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왕조를 이어받은 청 왕조1616~1912도 지정은이라는 은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하지만 징세 시스템이 세계 시장과 연동된 은에 의존하게 된 것은 제국의 지배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훗날 아편 전쟁 전후에 발생한 은의 대량 유출과 이에 따른 은값 폭등으로 청나라가 맥없이 붕괴한 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 P98

멕시코 달러는 세계 최초의 세계 은화로서 유럽과 아시아대륙에 널리 유통되었다. 한 예로, 태평양을 횡단해 필리핀 마닐라로 운반된 멕시코 달러는 비단, 도자기와 교환되어 명나라에 대량으로 유입되었고, 평량 화폐(거래할 때마다 일일이 감정해야 하는 화폐)가 되어, ‘원‘ 혹은 ‘묵은‘이라 불렸다.
이 명칭을 바탕으로 한국의 원(둥글다는 뜻), 중국의 위안(원과 똑같은 음. 글자가 복잡해 ‘元‘으로 간략화), 일본의 엔(원과 똑같은 뜻)이란 통화의 이름이 탄생했다. 동아시아의 통화명은 공통으로 멕시코 달러라는 주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달러dollar 의 어원은 16세기 이후 유럽의 표준 은화였던 보헤미아산 대형 ‘탈러 은화‘ 다. 탈러 thaler란 은이 채굴되는 ‘골짜기‘란 뜻이다. - P99

영국의 튜더 왕조House of Tudor 1485~1603에서는 바이킹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략선Privateer‘ 이 크게 활약했다.
사략선은 국왕으로부터 적국의 배를 빼앗을 권리를 인정받은 일종의 해적선인데, 이 배가 은을 운반하기 위해 대서양을 왕래하던 스페인 선박을 습격한 것이다. 대형선, 무기,
승조원, 자금, 장물 시장, 후원자(포로가 됐을 때는 석방을 위해 노력) 등으로 구성된 사략선 조직은 고수익이 기대되는 합법적인 해적이었다. - P110

영국이 세계 역사상 최대 제국이었던 19세기에는 특정 민간 상인이 국가로부터 위임을 받아 지폐를 발행했다. 현재 우리의 생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프랑스의 중앙은행,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FRB 등은 모두 민간 은행이다. 돈의 발행권을 특정 상인(은행)이 쥐고 있고, 국가는 여기에 법화로서의 유통력을 보증하는 시대가 오랜 기간 이어졌던 것이다. - P119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조폐국 장관이었던 아이작 뉴턴에 의해 금본위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 P122

프랑스 혁명은 본래 정부의 재정난에서 비롯되었다. 혁명 직후, 정부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국유화된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담보로 아시냐Assignat(이자가 5퍼센트 붙은 채권)를 발행했다.
아시나는 교회의 재산을 담보로 하는 일종의 약속어음으로, 혁명 때 100만 명을 무장시키는 과정에서 발행량이 늘어 실질적으로는 지폐로 바뀌었다. 하지만 총재 정부가 혁명을 수습해 통제되었던 경제가 풀리자 총재 정부는 아시냐를 과도하게 계속해서 찍어냈다. 이 일이 한몫해 1795년에는 세계 최초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결국 아시냐는 액면가의 고작 1,000분의 3의 가치밖에 안 되는 완전한 휴지 조각으로 변했고, 이듬해에는 발행이 중지되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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