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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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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이 없는 곳이 있던가. 사회 자체가 여성의 돌봄 노동 없인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이나 주식시장이 하루 이틀 문 닫는다고 해서 큰 일날 일은 없다. 주말엔 그렇게 하니까. 여성의 돌봄노동은 휴일이라고 쉴 수 없다. 대개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여성의 노동에 기생해 이윤극대화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목숨을 연장해온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노동은 지불되지 않는 노동으로 집 안에 갇혀 있다.



노동자 여성이 집안에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집에서 노는 여자 취급당하도록 이미 가부장체제와 자본주의는 공모해 치밀한 전략을 짰다. 그 중 하나가 여성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먼일도 아닌 것이 우리 부모 세대나 그 윗세대에 공부 잘하는 똘똘한 여자들은 별 희안한 핑계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글을 알면 남자랑 연애편지질한다는 핑계도 들었다. 참 가소롭기 짝이 없다. 내 친구의 엄마는 아버지가 학교 못 가게 하려고 책가방을 지붕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한다. 온 집안과 사회가 나서서 여성의 상위교육기관 진입을 막아왔다. 다 옛날 이야기일까. 차별하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집안의 자원을 지원받고 몇몇 시험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이 눈이 띨 뿐이다.



<<나, 블루칼라여자>>는 여성노동을 둘러싼 진부한 이야기에서 더 나아간다. 이 책에서 여성노동자는 용접을 하고 화물트럭을 몬다. 철도차량을 정비하고 레미콘 차를 운전하며 목수로 주택수리기사로 열심히 일을 한다. 이유는 남성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추천사를 쓴 장일호의 말대로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이 여자라고 덜하겠는가'. 힘들지 않았나요? 라는 다소 진부한 질문에 늘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란 대답이 이어진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이 당한 성차별과 희롱은 책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더럽고 치졸하기도 했다. 결국 현장에서 인정받고 생존의 주체로서 자존감을 획득한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는 당당하지만, 그동안 삭힌 설움과 분노가 나의 것이기도 해서 그 현장의 고통은 생생했다. 결국은 모든 인민의 노동해방을 바라지만 노동력을 팔아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여성노동자의 승승장구를 간절히 응원할 수밖에.



여성노동자들은 자기만의 방처럼 '자기만의 트럭'이 간절했고, 꿈을 이루며 생존을 이어왔다. 여성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떤 색의 칼라가 있는 곳이든 그저 노동자로서 일하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좀 내버려두길. 함부러 성희롱 일삼지 말고 임금차별 당연시하지 말고. 우리는 모두 여성의 노동에 기대에 삶을 유지하고 있음을 숙연하게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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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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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책을 읽을 때면 뜨끔하다. 그의 이야기는 매번 새롭지만 귀화했다고 해도 외국인인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귀화 외국인이란 그의 정체성은 귀화할 필요도 없는 한국인을 매번 놀래킨다.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의 주요 이슈를 진지하게 깨우친다. 그는 박노자이며 한국사 연구자이고, 패권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는 연구 활동가이며, 시대분석이 돋보이는 지식인이다. 그는 세계 정세를 진보적인 눈으로 날을 새워 보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알고 ,세계도 잘 알고, 무엇보다 한국의 미래를 한국인보다 더 깊이 성찰한다. 그는 조선사를 전공했고 박사논문은 무려 고대 가야사 연구이다. 가야사가 연구분야인지 아는 한국인도 별로 없을 것이다. 차근차근 눈으로 꾹꾹 밟으며 그의 생각을 따라가본다. ​​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지도부가 구상하는 "신세계"의 큰 그림은
러시아의 손아래에 있는 구소련권역과 동유럽, 중국 패권이 확실한 동아시아, 인도패권이 지배하는남아시아, 이란과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본위의 중동, 독일-프랑스 지도하의 유럽 등 여러 강국들의 영향권으로 구성된 세계체제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은 러시아의 영향권 구축에 우크라이나가 걸림돌이 됐기에 지금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셈입니다. "

조근조근 바로 옆에서 얘기하듯 육성처럼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 질서도 조금씩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때로 잔인하고 비참한 전쟁의 현실도 덕분에 냉정하게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원패권의 세계를 구체화시켜 다정하게 국제사회의 흐름을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한동훈이 닭 쳐다보는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낄낄대고 있을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구 점령, 가자치구의 처참한 파괴, 수단내전까지 냉전 이후 한동안 고요한듯 보였던 패권의 욕망은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고 조정되고 있었다. 이젠 웬만한 숫자로는 놀라지도 않는 수준의 사망자 수는 갱신되고 있고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은 엄청난 자본을 쌓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총선 경선탈락을 둘러싼 온갖 잡설들도 지겨워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으며 음식 쓰레기를 양산하는 먹방 방송이나 돌려보고 있을 건지.

누가 우리에게 러시아에서 반전운동은 왜 미약한지, 하층계급은 왜 전쟁에 동조하는지, 역사는 어떻게 제국을 정당화하는지, 신권위주의는 어떻게 외로운 청년들을 사로잡았는지, 자본주의 의회주의 복지사회와 전쟁의 관계는 무엇인지 이렇게 조목조목 설명주겠는가. 박노자의 질문 자체가 하나의 담론이다. 징병제와 투표권 관계(223쪽), 김대중의 존재로 비교된 푸틴과 박정희(205쪽) 등의 이야기는 재미있기까지하다.

결국 도래할 다원패권의 시대, 한국의 권력자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박노자만큼 알지도 못하고 박노자만큼 신경쓰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의 논제가 정리될 때마다 그의 급한 마무리가 허전하게 들리기도 한다. 권력자는 어차피 제멋대로 할 테지만 누구든 '한반도 평화'를 중심에 둔 한-러관계를 위한 제언(301쪽)에 어떻게든 귀기울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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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할 권리
아미아 스리니바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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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아 스리니바산의 <<섹스할 권리>>를 읽었다. 어떤 책을 읽었다,로 책 읽는 얘기를 시작하는 건 그만큼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 없던 문장을 만났고, 복잡하고 모호했던 생각을 뚜렷하게 만드는 논증을 접했다.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은혜로운 페미니즘 샤워를 한 느낌. 젠더 이슈로 고민이 많은 자는 이 책으로 축복받을지어다.

이 무슨 과장과 확대해석의 혹세무민 오두방정인가 싶겠지만, 주디스 버틀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놀라울 만큼 비범하고 유망한 저작'이라는 평가가 빈말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 복잡한 감동과 깨달음, 그 감탄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지인들에게도 '그냥 읽어, 무조건'이라고만 말했다.

진입장벽은 좀 있다. 젠더 이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쉽게 읽히지 않을 테고,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그래도 꾸준히 읽다보면 가장 뜨거운 이슈들과 맞닿을 수 있다. 그것도 강력하게 설득력있는 진보적 관점들이 또박또박 자기 얘기를 하는데, 그 거침없음에 또 감탄하게 된다. 당당한 강간범들, 포르노의 당파성,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 범죄의 잔인함과 그 논리의 허접함, 섹스하는 대상선정의 복잡미묘함 등의 이야기가 시원시원하게 심층적인 젠더의식으로 파헤쳐진다. 특히 '욕망의 정치' 챕터는 섹스에 대해 솔직히 얘기할 수 있는 가까운 지인들과 토론모임을 만들어 같이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한 무리에게 샌드위치를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지만, 섹스에 대해서도 똑같은 요구를 할 수는 없다. 여기서 통했다고 저기서도 통하란 법은 없다. 섹스는 샌드위치가 아니며 사실 다른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정치적으로는 이토록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침범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있는 그대로 섹스를 이해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156쪽"

그러게, 우리는 있는 그대로 이해할 방법을 결국 찾아야 한다. 욕망이나 본능으로 쉽게 퉁칠 수 없다. '섹시한 백인의 금발 헤픈 년들'이 자신의 섹스할 권리를 박탈했다며, 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엘리엇 로저 사건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이 뒤틀어질 대로 뒤틀려 결국 살인 정당화로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연구사례가 될 만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섹스할 권리'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내가 이해한 바로는 섹스할 권리는 없다. 애끓이고 간청하고 배려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혼자 할 거면 상관없지만 또다른 인간을 대상으로 벌이는 행위이므로. 그건 권리일 수도 없다. 벌써 화끈하다. 왜 없는지 이 책을 읽으며 기분좋게 설득당한다.

이 새로운 사고는 저자의 정체성에서 더 빛을 발한다. 구석에 몰리면 더 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그는 여성이자 비백인이고 1984년 생이며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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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릴리 범범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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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크기부터 범상치않다. 이 그림책은 크기가 스포일러 요소. 그리고 제목. 삘리리~가 나오면 내 정서로는 그 뒷말이 개골개골이다. 삘릴리 개골개골 삘릴릴리~. 그런데 여기선 범범.

​색감도 신선하다. 다양한 농도의 먹색과 노란색, 빨간색이 다다. 노란색은 주로 인간의 욕망과 닿은 색이다. 그 욕망을 발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피리도 노란색, 돈으로 치장할 수 있는 호랑이들의 장신구들도 노란색, 집계약서, 돈 그 자체, 음식물도 노란색이다. 결정적으로 돈에 눈이 먼 자들의 눈도 다 노란색이다.

​소금장수가 쓰고 있는 가면에만 빨간색이 쓰였다. 가면을 벗은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소금장수가 결국 편안해진 후 그 사건 사고 많았던 집에 걸린 가면을 보고서야 벗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가면을 벗으면 진짜 쉴 시간. 마지막 장면의 집 그림에서 소금장수가 이제는 정말 쉬게 되었나보구나, 메시지를 준다.

​이야기는 소금장수의 가난에서 시작한다. 작은 몸에 자기 키보다 높고 짊어진 소금가마. 소금장수의 표정이 심란하다. 산 좋고 바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토선생 부동산을 만난다.

부동산 사무실 안에 노란색 눈을 부릅뜬 공인중개사가 토선생. 부동산 사무실 소파에 토끼 쿠션과 호랑이 쿠션이 함께 있다. 채식을 하는 토끼의 소파는 가죽 덮게가 있고. 토선생의 쥬토피아에선 토끼 혼자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

​토끼의 외모는 현대인에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순하고 하얗고 예쁘기만 한 토끼는 없다. 이 극에서 토끼는 약간의 사기를 치고, 자기 지분을 가지고 투기와 사기를 적절히 버무리며 몰래 도둑질도 한다.

​이 호랑이들은 하체를 드러내기 싫었는지 바지를 입고 소금장수 피리소리에 춤을 추던 댄서들이다. 범범의 실체. 지금은 뭔가 꿍꿍이 구상중. 궁금하지? 이 책은 동물의 권력관계를 뒤집어 버린 그림책이니 권력을 호랑이가 휘두르고 토끼가 춤을 출 거란 생각은 버리셔.

​건물주가 희망이라는 초딩들에게 부동산을 살 때는 권리관계를 잘 살펴 호랑이같은 우선권리자를 조심하라는 메세지를 주려는 건가, 란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소금장수가 원한 건 작은 꽃병이 올려놓을 수 있는 책상이 있는 방 한 칸이었다. 돈과 탐욕이 호랑이와 토끼와 함께 추락하자 소금장수는 잘 먹고 일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작은 집에서 행복을 누린다.

​그의 마지막 집에서는 노란색은 병아리의 색이 되고, 가지가 가지색을 찾고, 붉은 색은 꽃과 잘 익은 감으로 옮겨간다. 그럼 됐지. 호랑이들의 춤과 재롱을 보고 났더니 소금장수의 안분지족의 삶이 결론으로 다가왔다. 작은 나라 반토막난 반도의 섬 같은 땅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몇십 층으로 포개고 또 포개진 콘크리트 벽구조물을 구입한 사람들 생각도. 영혼은 그런데 끌어모으라고 있는 건 아니니 이미 큰 상처 받았을 터, 혹시라도 끌어모은 영혼이 남아있다면 앞으로 부동산 왕창 올라 그 영혼 위로받으시길.

​거기에 더해 마지막 큐알코드를 통해 소금장수의 피리소리도 감상하시고. 스트리트호랑이파워를 보여주는 호랑이들의 기념사진도 보시고(호랑이들의 형편은 여전한가. 하체만 가리는 바지패션을 고수하고 있다). 부동산 사기좀 치다가 결국 호랑이들 옆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망한 토선생의 말로도 구경하시고. 그럼 이 아리송한 그림책 구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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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벨 훅스 지음,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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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공동체 이야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읽으며, 책 읽는 내내 작년에 고인이 된 벨 훅스의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여성 지식인으로 사는 일은 어땠을까. 지상의 70여 년은 지독히 인종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였다. 자기를 위축시키고 납작하게 만들려는 다층적인 억압에 맞서, 벨 훅스의 생각은 그만큼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너무 피곤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벨 훅스의 목소리는 힘차고 설득력 있지만, 그 차분한 논지 전개에서 고단함이 먼저 느껴졌다. 흑인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의 생각은 강의실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희망을 얘기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린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쉽지 않을 그 과정에 15년 넘게 교육의 문제에 집중했던 벨 훅스의 이 책은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흑인 페미니스트로 알고 있던 벨 훅스가 이렇게나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나를 비롯한 다른 많은 차별금지법 세대들은 인종차별이란 무지하고 보수주의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기도록 사회화되었다. 인종차별은 주로 과거의 일이고, 백인성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어왔다....지금 여기 인종차별주의라는 유령을 기르는 것, 정치적 신념과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지간에 백인들은 백인우월주의적 사회구조에서 이익을 얻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55쪽

유령과 싸우는 건 얼마나 더 어렵고 고단한 일인가. 항상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냐고, 언제까지 불평불만이냐고, 옛날같으면 넌 감옥에 갔을 거라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윽박지른다.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유령은 저항의 목소리를 거두도록 그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배회한다. 그 유령 앞에서 한두 번 고꾸라지고 나면 기운 차리기가 힘들다. 벨 훅스의 책 곳곳에서도 관계를 맺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뒤에 서 있는 유령의 인종차별적 면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훅스가 싸우고 있는 문화는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다. 이런 사회에서 식민성을 가진 비백인이 빈곤한 상태로 가부장의 억압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중첩되는 모순 속에서 한 개인은 옴싹달싹 못한 채 전방위적인 자기비하와 열등감 강요, 미래를 꿈꿀 수 없음에 시달려야 한다. 이들이 억지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도 그다지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벨 훅스의 고민도 전방위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에서 이제 막 사회시스템을 내면화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합법적인 경멸과 혐오, 지배와 약탈을 주입시킬 뿐이다. 벨 훅스가 교육과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벽 앞에서 교육이나 공동체를 꿈꾸는 건, 섬김과 돌봄을 얘기하는 건 너무 나약한 자기만족적 행위로 보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소리치고 물리적으로 저항하고 적에게 작은 피해라도 입을 수 있는 일도 하나의 수단이지만, 결국 저항도 모순을 깨닫는 일부터 시작된다. 교육의 그 첫발을 뗄 때부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 일이다. 혹시나 지금 처한 차별의 현장에서 상처받았다면 한 발 물러서 여기 벨 훅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시길. 이토록 섬세하고 깊게 교육함과 교육받음을 고민한 사람에게 기대 이상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교육하는, 혹은 교육받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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