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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저는 한국의 몰디브 제주 함덕에 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코앞에 바다가 보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20여 분 정도 걸어가면 푸른빛 바다를 만날 수 있는데,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이라 만날 때마다 반갑고 행복합니다. 이런 곳에 사니 정말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밤이 되면 악취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날이 쌀쌀해 창문을 꼭꼭 닫고 자는 요즘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여름엔 자다가 숨이 막혀 깰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분뇨 냄새일 때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냄새일 때도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고 나면 햇살이 따사로운 제주의 하늘을 만납니다. - 밤에만 냄새가 나고 낮에는 나지 않는 걸 보면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한데 이런 일은 제주에서 비일비재하여 무수한 민원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 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어디든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거다. 그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늘 까먹으니 문제지. -p.118
<우리만 아는 농담>의 저자 김태연은 타히티의 보라보라 섬에 살았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잠시 섬을 떠나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직 그곳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언제나 따스하게 바라보아주는 존재가 있어 섬에서의 하루가 행복한 것 같습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타히티 보라보라 섬은 지상 낙원 같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싱그러운 초록 식물들이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지. 그곳에 인공적으로 놓여있는 수상 방갈로까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곳에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미 제주에 살고 있는 저는 압니다. 지내기엔 좋지만 살기에는 만만치 않을 거라는걸.
저자도 아름다운 섬 보라보라에서 많은 곤란한 일들을 겪습니다. 우리 어릴 때 종종 있었던 정전이라는 거. 요새는 태풍이라도 불지 않은 다음에야 좀처럼 겪지 못하는 일이지만 보라보라에서는 제법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봅니다. 전기가 끊기면 그대로 원시생활을 해야 하는 곳, 마트에 물건이 떨어져 살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 그곳이 보라보라입니다.
하지만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인정 많은 이웃이나 마트 직원. 저자처럼 외국에서 온 이웃 친구나, 셰어 하우스 메이트 등. 물론 불편하거나 좋지 않은 사람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행복의 조각을 전하려는 에세이에 굳이 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가 만난 좋은 사람들 중에 최고는 아마 남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제가 멀리서 보고 있기에, 책을 통해서만 만났기에 좋은 점만을 본 것일 테지만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모습은 다정하고 인정 많으며 따스한 정의가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때로 다투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런 남편이 있기에 보라보라에서의 생활이 더 행복한 건 아닌가 생각하니 제게도 행복이 전염되었습니다.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