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노자의 책을 읽을 때면 뜨끔하다. 그의 이야기는 매번 새롭지만 귀화했다고 해도 외국인인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귀화 외국인이란 그의 정체성은 귀화할 필요도 없는 한국인을 매번 놀래킨다.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의 주요 이슈를 진지하게 깨우친다. 그는 박노자이며 한국사 연구자이고, 패권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는 연구 활동가이며, 시대분석이 돋보이는 지식인이다. 그는 세계 정세를 진보적인 눈으로 날을 새워 보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알고 ,세계도 잘 알고, 무엇보다 한국의 미래를 한국인보다 더 깊이 성찰한다. 그는 조선사를 전공했고 박사논문은 무려 고대 가야사 연구이다. 가야사가 연구분야인지 아는 한국인도 별로 없을 것이다. 차근차근 눈으로 꾹꾹 밟으며 그의 생각을 따라가본다. ​​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지도부가 구상하는 "신세계"의 큰 그림은
러시아의 손아래에 있는 구소련권역과 동유럽, 중국 패권이 확실한 동아시아, 인도패권이 지배하는남아시아, 이란과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본위의 중동, 독일-프랑스 지도하의 유럽 등 여러 강국들의 영향권으로 구성된 세계체제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은 러시아의 영향권 구축에 우크라이나가 걸림돌이 됐기에 지금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셈입니다. "

조근조근 바로 옆에서 얘기하듯 육성처럼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 질서도 조금씩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때로 잔인하고 비참한 전쟁의 현실도 덕분에 냉정하게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원패권의 세계를 구체화시켜 다정하게 국제사회의 흐름을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한동훈이 닭 쳐다보는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낄낄대고 있을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구 점령, 가자치구의 처참한 파괴, 수단내전까지 냉전 이후 한동안 고요한듯 보였던 패권의 욕망은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고 조정되고 있었다. 이젠 웬만한 숫자로는 놀라지도 않는 수준의 사망자 수는 갱신되고 있고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은 엄청난 자본을 쌓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총선 경선탈락을 둘러싼 온갖 잡설들도 지겨워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으며 음식 쓰레기를 양산하는 먹방 방송이나 돌려보고 있을 건지.

누가 우리에게 러시아에서 반전운동은 왜 미약한지, 하층계급은 왜 전쟁에 동조하는지, 역사는 어떻게 제국을 정당화하는지, 신권위주의는 어떻게 외로운 청년들을 사로잡았는지, 자본주의 의회주의 복지사회와 전쟁의 관계는 무엇인지 이렇게 조목조목 설명주겠는가. 박노자의 질문 자체가 하나의 담론이다. 징병제와 투표권 관계(223쪽), 김대중의 존재로 비교된 푸틴과 박정희(205쪽) 등의 이야기는 재미있기까지하다.

결국 도래할 다원패권의 시대, 한국의 권력자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박노자만큼 알지도 못하고 박노자만큼 신경쓰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의 논제가 정리될 때마다 그의 급한 마무리가 허전하게 들리기도 한다. 권력자는 어차피 제멋대로 할 테지만 누구든 '한반도 평화'를 중심에 둔 한-러관계를 위한 제언(301쪽)에 어떻게든 귀기울여 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