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정수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첫 장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스스로 소개한 작가의 약력을 잠깐 옮겨보자. 한국전쟁이 끝난지 2년 지난 1955년 출생, 5.16 쿠테타가 일어난 1961년 '국민학교' 입학, 중학교 2학년 때, 국민교육헌장 반포,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신수립, 1978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박정희 치하, 에 있었음은 물론인 사람. 훎어들어도,  듣는 것만으로도 참 아득했을 것 같은 그가, 살아온 시간동안, 끊임없이 그를 쫒아왔던 '이렇게 살아야한다'라는 삶의 규칙, 들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지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오랜 세월, 제도권 밖의 지식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느날 삶의 근거지를 '파리'로 옮긴 그가, 벼르고 벼르던 그 작업을 완성하고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었다. 앞에서 언급한 그의 삶의 약력을 한편, 그저 '가방끈'의 브랜드와 길이로만 가늠해본다면, 사실, 살면서 굳이 '이런짓' 안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을 사람인데, 부득부득, 인생의 과업처럼 치열하게 매진해왔던 그의 연구와 결과물들이 읽는 사람을 잠시 숙연하게도 만든다. 

이 책에서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은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거의 의식되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서 구성원들의 행위에 일정한 방향을 부여하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말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듯, 사회 속에서 행위할 때 누구도 문화적 문법을 의식하지 않는다. 즉, 문화적 문법은 '당연의 세계'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왜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를 기존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대한 연구들- 사실 기존 연구들이 이렇게나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에도 살짝 놀람. 게다가, 학부 1학년때, 그렇게나 빼먹기 일쑤였던, '고르바초프'를 쏙 빼닮았던 사회학과 '박영신' 교수님의 '국사경' 수업이 바로 이 내용을 다뤘다는 것에 화들짝, 자신의 연구에 물꼬를 터주었다는 지도교수가 또 그  박영신 교수님이였다는 사실에 완전 놀람 - 과 비교분석, 하면서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을 펼쳐보이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가 말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열 두개, 이다. 근본적 문법의 구성요소로,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갈등회피주의, 를 추출했으며, 이에 파생적 문화적 문법의 구성요소인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 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가 제시되고 있다. 특히 근본적 문법이 기독교와 사회주의이데올로기 등 서구의 종교와 이념이 유입되기 이전, 그러니까 한국의 종교사상과 문화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파생적 문법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근대성과 만나면서 형성된 문화적 문법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나라의 유교, 불교, 도교, 무교 등의 종교문화가 형성한 문화적 문법 그리고 제국주의적 국제질서와 만나 유교적 세계관이 깨지면서 형성된 20세기의 문화적 문법까지, 정말 하나 빈틈없이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이 과연 주관적일까, 객관적일까를 끝까지 우려했지만, 내가 판단컨데, 이 책은 분명히 '잔인하게' 객관적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엔, 문화적 문법을 고치기 어려운 열가지 이유, 가 정리되어있다. 문화적 문법의 문제를 성찰의 대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 자생적으로 담론화 시키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에는 바로, 문화적 문법의 수혜자, 들이 있었다. 어떤 규칙이든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수혜자가 가장 강력한 수호자가 되는 법, 이라며, 작가는 문화적 문법을 이렇게 '대뜸' 제시할 때, 그들 수혜자들이 갖는 '도덕적 불쾌함'에 대해서 언급했으며, 호칭과 같은 일상언어의 문제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의식개혁 운동, 그리고 '한국만 그러는게 아냐' 라는 밑도끝도 없는 인류보편성의 변호논리까지,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정연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화적 문법이 절대 고쳐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작가가 책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쫒아가는 '철'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혹은 '상대하지 못할 사람' 기어이 '미친 사람' 이 되는 그 환장할 노릇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손가락질, 사람들 사이에서 따돌림, 사람들이 함께 해주지 않는 그 속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적어도 내 평생에 그렇게나 '대놓고'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고치려고 했던 사람은 없지 싶은, 한 사람이 내가 이 책을 다 넘겨가던 그 주말, 기어이 살아남지를 못하고 떠났다. 그렇게나 싸우고, 고치려 하고, 맞서왔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희생되고 말았던 한사람이, 그야말로 지극히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스러운 '망자에 대한 애도'를 받으며 비로소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현실이, 어찌보니 참 서글프다.. 이게 무슨 짓인지 싶다..(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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