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465
원구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원구식 시인의 시집 비를 읽으면서 발상이 재밌는 시가 많다고 생각했다. ‘비’에서 “한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물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증발시켜 하늘에 이르렀는데 그 이유가 순전히 허공을 날기 위해서였음을 너무나 뻐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는 이유, 부서진 모래가 먼지가 되는 이유, 비로소 모든 존재의 이유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를 인상깊게 느꼈다. 이과생인 나는 화학 시간에 바위가 먼지로 변해가는 이유를 엔트로피 법칙 즉, 자연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생물학에서는 자연물들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과 반대로 복잡한 형태로 생성된 이유를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과학의 대답은 너무나 서글펐다. 결국에는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흩어져버릴 세계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려고 하는 이유가 겨우 생존에 유리해서라니. 그런데 시인은 재밌는 답을 내려준다. 순전히 허공을 날기 위해서였다고. 엔트로피 법칙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려는 이유는 날기 위해서라고. 멋진 대답이다. 이외에도 ‘눈길’이나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어느 승냥이의 변기’, ‘멸치’ 등 재밌는 시가 많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발상이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시인 혼자만의 감탄으로 끝난 시들이 그렇다. ‘분노의 맛’, ‘악의 기원’, ‘학질’ 등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들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악의 기원’에서 밤의 숲, 절대적인 밤의 포식자, 숲의 왕 바람, 물의 정액, 밤의 숲 사이로 걸어 나오는 인간 등 대략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추상적이어서 재미가 없다. 내가 재밌게 읽은 시들을 보면 눈길, 삼겹살을 뒤집는 것이나 낡은 변기 등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며 시인의 발상을 이야기하기에 감탄하고 재밌어 했는데, 위 시들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기에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원구식 시인의 시집을 재밌게 읽었다. 유려한 표현이 있다거나 형식미가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음에도 발상으로도 재밌게 시를 쓸 수 있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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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17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