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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나는 한국의 소설을 읽기 두려워한다.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소설은 막막하고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는 현실들을 앞에 들이대며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한국의 소설을 보기 전에는 마음 준비를 해야하거나, 보지 않게 된다. 결국은 한국 소설이 아닌 부담없는 일본이나 독일 소설을 읽게 된다. 좋은 마음은 아니지만, 소설에서나마 현실은 조금 잊고 싶다.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돌아왔는데, 더 막막한 현실을 보라는건.... (한숨)
어쨌든 한은형 작가로 돌아오면, 재밌게 읽었다. 그 중 샌프란시스코 사우나가 가장 좋았다. 마치 좋은 꿈을 꾸고 깬 듯한 기분 좋은 여운을 준다. 다른 작품들도 일상 속에서 잠시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다. 그레이하운드가 된 남자친구, 꼽추, 마스터베이션을 묘사해달라는 남자, 연인형 로봇 등 등장인물이 묘하거나, 아니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래도 현실에 기반한 꿈은 현실을 보는 시선이 있어야 하기 마련인데, 한은형 작가는 현대 사회를 마스터베이션으로 설명하려 한 것 같다.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에서 돈을 줄테니 마스터베이션 하는 장면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나 자신이 마스터베이션 하는 장면을 묘사해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권태, 자기도취 등 다양하게 생각해보았는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해설에서는 꿈과 같은 부분에 집중해서 설명해주셨는데, 이 부분도 다뤄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뭐 좋다. 잠시 꿈을 꾸듯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꿈에서 깨면 꿈이 무슨 뜻이 있는 걸까 고민도 하고. 마지막은 내가 왜 샌프란시스코 사우나가 가장 좋았는지 보여주는 구절을 쓰고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녀는 신호등을 대신해 거기에 있었다. 호루라기를 불 때면 오른쪽 뺨에 보조개가 팼다. 그러다 목덜미에 흘러내린 땀을 닦을 때, 한숨을 내쉴 때, 눈물을 참을 때, 나는 사랑에 빠졌다. 빠졌던 것 같다. 슬로모션으로 촬영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가 뻣뻣해진 고개를 양옆으로 기울일 때 내 시간도 그녀에게로 기울었다. 그녀는 거리에서 시를 쓰고 있었다. 순간마다 완벽하게 사라지고 완벽하게 창조되는, 그래서 완벽한 시. 우리는 동료였다. 애정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나는 회전교차로와 공산주의와 시인의 역할과 사랑에 대해 이해했다. 사랑은 무언가 부족할수록 생겨나는 것 같았다. 나는 없는 게 많았다. 현실감도, 책임감도, 준법정신도, 자부심도, 열등감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 괜찮은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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