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에 대하여
신채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가 많이 아플 때, 그 아이를 자식으로, 지인으로 아끼는 친구로 둔 사람은 또 얼마나 아플까. 자식이 없으니 그 아이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고통의 깊이 또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제일 알기 힘든 건 그 아픈 아이의 심정일 것 같다. 생명력이 넘치도록 그 시기가 설계되었는데 그 시기에 아프다면 그 아이가 바라보는 미래도 꿈도 인생도 다 달라지겠지. 게다 희귀병에 불치병이라면 많은 것들을 납득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터, 성인들은 체념하고 말겠지만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는 내가 읽어본 첫 10대 투병기이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려면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은 더더더더 심호흡이 필요했다. '눈이 멀지도 모르는 건 내 탓이 아니야', '아빠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 거야', 벚나무의 성실함을 아는 사람', '아픈 나도 나였으므로' 처럼 각 에세이마다 소제목부터 무게감이 남다르다. 일찍 철드는 아이는 슬프다. 이미 철들고 충분히 성숙해지고 어른보다 어른스러워진 아이가 자기를 성찰하고 용기를 내 쓴 기록이니 역시 슬프다. 이 찬란한 봄날 우울해지기 싫어서 이 책을 밀어놨다가 또 생각이 나 다시 집어들곤 했다.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또 살아갈 의지를 가지고 일상을 꾸리는 삶이 있었으니까.

아픈 아이가 들려주는 희귀난치센타 어린이병원 얘기는 그 막막함이 더 했다. 주사를 안 맞으려 떼쓰고 울고 소리치는 아이들과 달래려 진땀빼는 부모가 있는 일반병원의 모습과 달리, 희귀난치센터 병원에서 아이들은 조용했다. 이미 큰 병원까지 오는 동안 팔을 내맡긴 채 주사바늘 들어오는 일에 무덤덤하고 익숙해졌기 때문. 우리야 어차피 이유도 모르고 내던져지듯 세상에 태어난 목숨들이지만, 이유가 뭐든 아이가 희귀난치병을 앓아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하다.

책을 붙들고 내가 느끼는 억울함과 다르게 그 불공평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저자는 너무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진다. 특히 병을 선택한 적 없는 사람과 힘들고 고된 의사일을 선택한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36쪽)를 통해 벚꽃 나무의 성실함을 끌어낸 이야기를 읽을 땐, 그저 읽었을 뿐인 나까지 차분해졌다.
"나, 타카야수동맥염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어. 내가 병이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기억 속 아팠던 경험들을 이야기한다(43쪽). 아픔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같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와의 관계가 절대로 이전과 같지 않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저 사람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결이 달라진다(45쪽). "

그러게. 아픈 사람들끼리 병 이야기하는 건 남다른 감정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도 '그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보았을 때, 내가 혼자 아파하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 받았다. 혼자 아프지 않도록 구명줄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픈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이 조금 들었다(47쪽)'고 한다. 내가 아픈 사람이어서 들 수 있는 마음.

저자는 자기 병이 희귀하고 연구된 바가 거의 없고, 원인도 알 수 없지만 소수의 자료를 통해 수집된 '진단조건'에 의해 동양인, 여성, 20세 이하가 주로 걸린다는 결과를 통해 연구될 조건이 충분하지 않음도 포착해낸다(80쪽). 서양 백인 남자가 걸리는 병이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졸업 후 취업을 꿈꾸면서도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을 돌아보며 그래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으라는 충고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다잡는다. 병이라는 모래주머니가 무겁지만 그 주머니를 달고도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85쪽).

병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고 나는 병에 걸린 것이 싫다. 내 아픔은 내 세상에서는 가장 큰 아픔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다 같다는 것을 안다. 모두 자기의 아픔을 가장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보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105쪽

금방 나을 수 있어, 넌 의지가 강하니까,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려 앉았던 가슴. 나는 내가 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주 가끔 예상하지 못한 고통과 차별로 불편할 때를 제외하곤 병이 이제 내게 조금 특이한 무늬의 점과 같이 받아들여진다. 이게 나야, 하고.159쪽

그러니 이 책을 동정의 시선으로, 잘 이겨내고 있는 씩씩한 아이의 대단한 투병기로 읽을 이유가 없다. 우린 누구나 조금씩 아프고,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씩의 병을 가지게 되는 일이니까. 나도 10년을 넘게 두 종류의 약을 장기복용하고 매년 피검사를 받는다. 일찍 철들어버린 저자도 그만큼의 인생을 더 얻었을 테니 잘 버티길 조용히 응원하면 되겠지. 저자는 아무말 없이 눈믈을 흘려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갔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파했고, 많은 눈물에 치유받은 사람치고는 뒤늦게 눈물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205쪽)'면서.

저자의 이야기는 글쓰기의 환희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사람의 고통을 내밀한 부분까지 읽어냈으니 그 속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사람으로서 나 역시 한동안 조금 달라질 것이다. 글이란 게, 고통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게 그러하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가 삶이 될 때 - 낯선 세계를 용기 있게 여행하는 법
김미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겹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언어를 찾는 사람의 기록인 이 책은, 그 경계가 다층적인 만큼 복잡하며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또 새롭다. 모국어라고 다 내 언어는 아니다. 서울사람이 쓰는 말이 표준어라면,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에게 표준어는 자기 것이 아니기도 하다. 언어에는 권력과 소외가 있고, 지배와 억압도 있다.

자기 전시회에서 초대받은 사람 중 진짜 창녀를 찾아내면 돈 120만원을 주겠다고 한 예술가의 사례 얘기를 하다, 한 분이 어린 시절에 눈웃음친다고 창녀 같다는 소리를 들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진짜 창녀는 뭐고 창녀 같다는 뭘까. 창녀를 찾아내 돈을 준다는 기획은 창녀와 여성을 골고루 모욕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정작 창녀사용자는 남성들이지만 모욕은 창녀와 창녀같다는 소리를 들을까 위축되는 여성들 몫이다. 창녀가 뭔 줄도 모르면서 창녀같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일부러 웃지 않고 찡그리고 다녔다는 그 모임참여자는 아직도 웃을 때마다 창녀같다는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고 한다. 창녀 같다는 언어는 그렇게 힘을 발휘한다.

<언어가 삶이 될 때>를 쓴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고, 아버지가 베트남 출신 여성과 재혼하면서 새엄마의 언어와 섞이고, 새엄마가 낳은 아이들의 언어도 고민했다. 미국에서는 외국인으로 영어를 배워 학위를 받고, 또다른 외국인인 일본인에게 또다른 언어일수밖에 없는 영어를 가르친다. 일본에 살면서 영어로 밥벌이를 하지만 생활을 위해 일본어를 익혀야 하는 일본어 학습자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며, 또 일하고 생존하며 언어의 힘을 골고루 경험했다. 이런 사람에게 '언어가 삶이 된다'는 의미는 뭘까.

저자의 삶을 따라 책을 읽다 보면 외국어를 익혀야만 하는 입장에서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동기부여되는 이야기를 만난다. 다만 저자는 영어로 대학당락이 결정되고 영어로 취업과 승진까지 영향을 받으며, 영어를 잘한다는 속된 자부심과 영어를 못한다는 처절한 굴욕감으로, 식민지 모국어 획득을 위해 애타게 노력하고 좌절해왔던, 평범한 한국인과는 많이 다르게 영어로 자기 삶을 꾸려왔다. 미국백인 위주의 영어학습 시장(78쪽)이나 피할 수 없는 식민지 주민의 영어울렁증, 차별을 담고 있는 언어습관(107쪽), 문화와의 연관성, 정체성과의 관계 등 저자의 생각은 재밌고 타당성있게 읽힌다. 언어가 삶이 되는 과정을 나름의 어려움 속에서 찾아가며 해방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저자에게 언어는 굴레이자 해방일 수 있는 것이다(166쪽). 특히 다양한 문화적 환경과 차별, 배타성을 겪으며 인격수련 과정도 겪어서 그런지 새로운 삶을 위해 언어를 배워야 하는 사람에겐 훌륭한 가이드가 되는 책이다. 결국 언어습득에서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면서 '되고 싶은 나'와 '되어야 하는 나'의 중요성(123쪽)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문법실용서의 가치도 있다. 특히 한국인이 이애하기 어려워하는 영어식 시제 설명(197쪽)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쉐도잉같은 영어학습법에 대한 생각도 영어학습자에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책은 외국어를 배워야만 하거나, 해외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지침서일 뿐 아니아 위안과 응원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집단의 틈새에 서 있거나 외국어를 배우면서 원래 언어를 빼앗긴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새언어를 배우는 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이 세계에 참여하는 것임(276쪽)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책이기도 하다. 저자도 그 바람을 직접 얘기하고 있다.

"외국어 두개로 삶을 꾸려오면서 또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아래의 두 문장 사이에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오드리 로드의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와 벨 훅스의 "우리는 억압자의 언어를 취한 후 그 반대로 만든다. 우리는 언어를 반지배적 말로 만들고, 언어 속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라는 문장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종종 외국어가 "주인의 도구" 혹은 "억압자의 언어" 처럼 느껴집니다. 영어를 못하면 죄인이 된 것 같고 영어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를 못 하면 잘못한 것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언어가 필요합니다. 주인의 도구이고 억압자의 언어로 느끼더라도, 우리에게는 이 언어를 써서 이 언어의 원래 주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 언어의 원래 주인들이 쓰지 못했던 방식으로 언어를 전복시킬 수도 있고요. 이것이 비원어민의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어 원어민의 특권을 돌아보는 동시에, 타 언어 비원어민의 특권을 한껏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

억압자의 언어를 취한 후 그 반대로 만든다, 는 언어에 이미 매혹되었다. 그러게, 그게 비원어민의 특권이기도 하겠지. 또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특권도 돌아보아야 하고. 아, 갑자기 낯선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난 새언어를 배우기엔 이미 알고 있는 언어도 까먹을까 걱정이 크고 해외생활을 계획해보기는커녕 계약기간에 따라 환경이 변하는 불안한 주거환경에 시달려야 하는 처지지만, 어린 시절부터 경계에 선 자신을 돌아보고 낯선 세계를 용기있게 여행하며 자기 삶을 꾸려온 이 젊은 여성의 기록에 나 역시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용기 있게 낯선 세계에 부딪힌 사람의 기록은 늘 힘이 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 오늘도 정주행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윤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마흔이 되어서도 이야기에서 인생을 배우고, 일흔이 되어도 그럴 생각이지만 일흔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게 재미있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눈을 보살피며 살아가기로 한 작가가 라식 수술 후 시력이 가장 좋았던 1년 반 동안 보고 사랑한 작품들에 관해 쓴 장르 불명 인터렉티브 옴니버스 에세이'다. 흠...일흔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게 재밌다고? 무슨 이유에서건 주위 동갑 나이대가 마구 죽어나가지 않은 한, 일흔까지 살 수 없음 혹은 있음에 대한 고찰이 어려운 나이, 그래도 알 수 없다는 게 재밌지는 않을 거 같은데..그냥 넘어가 주자.

이 책은 OTT 플랫폼 서비스에서 본 드라마와 영화, 다큐 같은 영상 매체에 대한 저자의 생각, 그 컨텐츠가 주는 저자의 희노애락, 줄거리가 저자의 내면에 일으킨 각종 감상과 이에 따른 기억, 경험들이 뒤섞여 있다. 영상매체에 대해 쓴 책이라...이 나무로부터 온 고전적인 매체인 종이책 앞에서 Vedi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OTT서비스야말로 종이책을 죽이고 있는 거 아님? 근데 OTT컨텐츠에 대해 쓴 종이책이라고? 한 쪽 귀로 듣자 마자 다른 한 쪽 귀로 흘러나가 버리는 유튜브와 다르게 종이책을 들고 근엄하게 읽었다.

한때 정말 열심히 토막살인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거 빼고는 장르 불명 영상을 두루두루 열심히 즐겼다. six feet under(나의 최애), 윌 앤 그레이스, 명탐정 몽크, 오티스의 상담소, 길모어걸스, L Word, how to get away with murder, 하우스 오브 카드, 섹스 앤더 시티, 오렌지 이즈 더 블랙,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 멘탈리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라이투미, 코스모스 등등 다 셀 수도 없는 온갖 영상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갈등과 혐오, 취향과 문화, 배신과 사랑, 운명과 우연, 삶과 죽음 등의 이슈 앞에서 넋을 잃었다. 특히 미국 문화와 사회, 경제, 법률 체계, 미국 변호사들의 일상, 미국 일반인의 성생활과 고민, 정치 시스템과 권력의 의도뿐 아니라 성소수자 문제, 동성애에 대한 편견, 심리학, 부모자식 갈등, 우정, 성교육에 미국 유머까지 다 저절로 받아들였다. 온갖 종류의 미국식 자료들이 넘쳤다. 지금도 넘치고 있겠지. 이런 게 문화제국주의 아니겠음? 나도 모르게 미국식 사고를 습득하고 그게 쿨한 줄 아는 거.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싸우면 저절로 정해진 한 쪽을 편드는 거.

안그래도 아까운 내 인생인데, 멍하게 눈만 뜨고 영상에 집중하는 데 냅다 갖다바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조금 후회는 된다. 그러나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에, 특히 큰 충격이나 고통이 휩쓸고 간 후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을 때, 뭔 드라마건 막장이든 뭐든 따지지 않고 내 시간을 몽땅 가져갔으면 했다. 그렇게 견뎌야만 하는 긴 시간이 있을 때, 넷플릭스에 감사헌금이라고 내고 싶은 심정. 그저 내 머리 속에 가득찬 우울한 생각들을 잡아두고 다른 데 몰두할 게 있어서. <해피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는 저자도 그랬나 보다.

"살면서 처음으로 우울한 감정이 발목까지 차올랐음을 느꼈을 때, 그 감정에 누구면 몸이 반쯤은 잠기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 하루에 세 편씩 봤던 영화가 우울로 가득 찬 웅덩이를 천천히 말려주었다. 아무도 아니라서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시절에 본 드라마가, 뮤지컬이, 앞이 보이지 않는 다음으로 한 발자국 내딛게 만들어주었다. 몇십 권의 만화책을 단숨에 읽고 나면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만 같았고, 한곡의 노래를 몇백 번 들으면서 삼키고 소화한 감정도 있다."

그러게. 사실 지금도 그렇다. 다리 오무릴 줄 모르는 윤모씨의 권력을 잊기 위해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노블을 찾아보고 '들개이빨' 시리즈를 다시 읽는다. 그나마 차분해지면 800쪽이 넘는 <진리의 발견>을 읽는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땐 남 먹는 거 쳐다보는 게 추접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열심히 뭘 먹는 누군가의 입과 그 입에 음식을 가져가는 손움직임의 반복을 멍때리고 본다. 가끔 항암투병하느라 음식 제대로 못 먹는데 먹방에서 맛있는 밥먹는 사람을 보고 위로받았다는 댓글을 보면 먹방의 위대함에 숙연해지곤 한다.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의 매일 수십번씩 듣고, 일부러 현생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우주 다큐'같은 걸 시시때때로 틀어놓는다. 증세가 더 심해지면 'six feet under'를 전 시즌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해피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는 명랑한 편이다. 특히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 '더 체어', '올리브 키터리지'에 영업당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넘쳐나는 컨텐츠 소개 컨텐츠에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놨다는 점이다. 큰어버자 영정 사진 찍던 얘기, 장례식장에서도 노트북 펴고 쓰는 글 얘기, 뉴욕에서 글쓰며 살고 싶다는 꿈, 노화에 대한 통찰, 주식과 코인 투자, 보드 타다 다친 부위의 멍 색깔의 다채로움, 게임중독, 요즘 애들 얘기까지 생뚱맞은 듯하면서도 다 우리 이야기이기도 한 일들이 잘 어우려져 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좋았다. 저자는 ' 매일이라는 일부가 모여야만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엔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픽션과 현실의 차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다'라고 생각한다며 '픽션에서도 현실에서도,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해피엔딩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같은 찌질한 사람은 다른 이유로 슬픈 결말이 좋다. 그래도 내 인생은 저렇게 망가지진 않았잖아,라는 생각에 후딱 눈물을 닦아 버리고 현생을 살러 금방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은 그 비현실성 때문에 다 끝난 영상 앞에서 투덜대다 못해 더 비판적이 되고, 찌질한 현생의 비극성까지 고조시킬 수 있다. 그러니 해피엔딩 이후에도 잘 살 수 있디면 더 강한 사람이겠지. 슬픈 엔딩을 보고서는 잘살아보세~하기 훨씬 더 쉽다. 이렇게 찌질한 게 현생이다. 나만 그렇다면 니들의 행운이고. 어쨌든 해피엔딩, 땡큐!

저자는 이런 얘기도 한다. '에세이를 쓰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에세이의 사전적 정의는 '무형식의 산문'으로 누구나, 거의 모든 소재를 가지고, 어떤 형식으로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문학의 한 갈래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에세이는 쓰기도 읽기도 쉬운 글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그 이유로 에세이는 쓰기 어렵다. 에세이 작가는 인터넷 서점의 독자평에 '그냥 일기'라거나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댓글이 달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자유롭게, 결국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만 써놨다'라는 말은 책을 정확히 본 것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12쪽).'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훈의 자전거나 개이야기, 밥벌이며 글쓰기에 대해선 너 얘기는 너 일기장에 쓰삼, 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엔 권력의 문제도 있다. 저자는 직면한다. 그러니 응원할 수밖에. 자기 얘기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어차피 남의 이야기 읽으려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읽는 거면서, 지 얘기는 한 줄 쓸 용기도 없는 주제에, 자기 얘기를 쓰고 출판까지 결심한 용기 앞에서 건방진 댓글 쓰지 말고, 그럴 시간 있으면 본인의 일기라도 써보도록.

팝콘과 시원한 음료수가 금방 떠오르는 표지. 읽어보시고 두루두루 영업당하시길. 시간을 탕진해야 할 사람들, 시간을 탕진해야 시간이 가니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깨나 읽는다고 생각하고 또 그만큼 읽어왔는데, 정작 책 그 자체에 대해선 쓰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그저 마음에 간직한다. 이 책 <내 생의 중력에 맞서>도 그런 책이다. 책의 감상이랄 게 없다. 그냥 이 책을 기록한다. 그 흔한 추천사 하나 없는 본인의 서문과 본문으로 이루어진 책. 추천사 같은 상투적인 뽐뿌질도 시도하지 않은 책들을 보면 '너가 읽든말든 신경 안 써. 난 끝내주는 이야기를 썼으니 안 읽으면 너만 손해껄~ '이라고 말하는 듯한 까칠감이 느껴진다. 매혹적인 까칠함.

작가의 말만 읽어도 이 책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책날개 저자 소개를 보니 박사논문 주제가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문화의 식민지성이다. 크하, 과학기술을 익히기도 쉽지는 않겠지. 이걸 문화적 요소로 보는 일은 또 다른 분석이 필요할 거고. 근데 나아가 과학기술문화의 식민지성에 대해 얘기하려면 정말 고민 많았겠다. 난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우리에 대해 분석해야 할 요소가 식민지성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을 가지고 거기까지 갔다니 그 내용은 또 어떨까.

제목도 심상치 않다. 내 몸이라는 물질의 중력이 아니라 생의 중력이라니. 그리고 죽어서 완전 분해되기 이전에 중력에 맞서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의문은 서문에서 풀린다.

"삶은 고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삶은 죽음이나 질병, 노화, 망각, 사랑, 이별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우리 인생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초월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중력이 객관적 실체라면 삶의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지요. 인간 삶의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과학의 객관적 언어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취약한 주관성을 넘어서기 위해 과학을 열망한다는 것을 모르진 않습니다. 과학을 하는 이유가 객관성을 얻기 위해서고, 그 객관성이 권위와 힘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느끼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개개인의 성격과 취향, 가치관이 반영된 자신만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저는 과학책 읽기와 쓰기는 객관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과학과 인문학의 중간지대 어디쯤 닻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저자 서문

아, 늘 머무르고 싶던 곳이 과학과 인문학 중간지대 어디쯤이었다. 과학은 삭막하고 인문학은 무책임하다. 역사를 전공하고 공대로 다시 입학했을 때 나도 그랬다. 저자는 여러 칼럼과 전작에서 보여주듯 균형감있게 그 중간지대에 닻을 내리고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있다.

<과학을 읽다>의 주인공이 과학이었다면 후속작은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살펴보고 싶었어요. '나를 읽다'가 되겠죠. 나를 이해하는 데 과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과학이 행복, 사랑, 성격, 감정, 기억, 질병, 노화, 죽음 등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들을 살펴보고, 과학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싶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는 심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유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자기 생각을 풀어놓고 관련된 과학책을 추천해준다. 끝까지 경어체로 써서 그런지 내내 차분하다. 그러나 곳곳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슈를 던지기도 한다. 가령 첫 챕터부터 미국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얘기가 틀렸다고 못을 박는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각각 다르게, 불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준다.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입니다.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삶에서 성별과 나이, 질병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겪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은 비만, 우울증. 알코올중독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습니다. 우성유전학은 스트레스, 학대, 가난, 방치와 같은 나쁜 환경이 유전자에 흉터를 남겨서 여러 세대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유전자의 횡포에 휘둘려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지요. 우리는 '능력주의'로 사회적 약자를 몰아서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쪽

내용이 진행되면서 진정한 자아나 존엄한 삶, 죽음이나 노화. 사랑과 양육, 성평등 같은 이슈들이 뇌과학이나 생물학, 물리학이나 의학 등과 함께 어우러진다. '아름다움의 진화' 챕터에서는 젠더차별같은 민감한 이슈와도 과학을 연결시킨다. 폭력적인 숫컷 오리에 맞선 암컷 오리의 생존 전략은 성적 자율성, 배우자 선택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으며, 이는 사람의 사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용하자면 너무 기니까 핵심만 읽어보자면,

우리의 사촌뻘인 고릴라와 오랑우탄은 수컷의 몸집이 암컷보다 두 배 이상 커요...영장류들은 커다란 몸집과 날카로운 송곳니로 암컥과 새끼들을 폭력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알파 수컷은 영아살해를 자행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경우 남성의 신체가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크지만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현격히 작아졌어요. 남성의 체구는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16퍼센트 정도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제거되었습니다. 신체크기 차이가 감소하면서 인간사회의 폭력성도 줄어들었지요. 이러한 진화의 방향은 평등한 몸집을 선호하는 여성의 미적 취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2쪽

참고한 책은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그리고 리차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다. 읽어야 할 목록으로 추가. 저자의 관심은 신경과학, 유전, 행복, 성격, 예술로 이어지다가 책 마무리쯤에는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음을 앞둔 그가 쓴 글에서 '인류와 지구는 생존할 것이고, 삶은 지속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며 잔잔한 위로도 안긴다. '나의 뇌' 역시 그의 말에 순응하기로 했다.

나같은 '자발적 멸종주의자(292쪽)'는 흉내도 못 내볼 따뜻한 이야기. 책은 현대의학의 실패한 암치료사례를 통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제언하며 마무리된다. 역시 그 흔한 저자 후기 같은 것도 없이 저자가 읽어내려간 소중한 참고문헌들을 내놓고 책은 끝난다. 후아, 그냥 한 번 읽고말 책이 아니다.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과학을 읽다>를 챙겨 읽고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야 겠다. 머리 구석구석이 지적 호기심으로 들쑤셔지고 과학적 지식과 어른같은 사유가 가득한 책. 나도 절로 성숙해질 것 같은 느낌으로 만족감이 넘치는 책. 이 책 덕에 한 동안 우울하지 않을 것 같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판을 까는 여자들 -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
신민주.노서영.로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대선을 거치며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있던 사람은 3월 초,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 뒷차에 치인 후 숨진 20대 여성이었다. 그리 밤늦은 시간(밤 8시 45분)도 아닌데 달리는 택시 안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 여성. 그 공포...이건 여성만 안다. 남성은 무서움을 느낄 필요도 없는 권력이 있고, 그 권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진 남성은 그 권력이 자신에게 있음조차 성찰해본 적 없으므로. 택시기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서로 주고 받은 대화가 착오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공포는 실재하는 생생한 것이니까.

공포심만으로도 여성이 죽을 수 있는 문화가 있는 곳에서 여성들은 어쨌든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으려고 때로 침묵하고 때로는 생존신고하고 가끔은 목소리도 내면서. 목소리를 내도 잘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서.

이번 대선에선 정말 여성들에겐 투표권이 없나 싶었다. 이대남이 정치권에서 호명된 이후, 이름이 부여된 이대녀들. 남성들의 혐오정서를 표로 이용하는 하버드 출신의 한국남성을 보면서, 여성들의 생각이 절실했다. 어디서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목소리는 선거 막바지에나 울려나왔다. 언론과 정치권이 아예 관심을 안 가지니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판을 까는 여자들>을 읽게 되었다. 스스로 이대녀를 대변하려는 마음부터 버리고, 정치가 이대녀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이대녀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하나의 단일집단으로 축약하려는 욕심들에 저항하면서(7쪽), 젊은 여성 세 명이 정치와 사회에 대해 쓴 책. 무조건 반가웠다. 나는 쉽게 선정적인 이슈에나 몰려다니는 언론을 욕했지만, <판을 까는 여자들> 저자 중 로라는 오히려 냉정했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나쁜 시민과 가짜뉴스에 피해를 입는 선량한 시민이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믿음 자체는 허상이다. 사실, 어떤 뉴스는 바로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발견되고 가공되고 확산된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언제나 무지성의 결과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뉴스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선택한다. 136쪽

'팩트는 주장을 앞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혐오하고 남성우쭈쭈에 앞장서는 언론은 결국 그 왜곡을 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궁선수의 쇼컷 낙인을 조장한 언론 사례를 들면서 사회가, 언론이, 정치가 이십대 여성을 외면한다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언론과 정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한다. 이들의 노력은 짧은 머리를 한 여성은 공격받는다는 선례를 남기지 않았다(141쪽). 아우 똑똑하고 현명하다.

노서영 또한 이준석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다. 그는 여성혐오를 이용해 남성의 표를 활용했지만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개선할 의지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69쪽). 신민지 또한 "남성만을 청년으로 상정하고 정치는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여성폭력에 대해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성별임금격차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지지를 얻을 길이 있기 때문이다. 몇 마디의 안티 페미니즘적 발언, 페미니즘에 대한 '손질'시늉은 이미 정치권에서 손쉽게 이대남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으로 통용된다(48쪽)."고 분석하며,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 내 삶을 바꿨던 것은 최악과 차악 중에 선택을 강요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여성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거부했던 순간들이었다(50쪽)"는 말에서는 젊은 여성에게 강요된 '역할'과 예쁨을 주겠다는 남성권력의 보장에서 자유로운 여성의 힘을 느낀다.

판을 깔기 위해 현상을 분석하고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젊은 여성들은, 가족 이슈나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 가족 바깥에 가족을 짓자. 사랑해서 구속되고 위험해지고 불평등해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자유로워지고 사랑하니까 평등해지자(169쪽)'는 의견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한탄하지도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또 오징어게임에서 혼자 살아남고 456억원을 받을지, 아니면 모두 살아남아서 1억원씩 받을지 선택하는 질문에서, 청년들 75%가 후자를 선택했다는 데서 희망을 얻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바라보고 갈 것 같지만, 이 상식적인 결과를 통해 돈과 바꿀 수 없는 최저선의 안정감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우쳐준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이끌려 오는 것은 당연하다(183쪽).

민서영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젊은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혹은 필연적으로 '결국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거구나'를 익혀버린 세대라고 말한다. 젊은 여성들은 가장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크면서도 정치를 믿고 바꿔야만 한다는 열망이 가장 큰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계속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인 역할들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목소리도 보태면서 '판을 까는 여성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부디 기운을 내고 지치지말고 끝까지 잘 살아남아서 자연사해야 한다(186쪽).

정치판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학교에도 판을 까는 여자가 필요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무도 송은이가 연예계에서 여자들의 판을 깔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는 후배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거침없이 "해보자!"고 외쳤고, 그런 시도가 아무도 해치지 않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주었다...우리가 서 있는 공간에서도 그것이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언론이 무시하고 정치가 패싱해버린 젊은 여성들의 정치적 의견이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촘촘하게 담겨 있는 책.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란다. 언제든 귀기울이고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10년 넘게 잠자고 있던 트위터 계정에 로그인하는 걸 시작으로.

권력의 칼이 어떻게 휘둘러질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사실 나는 많이 두렵다. 하지만 확신한다. 상황이 어떻든 여성멸시를 대놓고 시연하며 여성들의 희생을 밑밥으로 깔아 무언갈 해보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결혼율, 출생율이 높아질 것 같은가? 윤석렬이 당선되면 5년 안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야지, 라는 남성의 글에 달린 여성들의 의견을 제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여성들은 여성의 인권이 후퇴하면 결혼이 아니라 자살을 합니다, 란 대답에서 그녀들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되었다. 부디 힘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