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너머 - 불확실한 세계를 돌파하는 과학의 태도
카밀라 팡 지음, 조은영 옮김 / 푸른숲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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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와 바깥 세상이 만나는 순간에 튀어오르는 불꽃을 생생히 포착하는 책들을 좋아한다. '궤도 너머'가 그런 책이었다. 자신의 온 삶에 자리한 과학에 대한 탐구의 기록, 과학하는 태도와 삶의 이야기, 과학자들이 고군분투해온 이야기들, 저자가 들려주는 모든 것들이 고유한 한 사람으로서의 저자가 과학의 렌즈를 끼고 세상과 만나는 순간들을 담고 있다. 저자가 ADHD와 자폐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이 책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즐기면 된다.

덧붙이자면 같은 책이라도 읽는이가 어떠한 책을 읽어왔고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왔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인 독서가 수행될 수밖에 없는데 나의 경우에는 뇌의 (오)작동을 이해하고자 읽었던 책들과, 뇌의 오작동을 직접 겪어내거나 또는 겪는 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의 책들*에 관심을 두어 왔기에 그 책들과 '궤도 너머' 사이를 잇는 뚜렷한 선이 보였다. 소음에 지지 않고 자기 목을 울려 어떤 소리를 세상에 내보내는 책, 불협화음을 지속하는 뇌로 살아나가는 이가 자신만의 또렷한 색채로 그려낸 삶의 풍경과도 같은 책.
* 오작동하는 뇌 - 히구치 나오미,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윤서

그러나 그 풍경은 무심하거나 충동적으로 아무렇게나 그어낸 그림이 아니라, 과학하는 과정(목차를 보라!)과 동일하게 체계적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서평 첫 문단에서 저자의 병력은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썼다. 저자가 한 단계씩 힘있게 끌고 나가는 과학과 과학하는 태도에 대한 유려한 이야기의 흐름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식 없이 과학과 삶의 만남에 집중한 채 페이지를 넘기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과학 수업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유머러스한 배려는 덤이다. 나 같은 문과생도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여러 모로 지적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 나같은 신경다양인은 자기 감각의 주인으로 살아가지만 그 감각에 크게 휘둘리기도 한다. 신경다양인은 남들보다 삶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경험한다. ... 나와 같은 뇌를 가진다는 것은 입럭된 데이터와 세부 사항이 머릿속에서 영원히 회전하는 가운데 매일매일 자기가 본 바를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 과학 연구는 불확실성에서 명료함으로 매끄럽게 나아가지 않는다. 과학자는 자기가 올바른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또 한 주제에 관한 어떤 변주가 그들이 찾고 있던 음악이 될지 모르는 채 계속해서 실험해야 한다.

📍 추가로 말하자면 아이디어가 항상 유용할 필요는 없다. ... 과학이라는 푸딩은 전혀 증명되지 않은 채 구워지더라도 맛이 아주 좋을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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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일까? - 마음을 사로잡고 경제를 움직이는 마케팅의 비밀 ㅣ 생각하는 10대
이완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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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은 왜 공짜일까?' 표지에서 질문을 던지고 시작하는 책. 이 책은 사실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읽어낼 수 있다. 내 상품을 더 잘 팔고 싶은 이가 마케팅의 기초를 습득하기 위해 읽는 게 하나고, 내가 무심코 지나친 많은 것들이 나를 소비자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음을 깨닫는 독서를 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둘 중 어느 쪽의 입장이더라도 이 책이 유익할 것이다.

(책 중에서)
- 인간이 '대충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마케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만약 인간이 깊이 숙고하기만 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라면 마케팅은 학문으로 발전할 여지조차 없었을 테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너무 똑똑하고 합리적이어서, 마케팅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해도 현혹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애태우다'라는 뜻의 영단어 'tease'에서 비롯된 티저 광고는, 말 그대로 사람들을 애태우는 광고다. 하고 싶은 말을 즉시 하는 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당최 감을 못 잡게 만드는 전략이 티저 광고의 핵심이다. 만약 신문에 대뜸 담뱃갑 그림과 구구절절한 설명을 실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소비자도 갑자기 낙타들이 온다는 문구를 보고는 '이게 도대체 뭐야?'라며 애를 태운다.

-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대니얼 카너먼이 이야기한 '깊이 숙고하기' 시스템을 잘 가동해야 한다. 마케팅은 '대충 생각하기' 시스템의 빈틈을 늘 노리기 때문이다.

- 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을 사는 이유도 그와 같다. 모처럼 놀이공원에 갔는데 기구를 탈 때마다 돈을 낸다고 생각해 보라. 한 시간에 한 번씩 불행을 맛봐야 한다. 이러면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런데 입장할 때 목돈을 한 번 확 쓰면(물론 이 때는 많이 불행하다) 그 뒤로는 탈 때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지불을 분리했기 때문에 이제는 행복을 즐길 일만 남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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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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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강요할 때에도, 할 수 있을 일들을 금지할 때에도, 똑같이 '여자니까'라는 손쉬운 핑계가 따라붙는다. 우스꽝스러운 소리지만 그 핑계에 옭아매인 생의 모습들은 우습지 않다.

⠀몇 달 전 유럽 여행에서 알게 된 인도 출신 여성 친구는 독일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는 인도에서 자신처럼 머나먼 유럽까지 공부하러 올 수 있는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라며, 공부를 끝내면 고국으로 돌아가 운이 좋지 못한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의 결심 어린 눈빛이 떠올라 더욱 몰입하여 읽게 되었던 책, '하트 램프'.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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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획하는 일 - 기획자는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읽는가
편은지 지음 / 투래빗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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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SNS를 즐기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즐기는 단계를 넘어 SNS를 통해 스스로를 어필하여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아졌고요, 어느덧 '브랜딩', '마케팅'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디에서든 튀어나오는 개념이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해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인플루언서든 마케팅 부서의 직원이든 자영업자든, 머리아프게 고민해서 브랜딩과 마케팅을 시도하더라도 꿈꾸었던 효과를 얻어내는 일은 쉽지 않은데요. 저 역시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늘 제 머리를 채우고 있는 물음표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브랜딩과 마케팅 그리고 넓게는 콘텐츠 기획에 있어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는 법이 핵심임을 알려줍니다. 무조건 화려하고 번듯하게 보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랍니다.

📍 (p.146) "<나는 솔로>는 낮은 제작비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화제성을 모으고 있습니다. ... 그 불편함이 결국 콘텐츠나 브랜드의 톤이자, 소비자와 연결되는 감정의 실마리가 될 것을 내다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를 짚으며, 많은 이들이 원하고 있지만 스스로 원하는 줄 모르는 것들을 세심히 짚어내는 것이 성공적 기획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p.152) "<나 혼자 산다>는 그간의 타 예능 프로그램들이 범접불가할 정도로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조명했던 것과 달리, 어두컴컴한 원룸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스타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담아냈습니다. ... 그 결과,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야심한 밤에 고요한 날것의 콘텐츠가 퇴근 후 마주한 시청자들과 은밀한 공명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고한 공명은 한 번 형성된 이상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낡고 헤져도 한 번 안정을 느낀 애착 인형이나 담요를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래 머무르며 바라보는 따스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저의 관점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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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기원 - 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칼 다이서로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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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층을 경계로 외부와 구분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뇌의 신비로움(신비라는 단어가 자칫 과학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과학적 사실이 가져다주는 경외감을 표현하고자 했다)을 책을 읽는 내내 체험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는, 나와 물질을 교류하는 외부세계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포함된다.

생애 전반부에 잘못 설정된 초기값 때문에 뇌가 설명을 위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한다(p.198/자해 행동은 어린 시절 경험한 일방적이고 이해할 수 없던 느낌에 자신이 조절할 수 있고 납득되는 날카로운 통증을 새로 덮어씌움으로써 이 부정성을 재측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또는 몸 내부의 오작동으로 인한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 전가하기도 한다(p.214/얼마 전 그녀가 임신을 했는데,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위니를 조롱하려고 그런 게 분명했다).

때로는 세상을 오독하여 생명 유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 섭취가 교란되는 경우도 있다(p.278/거식증과 폭식증은 그 어느 정신과 질환보다도 의학과 과학의 손이 닿지 않는 먼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환자와 병 사이에 일종의 파트너십이 뿌리 내린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고통들을 극복하는 것은 고통으로 이어지도록 조직화된 세포나 신경회로를 각종 치료를 통해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로써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미스테리는 고작 며칠 지켜보는 것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p.205)." 치료와 치유는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써야 하는 지난한 과정일 수 있다. 반복되어 터져나오는 짜증이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든, 스스로의 회복을 꿈꾼다면 먼저 시간을 내어 이 책 '감정의 기원'을 읽어보기를. 제목만 보고 '고작 감정 따위'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의 마음과 인격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피는 독서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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