한국인 역시 영어로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산다해도 베트남어를 배우려하지 않는 한국인처럼. 언어는 권력이고 입만 열면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 피지배자의 언어를 배울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또 놀란다. 그는 권력자의 언어에서도 자유롭다. 스스로 억압과 차별이 어떤 것인지 오랫동안 사유해왔고 한국의 보수를 극우주의자들이라고 단칼에 말할 수 있다. 누구든 이번 대선을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와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자들의 대립'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는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그걸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을 통해 남성의 폭력적 경향을 문제삼을 수 있다. 한국남성이 그랬다면 감히 위대한 장군들을 문제시한 결과로 대찬 욕을 먹어야 했을 것이고, 한국여성이 그랬다면 온라인에서 뼈도 못추리게 혐오의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그가 장군들까지 소환해서 비판하려 한 논지는 이 책에서 제일 좋았다. 솔직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 역시 중학교 시절 왕따 피해를 겪었는데, 그의 생각은 인간의 본능에 가 닿고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이해하기까지 한다.



나는 아동기에 폭력을 당하면서 계속 그 원인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타적 폭력 충동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나는 처음부터 일축했다. 나를 포함한 여러 폭력 피해자들도 분명히 가해자들과 같은 인간인데 왜 타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싶은 충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가? 이 의문으로부터 나는 폭력이 '모든 인간들의 본능'이라기보다는 어떤 특정 상황에서 발현된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가해자들의 가정환경과 함께 나는 가해자들이 나를 향해 내뱉는 말들도 하나하나 분석하곤 했다.

36~37쪽.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에 이어진 인간중심적인 따뜻한 그의 견해에 무장해제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전쟁이 신분계급사회를 변화시켰다는 부르스커밍스의 주장에서 더 나아가 한국사회를 차별, 배제, 혐오의 도가니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학벌사회까지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수 세기 동안 굳어진 반상, 양천의 차별 구도가 한국전쟁과 이농, 도시화 과정이라는 외부적 쇼크 속에서만 해체될 수 있었듯이, 학벌 사회도 어떤 외부적 쇼크 없이는 스스로 해체되지 않는다.(85쪽)'는 얘기에 어찌 수긍하지 않을 수 있으리. 궁금한 것도 있다. 얼마나 한국어를 공부해야 반상, 양천이란 말을 글 속에 저리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까. 심지어 그는 <맨발의 청춘>이란 영화까지 알고 있다. (109쪽)



박원순 시장 사건도 역시 자기검열 과정 없이 쓰면서 '우리는 여전히 '여혐'이 남성의 특권이 강하게 작동하는 페니스 패권의 퇴보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92쪽)'고 한다. 이쯤되면 그의 귀화 신분까지 부러워지기도 한다. 노르웨이와 러시아 상황을 비교해 혐오, 돈 선망, 비정규직의 처지, 표현의 자유, 장시간 노동을 비교한 점들도 흥미로워 놓칠 수 없다. 특히 '그 어느 희생자도 잊지 않고 모든 죽음에 평등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변혁의 원동력(100쪽)'이라는데, 평등의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에 '죽음'까지 고려한 점은 더욱 박노자다웠다. 그다운 시선이 드러난 글 중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176쪽)' 은 글 전체를 인용한다 해도 과하지 않다.



계급, 젠더, 인종을 넘너들며 펼치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까발리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재분배를 통한 평등한 사회구조 구축에 대한 강조를 잊지 않는 박노자같은 지식인은 그저 소중하다. 소련 사회주의에 대한 경험, 노르웨이라는 선진국에서의 생활, 한국에 대한 사유가 겹쳐지며 쏟아낸 그의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주장에 깊이 감동하며, 그같은 한국인이 있어 K에게는 또 얼마나 다행인지 존경과 감사를 넙죽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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