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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다면 뭐든 있어도 좋겠다. 시, 소설, 산문, 논평, 성명서, 결의문, 기자회견문 그 무엇이라도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거라면 그저 고맙다. 다른 끼니도 그렇지만 직장 안 다니기 시작한 후 점심은 특히 혼자 먹는다. 직장에서 같이 먹어야 했던 점심에 대한 성토는 안 해야 겠다. 글이 안 끝날지도 모르니.
혼자 밥먹기는 평화로워 좋다. 사먹는 밥이면 더 좋다. 내가 해먹어야 하는 경우 점심시간 외에 점심준비시간이 필요하다(233쪽). 점심준비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뭘 먹을지 생각하는 시간과 마트에 가서 식자재를 사오는 시간도 필요하다. 귀찮고도 귀찮은 일이다. 애써 준비해먹든 사먹든 먹는 시간 중간에, 혹은 후식을 먹기 전 짬이 났을 때 이 책을 들여다보면 될 것 같다. 작자 자신이 점심 혼자 먹는 이야기도 있고, 혼자 점심 먹는 사람 심심할까봐 자기 얘기를 잼나게 풀어놓은 작가도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노동자(25쪽) 얘기도, 같이 밥먹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나누어야 할 스몰토크에 대한 팁도 있다(49쪽). 효도를 위해 정기적으로 점심 함께 먹기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짐(60쪽)이나, 타인을 먹이는 점심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90쪽)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세라의 이야기는 예술 작품 가지고 풀어서 읽는 내내 그림을 검색해가며 읽었다. 정지돈의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어서 다 읽을 때까지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일어나지 못했다.
요즘에도 이런 원시적인 이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로 치과의사를 놀래킨 정지돈은, 스케일링이라고는 평생 받아본 적 없는 이 상태로 결국 충치와 사랑니를 치료받는데, 반체제적이고 저항적인 작가들은 모두 일찍이 이가 빠졌고 가지런한 치아를 빛내는 건강한 미소 따위를 증오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고 나서 치과치료에 대한 저항감과 반체제 성향이 무슨 상관있는지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일종의 과장, 수사, 담론이라는 사실을. 가지런한 이를 자본주의와 마케팅, 가식적인 부르주아들의 상징이자 거대 기업과 국가가 획책한 의료 산업 매커니즘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부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랑니를 뽑아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이 곧 사랑니를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의 인식이 건치와 반체제의 불화를 야기하며, 우리의 인식이 신체와 사회와 제도를 기묘한 방식으로 엮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232쪽
뜬금없는 인식 탓을 함으로써 이야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나는 빵터졌고, 이로써 먹은 밥이 시원하게 소화될 수 있도록 도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지금 다시 읽어도 웃기네. 난 이병헌을 싫어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수긍했다. 이병헌을 싫어하는 게 내 왜곡된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가지런한 치아가 싫다. 가지런한 치아는 뭔가 인조인간, 부동산 광고 속에 나오는 포토샵형 인간을 떠올리게 해서 싫은 게 아니라 이병헌을 떠올리게 해서 싫다. 그렇다고 내가 배우 이병헌이나 인간 이병헌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왜곡된 인식 속에서 말이다....
232쪽
운동의 무용함을 내내 주장하다가 헬스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된 이야기(236쪽)나, 길티플레저를 위해 몰래 읽고 몰래 쓰자는 주장(240쪽)도 병맛인데 나름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이어서 발터벤야민이 발톱의 야인이 된 과정은 다시 한 번 빵터짐을 선사할 것이니, 점심으로 배부른 배를 쓸어서 어루만지며 오후 시간을 웬지 좋은 기분으로 보낼 것 같은 흡족한 마음으로 절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며 인사도 해야지. 심심한 점심시간 함께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