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막의 바다 TURN 9
이수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에 의존해 파국을 외면하려는 인류에게 보내는 묵직한 경고장이자,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치열한 추격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막의 바다 TURN 9
이수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에 의존해 파국을 외면하려는 인류에게 보내는 묵직한 경고장이자,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치열한 추격전


🕵️ 2056년, 타클라마칸사막의 심장부. 다국적기업 SG는 사막 한가운데 지하 염수를 끌어올려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신종 해조류로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명분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여 기후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것. 세계가 이 혁신적인 기술에 환호할 때, 단 한 사람만이 반기를 든다.

SG가 키워낸 천재 해양생명공학자 아이서. 그녀는 이 프로젝트가 사막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인근 주민들을 수장시킬 ‘기만적인 쇼’라고 폭로하며 잠적한다. 이에 SG는 최고의 사이보그 용병 오하나에게 아이서를 찾아내라는 은밀한 지령을 내린다.

인류의 구원인가, 기업의 탐욕인가.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서, 탄소 중립이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 감춰진 검은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_

📜 이 소설은 기후 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이보그 용병과 과학자의 추격전이라는 날렵한 장르적 문법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SF 영화를 보듯 생생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메시지는 묵직하고 서늘하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 우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탄소 포집 기술이 다 해결해 주겠지’라며 면죄부를 사려 하지 않는가. 소설은 기업의 탐욕스러운 ‘그린워싱(Greenwashing)’과 그에 기생하여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대중의 안일함을 정조준한다.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가 열리면 누군가는 무역의 호재라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이 모순적인 세상. 작가는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 속에서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정말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파국을 잠시 유예하는 마취제에 불과할까.


_

🗝️ 이 옆 나라들은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를 못 미더워했고, 자기 땅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마침 위구르스탄 정부는 돈이 필요했고, 그러니 모두가 공범이었다. -p.76

어떤 거대한 악행도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혐오 시설은 떠넘기고 싶고 환경은 지키고 싶은 국가들의 이기심과 자본이 필요한 약소국의 절박함이 만나 끔찍한 ‘공범’ 관계를 형성한다.

_

🗝️ “사실은 이런 신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희망 아닐까요? (중략) 기술이라는 게 핑계를 제공하는 거죠. 이대로 살아도 신기술이 다 해결해줄 거야, 하면서요.” -p.145

우리는 기후 위기조차 상품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편을 감수하고 삶을 바꾸는 대신, 기술이라는 편안한 핑계 뒤에 숨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자문하게 된다.

_

🗝️ “사람들은 피가 흘러야 쳐다본다는 거예요. 희생이 있어야만 관심을 갖죠. 그것도 어지간해서는 안 돼요. 세상에 불공정한 일이 너무 많아서, 그것마저 경쟁해야 하거든요.” -p.239

비극마저 경쟁해야 하는 ‘관심 경제’ 시대의 잔혹한 자화상이다. 수많은 경고음이 울려도 우리는 자극적인 피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 둔감함이야말로 기후 위기보다 더 무서운 재앙일지 모른다.

_

🗝️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부패 아닐까요? (중략) 전 뭔가에 실망했다고 바로 팽개쳐버리면, 그런 행동이야말로 그 길을 쓸모없게 만든다고 믿어요.” -p.18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자포자기가 가장 큰 적이다.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내딛는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은 방향을 튼다는 믿음,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_

🔦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지독한 무력감을 당신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 인류 구원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특정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는 ‘환경 불평등’은 정당한가?

🔦 기업의 부패와 기술 발전은 분리될 수 있는가?


.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막의바다 #이수현 #한겨레출판 #서포턴즈 #턴시리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단이라는 괴물 앞에서 개인이 소거되는 과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SF 마니아들을 위한 듀나 월드의 가장 거칠고 강렬한 원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단이라는 괴물 앞에서 개인이 소거되는 과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SF 마니아들을 위한 듀나 월드의 가장 거칠고 강렬한 원형 #도서협찬 #서평단

-
🕵️ 20세기 말, 통일되지 않은 한국과 실패한 공산주의 이후의 중국과 러시아가 뒤엉킨 이곳은 마약과 테러와 범죄가 일상처럼 스며든 가상 도시 의천. 어느 날부터 이 음습한 도시의 골목에서 머리가 잘린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단순한 연쇄 살인인가. 혼란과 광기 속에서 의천의 밤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_
📜 이 작품은 한국 SF의 대체 불가능한 아이콘, 듀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PC통신 시절 연재되었던 이 초기작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준다. 훨씬 더 거칠고, 뜨겁고, 날것의 에너지가 꿈틀댄다. 이것은 듀나라는 작가가 어떻게 지금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빅뱅 이전의 혼돈과도 같다.

비정한 도시의 냉기와 날것의 전율이 공존하는 하드보일드 SF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이 책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듀나의 오랜 팬은 물론, 묵직한 디스토피아 느와르에 목마른 장르 독자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 줄 걸작이다.

제목 ‘몰록(Μόλοχ)’은 고대 신화 속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했던 신의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몰록은 거대한 시스템이자 집단을 상징한다. 주인공 미향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서서히 ‘나’라는 고유한 자아를 삭제당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작가는 성별도 나이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오직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자신의 삶처럼,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이 소설에 담았다. 내가 하는 생각은 진짜 나의 것인가, 아니면 집단이 주입한 환영인가. 이 질문은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몰록>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나’를 지우려는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선전포고다.

_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개 그룹에 동시에 속해 있어요. 우선 저 아저씨를 보세요. 일단 한국인이고, 남자이고, 알코올 중독자인 데다가, 축구광이지요. 벌써 넷이에요. 몸과 정신은 하나지만 네 개의 그룹은 저 아저씨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동시에 지배해요.” -p.200

우리는 소속감을 위해 기꺼이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 가면들이 내 얼굴을 완전히 덮어버린다면, 가면 아래 진짜 내 얼굴은 남아있을까? 집단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마약에 취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순간, 우리는 시스템의 먹이가 된다.

_
🔦 소속된 집단의 논리와 내 안의 신념이 충돌할 때, 당신은 침묵했는가 아니면 저항했는가?

🔦 개인의 고유성을 집어삼키고 획일화를 강요하는, 우리 시대의 ‘몰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취향과 생각 중, 외부의 영향 없이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몇 퍼센트나 되는가?

🔦 당신은 몇 개의 그룹에 의해 동시에 지배되고 있는가?

출판사 래빗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암살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명망 있는 집안의 장녀 아이리스 체이스는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사업가 리처드 그리픈과 정략결혼을 한다. 그 결혼은 구원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굴복의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집을 잃고, 곁에는 오직 여동생 로라만이 남았다. 그러나 리처드의 지배 아래에서 두 자매의 운명은 엇갈리고, 로라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세월이 흘러 노년의 아이리스는 붕괴된 기억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허구와 현실, 기억과 글쓰기가 서로의 경계를 녹이며 아이리스의 진짜 고백이 서서히 드러난다.

_
📜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픔이 번갈아 밀려왔다. 리처드와 위니프리드, 그 집안의 가스라이팅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젊은 여성의 순수함과 두려움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고, 아이리스와 로라는 그 속에서 서로를 잃어갔다.

애트우드는 ‘여성의 침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이리스는 살아남기 위해 잠들었고, 로라는 깨어 있으려다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이리스의 회고는 일종의 참회의 일기처럼 읽힌다. 젊은 시절의 무력함, 사랑을 택하지 못했던 죄책감, 그리고 로라를 지키지 못한 슬픔.

현재의 아이리스가 회고를 시작하면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 즉 소설 속의 <눈먼 암살자>가 펼쳐진다. 이중 구조와 복수의 서사가 얽히면서 독자는 점점 기억의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그것이 바로 애트우드가 말하는 진실의 형태다.

리처드의 폭력과 위니프리드의 조종은 단지 한 여성을 침묵시키는 장치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의 언어를 빼앗는 방식의 은유다. 아이리스는 너무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존재’로 살아왔다. 그녀는 글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회복한다. 그녀의 문장은 침묵의 재건이며, 기록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추모의 노래다. 로라는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글 속에서 잠들지 않는다.


_
🗝️ 나는 우리 둘의 사진을 주워 들었다. “나는 왜 푸른색이야?” ”언니는 자고 있으니까.” 로라는 말했다. -1권 p.338

🗝️ 그녀는 이제 정말로 잠에서 깨어난다. -2권 p.315

그녀는 글을 통해 ‘깨어 있는 자’가 되고자 한다.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된 <눈먼 암살자>는 결국 아이리스 자신의 고백서다.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의 이름으로 남겨야만 했던 한 여자의 역설적인 복수.

이 작품의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퍼즐 조각이 맞춰질 때의 쾌감은 압도적이다. 아이리스의 회고록, 신문 기사, 로라의 소설이 교차하며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_
🔦 아이리스의 회고는 죄의 고백일까, 아니면 자기 구원의 시도일까

🔦로라가 깨어 있는 동안 아이리스는 왜 잠들어 있어야 했을까

🔦 진실을 기록하는 일이 곧 죄의 고백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

#눈먼암살자 #마거릿애트우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