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정수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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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첫 장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스스로 소개한 작가의 약력을 잠깐 옮겨보자. 한국전쟁이 끝난지 2년 지난 1955년 출생, 5.16 쿠테타가 일어난 1961년 '국민학교' 입학, 중학교 2학년 때, 국민교육헌장 반포,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신수립, 1978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박정희 치하, 에 있었음은 물론인 사람. 훎어들어도,  듣는 것만으로도 참 아득했을 것 같은 그가, 살아온 시간동안, 끊임없이 그를 쫒아왔던 '이렇게 살아야한다'라는 삶의 규칙, 들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지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오랜 세월, 제도권 밖의 지식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느날 삶의 근거지를 '파리'로 옮긴 그가, 벼르고 벼르던 그 작업을 완성하고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었다. 앞에서 언급한 그의 삶의 약력을 한편, 그저 '가방끈'의 브랜드와 길이로만 가늠해본다면, 사실, 살면서 굳이 '이런짓' 안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을 사람인데, 부득부득, 인생의 과업처럼 치열하게 매진해왔던 그의 연구와 결과물들이 읽는 사람을 잠시 숙연하게도 만든다. 

이 책에서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은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거의 의식되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서 구성원들의 행위에 일정한 방향을 부여하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말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듯, 사회 속에서 행위할 때 누구도 문화적 문법을 의식하지 않는다. 즉, 문화적 문법은 '당연의 세계'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왜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를 기존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대한 연구들- 사실 기존 연구들이 이렇게나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에도 살짝 놀람. 게다가, 학부 1학년때, 그렇게나 빼먹기 일쑤였던, '고르바초프'를 쏙 빼닮았던 사회학과 '박영신' 교수님의 '국사경' 수업이 바로 이 내용을 다뤘다는 것에 화들짝, 자신의 연구에 물꼬를 터주었다는 지도교수가 또 그  박영신 교수님이였다는 사실에 완전 놀람 - 과 비교분석, 하면서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을 펼쳐보이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가 말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열 두개, 이다. 근본적 문법의 구성요소로,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갈등회피주의, 를 추출했으며, 이에 파생적 문화적 문법의 구성요소인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 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가 제시되고 있다. 특히 근본적 문법이 기독교와 사회주의이데올로기 등 서구의 종교와 이념이 유입되기 이전, 그러니까 한국의 종교사상과 문화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파생적 문법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근대성과 만나면서 형성된 문화적 문법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나라의 유교, 불교, 도교, 무교 등의 종교문화가 형성한 문화적 문법 그리고 제국주의적 국제질서와 만나 유교적 세계관이 깨지면서 형성된 20세기의 문화적 문법까지, 정말 하나 빈틈없이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이 과연 주관적일까, 객관적일까를 끝까지 우려했지만, 내가 판단컨데, 이 책은 분명히 '잔인하게' 객관적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엔, 문화적 문법을 고치기 어려운 열가지 이유, 가 정리되어있다. 문화적 문법의 문제를 성찰의 대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 자생적으로 담론화 시키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에는 바로, 문화적 문법의 수혜자, 들이 있었다. 어떤 규칙이든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수혜자가 가장 강력한 수호자가 되는 법, 이라며, 작가는 문화적 문법을 이렇게 '대뜸' 제시할 때, 그들 수혜자들이 갖는 '도덕적 불쾌함'에 대해서 언급했으며, 호칭과 같은 일상언어의 문제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의식개혁 운동, 그리고 '한국만 그러는게 아냐' 라는 밑도끝도 없는 인류보편성의 변호논리까지,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정연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화적 문법이 절대 고쳐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작가가 책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쫒아가는 '철'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혹은 '상대하지 못할 사람' 기어이 '미친 사람' 이 되는 그 환장할 노릇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손가락질, 사람들 사이에서 따돌림, 사람들이 함께 해주지 않는 그 속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적어도 내 평생에 그렇게나 '대놓고'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고치려고 했던 사람은 없지 싶은, 한 사람이 내가 이 책을 다 넘겨가던 그 주말, 기어이 살아남지를 못하고 떠났다. 그렇게나 싸우고, 고치려 하고, 맞서왔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희생되고 말았던 한사람이, 그야말로 지극히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스러운 '망자에 대한 애도'를 받으며 비로소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현실이, 어찌보니 참 서글프다.. 이게 무슨 짓인지 싶다..(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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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직업 잔혹사 - 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토니 로빈슨.데이비드 윌콕 지음, 신두석 옮김 / 한숲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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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종종 옆자리에서 내가 대출하거나 구입하는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후배가 기어이 '도대체 이런 책들은 어디서 알아요?" 라고 묻게 만든 책. 제목이 참을 수 없게 '강한 탓' 인 듯. 이 책을 읽고나면, 자신의 현재 직업에 대한 불만이나 회의, 혹은 취업하고자 하는 직업에 대한 집착에서 한결 '너그러워' 질 수 있다고 하더라, 를 이야기해줬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였는데, 가끔은 이런 '웃자고' 읽는 책이 꽤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게도 하는 것 같다. 웃음 속에 깊이 배인 무엇, 아마 이런 것을 사람들은 흔히 페이소스, 라고 하는 것일까.

영국 문명의 태동부터 시작하여, 로만브리튼과 앵글로색슨 시대, 중세시대, 튜더 왕조,스튜어트 왕조, 조지 왕조, 빅토리아 왕조, 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짚어가면서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최악의 직업들을 작가는 너무나 꼼꼼하게 온갖 자료들을 챙겨가면서 정리해놓았다. 고대 벽화부터 시작하여, 당시의 소설들, 그림들, 그리고 바로 그 최악의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낙서, 까지도 동원되는 바람에, 도대체 정말 이런 직업이 있었을까, 싶은 의구심은 이거 정말 웃자고 쓴 책이 아니구나 싶은 숙연함,으로 바뀌게 된다. 그 숙연함, 이란 이를테면, 그때 그런 직업이 있었단다, 정말 웃기지, 하며 노닥노닥하면 그만이지 싶었던 이야기들이 책을 다 덮고난 후엔, 이런 직업들이 아니, 이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단다, 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낱 이야기의 '화제'로 그쳐서는 절대 아닌 것임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과 닿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날 기사시대 전투의 양식에 대해 한 사학자와 인터뷰를 나눈 작가는 수십킬로그램에 이르는 갑옷을 입고 혹독한 전쟁에 시달려야했던 기사, 들에게 이른바 지원팀, 이 늘 딸려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작가가 본격적으로 역사상 최악의 직업을 찾아보기로 작정하게 된 '갑옷담당종자'는 바로, 기사가 하루종일 갑옷 속에 배설해놓은 땀과 각종 배변에 따른 오물을 깨끗이 닦아놓아야하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흔히 말하듯, 가장 더럽고, 힘들고, 위험할 뿐더러, '남덜이' 천시하고 비난하는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직업이 비로소 하나하나 밝혀지는 가운데, 이 책이 가령, 직업의 귀천, 에 다룬 책이라면 그건 아마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얼마만큼이냐의 잣대를 댄 것이다, 싶게 입이 딱, 딱, 벌어지게 된다. 물론, 나처럼 상상력이 쓸데없이 남아도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잔인하고, 징글맞음에 한번씩 몸서리를 치고도 남을 것이고.

먹기위해 게우고, 게우기 위해 먹었던 로마의 연회장에서 그들이 게워낸 구토물을 수거해야했던 구토물 수거인, 스트라디바리우스, 의 4현을 만들기 위해 도살장에서 양의 창자를 꼬아야했던 바이올린 현 제조자들, 푸생, 의 그림을 본따 설계한 고전주의적 정원에 진정한 아르카디아, 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각상, 인생의 덧없음과 부의 무익함을 상징해야할 조각상이 되어 꽂혀있던 노인들,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한개의 알약을 먹고 기사회생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돌팔이 약사에게 고용되어 겨우 죽지는 않을 정도의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두꺼비를 한입에 삼겨야했던 토드 이터.. 고작 이 정도가 내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의 비위를 고려했을 때, 겨우 건져낼 수 있는 예, 나머지 직업들은 거의 '카더라' 수준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의 기괴한 것들이라 생략..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는, 늘 한권의 책을 읽고나면 드는 생각이지만, 이번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많이 착잡하다. 일단은, 어쩌면 목숨과 인간의 존엄, 을 걸고서 먹고 살겠다고 뛰어든 직업인데, 제목에서 '불량'하다하니, 다소 못마땅하기도 하다는 것. 하지만, 영어 원제도 별달리 차이가 없고, 사람을 혹하게 만들만큼의 선정적인 제목임은 분명하니, 방법이야 어떻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어, 작가가 원했던 궁극의 바램, 에 귀기울여줄 수 있음 그만이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난다긴다 하던, 철학자, 과학자들의 연구를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서 필사하던 '필사본 채식사' 그들이 있어 지금의 학문이 전승될 수 있었던 것처럼, 불량직업에 종사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의 문명을 이룩한 숨은 바탕이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강조하며, 이 책을 문명의 태동과 발전의 역사라는, 그 괘를 따라 서술하였던 작가의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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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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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책인지를 도대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아마도, 쉽게 장담할 일은 아니겠지만,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최고,  일 것이라고 벌써부터 말하고 싶어 입은 간질간질, 마음은 쿵당쿵당, '어쩌지를' 못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요며칠 읽은 두권의 책은 공교롭게, 정말 그럴려고 그런게 아닌데, 제 2차 세계대전이 그 배경인 것들이었다. 그 중 한권인 이 책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소설판, 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우선 이 책은 전체가 '서간문', 그러니까 편지들로 이루어져있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1946년, 영국의 런던과 '건지섬'을 오가며 전해진 편지, 그리고 그 인연들이 만들어낸 사람들이 다시 또 주고받는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 시작해서 편지로 끝나는, 소설. 물론 말미엔, 가장 유쾌한 캐릭터였던 '이솔라'의 탐정기록이 실리기도 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죽은, 전쟁으로 헤어진, 전쟁으로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거야, 싶게, 세련된 위트와 유머가 그야말로 '작렬' 하는 책. 제법 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편지라, 헤매일수 있겠다 싶었던 생각은 금새 사라진다, 니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어, 와 같은 심정이 되서, 전혀 놓침없이 끝까지 쫒아갈 수 있는 치밀한 계산의 구성도 돋보이는 책. 

프랑스와 더 가깝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영국령, 이 된 '건지섬'. 독일점령하에서, 부족한 군식량 관계로 주민들은 돼지를 잡아먹는 일이 금지가 된다. 영리한 '아멜리아'는 죽은 돼지 한마리로 '돌려막기'를 하는 잔머리를 굴려, 모처럼 돼지구이 파티를 하게 되는데, 그만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통금에 걸려버리는 위기를 맞이한다. 이 때, 둘러댄다고 둘러댄게, 바로 '독서회'. 얼떨결에 독서회를 구성하게 된 이들은 모임의 이름을 '감자껍질 파이 클럽' 이라고 명명. 그들이 피치못해 '독서회'를 시작하면서 다과를 나눌 때, 파이를 만들 재료가 없던 시국인지라, 감자를 으깨 파이속을 만들고 감자껍질로 파이껍질을 만들어서 먹었던 것에 착안한 이름.

이제 막 런던, 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작가 '줄리엣'과 그녀가 소장하고 있다가 중고책으로 팔린 찰스 램의 소설, 을 읽게 된 건지섬의 청년 '도시', 가 그녀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그런 관계를 통해 그녀, '줄리엣'이 알게된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멤버들의 이야기, 제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한 기고를 위해 건지섬으로 달려온 줄리엣이, 기어이 그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들과 직접 부대끼고 수집하게 되고,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전쟁 당시의 상황들, 사건들이 건지섬의 일상과 맞물리면서 필름처럼 돌아간다. 물론 죄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말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히틀러'와  '유대인'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너무나 오래 그렇게 보고들어서일 뿐, 그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단지 히틀러와 유대인, 만은 아니라는 것. 특히, 먹을 것에 굶주린 섬의 아이들이 감자트럭을 쫒아갈 때, 한손엔 총을 겨누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론 슬쩍슬쩍 감자알을 떨어뜨리기 바쁘던 독일 병사들의 이야기라든지, 전쟁이 끝나면 '엘리자베스'와 그저 한 사람으로 이 건지섬에서 살기를 꿈꾸었던 독일장교, 그리고, 탈옥, 도 아니고, 굶주려 기운이 없어 수용소로 복귀하지 못했던 프랑스 소년을 숨겨주고 간호해주다 잡혀간 '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녀의 처형에 이르기까지,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자유는 잃었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경의감을 느낄만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타인의 삶과 단 한번도 차별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건지섬'에서 만들어나가는 희망은, 자유 이상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절한 감동 앞에서 이런말을 하기는 좀 '뭣하지만', 이 책은 정말 웃기다, 재미있고 즐겁고 사람을 몇번씩 뒤집어지게 만들고야 만다. 채 언급하지 못한, 더 많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그러하며, '성격대로 질러주는' 그들의 편지 내용이 또 그러하다. 그야말로 '어쩌면 좋아'가 절로 튀어나오게 사람을 꼼짝못하게 하는, 다소 4차원적인 희망 바이러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 판단하건데, 이 바이러스의 감염증후는, 이미 다 읽은 책을 자꾸 펼쳐보고 또 펼쳐보게 된다는 것. 격 쫌 떨어지는 비교겠지만, 1박 2일을 아무 생각없이 케이블 방송으로 보고 또 보고, 웃었던거 또 웃고 하는 것과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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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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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던 탓에, 그저 한권이려니 읽었는데 맨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2권'이 또 있음을 알게되었다. 요즘은 하도 독자에게 심적 부담을 주는 '열린 결말'이 대세인지라, 그냥 이렇게 끝났어도 그닥 할말 없었을 것 같은데, 독자로서 살짝 까깝한 엔딩, 의 부담감을 덜어줄 2권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나니, 왜 이렇게 작가에게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 심지어 송구스러워지기까지 하던지. 역시 제 2차 세계대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책. 이 책의 경우는 나로 하여금 그 시대엔 '안네' 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한만큼 한핏줄 소설, 혹은 연관검색어로 '안네의 일기'를 올려놓아도 좋을 듯 싶다.

작가 마커스 주삭, 이 어린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나치 독일, 의 이야기를 뿌리로 하는 이 책은 독일의 작은 도시 몰힝, 그리고 그 도시의 허름한 어느 거리 '힘멜'을 배경으로 한다. 힘멜, 의 '후버만' 부부에게 입양된 9살 소녀, 리젤 메밍거와 그녀의 가족, 이웃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이어지는 폭격을 마치 해가 지고 뜨는 일상처럼 견디며 살아가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 책의 화자, 이다. 쉽게 말해, 우리 정서로 '저승사자'에 해당되는 화자,는 이를테면, '인류는 가끔 나의 일에 무지막지한 가속도를 요구한다 전쟁과 같은 일을 벌인다든지 하면서..' 와 같이, 전쟁이나 죽음에 대해 최대한 냉소적인 어투로 나레이션을 하고 있으며, 또 최대한 말을 아끼는 대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극명한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징글맞을만큼'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생과 함께 입양되러 가는 기차 안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 리젤, 동생을 묻을 땅을 파주러 따라온 묘지의 견습생이 두고 간 책 한권을 손에 넣게 된다.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 그녀는 이제 책도둑이 되었다. 글을 아직 읽을 줄 몰랐던 리젤, 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과 함께 매일 이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글을 깨치고, 말을 배우게 되고, 힘멜 거리의 사람들을 알아나가게 된다. 자우케를, 자우멘슈, 그러니까 우리말로 치면, '쌍욕'을 달고 살지만 남편이 유대인 친구의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아무말 없이 스프를 끓여내오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 그녀의 친구, 이자 첫사랑, 그녀의 첫키스, '루디 슈타이너', 리젤이 책을 보다 '잘' 훔칠 수 있도록 서재 창문을 항상 열어두었던 시장 부인, '일자 헤르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모두의 속죄양, 이었던 유대인 '막스 판덴부르크' 까지, 리젤과 그들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로 새겨진 서로의 상처를 때로는 덧내며, 때로는 보듬기도 하는 가운데 그 시절을 견디었으며, 마침내, 지하 공습대피소, 에서 리젤, 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평안, 을 찾았듯, 가장 참혹하지만 가장 평화로울 죽음을 기다렸고, 화자는 자신의 품으로 그들을 마침내, 하나씩, 안아올리게 된다.

아홉살의 리젤, 은 열네살이 될 때까지 약 여섯권의 책을 훔쳤고, 막스 판덴부르크, 가 만들어준 두권의 책과 일자 헤르만 부인이 선물한 한권의 '사전' 그리고, '줄만 그어진 책'을 가지게 된다. 이들 모두 열권의 책들은 책도둑 리젤,의 성장기를 묵묵히 함께 하였다. 공습이 하루에도 몇번씩 벌어지던 어느날, 막스 판덴부르크, 와의 추억이 서린 지하실, 에서 '줄만 그어진 책'에 그녀는 비로소 '리젤 메밍거의 작은책, 책도둑' 의 '집필'을 시작하게 되고, 그녀가 지하실에서 책을 쓰고 있을 동안 2층의 양부모님과, 그녀가 알던 힘멜 거리의 모든 사람들도 마침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가장 먼저 만났으면서도 가장 늦게 그녀를 데리러 온 화자. 세월이 흘러 시드니에서 세 자녀와, 손자손녀, 그리고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 '리젤'을 데리고 왔으며, 그녀의 유년시절, 인 힘멜 거리에서 잠시, 그녀를 내려놓고 책 한권을 건넨다. 열네살의 그녀가 지하실에서 집필하고 있었던작은 책 '책도둑'.  이 '저승사자'는 힘멜 거리의 모든 영혼을 거두던 그날, 거리로 뛰쳐나가 울부짖기만 하던 그녀 대신, 그녀의 책을 폭격더미 속에서 찾아 함께 거두었던 것이다.

공교롭게 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마도 전혀 경험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던 우리나라, 라는, 그리고 그 나라에서 내가 태어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감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과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이야기, 라 우리나라의 어딘가에도 분명, 또다른 할머니 리젤, 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다. 저승사자가, 힘멜 거리의 영혼들을 거두던 시절, 을 회상하며 스스로에게 했던 혼잣말, '그 엄혹한 시절의 한 복판에서도 사람은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피어날 수 있음을,, 나는 인류를 때로는 너무 과대평가했고, 또 과소평가했다..'가 지금의 착잡한 내 심정을 대신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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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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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요즘 유행- 유행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경박하다 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교육방법도 우리나라 '엄마'들이 덤벼들면 그만 유행, 이란 것이 되버리는 통에 - 인 것 같은 '책'으로 아이 키우기, 란 것이 정말 가능은 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듯하다. 즉,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아이가 책을 좀더 '안전하게' 빨수 있도록 비닐커버를 씌어주고, 보다 잘게 찢어서 먹을 수 있게 해주며, 레고 대용으로 충분히 활용가능하게 책등의 각을 유지시켜왔던,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 는 과연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던가, 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그런 성장기를 거친 아이가 책이 일상, 이 되고, 가능한 모든 사고와 판단이 자신이 읽었던 책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는 어른이 되고 나서의 이야기까지 담고있는 책이다..  

그 어른이 자신 못지않은 환경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그러나 몸은 섞어도 책은 섞기가 참 망설여지기만 하던 어느날, 드디어 부부간 소장서적들의 '합방'을 결행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그렇게 성장하게 해준 부모님과 자신의 성장을 함께 해준 고마운 책들, 에 대한 회상, 그리고 '유유상종'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신의 친구들, 동료들의 이야기까지 매 장마다  절묘한 위트, 가 참 화려하게 발산되는데, 작가의 무지하게 '지적이면서도' 잘 담근 젓갈같은, 그런 언밸런스함이 주는 맛깔,이 조금 부럽기까지 하더라는. 괜히 잡지사 편집장은 아니지 싶더란 말이다..

이들 부부가 각자가 소장한 책들을 '합방'시킨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표현대로 하자면 '영국식 정원'의 운영방법과 '프랑스식 정원'의 운영방법을 통폐합하자는 수준의 그것이어서, 작가의 국적순, 연대순과 같은 원칙에 대한 준수를 제외하곤 결론적으론 사실, 그간 수평으로 누워있던 남편의 책을 수직으로 세워주는 차원에 그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살면서 처음으로 '이혼'을 떠올렸을만큼 치열했던 그 과정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책중독'이라는 같은 병을 얼마나 매혹적으로 함께 앓고 있는지, 각자의 '증세'를 얼마나 서로가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며, 그녀의 인생을 함께 해온 책들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늘 책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준 자신의 부모님과 다시 그것이 자신의 자식으로 이어지는 남다른 '내리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는 것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외식하러 간 레스토랑에서조차, 온가족이 사소한 메뉴판의 오타를, 그저 넘어가지를 못하고 한마디씩 질러줘야하는 까칠함, 고속도로 경고표지판의 문구를 준수를 하긴 한다만, 저런 문구엔 '어퍼스트로피'를 넣어줘야하는게 당연하다고 속으로 꼭 집어주는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강직함, 주인이 없는 동안 서재의 모든 책들을 색깔과 크기별로 분류해서 꽂아버린 인테리어업자가 며칠 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것은 '인과응보'라고 입을 모을만큼의 살벌함까지, 숨김없이 '장전'하고 서재의 결혼식에 총출동한 그야말로 포스있는 신부와 신부측 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또, 그 결혼식의 기분 좋은 피로연에까지 초대받아 함께 유쾌한 여흥을 보내고 온 듯한 책.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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