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약해집니다. 그리고 미국 금리도 낮아지죠. 달러 부채 부담이 줄어든 상황에서 신흥국의 달러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책도 고려됩니다. 그리고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신흥국이 성장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신흥국의 성장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지 않았을까요? - P309

신흥국에 좋은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고전하고 있던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바닥을 찍고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죠.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전 세계에서 원자재를 사들인 것이 원자재 가격 상승의 첫 번째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금리가 인하되면서 나타난 달러화의 약세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더욱 자극하게 되죠. - P309

당시 신흥국과 산유국들은 벌어들인 달러화를 안전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는 것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미국에 돈을 빌려주고 국가의 차용증, 즉 국채를 받는다는 겁니다. 미국 국채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건 비록 빌린 돈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달러화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에 돈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연준의 금리 인하로 이미 돈이 많이 풀려 있습니다. 그리고 신흥국과 산유국의 미국 국채 투자로 인해 미국으로 자금이 밀려들었죠.
미국 내 자금 공급이 넘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돈이 어딘가를 향하게 되지 않을까요? 네, 그 자금들은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초토화되어 있던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각종 규제 완화 등으로 인해 조금씩 열기를 더해 가고 있던 미국 주택시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주택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 P313

신흥국과 산유국은 상당한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달러를 미국에 빌려주고 국채를 받았습니다(미국 국채에 투자했습니다). 미국 내 달러 유동성이 넘치면서 이 돈이 미국 주택 시장을 향했고,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미국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난 겁니다. - P314

그러면 미국의 소비가 늘어나니, 즉 시장에서 사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신흥국과 산유국들은 미국에 더욱 많은 수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달러를 더 많이 벌고, 그걸로 미국 국채에 투자를 하고, 미국에 다시 돈이 넘치고, 주택 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늘고, 산유국이 수출을 늘리고, 달러를 더 벌고,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자, 물건을 만든 A가 B에게 물건을 팝니다. 돈이 없던 B는 더 이상 A의 물건을 살 수 없었지만, 다행히 A가 B에게서 받은 돈을 다시 A에게 빌려주면서 계속 A의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죠. - P315

미국의 무역 적자가 늘고,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빌려오면서 재정 적자도 늘어납니다. 국채를 많이 발행한 만큼 그 국채 보유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도 크게 늘어나겠죠? 그 이자 역시 국가가 지불해야 하니 미국의 재정 적자는 더욱더 크게 늘어날 겁니다. 신흥국과 산유국의 흑자가 계속해서 쌓이는 만큼, 미국의 재정및 무역 적자 역시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 P315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들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혹은 조금 디테일하게 미국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해 파생상품의 부실이 현실화되었고, 금융기관들의 파산 우려가 커지며 나타난 신용 경색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도 하십니다. 이는 미국 금융기관의 부실은 설명할 수 있어도 당시 글로벌 경제 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신흥국과 이들 국가들을 둘러싼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환경을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줄어든 소비를 메워줄 수 있는 신흥국의 성장은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일정 수준 해결하면서 이후 금융위기 극복의 핵심이 되죠.  - P352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소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였던 미국이지만 양적완화 및 은행 구제 등의 과감한 정책 도입으로 미국 내 소비 위축의 충격을 최소화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과감한 부양책을 통해 소비를 확대해 나가게 됩니다. 미국의 소비 위축은 예상보다 적은데, 신흥국의 소비 확대가 예상보다 강했다면 전 세계 소비는 탄탄하게 유지되지 않았을까요? 네, 2009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경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위기의 파고에서 벗어난 것이죠.  - P376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의 한 축이었던 중국은 2010년 초부터 긴축으로 빠르게 전환했습니다. 다른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비슷했는데요,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제1차 양적완화는 예정대로 2010년 4월에 종료되죠. 미국의 은행 시스템에 거대한 자금을 밀어넣어주는 양적완화가 2010년 3~4월에 걸쳐 마무리된 겁니다. 앞의 중국 케이스와 합치게 되면 중국과 미국이 2010년 상반기 동시에 경기 부양에서 어느 정도 손을 떼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기가 자체적으로 강해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중국과 미국의 쌍끌이 경기 부양, 이른바 돈 풀기의 힘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돈 풀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취약한 곳부터, 가장 어렵게 버티고 있던 곳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겠죠.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그리스입니다. 유로존 국가 중에서도 정부 부채가 가장 큰 편에 속했는데, 금융위기 이후 성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양적완화 등의 돈 풀기가 사라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돈이 마르자 가장 먼저 흔들렸습니다.  - P414

유럽 재정위기 이후로도 이런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이어졌죠.
상당한 경기 부양을 단행하면 그 당시에는 효과가 있지만 해당 부양책을 거두어들였을 때에는 다시 성장과 물가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반복했습니다. 너무나 연약해지고 쉽게 올라오지 않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파수꾼이라고 불리우던 연준도 ‘인플레이션‘보다는 장기적인 성장 충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본식 ‘디플레이션‘으로 초점을 옮기기 시작했죠. 그리고 구조적 장기 침체 우려가 커져가던 2016년 10월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옐런은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를 주장하게 됩니다. - P422

고압경제는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의 채용을 늘리게 되면서 일손을 구하기 어렵게 되는 아주 강한 고용시장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기가 조금 좋아지고, 이로 인해 물가가 조금 올라오면 바로 경기 부양을 포기하는 기존의 정책에서 벗어나 과감한 경기 부양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오버 슈팅, 즉 목표치인 2퍼센트를 일정 기간 넘어서도 내버려 두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한 겁니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그런 고압경제의 효과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하게 될 것이고, 이는 노동 시장을 더욱 뜨겁게 달굴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마지막 문단에서 옐런의장은 금융위기 이후 총수요와 기업들의 투자 능력이 모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합니다. 네, 이런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강한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 P425

그래도 2020년 초 정도되니 미국의 실업률도 5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내려오고, 미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메가톤급 악재가 바로 코로나19였습니다. 연준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올렸던 것들이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과감히 행하지 않는다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미국 연준과 정부는 지난 챕터에서 보셨던 것과 같은 강력한 경기 부양에 돌입했죠. 그리고 과도한 부양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던 2021년 초, 연준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인플레이션의 상승이 두려우니 바로 제압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섣불리 부양책을 내리면 다시 디플레이션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 P426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이기에, 그리고 그 반대편인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워낙에 컸기에 미국 정부나 연준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뒤늦게 금리 인상을 시작한 만큼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죠. 2022년 3월 0~0.25퍼센트였던 기준금리는 2023년 3월 FOMC의 추가 금리 인상으로 4.75~5.0퍼센트로 인상되었습니다. 딱 1년 만에 4.75퍼센트의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된 것이죠.
실제로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렸던 198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의 인상입니다.  - P439

1970년대 후반 연준 의장으로 폴 볼커(Paul Volcker)가 취임합니다. 볼커는 역대 미국 연준 의장 중 가장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운용한 인물이죠.
미국 중앙은행에서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긴축을 선호하는 인물들을 매파(Hawk), 유동성을 풀어주는 정책을 선호하는 인물들을비둘기파(Dove)라고 부릅니다. 폴 볼커는 ‘매파 중의 매파‘로 인식되는데 그는 취임 일성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물가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물경기를 박살 내는 겁니다. 표현이 조금 자극적이긴 한데요, 경기가 무너지게 되면 실물경제에서 수요가 사라지게 됩니다. 가격은 하늘에 떠 있는데 수요가 사라지게 되면 가격이 급격하게 추락하겠죠. 볼커는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볼커는 당시 미국 기준금리를 20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립니다.
미국 기준금리가 20퍼센트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는 이보다도 훨씬 높았겠죠. 당시 미국 중소기업의 40퍼센트가 파산하는 등 미국 경제는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게 됩니다. 미국 실업률도 급등했죠. - P455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제1차, 제2차 석유파동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석유파동 같은 것이 없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볼 수 있죠. 1960년대 후반부터 방만한 재정 지출, 즉 경기부양과 맞물려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제압하지 못한 채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이어지다 보니 인플레이션은 고질병이 되어버렸고, 그 고질병으로 수차례 문제가 재발했죠. 우리는 지금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하나의 고질병처럼 자리 잡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고질병이 되면 당장의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것도 힘들 뿐 아니라 이후에도 언제든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을 테니까요. - P457

결국 SVB의 파산원인을 되돌아보면 주요 고객층인 IT벤처 산업의 호황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과도한 낙관론, 은행 규제 완화와 같은 제도 변화로 인한 극단적 장단기 미스매칭, 그리고 수년간 볼 수 없었던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라는 환경의 변화로 정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낙관론, 규제 완화, 그리고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앞서 다루어왔던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의 원인과 매우 비슷하죠.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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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 즉 모기지 대출을 여러 개 모아서 주택저당증권(MBS)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MBS를 모으고 난 후, 차등의 순위를 두어서 선순위와 후순위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게 되는 것이죠. 선순위 CDO는 매우 안전한 채권입니다. 이런 선순위 채권에 대해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 회사는 AAA 등급을 부여하는데, 이른바 ‘만들어진 AAA 등급 채권‘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AAA 등급 채권을 유명 보험사가 신용부도스와프(CDS)를 통해 보증까지 해주는 겁니다.  - P289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AAA 채권에 대한 수요가 폭발해 있습니다.
그런데 AAA 채권의 공급은 찾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AAA 채권이 마구 만들어져서 쏟아집니다. - P289

1987년부터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2006년까지, 부동산 시장은 흔들림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줍니다. 
꾸준한 상승세 이후 2000년 초반에는 주택 가격 상승세가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주식시장이 크게 무너진 데 반해 주택시장은 탄탄한 상승 흐름을 이어가니 부동산 투자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보다강해졌을 겁니다. - P279

높아져 버린 금리와 무너지는 주택 가격이라는 더블 콤보 펀치를 맞자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출이자 납입을 하지 못하고 연체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던 선순위 등급의 CDO 채권 역시 충격을 받게 된 겁니다. - P293

메릴린치는 당시 미국 3위의 투자은행이었고 리먼브라더스는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이었습니다. 3위와 4위 투자은행이 같은 날짜에 파산한 겁니다. 당시 5위는 베어스턴스라는 회사였는데요, 6개월 이전인 2008년 3월에 무너지면서 JP모건에 흡수 합병되었죠. 리먼브라더스는 인수해 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파산했고, 메릴린치는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AIG 역시 화두였습니다. AIG는 CDS 계약, 즉 수수료를 받고 보증을 해주는 사업을 확대했는데, 당시 4410억 달러어치의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보증이었죠. 그런데 많은 채권이 무너지게 되면서 AIG가 보증해 줘야 하는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AIG가 미국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겁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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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이전에 한국은 환율이 매우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관리변동환율제, 즉 안정적인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죠. 그러니 달러 빚을 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던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달러당 1000원 밑에서 안정되어 있던 환율이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말~1998년 초 달러당 2000원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당연히 달러 부채를 크게 늘려 놓았던 기업들의 빚 부담이 늘었고, 이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 겁니다. - P116

관리변동환율제하에서는 관리 당국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하죠.
달러가 계속 강해지면서 환율이 튀어 오르는 것을 막으려면 외환보유고에 있는 달러를 인출해서 외환시장에 대규모로 매각, 달러 가치를 눌러줘야 합니다. 그런데 달러 강세가 너무 강하면 방어가 어려울수 있죠. 되려 환율방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소진되는 시그널이 나타나면 국내 달러 부족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크게 느낀 외국 투자자들이 보다 빠르게 이탈하고, 그 과정에서 달러 가치가 더욱더 오르는 부작용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 P131

우리나라의 국채 위상이 2010~2012년 있었던 유럽 재정위기 이후 크게 개선된 겁니다. 그리고 글로벌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죠. 즉, 글로벌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한국 국채 쪽으로 자금이 밀려 들어오게 되는겁니다. - P149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크게 높아진 외환보유고와 낮아진 단기외채 비율, 2014년 이후 획득한 순 대외 채권국 지위, 그리고 한국 국채의 위상 변화 등은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낮춰주는 요인입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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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는 불가능한 삼위일체에서 두 가지를 택하고 있었습니다. 관리변동환율제를 적용하면서 ‘안정적인 환율‘을, 그리고 ‘독자적인 통화 정책‘을 택하면서 국내 가계 저축을 기업 투자로 끌어내기 위한 차원의,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차원의 고금리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가졌으니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게 바로 ‘자유로운자본 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점진적으로나마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했죠. 금융시장의 개방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참고로 외환위기 이후 1999년 2월에 국회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했는데, 당시 제시되었던 수많은 원인 중 하나로 ‘금융시장 개방‘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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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겠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우리나라 경제는 큰 변화를 겪었죠. 외환위기로 인해 기업의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축소되었고, 이는 실업 대란과 함께 장기 저성장 기조를 낳았습니다. 저성장을 메우기 위한 유동성 공급이 있었지만, 주요 자금의 수요처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투자 대출 수요가 줄어들면서 금리 역시 하락세를 나타내게 되었죠. 기업으로 흘러가지 못한 자금이 가계와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가계부채의 급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야기했습니다. 기업의 만성적인 투자 부진, 일자리 부족, 가계 부채 증가, 그리고 부동산 버블 우려에 이르기까지………. 지금 겪고 있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 P39

일본 내 금리가 워낙에 낮다보니 이들도 일정 수준 외국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베 대지진이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상당히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 줘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죠. 특히 손해보험사들의 경우 큰부담을 느꼈을 겁니다.
상당한 양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꽤 많은 자금이 외국에 투자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돈을 일본으로 회수해 와야겠죠. 외국에 투자했던 자산들을 매각하고, 매각 후 받은 외국 돈을엔화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엔화로 환전한다‘라는 말은 결국 달러화와 같은 외국 통화를 팔고 엔화를 매입하는 것입니다. 보험사들은 상당량의 달러를 팔고 그만큼 엔화를 사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사들인 엔화를 일본으로 회수했죠. 이렇게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엔화는 초강세를 보이게 됩니다.
고베 대지진 이전부터 엔화 강세를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미 달러-엔 환율은 10년 가까운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었죠.  - P46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내려가게 되면 굳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지 않아도 걱정거리인 인플레이션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달러 강세가 인플레이션을 제압해 준다면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미국의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죠. 참고로 당시의 달러 강세는 미국 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그리고 낮아진 미국의 금리는 미국의 내수 성장을 촉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닷컴 버블로 이어지게 되죠. - P50

엔화 강세로 인한 수출 호조로 환호성을 지르던 한국 경제에 엔화 강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소식만한 낭보는 없을 겁니다.
수출 실적이 더욱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당연히 수출기업들은 투자를 늘려서 생산 라인을 늘리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형태의 투자를 설비투자라고 하죠. 첫 번째 챕터에서 외환위기 이전에 설비투자가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바 있습니다.
엔화 강세가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당시 한국 기업들은 엔화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아니 적어도 엔화가 약세로 전환되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죠. 그런데 분위기가 크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1995년 4월 역플라자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엔화가 급격한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앞서 살펴본 〈그래프 4>를 다시 보시면 지속 하락하던 달러・엔환율이(엔화 강세) 1995년 4월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상승(엔화 약세 전환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엔화 강세에 힘입어 호조세를 이어가던 한국 수출에는 상당한 악재가 되지 않았을까요?  - P55

실제로 엔화 약세는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로 인해 한국의 무역 적자가 심화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지게 됩니다. 1996년 한국은 당시로는 사상 최대였던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 적자를 기록하며 외환위기의 씨앗을 품게 되죠.  - P57

1994~1995년이 엔화 강세 및 반도체 호황 구도였다면, 1996~1997년에는 엔화 약세 및 반도체 불황이라는 정반대의 구도가 펼쳐졌죠. 이는 분명 우리나라의 수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P78

‘자유로운 자본 이동, 독자적인 통화정책, 안정적인 환율‘이 세 가지가 국제 금융에서 각국이 고려해야 하는, 그리고 모두 각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불가능한 삼위일체‘라고 불립니다. 어떤 국가도 세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뜻이죠.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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