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베레나 카스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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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감상평: 아 이 책도 이러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읽으면 좋겠다 정말로.
TMI: 나는 을유문화사 책을 좋아한다. 탁월한 번역 때문이다. 표제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클라스다 .

이 책은 한문장 읽고 생각하고, 한문장 읽고 멍해지고, 한문장 읽고 엄마를 떠올리고,
별 헤는 밤 같은 이야기였다.
(자꾸 주장하는 글쓰기처럼 결론 지어버리니.. 스포를 피할 수 없다)
.
우리 모두 늙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점점 의존적으로 변화하고, 질병이 생기고, 쇠약해진다.
그 무력감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는게 일반적인데, 그러지 말자고- 사실 그거 아니라고 화자는 당당하게 말한다
“이처럼 잃는 것이 많다고 해도 노년기에 놀라울 정도로 젊은 시절만큼 행복감을 느끼며, 때로는 행복감을 더 느끼는 경우도 있다.”
왜 그걸 수치로 느끼는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려면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하는지, ‘더’행복할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는데 가장 주목할 덕목이 바로 “유연성”이었다.

노년기의 유연성이란 ‘의식적인’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약점과 부족함을 참작하고 완벽주의와는 거리를 두며, 필요한 경우 양보하고 넘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확실하게 더 탄탄한 발걸음을 찾도록 해 준다. 또한 이런 유연성을 갖게 되면 삶 속의 다양한 변화를 침착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본문25쪽

나이가 들수록 내게 쌓인 데이터는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완고하게 만들고,
안다는 것, 즉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살고 싶어한다.
몸 사리게 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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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 즉 창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면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럼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던진 어퍼컷에 타격감은 줄어든다.
(사실 이건 어떤 세대에게나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다만 노화에 의한 ‘포기’가 아니고, 불안에 의한 회피가 아니다.
유연하다는 건 진짜 강해진다는 것이다.
.
한편으로 나는 참 쉽게도 노년기를 ‘일반화’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아이같다고 생각하는데,
나에 대한 정체성이 이렇게 일관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80이 되어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르신들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렇다, 노년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
노화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야기는 결국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인생의 종착점인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죽음에 아주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노년기의 발달 과제”(115쪽)라고 이야기한다.
루돌프 알렉산더 슈뢰더의 시가 와닿았다.

“늙은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밤과 그 별들과 친구가 되어야 할 시간이”
자신의 죽음에 익숙해짐으로써 삶의 특별한 순간들, 이를테면 봄에 느낀 기쁨, 오래전에 겪은 강렬한 경험에 대한 기억 등을 다시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중략)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노년기에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을 능가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116쪽)

죽음을 터부시하면 아까 말한 완고하고, 소심하고, 몸사리는 노화를 피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방법을 설명했는데,
특정 주제를 가지고 회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어땠는가? 위기의 순간에 내 모습은 어땠는가? 나의 주변 사람들은 어땠는가?” 등 이런저런 상황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현하며 서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죽음과 덧없음을 마주하게 되며,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좋은 일을 베풀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 줄 수도 있다.
대화할 수 있는 소모임을 권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서로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한다고.
그러면 공동으로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잊힐 위기에 처했던 보물 같은 기억의 접점들이 수집된다고 - 이야기한다.
천천한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와의 채팅에 급하게 썼던 문장은 “아빠 궁금해하기”였다.
갑자기 슬럼프라며 전화해온 아빠가 떠올랐다.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던가-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매일 전화하며 내 이야기 좀 그만해야겠단 생각과
아빠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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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지만 그 과정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정말 노력이 필요하다. 왕도 따위는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매일 이별하는 자세로 살아갈 때, 어떤 미련도 헛된 기대도 없이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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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 세상 모든 것의 성장과 한계, 변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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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그대로 눈이 있는 한 우리는 세상의 <size>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크기를 기준으로 촘촘하게 정해진 세계에서 살아간다. 어디를 살피든 하다못해 우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자급농과 물물교환하는 가구를 어떻게 집어야 할지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17쪽) 어떠한 규칙이든 분류든 표준을 인식하고 있을 때 작동한다.
작가는 <크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이건 미시의 세계부터 거시까지 아우른다. 미시든 거시든 크기를 말하는거잖슴?
걸리버가 크기의 현실과 대사(몸의 대사)스케일링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끌어낸다. 걸리버 정도의 키와 몸무게라면 후이늠의 몸무게는 어떠했을지, 그렇게 복잡스런 인체구조를 가지고 작아진느 것은 가능한지 하나하나 따져본다(털썩)
또 앨리스는 착시라는 현실적인 세계(N의 확신의 세계) 에 들어가는 입구를 제공한다. 크기 하나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size>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읽을 수록 이 사람은 모르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지식, 빠진걸 찾는게 어려울 정도로 세상을 총망라한 스펙트럼에 기함했다.
이 책을 읽는 건 어렵지 않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면-
책 읽을 때마다 “야야, 내가 재밌는거 알려줄까” 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거는 걸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들어본 세상의 들쥐 개체수는 보존된다는 이론, 종아리가 짧으면 심혈관질환 확률이 올라간다는 썰, 집게손가락과 약지손가락 길이 차이에 남성호르몬 차이가 생긴다는 썰,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식, 황금비율의 모순까지 지금 대충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봐도 이렇다.
엄청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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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대성장 스케일링의 주요 기관은 눈이다.. 클 뿐 아니라 해부학적으로 긴 눈을 지니면 추가적인 혜택이 있다. 각막과 망막의 거리가 멀수록 맺히는 상의 크기가 더커지고 그러면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는데 더 유리하다. 맹금류는 시력이 아주 좋다고 잘 알려져 있다. 사람이 1.2미터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독수리는 6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색깔을 더 선명하게 보고 자외선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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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과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에서 읽었던 내용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책을 읽을 때도 천재 오브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바츨라프 스밀은 그걸 훌쩍 뛰어넘는다.

저자는 “이 파악하기 힘든 질서를 탐구함으로써 배운 교훈은, 우리 은하의 별다른 특징 없는 항성계 중 하나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적 문명으로서, 우리 존재의 본질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340쪽)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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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많을 수록(나이가 들수록) 점점 경험치도 올라가고 어느 정도 ‘사이즈’가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싯다르타처럼 “나는 다시 순수해질 수 없는 것인가”라는 오만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 엄청난 정보를 확인하며 “아 정말 나는 아는게 하나도 없구나”라고 뚜까 맞을 수 있었다.
정말로 아는 것이 많을 수록 겸허해진다는 것은 ‘몸사린다’는 말의 대체어가 아니었다. 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알게 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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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1000개의 단어- 100개의 단어- 10개의 단어- 1개의 단어로 크기를 설명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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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크기는 스칼라의 일종이며,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만물 의 척도다.

1
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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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나를 지키는)무기가 하나 생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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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8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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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속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결국에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 가장 올바르다고 믿는 방향으로 정치를 해야한다고 결론지을 줄 알았다(생각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선설 늬낌이다)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리 호락호락하냔 말이다.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있고, 어떤 사회 계층으로 나누는 것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까지도 모든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디까지 우리가 생각해야하냐면, 노예근성의 사람(신분을 이야기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 타고난 성향이 지위에 딱 맞춰 태어나는건 아니라고 했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의 역할도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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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답답했다. 이렇게 현명한 사람이 정치해야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어쩜 자기 잇속만 챙기냔 말이다. 이런 하나하나를 간과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일, 사람들이 행복하게 기꺼이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정치일텐데-
누구와 친해지고, 누구에게 부탁을 해보고, 누구에게 힘을 실어줘야하는지 아직 어르신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결론은 교육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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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여러 모습을 나타내는데,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 혼합정 등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관여하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그 구성요소 중 단연 사람이 빠질 수 없는데, 중산층이 주축이 되는 국가가
이해관계의 밀당에서도 일의 융통성에서도 순환하게 하므로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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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사람들이 주축이지?
라고 생각하니 속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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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로 장난질을 많이하는 정치인들 덕분에 오히려 관심을 갖기도, 신물이 나 귀를 막기도 하는 양극화를 경험중이다. 그중에 돋보이는 사람들이 충주맨과 양산시(진솔이) 코레일의 기관사이다.
이들의 살신성인정신과 아찔한 마케팅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렇게 관심을 갖고, 호의적일 때 더더욱 함께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할 방향을 되짚어보는게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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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추구하지만,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한다.
평등에는 수적 평등, 자격에 따른 평등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격에 따라 정당한 것이 결정된다는 절대적 정의의 개념에 대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한 분야에서의 평등을 모든 분야에서의 평등으로 확대해석하고, 다른 이들은 한 영역에서의 불평등이 모든 영역에서의 불평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모두가 비슷한 것을 누리지만, 또 한편으로 고립되기 쉬운 이 시대에
평등이라는 개념을 함께 그리면서, 생각이 진화하는 (고착화 되는) 과정을 톺아보면서 이야기할 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현대지성 #현대지성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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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닌 여자들 -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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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 역사에서 어떤 여자분들에게 붙들렸다.
막 책을 덮고 어제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출근하는 길이었다.
여성자원봉사 단체에서 나왔는데 타로를 봐주겠다고 했다.
내 손엔 [엄마 아닌 여자들]이 들려 있었고, 이제 막 어떻게 죽을지 고민해보자는 책[어떻게 죽을 것인가] 텍스트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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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극이 기이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싶은데 당장 눈앞의 일조차도 카드 한장에 좌우되고 거기에 혹하는 나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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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라니, 당장 비극이 쓰나미다.
내가 출근하는 화성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많다. 이번에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고에 이주노동자들의 피해가 컸다고 들었다.
언어가 미숙해 안전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분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여전히 한국어가 서툰 친구들이 있는데, 피해자 중에 그친구들 부모님도 계실까봐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뭐하나, 집에선 뭐하고 노나? 한번도 관심가져본적이 없었다는 것을 꺠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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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모든 가정의 일이 ‘그 가정 안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되었을까?
언젠가 한 개그맨이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낳지 않겠단 소신발언을 해 화제가 됐었다.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위험하고, 더 힘들어질거라는데, 그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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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한 말씀이다.
<자녀를 가지면서 얻는 보람보다 스트레스가 크고>
<정부가 명령하는 유급 출산휴가의 세계 평균이 29주 뿐이다>
<엄청난 환경문제, 기후위기에 지금 우리조차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이런 것만 미뤄봐도 부모가 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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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속아 우리는 질문하길 멈춘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생각은 점프한다(오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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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느네가 괜히 아이를 낳아서, 우리 세금을 공립학교에 써야하고(나는 이러니까 아이를 안낳잖아), 장애아동을 돌봐야하고(아이를 낳은 너희 선택이잖아), 괜히 신혼부부- 아이낳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혜택을, 아니 특혜를 줘야하냐고(우린 뭐 안힘드냐?).
라고 위험한 생각을 쉽게 해버릴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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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공동체는 힘들다. 서로 힘을 보태기보다 단절되고 고립되기가 쉬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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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처음 의도는 “우린 뭐 안힘드냐?(애 낳은 너희만 힘드냐?)”를 옹호하기 위해 썼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사회도 분명히 존재했고, 정치적인 장난질(오만함)도 확인하면서 “이게 맞나?” 라는 질문으로 급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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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언제부터 모성을 포기해야 했는지, 그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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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들의 알고리즘에 떴겠지만) 최근에 르완다에 사는 한국어능력자 외국인짤을 봤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굉장히 인상깊었다.
예전에는 한사람이 결혼하면 마을 전체가 같이 돕고, 마을의 잔치가 되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결혼준비를 <핵가족>이 되면서 신랑 신부 직계 가족의 몫이 되었다는 거다. 어떻게 결혼을 하겠냔 소리를 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자식이 '소유'가 아니었을 때,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도 기꺼이 남의 자식들을 데려다 키우고 해왔다. 모성의 본능을 잘 키워준 사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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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암묵지가 어느새 핵가족으로 넘어오면서, 조용히 사라져버렸다는 것.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 잘지키는 문명화된 국민으로서,
자기 자식은 자기만 키우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거다.
공동체를 ‘미개하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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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봐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부분들이 역사를 거쳐 조작되어 왔고, 냉소적으로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럴 떄
“냉소적인 마음이 들 때면 ‘미국 여성은 어째서 자녀를 갖지 않는가’ 라고 할 것이 아니라 대체 ‘어째서 자녀를 가져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더 희망이 느껴질 때면 더욱 생산적인 질문을 떠올리기 떄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자원이 고갈된 지구와 시간과 돈이 고갈된 존재가 요구하듯이 새로운 생명을 적게 만듦켠서 아이들이 선사하는 기쁨과 희망,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자녀를 갖고 갖지 않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냉혹하지 않은 미래. 한 아이에게 둘 이상의 어른이 개입하는 미래, 모성이 직장과 삶에 짓눌리지 않는 미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해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만약 새로운 아이를 만드는 것이 진정 공동체에 기쁨이 되고 매일 실질적인 책임이 된다면 어떨까’라고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는 질문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몸으로 낳은 아이>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사고가 요구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본문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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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해결책이라기 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잊지 않는 것,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인구문제도- 인권문제도- 나아가 환경문제까지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원하는 세계평화는 당장 내 눈앞의 한 사람들의 행복에서 시작된다. 병원 문제, 인구 절벽, 지방과 격차 등 여러 문제를 맞닥뜨릴 것이다.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가지고 올 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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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유 어게인
서연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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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신의 불행이 가장 크고, 온갖 서사가 덧대어져서 ’이 불행은 누구도 이해못할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그녀의 행운은 그 불행을 그저 넋놓고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 환자이기 이전에 ’의사‘로서 자신의 책임을 잊지 않았다는 점인 것 같다.
불행에 파묻혀 그저 상황을 탓하고 있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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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하고 일을 벌려놓는 천성이 그녀를 잠깐 괴롭히기도 했지만(하나하나 상대하며 상처받는 일, 의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자신의 불편을 드러내지 않은 일)
그 타고난 천성 덕분에 ‘불행으로 받아들이는건 비효율!’이라고 단번에 ‘탓하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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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일 때 환자들에게 숱하게 일러둔 체크리스트를 자신이 환자가 되면서 까먹거나(그렇게 수술이 미뤄지고) 다시 수술대에 올랐을 때 (합병증이 찾아왔을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다른 일을 해야했던 것,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신도 억울한데, 주변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명해줘야할 때. 꽥 소리지르고 싶은 심정에 그녀는 수없이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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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의사인 그녀‘라서 가능하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라, 정말 ’너도 할 수 있어‘라고 혼신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함께‘라서- 이 명제를 꼭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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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기 확신에 대한 결핍과 끝없는 존재 증명 욕구에 시달리는 그저 한명의 연약한 존재였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에 마구 휘청이는 나라는 인간의 한계는 온통 하찮음과 허무함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런 나를 일어서게 해주는 건 돈이나 명예가 아닌 사람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을 사는 일은 절대로 혼자서 가능하지 않음을, 언젠가는 혹은 꽤 오래 타인의 도움과 배려가 있어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본문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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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지 못해 살았을 때, 아다리가 맞아서 기절한 적이 있다. 숨이 가빠지고 스르르 눈이 감기길 반복.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 때.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의 간절함을 목도하고, 그동안 시큰둥한 내게 집요하게 건넨 말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실없이 농담하며 줌바 시범을 보여주는 작가님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픽 웃었다.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 사람들 때문이다. 단순하게 ’휴,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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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자책 속에서 살아가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불행도 개인에겐 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하고, 무거운 것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고,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고 1일차, 2일차 하루하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승전결 따위, 안일한 회복이라는 시나리오를 비웃듯이 스펙타클했고, 그 불행의 연속이 어지러울 쯤, ’와 나라면..‘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스럽게 말하면, ”야 씨 나 놈은 살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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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앞둔 그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 덕분에 용기가 생겼다.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고통이지만, 그녀의 용감한 도전기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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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표제가 진짜 찰떡이다.
새로운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는 의미와 다시 두눈으로 봤던 세상을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나타나서, 책을 덮고 표지를 가만히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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