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지상 과제는 아시아의 은 경제에 승리하는 것이었다. 영국에는 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은본위제를 금본위제로 전환하고 파운드 지폐를 세계 통화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다. - P146
1870년대 이후 금과 자국 지폐의 무제한 교환을 보증하는 나라가 늘면서, 세계는 은화 시대에서 금본위제하의 지폐 시대로 전환했다. - P151
영국은 세계 각지에 투자한 자금에서 나오는 이자·배당금 수입, 인도나 동아시아 국가, 오스만 제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흑자로 유럽 및 미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는 방식으로 국제 수지의 균형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런던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돈과 물자의 흐름이 완성되었다. - P154
명·청 시대에는 신대륙에서 들어와 축적되어 있던 막대한 양의 은을 조세 납부에 이용했다. 농민이 곡물을 팔아 받은 은을 조세로 내는 시스템으로, 은은 제국 통치의 근간이었다. 이 근간을 뒤흔든 것이 영국과 미국 상인에 의한 아편 무역이다. 아편의 대가로 많은 은이 국외로 유출된 탓에 은값이 급등했고 이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은 점차 궁핍해졌다. 청나라는 민간에서 사용하던 동전이 아니라 제국 통치를 지탱하던 은값의 급등으로 쇠망에 이른 것이다. - P156
1861년에 발발한 남북 전쟁을 ‘노예 해방 전쟁‘ 이라며, 북부의 전쟁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기술한 책이 많다. 하지만 실제 남북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호관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합중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남부의 11개 주가 독립하려 한 전쟁이었다. - P161
전쟁 중이던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서부의 여러 주를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관심을 보일만 한 홈스테드법Homestead Act(자작농 창설법)을 내놓았다. 5년간 서부 개척에 힘쓴 21세 이상의 남성 호주에게 등기 비용만 부담하면 20만 평의 국유지를 분양한다는 법률이었으므로, 미국뿐 아니라 궁핍한 유럽인들에게도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1870~1890년대에 걸쳐서 유럽은 장기 불황 상태였던 탓에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만 고생하면 대지주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아메리칸 드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남북 전쟁 후유럽 출신 이민자가 대거 몰려오면서 25년 만에 서부의 미개척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미국이 변한 것이다. 20년간 계속된 유럽의 대불황 시대에 뜻밖에도 미국 서부가 유럽의 실업자와 과잉 자본의 수용처가 되어 단기간에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 P168
제1차 세계대전은 일반 시민을 끌어들인 ‘총력전‘이 되었고, 막대한 전쟁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해 ‘유럽의 시대‘는 급격히 붕괴했다. 파운드 지폐가 세계 경제를 견인하던 시대 또한 국채의 과잉 발행으로 영국 재정이 파탄을 맞으면서 무너져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공장을 풀가동해 군수물자를 유럽에 수출함으로써 운 좋게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급부상한 나라가 바로 신흥국 미국이다. 금이 무서운 기세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유럽의 통화와 달리 금과 태환할 의무가 없는 달러(연방준비권)가 점차 세계 통화로 떠올랐다. - P179
유럽 국가 중에서는 독일의 경제 상황이 심각했다. 대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 은행이 자본을 회수한 탓에, 4년간 공장의 60퍼센트가 도산했다. 1932년에는 실업률이 약40퍼센트, 실업자는 600만 명 이상이라는 절망적인 상태가되었다. 하지만 의회는 효과적인 정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희망을 잃은 대중과 몰락한 중산계급은 나치스Nazis 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 P193
통화 발행량이 늘면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기 마련이지만 빈틈없는 월가는 ‘통화의 이중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대처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돈의 실제 가치는 점차 감소하는 반면, 자산가치는 증가한다. 따라서 자금의 흐름을 ‘돈으로 돈을 불리는 시스템‘인 ‘투자‘ 쪽으로 돌려 인플레이션을 상쇄하려는 계획이었다. 그 결과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 P211
1980년대에 미국은 이 기술을 폭넓게 응용해, 주택 담보 대출, 자동차 담보 대출, 신용카드 채권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증권을 만들어 수많은 투자 기회를창출해냈다. 돈을 불리는 도구와 기회가 단숨에 늘어난 것이다. 금융 상품과 금융 파생 상품이 잇달아 만들어졌고, 물품매매에 사용되는 통화량을 훨씬 초과하는 통화가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통화, 상품, 증권의 선물거래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여기에 인터넷까지 보급되면서 세계적 규모의 대금융 시대가 막을 올렸다. - P212
금융으로 돈을 벌려면 밑천이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달러 약세에서 달러 강세 쪽으로 방향키를 전환하고, 높은 국채 이자로 전 세계에서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급격하게 달러 환율이 폭등해 1995년에 달러당 79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3년 후에는 147엔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호경기에 취해 있던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아시아 금융 위기다. - P220
하지만 최근에는 채굴 전용 대형 컴퓨터설비를 갖추고 24시간 풀가동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채굴 농장mining farm‘ 13개 사가 비트코인의 약 80퍼센트를 생산한다고 한다. 과점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비트코인은 ‘민주적 화폐‘ 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슬로건은 이미 무너진 셈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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