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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 작지만 강한 출판사 미시마샤의 5년간의 성장기
미시마 쿠니히로 지음, 윤희연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8월
평점 :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마음 한편에 놓을 주머니 하나를 얻다
-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미시마 쿠니히로, 갈라파고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호감여부를 떠나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일상담, 일상툰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만 상기해도 이런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간다. 거기에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이야기라면 배고플 때 밥이 생각나는 것처럼 손이 가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번에 읽은 책은 일본의 한 출판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인 출판사에서 시작해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 자신 만의 길을 걸어가는 미시마샤의 시작과 오늘날까지의 일화를 담고 있다.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주택 사옥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등에서 각각 국내 몇 개의 출판사들이 생각났다.
책 속에는 규모는 작지만 추구하는 가치와 꿈은 절대 작지 않은 출판사가 있었다. 한 권의 책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자세, 독자에게 파는 것이 아닌 기쁨을 전달하려는 마음가짐은 해당출판사가 실제 얼마나 잘나가는지와 별개로 큰 울림을 주었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투철한 나라라고 했던가, 초밥 장인이 생각나면서 이 책의 저자역시 출판 장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시마샤의 직원들, 대표 자신의 일화를 그리며 귀여운 일러스트, 블로그에 게시했을 법한 글을 실제로 옮겨 와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소리 내어 웃을 정도의 내용부터 사회문제에 관한 고찰까지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말할 때 으레 나오는 가르치려는 어투, 고자세가 없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사장님이 쓴 글이라서 현재 출판사를 진로로 선택한 이들, 사원급에서 이 책 내용만 보고 무작정 벤치마킹하는 것은 자제해야한다. 입사하자마자 ‘경험 보다는 감각’, ‘계획과 무계획 사이’라고 외치며 야생의 삶을 강조하면 단박에 사내에서 어떤 꼬리표를 하나 붙여줄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회사에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그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별칭을.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 가치와 회의할 때 전제하는 사항들은 개인적으로 배워놓으면 실무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일화도 모두 좋았지만 ‘계획과 무계획 사이’라는 말이 가장 뇌리에 꽂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효율성이나 계획성을 우선해선 자랄 것도 안자란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계획과 무계획의 선 사이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매일 아침 하루 일과를 계획한다. 월간, 연간 계획도 세운다. 한 때 계획을 위한 계획은 소용없다, 과거를 청산한다는 미명하에 처분해버렸지만 결국 다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내게 ‘계획과 무계획의 사이’, 한국어판 서문에 있는 말에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었다. 학교를 다닐 때 매일 계획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유일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는 시기가 있다. 시험기간의 플래너는 항상 백지였다.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일과를 보내면서도 방종에 빠지지 않았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목표 단 하나만을 갖고 보내는 그 시기는 항상 몰입과 즐거웠다. (사실 수업이 빨리 끝나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시험기간이 내게는 ‘계획과 무계획의 사이’를 느끼게 해주는 시기였을 것이다. 미시마샤도 계획과 무계획의 사이에서 자유를 누리면서도 단 하나 책을 만드는 의지는 확고하다. 책에 대한 목표의식이 변함없기 때문에 계획과 무계획의 사이에서 매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미시마샤의 이야기는 출판의 꿈을 품고 나아가는 이들에게 가슴 속에 작은 희망을 선사한다. 출판업이 불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뛰어드는 판국에 쉽게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깨끗하게 지워준다. 향후 출판업에 한 사람으로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자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책이 좋아서 출판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단순히 일화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언자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답습하기 보다는 미시마샤가 지향하는 바를 하나의 주머니에 담아 마음 한편에 놓아두고 싶었다. 향후 출판사를 다니며 업무에 지칠 때, 회의감이 들 때 이 주머니를 열어보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오기 전, 출판사 sns에서 해당 책은 표지 설문조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 역시 해당 글에 투표를 했다.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던진 시안이 아닌 다른 표지가 책을 장식하고 있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선택한 디자인 보다는 현재의 표지가 훨씬 예쁘고 책 내용을 잘 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이 책의 원서를 어디서 출간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출판사 사장이 자기 출판사에서 낸 것 인가 했지만 미시마샤에서 낸 책은 아니었다. 표지부터 원서까지 많은 궁금증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현재 나는 출판사를 다니고 싶어 그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현재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면 ‘그래도 출판이 낫다’라는 식의 답을 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정리하고 출판을 배우고자하는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확신한다. 하루 빨리 문턱을 넘고 문을 열 그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출판에 관심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 톡톡 튀는 즐거움을 가미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