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 인생은 어른으로 끝나지 않아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손힘찬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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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프렌즈 시리즈 책도 이제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프로도와 네오가 함께 나왔거든요. 앞으로 남은 건 제이지 정도인데... 혹시 니니즈 친구들의 책도 나올까요?

아르테에서 출판한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의 책들은 각 캐릭터의 성격에 맞춰서 어울리는 작가가 에세이 형식의 글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번 프로도의 글은 손힘찬(오가타 마리토)가 맡았더군요. 평소에는 작가의 글과 캐릭터의 성격이 비슷해서 그렇게 매칭했으려니 했는데, 책 소개 글을 읽고 좀 당황했어요.

프로도는 태생이 잡종이라 콤플렉스가 있다고 하는데요. 가끔 덜렁거려 허점 투성이지만 연인 네오를 사랑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로맨티시스트인 그. 손힘찬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차별도 받고 좋지 않은 대우도 받았었나 봐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민했지만 지금은 20대의 젊은 작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번의 <프로도, 인생은 어른으로 끝나지 않아>는 독자에게 격려하고 독려하는 책인데요. 프로도가 잘나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랑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위에 서서 가르치려 드는 말이 아닌 곁에서 어깨를 두들기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함께 전진하자고 해요. 천천히. '이생망'이라고 하지 말고서 말이에요.

아직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오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들거든. -p.162



그리고 로맨티시스트 프로도답게 사랑, 우정, 애정을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 그리고 존재함으로써 내가 힘을 내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때로는 기운 빠지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로 기뻐하는 나.

프로도와 함께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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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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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네이버 뉴스 판이나 트위터, 페이스 북 같은 SNS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어떤 의견이나 성향은 있습니다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발언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저 자신의 의견은 좀처럼 드러내지 못합니다.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걸 꺼린다기보다는 정말로 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이슈나 과거의 큰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 빨갱이로 의심받을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인지 - 이렇게 말하니 무척 나이 들어 보입니다만 아무튼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4.3이나, 광주 항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일부 주사파 학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대학 때 친구가 하도 권유하길래 사회문제 연구 동아리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세상에나... 광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무서워서 이틀 만에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들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던 걸 텐데 그들과 함께 자리를 하는 것조차 오해받을까 무서웠던 저는 참 무지했습니다. 자연히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었고 관심 없음을 자랑인 양 지금까지의 세월을 보냈나 봅니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뉴스를 보고 분개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21세기에 들어와 여러 번 일어났었죠. 20세기에도 있었습니다. 그땐 지금처럼 촛불시위라는 조용하면서 강한 힘을 낼 수 없는 시기였으므로 많은 큰 부딪힘들이 있었습니다.



정당은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국민의 의견을 전달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하며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해놓고 막상 회의가 끝나면 허허... 김 의원 우리 언제 한 번 필드 나가야지? 하며 웃는 꼴이란. 회의를 하느라 격한 토론을 벌인 게 아니라 무슨 개싸움하듯 해놓고 뒤에서는 사이좋은 체하는 걸 보면 이건 다 정치쇼인가 싶은데,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 함부로 말도 못 하겠고.

그러니 정치 공부가 필요한 겁니다.


서울대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엮어 출판하고 있는 21세기 북스의 서가명강 시리즈 이번 책은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으로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강연입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의 주요 키워드를 상냥하게 알려주는데도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 금세 잊어버리더군요. 관심 없던 분야에 관심을 주는 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해방 후 정치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알려줍니다.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 정치의 특성과 문제점을 짚어나갑니다.

특별한 당색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치에 관한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실만을 이야기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정치에 관해서 정말 무지합니다. 아시겠지만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을 읽는다는 건 잠과의 사투를 벌인다는 것과 같습니다. 눈이 피로해오길래 서가명강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저는 네이버의 오디오 클립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강원택 교수의 강의는 8강으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한 회차에 20분 정도입니다.

누워서 강연을 틀어놓고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연속으로 다 들었어요. 아이는 옆에서 쿠키런을 하며 함께 듣더군요. 게임을 하다 말고 저에게 부연 설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마침 해방 이후 정치 역사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를 좀 했었대요. 팟캐스트와 더불어 입체적으로 들으니 이해가 쏙쏙 되더군요. 강연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강연을 한 번 듣고 책을 읽으니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강연에서 시간 관계상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책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분노와 혁명으로 세운 민주화를 이젠 촛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후 진정한 민주주의는 무엇으로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저자는 변화의 방향을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을 통해 모색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침에 뉴스를 보면 짜증이 나던데.... 저녁에라도 뉴스를 보며 정치를 외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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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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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가면서 독서보다도 꾸준히 해 온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내 아이의 기억에 나와의 추억을 되도록 많이 새기는 것입니다. 아이는 저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 불행한 시간들을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습니다. 그게 아이에게 약속한, 제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나이가 된 지금도 아이는 여전히 저에게 죽지 말라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아이 안에 살아있을 것을 믿습니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일이 있다면 잊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다음에 치매에 걸리더라도 -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 아이의 존재를 잊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잊어버린다면 슬퍼할 아이를 위해서. 차라리 환상동화나 SF처럼 내가 잊는다면 아이도 나를 잊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슬퍼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돈과 명예를 좇아 열심히 살다가 아내와 아들이 떠나버린 것도 이틀이나 지나 눈치챘던 한 남자가 암에 걸려 병원에서 지냅니다. 죽음이 그를 따라다닐 때 비로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자신은 사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사신인 회색 옷을 입은 여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들고 다니는데요. 그 명부에는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 어린 소녀도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미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다음에 크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는 소녀의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남자는 아이에게도 시크합니다. 애초에 아들이 어릴 때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돌봐준 기억이 거의 없기에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남자는 죽음이 그에게 가까이 와 있음에도 여전히 무뚝뚝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그의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데요.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오늘 아침에 나를 망가진 차체에서 끄집어냈다. 여자는 자기 폴더에 묻은 내 핏자국을 닦았다.

"다른 사람을...... 죽여요." 나는 애원했다.

-p.31

그는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꾸는 건 할 수 없지만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꾸는 것은 가능하다는 여자의 말에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가 맞바꾼 목숨은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러 갔을 때 비로소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 혹은 동화는 이 삶을 소중한 누군가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삽화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요. 실제 있는 장소이며 프레드릭 배크만이 자란 고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텅 빈 공간에 남자와 회색 옷을 입은 여자만 있다 해도 이곳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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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 - 잘해주고 상처받는 착한 사람 탈출 프로젝트
한경은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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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랫동안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절한다는 건 미움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어떻게 '싫어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제 아이가 열몇 살 때 제가 시키는 일을 하기 싫다며 투덜거리는 걸 본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너희 엄마는 지금껏 한 번도 싫어요라고 한 적 없는 데.' 아이는 여전히 열몇 살이므로 제가 싫다는 말을 하게 된 지 몇 년 안되었다는 이야기겠죠. 엄마와 함께 한 세월은 길지 않았기에 싫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편안해진 후에도 그랬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는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있었나 봐요. 하지만 싫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더 친해졌어요.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건 무척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사 표현을 해본 적 없는 경우엔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감히 아버지는 언급도 못하잖아요. 거절했어야 하는 일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에 크게 반항 한 번 하고 집을 나갔던 이후 저는 세상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괜찮아요.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거절하지 않고 복종하고 살아왔던 날들 속에서도 저는 나쁜 아이라고 불렸었으니까 변한 건 없죠. 다만 그때보다 좀 자유로워졌을 뿐.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께 거절하는 건 기절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생사 게임처럼 말이다. 내가 기대고 있는 벽은 원래 비스듬한데, 그걸 바로 세우겠다고 온 힘을 다해 벽을 밀어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수평과 수직은 십자가가 될 뿐이다.

-p.265

저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 스트레스는 저 자신을 파괴하기도 하고 괴팍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거나 친구에게 말로 상처를 입히기도 했죠. 지금은 극복했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는 힘들어요. 폭력에 의한 학습일 테죠.

분노는 착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나 경험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분노가 이렇게 인간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들은 유난히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패배감을 느끼거나 언젠가는 뒤틀린 공격성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p.83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왜 거절 못 하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기도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위로가 되기도 했지요. 읽다 보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방향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중반쯤 되니 묘한 반항심이 생기더군요. 저자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 그랬겠지. 자기가 그런 환경에 대해 뭘 안다고. 극단적인 상황이라거나 좀처럼 말할 수 없는 상황 같은 거 모르니까 편하게 그러는 거겠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사람이 그렇게 딱 거절하고 그러면 얼마나 미움받는지 알기나 해?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왜 나빠?라고 생각했어요. 미움받기 싫다는 게 반드시 사랑받는 것과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융통성 없이 저렇게 굴면 사회생활은 불가한 거 아닌가 하고,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제가 투덜거렸죠.

그러나 중반 넘어서부터 드러나는 저자의 가정사와 후반의 엄마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저자에게 미안해졌어요. 내가 뭘 안다고. 정작 모르는 건 저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 뒤표지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요. 이 책은 마음 건강을 위한 심리 책, 자기 계발서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에세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 사이에 있는 책 같아요.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해요.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만일 1) 싫은 사람의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한다면 2) 거절하느니 차라리 맞춰주는 게 편하다면 3) 인정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4) 욕 좀 먹는 게 죽기보다 싫다면 5) 눈치 보느라 말 못 하고 이불킥만 날린다면 6)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언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읽어보셔요.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생길 겁니다. 관계에서 늘 약자의 위치에 서있던 '내가' 그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이 책은 본격 착한 사람 극복 에세이거든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다 있다. 사랑도, 인정도, 행복도, 자유도 내 안에 있다. 그러니 타인에게 받고 싶은 칭찬과 인정을 스스로에게 해주자. 남이 해주는 건 한계가 있지만, 내가 해줄 때는 받고 싶은 만큼 원 없이 받을 수 있다.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나를 추켜세워주자.

"정말 대단해!","네가 최고야","해낼 줄 알았어!"."지금까지도 정말 잘한 거야!"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 아닌가.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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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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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의 몰디브 제주 함덕에 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코앞에 바다가 보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20여 분 정도 걸어가면 푸른빛 바다를 만날 수 있는데,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이라 만날 때마다 반갑고 행복합니다. 이런 곳에 사니 정말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밤이 되면 악취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날이 쌀쌀해 창문을 꼭꼭 닫고 자는 요즘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여름엔 자다가 숨이 막혀 깰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분뇨 냄새일 때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냄새일 때도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고 나면 햇살이 따사로운 제주의 하늘을 만납니다. - 밤에만 냄새가 나고 낮에는 나지 않는 걸 보면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한데 이런 일은 제주에서 비일비재하여 무수한 민원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 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어디든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거다. 그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늘 까먹으니 문제지. -p.118

<우리만 아는 농담>의 저자 김태연은 타히티의 보라보라 섬에 살았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잠시 섬을 떠나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직 그곳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언제나 따스하게 바라보아주는 존재가 있어 섬에서의 하루가 행복한 것 같습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타히티 보라보라 섬은 지상 낙원 같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싱그러운 초록 식물들이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지. 그곳에 인공적으로 놓여있는 수상 방갈로까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곳에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미 제주에 살고 있는 저는 압니다. 지내기엔 좋지만 살기에는 만만치 않을 거라는걸.

저자도 아름다운 섬 보라보라에서 많은 곤란한 일들을 겪습니다. 우리 어릴 때 종종 있었던 정전이라는 거. 요새는 태풍이라도 불지 않은 다음에야 좀처럼 겪지 못하는 일이지만 보라보라에서는 제법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봅니다. 전기가 끊기면 그대로 원시생활을 해야 하는 곳, 마트에 물건이 떨어져 살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 그곳이 보라보라입니다.

하지만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인정 많은 이웃이나 마트 직원. 저자처럼 외국에서 온 이웃 친구나, 셰어 하우스 메이트 등. 물론 불편하거나 좋지 않은 사람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행복의 조각을 전하려는 에세이에 굳이 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가 만난 좋은 사람들 중에 최고는 아마 남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제가 멀리서 보고 있기에, 책을 통해서만 만났기에 좋은 점만을 본 것일 테지만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모습은 다정하고 인정 많으며 따스한 정의가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때로 다투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런 남편이 있기에 보라보라에서의 생활이 더 행복한 건 아닌가 생각하니 제게도 행복이 전염되었습니다.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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