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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1201/pimg_7338931712371928.jpg)
사회과학분야의 책들은 가뜩이나 불안도가 높은 나를 동요시킨다. 이건 이래서 문제, 저건 저래서 문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문체로 조목조목 따지고 드니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러면 세상은 온통 문제 투성이인 것 같고 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부당해서 못견디겠는 거다. 굳이 나의 편독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그런 내가 <클린 미트>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생소한데다 매우 비문학적이기까지한 이 단어의 조합을 이해하기 위해 다소간의 모험심이 발휘된다.
나는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고기를 사야 마음이 편한 주부이자, 육즙 가득한 고기를 한입 베어무는 데서 오는 풍만감을 삶의 낙으로 삼는 소시민이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자마자 그런 삶의 원초적인 쾌락 앞에서 비인간적인 공장식 축사와, 항생제 범벅의 사료, 어마어마한 온실가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 죄를 지은 것 마냥 뜨끔하다. 동물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더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런 현실에 대한 고발만으로 끝났다면 너무 암울해서 아마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클린 미트>는 공장에서 태어나 공장에서 죽는 동물 대신 고기를 키우자고 외치는 책이다. 온갖 비능률적이고 비윤리적인 사육을 중단하고 환경도, 동물도, 사람도 윈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스테이크를 키운다니, 대체 어떻게?
공장식 사육은 투자자에게 큰 위험 요소다. 공장식 사육에는 인간의 건강, 기후변화, 식품 안보, 지구의 자원과 관련된 네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으며, 이는 [묵시록]에 등장하는 말을 탄 네 명의 기사에 버금간다. 공장식 사육은 신선한 물을 고갈시키고 항생제를 과잉 소비하게 하고, 삼림 파괴를 주도하며, 사람들을 먹이는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가축에 들어가는 곡물은 인간의 수요를 뛰어넘으며 우리는 이 광기를 멈춰야 한다.
p.166
<클린 미트>의 저자 ‘폴 샤피로’는 미국 동물 보호협회의 대변인이자 부회장으로 여러해 활동해 온 사회운동가이다. 아울러, 단백질 배양 조직으로 키운 고기, ‘청정 고기(클린 미트)’를 세계 최초로 시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전세계 인류가 직면한 환경오염과 식량 부족의 문제를 심각하게 직시하고 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지속 가능한 식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시험관에서 배양하는 고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주로 의료용으로 사용되던 생명공학 기술을 식품에 적용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청정 고기’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맛도 고기에 가깝다는 평이다. 만약 청정 고기가 상용화 된다면 넓은 경작지와 공장식 축사가 사라질 것이고, 온실가스와 폐수 같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자원 낭비, 전염병등의 문제도 해소될 것이다.
물론 장미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상용화의 문제가 남았다. 두꺼운 육질의 고기를 만들 수 없는 기술적인 한계, 10배 이상 높은 생산 단가, 국가적인 윤리적 규제, GMO식품에서 한차례 겪었던 소비자의 거부감등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하지만 ‘청정 고기’가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한 어떤 대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일수록 대안은 많은 것이 좋지 않은가. 고래기름에서 등유, 석유, 전기로까지 혁신을 거듭해온 에너지의 발전 과정을 생각해 보면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하나의 방법으로써 어쩌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른다.
저는 고기의 대체재를 찾는 모든 노력이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적, 도덕적, 윤리적 이유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소비를 줄여야 할테니까요.
p.40
이 책을 읽고 고기가 먹기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고기는 여전히 맛있다. 저자는 식물성 고기로 절대 만족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정확히 간파했다. 그래서 ‘청정 고기’를 지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 같은 다큐멘터리가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더 나아져 있을까? 고기를 키우는 일로 인간과 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일이 가능하게 될까? 전혀 모르던 이과적 세상에서 던져진 화두가 자꾸 문과적 질문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니 편독의 한계가 너무도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