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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평점 :
아크릴화의 투박한 붓터치가 이렇게 섬세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최다혜의 책 <아무렇지 않다>는 선과 면, 색이 만든 다양한 감정들을 진중하게, 섬세하게 쏟아낸다. 소설가 박서련의 '최다혜 작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로서도 알지 못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내가 짓는 표정'이란 말에서 그도 그렇게 느꼈구나, 공감했다. 작가는 결국 자기 표정에, 자기가 보는 자기 비슷한 타인의 표정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오래 지켜보아야,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얼마나 노력해보아야, 매끄럽지 않은 선 하나로 이리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림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눈동자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눈맞춤해본다.
이 책의 표정들만 모아 놓아도 기나긴 이야기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바퀴벌레가 쏟아지는 꿈을 견디고, 예기치않은 지출과 느닷없는 불행을 감수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결국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보는 시간들을 누구든 버텨오지 않았으리. 그렇게 버티면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또 방법을 찾아나서는 지현, 은영, 지은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너무 쓸쓸한 책이다.
이들의 쓸쓸함은 혼자 버텨낸다는 데 있다. 여성 서사에서 무례하게 끼어들곤 하는 남자친구 따위는 없다. 자립을 위해 버티고 살아내면서 온전히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유지한다. 이 쓸쓸함이 언젠가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이 책에서 좋았던 그림. 머리 말리며 지각이다...와 함께 각종 욕을 쏟아내던 기억. 씻고 돈 쓰러가자는 생각으로 설레며 욕실 문을 열던 기억.
2년이나 그렸다는 작가의 그림들이 많이많이 팔려서 이 세상에서 작가가 무던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무례한 세상 언어에 길들지 않고 홀로 버텨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더 강해지기를.
불행은 늘 초대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불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능이라 말하거나...불행해 마땅한 존재로 개인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정말 속상하는 것은, 불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저항할 힘이 없어 스스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마라, 스스로 무례해지지 마라'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