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다투다가 하나 되는 무대 클래식 아고라 2
일연 지음, 서철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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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나이 50이 다 되어서 이제야 처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이 책을 손에 잡고서야 '유사'의 뜻이 '남겨진 이야기'라는 뜻이고, 그 앞에 전제되는 책이 '삼국사기'여서 '삼국유사'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 저자가 밝혔듯이, 역사를 보는 눈은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하나의 해석, 하나의 관점만이 '정답'으로 군림된다면 진정한 실체 또는 진실과는 거리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교과서를 읽은 기억을 더듬어보면, '삼국사기'는 왕과 귀족 중심의 시각에서 씌여진 역사서이고 그에 비해 '삼국유사'는 평범한 대중들의 시각을 반영한 책이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나 개인적으로는 삼국유사 이 책의 제7편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 귀진의 집에 욱면이라는 여종이 있었다.

욱면은 귀진이 미타사에 갈 때면 따라가,

마당에서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대로 따라 했다.

귀진은 욱면이 주제 넘는 짓을 한다고 화가 나서,

매일 곡식 3~400kg씩 주며

저녁까지 다 빻으라고 시켰다.

욱면은 저녁마다 다 빻고는 미타사에 가 밤낮으로 부지런히

염불했다.

'내 일 바빠 대갓집 일 서두른다.'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귀진은 마당 양쪽 끝에 긴 말뚝을 박아 욱면의 양쪽 손바닥을

노끈으로 꿰어 합장하게 했지만,

욱면은 그런 벌을 받으면서도 즐겁게 노닐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때마침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 염불하시오."

미타사에 모였던 무리는 이 소리를 듣고,

여종 욱면을 법당에 들여 수행하게 했다.

380쪽

삼국시대는 노예제 봉건사회다. 신분이 철저했고, 차별과 불평등이 상식이었다. 그런 시기에 성별에 따른 차별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종이 귀족을 넘어 먼저 성불하는 위와 같은 이야기는 가히 혁명적이고 통쾌하다.

최근 3년 사이에 내 마음에 불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커진다. 원래의 깊은 뜻을 잘 기려 일상생활에서도 몸도 마음도 가볍고 즐겁게 그리고 어리석지 않게 지내고 싶다.

미륵보살의 "내가 훗날 말세가 되면 속세에 와서 신도들을 다 구원하겠지만, 말 타고 우쭐대는 남자 승려만을 만나지도 않겠다."는 말씀 속에 동물에 대해서도 똑같은 귀한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귀하고 엄한 가르침을 배운다.

하루에도 수 십 번 잘못과 실수와 더러운 생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거칠다. 그래도,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계속 상기하고 노력하고 알아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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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의 불꽃 - 청년 전태일의 꿈 근현대사 100년 동화
윤자명 지음, 김규택 그림 / 풀빛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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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11월 13일의 불꽃 청년 전태일의 꿈

저자 윤자명

그림 김규택

출판 풀빛

출시 2022.11.13.

“여기 있는 순옥이는 열세 살짜리 시다입니다. 초등학교 내내 우등생이었지만 하루 열다섯 시간 노동에 묶였으니, 글 한 자 볼 새가 없고 햇빛 한 줄기 못 쪼입니다. 그러니 앞길이 불 보듯 훤합니다. 무식한 채로 병만 얻게 되겠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근로기준법대로 노동자의 인권을 찾고, 권리를 세워야 합니다.”

출판사 풀빛의 ‘근현대사 100년 동화’는 근현대사를 동화로 담은 시리즈입니다. 한국사에서 다른 연대에 비해 근현대사에 관한 창작물 비중이 많지 않음에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리즈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사건들을 아우르며 제주 4.3사건, 6.25전쟁, 4.19혁명, 1970년대 노동 운동, 5.18 민주화 운동으로 마무리 됩니다.

오늘의 책은 70년대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 문제 등 부당한 처우에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던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투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 속 또 다른 주인공 순옥이를 통해 당시의 시대 상황과 노동자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삶을 오늘 다시 되새기고 있습니다. 70년대의 순옥이가 사는 마을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남자인 아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딸들은 집안의 기둥이자 밑천이 되는 대들보가 되어야 했지요. 꿈도 희망도 꿀 수 없는 불평등한 세상이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이 시스템은 순환되고 있었습니다. 순옥이의 아버지가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기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겨우 13살이 된 순옥이 또한 뒷집의 남희 언니처럼 집안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순옥이는 자신의 의지나 생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남희 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고 미싱사인 남희언니를 따라 우여곡절 끝에 의류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4번 시다로 불리며 ‘한미사’라는 공장에 취직하게 된 순옥이에게 친절한 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전태일 재단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위태로운 순옥이는 으뜸 시다를 거쳐 미싱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순간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공장 작업실, 갈라진 손끝, 휴식 없는 근무시간, 아파도 쉬지 못하는 환경 등 사람답지 못한 삶에 지쳐갑니다.

“문제를 고쳐 볼 엄두조차 못 내고, 보고만 있을 때는 정말 바보였지. 최근에야 이러다 우리의 앞날이 없겠다는 걸 깨달았어.”

순옥이의 고됨을 공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는 전태일 재단사를 통해 노동자 문제를 다룬 규칙과 법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일은 자신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바보회’를 구성해 공부를 하는 중임을 알립니다. 기대하라는 말과 함께요. 그럼에도 순옥이와 함께 사는 언니들의 고달픈 공장 생활은 이어져 가고 공장 밖 생활도 가난한 이들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가져다 줍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연속된 삶의 무게를 열세 살 순옥이와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언니들이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무허가 건물에 세 들어 살다 시청에서 들이닥친 용역꾼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헐려 공장에서 도둑잠을 자던 순옥이네를 도와주는 것은 태일입니다. 가난한 이와 또 가난한 이, 노동자와 노동자들만이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강팍한 생활을 이기고 흐르게 합니다. 그리고 태일은 희망 없이 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꿈꾸며 만들어가고자 하는 ‘태일 피복 주식회사’의 이상향을 전합니다. 주 6일 일하며 일요일은 무조건 쉬고, 하루 여덟시간 근무하고 시다에게도 월급을 8천원을 지급하며 공장 내에 학교를 운영한다는 그것입니다.

어느 날 아픈 순옥이를 나무라는 공장장과 갈등이 생긴 태일은 해고를 당하게 되고 태일은 꺽이지 않고 노동자들의 현실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동 운동을 이어갑니다. 노동 운동이 깊어갈수록 사업주와 노동자 간의 갈등도 점점 더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슬펐던 것은 오늘 현재, 2022년에도 순옥이의 잔혹동화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은 많으며 여전히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 안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개인의 영역이라 치부하고 맙니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자본주의자들이 세운 계급 나누기와 진입장벽은 점점 가파르게 높아져 가고 그들이 유리한 세상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죽음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실상을 알린 전태일 열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흐믓해 할지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조금은 나아졌겠으나 노동자들의 고단함은 계속되고 있음에 마음이 무거울 듯합니다.

오늘 이번 금요일에 학교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급식을 빵으로 대체한다는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아이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바라던 상생이 가능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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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의 세이지 - SF오디오스토리어워즈 수상작품집
본디소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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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온 세상의 세이지

저자 본디소, 김채은, 배수연, 이서도, 이중세, 홍인표

출판 다산책방

출시 2022.10.31.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와 다산책방의 협업 공모전인 ‘SF오디오스토리어워즈’의 수상작품집 ‘온 세상의 세이지’는 당선작 6개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본디소 작가의 온 세상의 세이지 시작으로 김채은 작가의 사랑의 블랙홀, 배수연 작가의 지구의 지구, 이서도 작가의 테드, 스투키, 이중세 작가의 오래된 미래, 홍인표 작가의 저장이 수록되었습니다.

첫 작품 온 세상의 세이지에는 독버섯 생존법으로 세상을 사는 홍사현, 죽은 듯이 잘 산다는 일본 국적의 세이지가 등장합니다. 첫 장면은 VR 게임 베타테스트를 시작하려는 세이지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던지는 사현이 교차하며 시작됩니다. 스토커를 따돌리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애와 동거를 시작하게된 둘은 완벽하게 다르지만 의외의 교집합을 통해 관계가 유지되는 듯 하지만 결국 헤어짐 앞에 마주 서게 됩니다. 결별을 앞두고 갑작스런 사고로 긴급 수술에 들어가는 세이지. 편도체 이상으로 정서 발달에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현은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세이지의 깊은 슬픔과 좌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용사로 자리 잡기 위해 달려왔던 세이지는 가장 중요한 손을 잃고 벼랑 끝에 몰린 막막함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절망에 사로잡혀 있던 세이지는 어느 날 일을 구했다며 안녕을 고하고 떠나고 몇 년 뒤 다국적 기업 YOU 가상현실 개발부라며 세이지가 사현을 만나고 싶어 한다며 만나겠는지 의사를 묻는 전화를 해오게 됩니다. 남녀 주인공의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를 꼼꼼한 짜임새로 이끌어오던 작가는 새로운 분위기 전환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급 선회시킵니다.

의식, 무의식, 인지와 인지의 부조화,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는 후반부의 이야기속에서 비로소 SF오디오스토리어워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놀라운 상상력이란 말이 식상할 정도로 예민하고 첨예한 하나 하나의 문장 구성으로 또 다른 세계관에서 이어지는 두 주인공의 남은 서사가 이어집니다. 짧은 단편임에도 복잡한 마음이 오래가는 이유는 책의 엔딩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머지 다섯 작품 또한 21세기의 관점에서 구현 가능한 이야기를 천재적 상상력과 결합시킨 수작으로 이어집니다. 신인 작가, 중견작가, 전혀 다른 영역의 직업을 가지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이 등등 날카로운 필력의 작가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어 감사함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촘촘히 꽉 짜인 소설이 필요한 이들이 필독하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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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임진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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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무인판매점인데도 불구하고 주 고객층인 학생 고객과 포스트잇으로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소통하고 있는 점주님이 타 매장보다 월등히 높은 매출과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례를 보게 되었다. 이 책이 핵심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뉴스였다.

나 개인적으로는 AI를 활용한 역할극 영업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흥미롭게도 AI를 이용한 역할극 영업교육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고 있는 사례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대학이 참여하는 'RNMKRS 세일즈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영업직군으로 진로를 선택한 학생들로,

AI 고객 챗봇인 '알렉스 테일러'와 대화하면서

연습하고 학습한다. 가상의 고객인 알렉스와 역할극을 통해

영업 현장을 연습하는 것이다.

알렉스는 이러닝 AI 챗봇이다.

목소리 기반의 음성 인식 AI로, 현재까지 6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역할극을 수행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149쪽

더 놀라운 것은 위와 같은 알렉스와의 역할극은 한 학생당 100회 이상 수행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받는 일회성 이론 교육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실전과 거의 다름 없이 진행해 보고, 그 역할극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개인별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각 영업 단계별로 나누어, 초기 고객 접촉이 적절했는지 여부, 고객에게의 제안 설명이나 발표 등은 잘 이루어졌는지 여부, 제안의 마무리는 완성도가 높았는지, 중간 대화 과정에서의 고객으로부터의 반박, 반대, 반감에 대해서 최선의 방향에서 적절하게 극복하였는지 여부, 전체 소통 과정을 아우르는 공감과 이해의 표현과 기술은 시의적절하게 활용되었는지 여부 등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게 된다.

와우~~~ 저런 교육 시스템, 꼭 영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도 저런 시스템을 적용하여 개인별 성장과 발전을 지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발표 역량, 갈등을 관리하고 이해관계와 실익을 조정하는 과정, 협상 역량, 기획과 문제해결 역량 등등 곳곳에서 구성원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역량강화를 체계적으로 강화시켜나갈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구축!!!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 변화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 및 마케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처럼 대면 소통에 의한 관계지향의 영업이 아닌 원격 소통, 포털, 모바일, 이커머스와 온라인 소통을 주 무대로 삼아야 함은 이제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변화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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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그어진 아이 푸른숲 어린이 문학 42
미야세 세르트바루트 지음, 쥐랄 외즈튀르크 그림, 이난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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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줄이 그어진 아이

저자 미야세 세르트바루트

그림 쥐랄 외즈튀르크

번역 이난아

출판 푸른숲주니어

출시 2022.10.24.

튀르키예(터키)의 중견 작가 미야세 세르트바루트의 신작 ‘줄이 그어진 아이’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터키의 철학 동화라고 합니다.

긴 여름 방학 후 개학을 했지만 담임선생님도 바뀌고 아직은 어수선한 초등 6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매주 새로운 책을 한 권씩 읽어야 한다는 숙제까지 내줍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너무 부담스럽다며 반항을 시도해 보지만 선생님은 꿋꿋하게 자신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인 일하미, 자넬, 쥠리트 또한 선생님의 숙제가 버거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미는 자신에게 죽음이 뭐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할 만큼 독서와는 거리가 먼 친구이기도 합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가 배경이지만 왠지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하.

집으로 향하던 세 명은 루마니아에서 온 서커스단이 공연을 했던 공원 앞에 다다릅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셋은 토요일에 공연을 보기로 했지만 공연을 위한 천막도 동물들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사라지고 휑하고 께름직한 풍경으로 이들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경비원을 통해 동물을 서커스 공연에 출연시키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시청으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아 이렇게 쓰레기만 잔뜩 남기고 아침 일찍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황량한 공간에서 아이들의 눈에 띈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였습니다. 그리고 전화기 안에서 들려오는 ‘지직!’하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들어봐…….”라는 목소리.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친구들과 달리 일하미는 그곳에 남아 전화기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계속해서 말이 흘러 나오는 공중전화는 일하미에게 “너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라며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책 읽기가 죽을만큼 싫은 일하미는 공중전화가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대신 해야겠다고 생각해 전화기로 손을 뻗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그렇게 ‘줄이 그어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 들려줍니다.

장르가 호러인가 하겠지만 앞서 얘기하였듯 이 책은 철학 동화입니다. 쓰러진 빨간 공중전화기가 전해 주는 이야기는 부모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어린이들의 노동 착취,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미스테리한 이야기 등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배치하며 전개해 갑니다. 이 이야기는 액자처럼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포함된 액자식 구성을 취하며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담아 이 세상의 부조리함과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공중전화기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데 처럼 유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일하미에게 들어도 들어도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이 책은 굳이 철학 동화라는 테마에 얽매여 행간에서 그 의미를 독해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자유롭게 상상하며 읽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술술 읽히면서도 선명한 작품세계를 가진 문학작품을 찾고 있다면 필독하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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