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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관 TURN 10
유진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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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턴즈 생명의 등가교환이라는 완벽한 제도가 인간의 비틀린 욕망과 만나 빚어낸 서늘한 윤리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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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를 부활시키는 기적의 형벌 전환형이 집행되는 근미래. 생명을 등가교환한다는 이 완벽하고도 매혹적인 사법 시스템 아래에서 전환기관 특수감찰부 소속 요원 주승우는 연쇄살인범 강병찬을 마주한다.
자신의 마지막 범죄만큼은 완강히 부인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살인마. 하지만 모든 명백한 증거는 그를 가리키고 있었고 결국 그의 목숨은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되었던 한지혜 변호사의 부활과 맞바꿔지며 무참히 전환된다.
그러나 경찰 시절부터 독보적인 육감으로 사건을 파헤쳐 온 주승우는 이 완벽해 보이는 전환의 이면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감지한다. 죽여 마땅한 자와 살려 마땅한 자를 가르는 이 잔혹한 저울질 뒤에는 과연 어떤 끔찍한 진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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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의 생명을 희생해 죽은 피해자를 부활시킨다는 전환형의 세계는 출근을 앞둔 평일 밤의 수면조차 기꺼이 반납하게 만들 만큼 엄청난 흡입력으로 옭아맨다. 이 소설은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에 머물지 않고 죽여 마땅한 사람과 살려 마땅한 사람은 누가 그리고 어떻게 정하는가라는 묵직하고도 근원적인 윤리의 저울을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

눈에는 눈이라는 원초적 정의를 과학으로 실현한 이 시스템은 표면적으로는 무결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완벽한 제도가 인간의 비릿한 이기심과 얽혀 들어갈 때 얼마나 기형적이고 참혹한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경고한다. 제도를 악용해 새로운 육신을 탐하며 범죄를 설계하는 자들이나 부활의 우선권을 쟁취하기 위해 피해 유족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묘사는 아무리 이상적인 구원의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음습한 악의 앞에서는 끝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통찰을 안긴다.

부활한 한지혜의 몸에 남겨진 기괴한 흉터는 이 소설이 지닌 가장 뼈아픈 은유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이어 붙인 육체의 흔적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을 넘어 돌아온 이후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트라우마다. 억울한 죽음을 되돌렸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남은 삶의 온전한 구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씁쓸한 진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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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들을 도대체 무슨 죄로 기소해야 하는 거야.” -p. 140

기적 같은 신기술이 도래했을 때 앙상한 제도의 방벽보다 타락한 범죄의 진화가 언제나 한발 앞서 도착하고야 마는 씁쓸하고도 처절한 아이러니

새로운 기술이 탄생할 때마다 제도는 언제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기상천외한 방식의 악용이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생명마저 공적인 복수와 교환의 매개체로 전락한 이 가상의 추적극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속도로 미지의 기술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우리가 다 함께 멈춰 서서 주위를 살펴야 할 때임을 묵직하게 웅변하는 훌륭한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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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형 제도가 현실에 도입된다면 당신은 기꺼이 찬성하는가?

🔦 제도를 악용해 타인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인간의 비틀린 악의를 시스템만으로 완벽하게 제어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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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환기관 #유진상 #한겨레출판 #턴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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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스크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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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동물 복원 이면의 위선과 오만함을 꼬집으며 진정한 생명 존중의 의미를 묻는 묵직한 생태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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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아프리카 코끼리를 밀렵꾼들로부터 지키려다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동물학자 다미라.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 그녀의 의식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부활한 거대한 매머드의 머릿속에 이식되어 깨어난다.

다시 숨을 쉬게 된 다미라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바탕으로 매머드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오락거리로 전락해 버린 동물의 왕국에서 분노로 각성한 거대한 야수들은 과연 인간을 향해 어떤 반격을 준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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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된 동물을 최첨단 과학의 힘으로 되살려낸다는 설정은 언제나 가슴 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 책은 흥미로운 유전자 복원 프로젝트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과 오만함을 아주 날카롭고 서늘하게 꼬집는다. 인간의 의식을 지닌 거대한 매머드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면 자연 역시 인간을 파괴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라는 급진적이고도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DNA를 복원하는 것은 가능해도 공동체의 기억과 세대의 지혜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 매머드에게 인간의 의식을 이식한다는 발상은 생명을 돕기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 중심적 오만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다미라는 인간의 몸을 잃었으나 인간의 분노와 윤리를 지닌 채 거대한 짐승의 몸 안에서 깨어난다. 그 모순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매머드 복원 프로젝트를 둘러싼 끔찍한 위선이다. 동물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고결한 명목 아래 막대한 자금을 후원한 부유층에게 사냥권을 판다는 설정은 현실을 정교하게 비튼다. 생존을 위해 밀렵에 나선 빈곤층과 오락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부유층은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결국 같은 총을 들고 있다. 인간은 늘 명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폭력을 합리화한다. 이 작품은 그 합리화의 구조를 드러낸다.

다만, 묵직한 주제의식과 거대한 세계관에 비해 여러 시점이 교차하는 서사의 연결고리가 다소 헐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책장을 덮고 나면 뼈아픈 질문이 깊게 남는다. 생명을 마음대로 살려내고 또 마음대로 죽일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약간의 서사적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생명의 무게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강렬한 성찰을 요구하는 매력적이고 서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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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살해는 없어요. 사냥도 없고요. 더는 없는 거예요. 다른 방법을 찾으세요. 여기 동물들에게 빼앗지 말고요. 그들은 당신들이 마음대로 뺏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p.193

보호를 명분으로 사냥권을 팔아넘기는 인간의 끔찍한 위선에 가하는 일침. 자연을 끝없이 착취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벗고 진정한 생명 존중이 무엇인지 다시금 뼈아프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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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한 빈곤층의 밀렵과 쾌락을 위한 부유층의 합법적 사냥 중 어느 쪽의 이기심이 더 잔혹한가?

🔦 DNA 복원만으로 생물학적 부활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종이 온전히 복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인간이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면 자연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을 파괴할 정당한 권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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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터스크 #레이네일러 #위즈덤하우스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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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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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평범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다름과 자기 수용을 묻는 서늘한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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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과 확연히 다른 사고방식 탓에 언제나 별종 취급을 받는 고등학생 고이치. 그는 무리에 섞이고자 필사적으로 보통의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정해진 정답만을 요구하는 교실에서 결국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며 또다시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고이치의 눈에 들어온 완벽한 구원자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모두의 우상 담임 선생님 니키다. 하지만 완벽한 정상인의 표본 같은 이 교사의 가면 뒤에는 경악스러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모두가 존경하는 어른 니키의 진짜 정체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비틀린 본성을 억누른 채 몰래 미성년자 성인 만화를 그리며 은밀하게 욕망을 해소하는 인물이었던 것.

절대 세상에 들켜서는 안 될 끔찍한 본성을 숨긴 채 다정한 선생님을 연기하는 어른과 평범해지고 싶지만 끝내 배척당하고 마는 별종 제자. 위태로운 두 사람의 만남은 과연 어떤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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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평범해야 한다는 폭력적이고도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이 책은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여기는 그 평범함이라는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숨 막히는 올가미가 될 수 있는지 차분하면서도 서늘하게 파헤친다.

고이치는 학교에서 늘 우주인 취급을 받는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배제되는 그는 어떻게든 튀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억지로 듣고 타인의 감정을 흉내 내는 그의 어설픈 연기는 매번 실패로 끝나고 짙은 외로움만을 남긴다. 타인이 규정한 이상함이 무엇인지조차 온전히 자각하지 못해 무력감에 빠지는 고이치의 모습은 묘한 공감과 먹먹함을 자아낸다. 가족조차 독특하다는 프레임으로 그를 밀어내며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소년의 고립감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반면 담임인 니키는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훌륭한 어른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절대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 될 위험한 본성을 타고난 인물이다. 그가 다정하고 완벽한 선생님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짓누르며 뼈를 깎는 연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결코 니키의 위험한 본성을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다수가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과 다른 이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신을 지워내야만 하는지를 묵직하게 조명할 뿐이다. 다수결의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철저히 감춰야 할 치명적인 약점이며 보통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일은 매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갉아먹는 아슬아슬한 생존 게임과 같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묵직한 질문 하나가 마음에 내려앉는다. 과연 이 세상에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상하고 뾰족한 모서리를 억지로 깎아내고 숨긴 채 그저 평범한 척 연기하며 아슬아슬하게 세상을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다름을 향해 무심코 던지는 시선의 무게와 진짜 나를 숨기고 살아가는 쓸쓸함에 대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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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게는 아직 부족한 게 있어.” (중략) “그래요? 좀 가르쳐 주실래요?” “자신을 좋아하는 것.” -p.264

자신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는 따뜻한 위로이자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매 순간 엄격한 감시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서늘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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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함은 안전망인가, 폭력인가?

🔦 당신은 무리에 섞이기 위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거나 억지로 평범함을 연기해 본 적이 있는가?

🔦 다수가 정한 평범함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는 사회는 과연 정당할까?

🔦 자신의 치명적인 본성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니키의 삶은 위선일까, 아니면 처절한 투쟁일까?

🔦 우리는 타인의 이상함을 얼마나 쉽게 교정하려 드는가?

🔦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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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니키 #나쓰키시호 #해피북스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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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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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소모해버린 두 영혼의 가장 잔혹한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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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황야의 저택 워더링 하이츠. 이곳에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가 발을 들이며 거대하고 잔혹한 비극의 서막이 오른다. 저택의 딸 캐서린과 영혼을 나누는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결국 안락하고 교양 넘치는 이웃 저택의 남자를 선택해버린 캐서린. 깊은 배신감을 안고 황야를 떠났던 히스클리프는 몇 년 뒤 막대한 부를 거머쥔 채 돌아온다. 자신을 짐승처럼 학대하고 유일한 빛이었던 사랑마저 앗아간 두 가문을 향해 숨 막히는 복수를 시작하는 히스클리프.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감정과 지독한 원한이 뒤엉킨 이 파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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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단순한 고전 로맨스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비이성적인 힘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두 공간의 대비는 이 소설의 핵심 구조다.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위의 집은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을 상징한다. 반면 계곡 아래의 저택은 교양과 질서, 체면이라는 문명의 얼굴을 드러낸다.

캐서린은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녀의 영혼은 히스클리프에게 있으나 현실의 선택은 에드거를 향한다. 그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캐서린의 선택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자기 부정이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른 대가로 그녀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히스클리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밀어 넣는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단순한 질투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 사랑과 멸시를 동시에 경험했다. 언쇼 씨의 애정과 힌들리의 학대는 그의 내면을 찢어 놓았다. 거기에 캐서린의 모순된 태도까지 더해지며 그의 감정은 폭발한다. 다정함과 냉대가 반복되며 그는 결국 선택한다. 차라리 내가 먼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읽는 동안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악인이지만 동시에 피해자다. 그의 광기는 사회적 차별과 감정적 결핍이 빚어낸 결과다. 브론테는 그를 낭만적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사랑의 미화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묻는다. 체면과 신분을 택한 선택이 과연 안전한가. 억눌린 본능은 어디로 가는가. 폭풍은 멈추지 않고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그리고 끝내 남는 것은 복수도 승리도 아닌 소모된 삶의 잔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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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방 안을 둘러보았어. 캐서린이 내 곁에 있는게 느껴졌고 거의 보이는 것만 같은데도 볼 수가 없더라고! (중략) 살아 있을 때도 종종 그랬듯이 캐시는 죽어서도 내게 악마 같은 짓을 했어. 그 이후 나는 견기디 힘든 고문에 희롱당하며 살아왔어! 지옥이었어! -p.490

천국과 지옥을 끊임없이 오가며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절규이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지독한 저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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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클리프를 광기 어린 복수귀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힌들리의 학대일까요 캐서린의 변심일까?
🔦 체면과 신분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억눌린 본능을 어떻게 해소하며 살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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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윌북 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폭풍의언덕 #에밀리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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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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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행성의 실험을 통해 자유와 소유의 본질을 해부하는, 사유를 강제하는 SF문학의 영원한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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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풍요롭지만 빈부격차와 계급이 극명한 '우라스', 그리고 그 체제에 반발한 혁명가들이 떠나와 건설한 척박한 사막의 행성 '아나레스'. 아나레스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오도니안'이라 칭하며 소유와 권력이 없는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렇게 200여 년, 서로를 향한 문을 굳게 닫아건 채 단절된 두 세계. 아나레스의 천재 물리학자 쉐벡은 이상주의적 공동체마저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두 세계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을 허물기 위해 동료들의 비난을 뒤로하고 목숨을 건 우라스행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과연 풍요의 땅 우라스는 그가 꿈꾸던 해답을 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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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소유와 무소유의 대립을 넘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벽'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짓궂게도 이 책에 '애매모호한 유토피아'라는 부제를 붙였다. 소유가 없는 천국처럼 보이는 아나레스조차 시간이 흐르자 '관습'과 '여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서서히 경직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쉐벡은 이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기꺼이 경계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는 아나레스의 배신자라는 낙인을 감수하고 적들의 행성인 우라스로 향한다. 이곳에서 쉐벡이 마주한 것은 화려한 풍요 속에 감춰진 빈곤과 차별, 그리고 개인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국가주의의 음모였다.

소설을 관통하는 쉐벡의 사상은 지극히 도교적이다. 그는 미래의 거창한 혁명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수단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그의 신념처럼 올바른 과정만이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우라스에서 완성한 획기적인 물리학 이론인 '앤서블'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꾸지 않고 전 우주에 대가 없이 공개해 버린다.

쉐벡은 빈손이었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무언가를 소유하려 드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가두는 벽을 쌓게 된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결말에서 쉐벡은 다시 척박한 고향 아나레스로 돌아간다. 화려한 성공도 영웅적인 환대도 없는 귀환이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돌아옴이다"라는 문장처럼 벽을 넘어본 그는 이미 떠나기 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벽을 마주한다. 타인과의 벽, 내 안의 편견이라는 벽,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의 벽. 이 책은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는 힘이 거창한 무기가 아니라, 움켜쥔 손을 펴는 '빈손'의 용기에서 나온다고 말해준다.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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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유로우니까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에 자유롭지요. 그리고 당신들, 소유자들은 스스로도 소유물이에요. 모두가 감옥에 갇혀 있어요. 각각이 외롭게, 혼자서, 소유물 더미와 함께. 당신들은 감옥에서 살고, 감옥에서 죽어요. 내가 당신들 눈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그게 다예요. 벽이요, 벽!” -p.281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도 그 물건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는 섬뜩한 통찰. 우리가 쌓아 올린 부와 명예가 실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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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해 보이는 유토피아조차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경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소유를 부정한 사회는 정말로 권력을 제거할 수 있는가?

🔦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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