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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다의 고독 + 강 죽이는 사회 세트 - 전2권 프로젝트 저항
이용기.정수근 지음 / 흠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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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붙어 있는 스티커도 굳이 깨끗이 떼고, 플라스틱에 붙어 있는 비닐은 오려서 배출한다. 하루 날잡고 이렇게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내가 처음 분리수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월에 갔을 땐 여행, 8월에 갔을 땐 살러 제주도에 갔다.
일회용컵에 커피를 채워넣고 바닷가에 갔다가 쓰레기 버릴곳을 찾아보니, 오늘은 플라스틱을 버리는 날이 아니란다. 토요일이었나보다. 그러곤 이런 복잡한 쓰레기 수거 시스템 때문에 저 바다 위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리고 4개월 뒤에 발령난 제주에서 이 ‘쓰레기 배출’로 나는 꽤나 고생을 했다.
출근하는 오전6시에 쓰레기들을 한보따리 들고 클린하우스에 갔더니 굳게 닫혀있던 문을 보고 망연했던 기억도 난다. 어쩔수 없이 트렁크에 싣고 출근을 했지.
제주의 클린하우스는 오후3시부터 오전4시까지만 열리는데, 그것도 봉지는 목요일 페트병은 월수금으로 요일이 정해져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쓰레기가 1주일 이상 쌓이는건 예사다.
살아보니까 복잡한 쓰레기 수거 시스템은 이해가 됐다. 이미 관광객들이 버리는 너무 많은 쓰레기를 도민들이라도 각자 처리해 버려야 청결이 어느정도 유지가 됐던 거다. 그러곤 관광객들에 대한 분노도 덤으로 심어졌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냐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손도손 쓰레기 버리는 날들을 서로 챙기는 일상이 자리잡는 것이 싫지 않았다.
<강 죽이는 사회> <바다의 고독>을 읽으면서 제주에서 느꼈던 괴리가 떠올랐다. 현실을 알지 못하면 지금 있는 곳이 불타는 줄 모르고, 춤을 추게 된다. 피부에 와닿는 비유들과 정확한 수치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사실은 불구덩이라는 것을 화인시켜준다.
표류하는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냐는 이 순진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간단다”
그렇다. 이 모든 쓰레기와 피해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물론 가해자 피해자를 이분법으로 나누려는 것이 아니다. 강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도 많은 중금속이 발생하고, 양식장을 운영하는 것도 바다에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원인을 파고들자면 시대를 역행하는 정부의 환경정책이나, 환경부의 직무유기 등 그저 인간 존재가 전부 죄다, 싶은 마음이 쉽게 올라온다. 착잡해진다.
여기서 끝나면 이책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2023년 1월까지 낙동강에 잠시나마 새들이 돌아왔던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또 바다를 살리는 방안으로 필자는 ‘어업 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을 제안한다(태국에서 운영중인 어민,어획 등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이런 통합관리 시스템은 지금처럼 (후쿠시마 오염수)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무를 썰어야 한다- 당장은 번거롭더라도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미래를 위험하지 않게 만드려면 말이다.
자신의 생계처럼 이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이야기를 엮어낸 #이용기(바다의고독) 님과 #정수근(강죽이는사회)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맙다. 당장엔 환경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지만, 이런 이야기가 사회 저변에 넓혀졌을 때 세상은 바뀔테니, 나는 그때까지 열심히 플라스틱 통 대신 샴푸바를 쓰고 비닐에 붙은 가격표를 잘라내 배출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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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 누구나, 언제나, 저마다의 속도로
이수인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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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수학(수학공부어플)을 처음 알게 된건, 우리 언니가 본인 광역 ’수해력‘ 전담 교사가 되면서 도대체 수학을 왜 못하는지도 모르겠는 아이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왜 3다음이 4가 아니라 7이 되는지 아무리 말을 해주고, 교구를 이용해도 아이들은 도통 나아지진 않았다. 거기엔 심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말 뇌 자체- 물리적으로 연산이 안되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그때 코로나가 막 시작할 때라 어플을 활용한 코딩 게임을 하고 있던 나에게 알고리즘은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 인터뷰영상으로 데려갔다. 정확한 건 생각나지 않는데, 인터뷰를 보고 눈물이 났던 기억,되게 열악한 환경에 원주민 아이들이 아이패드로 수학공부하는 모습은 생각난다.그리고 토도수학을 경험해본 언니는 [와, 이거 만든 사람 대박이야..]라며 이 회사에서 만든 다양한 어플을 맛보기 시작하고, 가스라이팅급으로 나는 이수인대표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내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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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오로지 팬심으로 서평을 맡겠다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고서야 장애를 가진 그녀의 아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든게 편한 한국 땅도 아니고- 일단 영어부터 배워야 하는 미국에서 이 과정을 겪어왔다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집중이 흐뜨러지지 않았다.

“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계속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실패하면 재도전하겠다고 벼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짜증을 내고 그만두어버린다. 인지적으로 쉽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소근육이 잘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이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으로 화면을 두드리더라도 괜찮아야 했고 화면에 나와 있는 물체를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려 줘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하는 동안 화면이 꺼져도 안되었다. 틀린 답을 골라도 멈추지 않고, 정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할 수 있어야 했다. ‘성공’은 답을 옳게 맞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틀린 답을 입력하더라도 의미가 있고 재미가 느껴지면 괜찮고, 몰입하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결과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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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끊임없는 고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지금의 에누마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는 ‘온 마을’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그 약속에 보답하겠다고 정했다.
문득 “교육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겨버렸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문화예술교육사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재밌어!"를 외치고 있다.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진짜 짜릿하다 . 너-무 말도 잘하고, 눈이 반짝반짝-이게 얼마나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지! 그게 너무 신기한거다. ㅡ그 중에 유난했던 교수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궁금했을때, 그녀가 우리 ’문화예술교육사‘들의 일을 하나하나 테스트해보며(가령 문화재단 지원서 작성부터, 면접을 보고, 같은 수업을 다른 학교에서 들어보고, 발령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과 소통하게 되는지)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겪어보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게 뭔지 ’학생‘의 입장으로 경험하는 노력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의 힘은 여기서 나왔구나ㅡ
교육의 본질은 잘 모르지만, 이런 사람들이 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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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에 ‘위대하다’ 느낄까.
최근에 건축탐구 집에 ‘여백서재’라는 집이 소개되었는데, 2천평이 넘는 땅에 자신의 몫으론 0.8평 남짓한 작은 방하나- 나머지는 오로지 교육받기 힘든 사람들의 몫으로 자리를 내어준 교수님이 계셨다. 보는 내내 ‘와..와….’하며 뭉클했는데-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다르다는걸 인정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그 희망을 믿고, 밀고 나가는건 얼마나 더더 힘든 과정일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시대의 팬 1인으로써, 저 희망을 같이 믿는 내가 되어야겠다고(나라도 저마음을 믿는다면, 조금은 아이들의 행복에 도움을 줄수 있지 않을까? 또 모르지. 이 서평을 읽는 누군가가 희망을 느끼고,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삶으로 진로를 틀지도 모르는 일이다)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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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겐 에누마를!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에겐 이수인대표처럼 ’숭고한 목적의식‘을 지닌 말그대로 ’닮고 싶은’ 멋진 인간들을 많이 보여주는게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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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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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작가들이 극찬하는 <윌리엄 해즐릿>에 대한 서평을 보면서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질투를 느끼며) 책 읽기를 시작했고, 결론- <질투에 관하여> 챕터에서 쉼 없이 뚜까맞았다.하하 이런 것도 질투고, 저런 것도 질투고 진퇴양난이다.
결국에 질투라는 감정은 과도한 자기애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아- 나는 자기애가 넘치는구나(?) 너무 쉽게 납득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자격지심을 안고 <학자들의 무지에 대하여> 챕터를 읽고 - 나는 쉽게도 설득되고 책 속의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옮기는 무지한 학자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질투라는 감정은 잠깐 보류해둘 수 있었다. (이거 책 순서가 일부러 이런거야? 완전 밀당의 천재다).
.
해즐릿의 신랄한 비평에도 기분이 나빠지기는 커녕(아 물론 순살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평했던것처럼 “그래,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 이상하게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혐오, 죽음, 질투,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 학자들의 무지, 맨주먹 권투
이런거 말고, 그가 생각하는 ‘사랑’ ‘아름다움’ ‘우정’ ‘숭고함’ 이 너무 궁금해졌다.(다른 글 더 없나요?)
.
거미가 기어간다. 이 카펫을 들어올려야 거미의 길을 막지 않을 수 있는데, 그는 여기서 ‘혐오’의 감정을 떠올린다. 자신이 거미를 혐오스러워한다는게 아니라, 이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거미를 잡아 죽이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혐오란 무엇인가 궁금해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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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걸 떠올리는 해즐릿을 상상해보면,
일단 거미를 죽이려드는 사람들은 왜 그런건지 궁금해하는것 아닌가? 거기엔 눈 앞에 있는 생물에 대한 연민- 그리고 혐오라는 감정을 갖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걸텐데, 뭉뚱그리자면 생명에 대한 애정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묘하게 따돗하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밑줄을 많이 그었던 챕터가 <학자들의 무지에 대하여>였다. 결론은 "책 좀 그만 읽고 움직여 이 바보야!"였다.
그렇다, 나는 우리 삶에 필요한 도구, 삶을 지탱하는 것들(물리적인 것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말만 할 줄 알지, 쇠를 달굴 줄도, 전기를 연결할 줄도 모른다. 이런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지??
자연스럽게 '조연'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언니네 산지직송에서 안은진 배우가 함께 일한 할머니의 성함을 물어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때 순식간에 주인공이 바뀌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보이고,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우리 삶을 떠받치는 것들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내멋대로 단순하게 치부해왔구나- 생각했다.

<학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삶을 내 발로 살아야 한다.

"인생의 실천과 경험이 이론보다 낫다는 걸 그는 이해할까?"

"무엇보다도 어떤 시대에나 대중에게는 학자에게 없는 상식이 있다. 대중은 스스로 판단할 때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만 눈먼 안내자에게 판단을 일임할 때는 그릇된 길로 간다. "

"책은 자연을 바라보는 안경으로 쓰이기보다는, 시력이 약하고 나태한 성향의 소유자들을 위해 자연의 강렬한 빛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차단하는 막으로 곧잘 쓰인다"
.
공부 그만! 이라고 소리치고 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권투나 레슬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먹이 눈앞을 가르는 두려움을 내가 이겨낼수 있을까.(내가 이런 걸 가정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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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생각으로 이미 권투 한판 끝냈다. 난 아마 못할것이다-라고 쉽게 결론을 낸다. 지긋지긋한 [학자]의 굴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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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즐릿 그가 말하는 순서대로 나는 혐오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거슬리는 사람, 무지한 학자, 죽음을 무서워하는 사람, 권투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책으로 끝내지 말자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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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열아홉 해의 생일선물과 삶의 의미
제너비브 킹스턴 지음, 박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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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책을 받았는데, 단숨에 읽어버렸다.
타이밍이 묘했다. 어제 아침에 언니가 전화로 울었다.
엄마 꿈을 꿨다고 했다. 엄마가 "죽기전에 꼭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고, 언니도 "나도 엄마 죽기전에 꼭 안아주고 싶었다"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잠에서 깨니까 공허함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했다고 한다.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이 상실감을, 3년이 된 지금 나는 조금씩 다듬어가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길 해주고 싶어?"
그럴 때 이 책이 도착한거다.
.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열아홉 해의 생일선물과 삶의 의미.
제너비브 킹스턴 자신에게 남긴 엄마의 선물이다.
엄마 없이 초경을 맞이할 딸에게, 운전면허를 따는 딸에게, 결혼하는 딸에게- 인생의 온갖 이벤트를 떠올리며
죽음 앞에 선 엄마는 필사적으로 편지를 쓰고, 녹음을 하고, 영상을 남겼다.
그 선물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들이 와닿는다. 그저 눈물로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혹시나 엄마가 남긴 선물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할 딸에게 '이건 그저 물건이다, 엄마가 아니다' 라는 음성메시지까지 남겼다..)
상실감에 허덕이며 고립되어가는 딸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수 있게 만드는 선물.
.
끅끅 울어버린 건, 들켜버린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나를 새로 발견해서였을까.
죽음이 이렇게나 느리고 지루할지 몰랐다는 열한살 그웨니의 마음을 서른하나의 나도 똑같이 느껴버렸기 때문인지도-그 나쁜마음을 누군가 알아줬다는 눈물.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딸의 열아홉해의 생일선물을 챙긴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걸 알고, 현명했던가 뒤늦게 알아버린 나의 무지를 후회하는 눈물.
엄마의 어린시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그웨니를 보며 나도 그 생각에 고통스러워했는데, 저 어린 아이가 같은 감정을 느꼈을 생각에 너무 '가엾어서' 흘리는 눈물.
그리고 우리엄마는 31년을 나와 함께해줬다는 안도감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
침대가 엄마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휠체어 하나에 의지해 높은 턱은 엄두도 못내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 코에 자란 암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까봐 걱정했던 엄마, 욕창을 발견하고 나서야 엄마가 정말 한순간도 움직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일 등
.
그녀가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겹쳐지는 기억들이 많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우리 엄마는 엄마 자신을 이런 사건들로 기억하지 않길 바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웨니의 엄마가 그웨니에게 줬던 선물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후련했다.
구원받았다고 할수 없지만, 엄마가 저 모녀의 목소리를 빌려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
내가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엄마는 후회하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그웨니의 엄마가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한 말과 자식들을 위해 행동한 것들이 오버랩되면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고, 엄마없는 삶을 살아갈 나에게 6개월의 간병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 너를 안아주고 너와 함께 울고 웃으며 너와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작은 변덕쟁이 요정이 어느새 아름다운 여자로 자라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 왜 이런 기쁨을 너와 함께 누릴 수 없는지, 왜 그 모든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과 화해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이 편지를 쓰는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운지 넌 아마 상상하기도 힘들 거야. 엄마가 저지른 실수들에 대해, 그리고 그걸 만회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며서 지금도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엄마 자신에 대해 너무나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어. (중략) 그웨니, 너를 남겨두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구나. 엄마를 용서하렴. 부디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에 네게 전해지길 바란다. 편지와 선물 상자가 엄마를 대신하거나 엄마를 잃은 네 상실감을 보상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엄마는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꼭 해주고 싶었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단다. 엄마는 항상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온 힘을 다해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언제까지나. -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본문364쪽)
.
#마지막선물 #제너비브킹스턴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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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베레나 카스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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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감상평: 아 이 책도 이러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읽으면 좋겠다 정말로.
TMI: 나는 을유문화사 책을 좋아한다. 탁월한 번역 때문이다. 표제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클라스다 .

이 책은 한문장 읽고 생각하고, 한문장 읽고 멍해지고, 한문장 읽고 엄마를 떠올리고,
별 헤는 밤 같은 이야기였다.
(자꾸 주장하는 글쓰기처럼 결론 지어버리니.. 스포를 피할 수 없다)
.
우리 모두 늙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점점 의존적으로 변화하고, 질병이 생기고, 쇠약해진다.
그 무력감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는게 일반적인데, 그러지 말자고- 사실 그거 아니라고 화자는 당당하게 말한다
“이처럼 잃는 것이 많다고 해도 노년기에 놀라울 정도로 젊은 시절만큼 행복감을 느끼며, 때로는 행복감을 더 느끼는 경우도 있다.”
왜 그걸 수치로 느끼는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려면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하는지, ‘더’행복할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는데 가장 주목할 덕목이 바로 “유연성”이었다.

노년기의 유연성이란 ‘의식적인’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약점과 부족함을 참작하고 완벽주의와는 거리를 두며, 필요한 경우 양보하고 넘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확실하게 더 탄탄한 발걸음을 찾도록 해 준다. 또한 이런 유연성을 갖게 되면 삶 속의 다양한 변화를 침착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본문25쪽

나이가 들수록 내게 쌓인 데이터는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완고하게 만들고,
안다는 것, 즉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살고 싶어한다.
몸 사리게 된다는 거다.
.
유연함 즉 창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면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럼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던진 어퍼컷에 타격감은 줄어든다.
(사실 이건 어떤 세대에게나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다만 노화에 의한 ‘포기’가 아니고, 불안에 의한 회피가 아니다.
유연하다는 건 진짜 강해진다는 것이다.
.
한편으로 나는 참 쉽게도 노년기를 ‘일반화’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아이같다고 생각하는데,
나에 대한 정체성이 이렇게 일관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80이 되어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르신들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렇다, 노년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
노화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야기는 결국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인생의 종착점인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죽음에 아주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노년기의 발달 과제”(115쪽)라고 이야기한다.
루돌프 알렉산더 슈뢰더의 시가 와닿았다.

“늙은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밤과 그 별들과 친구가 되어야 할 시간이”
자신의 죽음에 익숙해짐으로써 삶의 특별한 순간들, 이를테면 봄에 느낀 기쁨, 오래전에 겪은 강렬한 경험에 대한 기억 등을 다시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중략)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노년기에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을 능가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116쪽)

죽음을 터부시하면 아까 말한 완고하고, 소심하고, 몸사리는 노화를 피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방법을 설명했는데,
특정 주제를 가지고 회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어땠는가? 위기의 순간에 내 모습은 어땠는가? 나의 주변 사람들은 어땠는가?” 등 이런저런 상황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현하며 서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죽음과 덧없음을 마주하게 되며,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좋은 일을 베풀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 줄 수도 있다.
대화할 수 있는 소모임을 권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서로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한다고.
그러면 공동으로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잊힐 위기에 처했던 보물 같은 기억의 접점들이 수집된다고 - 이야기한다.
천천한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와의 채팅에 급하게 썼던 문장은 “아빠 궁금해하기”였다.
갑자기 슬럼프라며 전화해온 아빠가 떠올랐다.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던가-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매일 전화하며 내 이야기 좀 그만해야겠단 생각과
아빠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
노화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지만 그 과정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정말 노력이 필요하다. 왕도 따위는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매일 이별하는 자세로 살아갈 때, 어떤 미련도 헛된 기대도 없이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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