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트 시그널 - 글로벌 아이돌을 설계하다 케이팝 산업에 대한 모든 것
윤선미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꽤 오랜 시간 동안 TV에 나오는 가수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보다 실력도 없으면서 춤으로만 승부하는 보이 그룹, 걸 그룹을 보며 가수가 아니고 댄서 아닌가 했기에 그들이 별로였습니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K-POP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K-POP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녀석도 저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쪽으로는 좀 둔했거든요.

저는 아주 예전부터, 그러니까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때부터 뮤직비디오를 좋아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는 경우보다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그 음악이 좋아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K-POP도 뮤직비디오가 먼저였습니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저를 K-POP으로 데려다 놓았고, 저는 무심결에 보다가 금세 홀린 듯이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 실력과 댄스, 비주얼을 두루 갖춘 아이돌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엔터테인먼트란 스타를 발굴하고 키워내 음악과 스타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 또는 그와 연관된 일을 말한다.

-p.8

그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세상에 나옵니다. 언뜻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들일지라도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생과 노력을 하고 K-POP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나타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돌들이 탄생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스타가 있기에 아이돌 지망생들은 BTS, 블랙핑크를 꿈꾸며 도전을 계속합니다.

전 세계 팬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글로벌 아이돌들은 어떻게 육성되며 탄생하는 것일까요.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책이 <빅히트 시그널>입니다.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퍼포먼스, 소통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아이돌 기획사의 핵심 자산은 음악이다. 프로듀서가 내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외부 작곡가, 작사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기획사의 입장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특히 케이팝은 대개 듣는 음악보다는 무대로 보고 듣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가수, 아이돌 모두 활동의 기반은 음악이다.

-p.71

'빅히트'하면 예전에는 앨범 판매량이 높거나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는 그런 노래를 연상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먼저 떠오릅니다. 방시혁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아주 작은 회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BTS를 키워낸 회사로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 중입니다.

이 회사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획부터 선발, SNS를 활용한 홍보 등의 마케팅, 아이돌 각자 개성에 맞는, 그러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코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박자가 완벽했기 때문에 BTS의 성장과 더불어 회사도 함께 커졌던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몸짓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된 것이고요.

<빅히트 시그널>은 JYP 신입 기획 마케터로 시작해 FNC 실무 교육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사를 거쳐 현재 퍼스트원 프로듀싱 본부장을 맡고 있는 13년 차 엔터테인먼트 기획자 윤선미의 책입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상장으로 관심이 높아진 엔터테인먼트 주식,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으로,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는 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취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A_Z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처럼 뮤직비디오를 즐기며 예능에서 만나는 아이돌을 보며 즐거워하는, 때로는 연합 아이돌 - 슈퍼 M을 보며 흐뭇해하는 이들도 읽으며 그들이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이 필요했다는 걸 느끼며 감동하기도 합니다.

팬은 아이돌 기획사에서 독특한 존재다. 소비자가 아니라 어디서 무얼 하든 아이돌을 응원하고, 관심을 갖고, 활동 기간 동안 함께 역사를 만들고, 추억을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에게도 특별하고 회사 입장에서도 특별하다.

-p.174

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특별부록으로 엔터테인먼트 취업 정보 및 실전& 면접 꿀팁이 공개되어 있기에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4세대 아이돌 산업을 멋지게 이끌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블랙피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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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컬러링북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시리즈
황미나 지음 / 용감한까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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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건 황미나 님의 작품들이었죠.

만화방이라는 건 아아주 어린 시절 이모 손을 잡고 캔디캔디를 빌려다 본 이후로 가 본 적이 없었건만, 착한 친구의 안내로 다시 가게 되었던 여학생 전용 만화방. 그곳에서 '안녕, 미스터 블랙(인지 굿바이 미스터 블랙인지.)'을 만난 걸 시작으로 황미나 작가님의 작품에 푹 빠졌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점점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순정만화와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남녀 불문하고 볼 수 있는 스토리와 그림 모두 탄탄한 작품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과도기에 만났던 작품이 바로 <레드문>이었는데요.

필라르, 볼키, 태영이... 그리고 우리의 태양.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지구의 한 소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운명으로 돌아가 겪게 되는 사건들과 사연들 때문에 함께 마음 아파하고 눈물지었습니다.

너무나 명작이라 혼자 보기 아까워 남동생에게도 권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레드문>은 순정만화라는 틀에 갇혀있지 않은 SF 대작입니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한 제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강렬한 작품이었는지 짐작하실 겁니다.

아니, 굳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아는 분은 다 아실 작품 <레드문>이 컬러링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품에 안는 순간, 당시의 감동이 고스란히 밀려와 잠시 마음이 찌잉했습니다.

필라르 볼카네스 페르우노의 운명이 아니라 태영이로서의 운명으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다드와 함께하며 지구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레드문 컬러링북>은 31가지 화보와 컬러링 할 수 있는 50페이지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컬러 화보는 화보대로 두근거렸고, 펜 선만 있는 페이지는 또 그대로 두근거렸습니다.

복잡한 펜 선을 요즘은 디지털로 처리하지만, 예전에는 모두 펜으로 그렸으며 스크린 톤도 붙이고 먹칠도 했었던 그 시절의 그림 같아 더욱 설레었습니다.




그대가 죽으면,

나도 죽으리.


대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오글거리는 것 같아도, 만화를 읽다가 마주치는 그 대사들은 당시의 애절함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레드문 컬러링북은 레드문이나 황미나의 팬이었던 사람에게는 더욱 간절한 화보집과 추억을 되새기는 앨범이 될 것이고, 21세기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이에게는 작품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획기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지구가 아닌 다른 별의 궁중 복식이 우리나라 전통복식과 유사한데다가 그 아름다움이 더해져서 참 멋있다고 느꼈었는데, 2020년에 보아도 의상이 전혀 촌스럽지 않고 우아합니다.



책 뒤에 씐 '기억나니'라는 문구.

친구들과 함께 <레드문>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때 함께 이야기하고 만화를 보며 즐거웠던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무심한 저인지라 그들과의 연락은 모두 끊겼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나와 같은 교복을 입는 아이를 볼 때마다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벽에 그림을 그려 붙여놓은 저는, 그림을 그리거나 할 때만큼은 어린 시절 괴로움 속에서 찾아냈던 행복을 여전히 느낍니다. 요즘 느끼는 행복과는 다른 작은 소중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레드문 컬러링북을 책상에 두고서 어떤 그림을 색칠할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아직 필라르에게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소중한 그림을 망치면 어떡하지.

그래서 고민 끝에 볼키의 연인, 루나레나를 색칠하기로 했습니다.

루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정성을 다해서 빛나게 해야지.


지용성 파버카스텔 36색 색연필을 이용해 색칠했습니다.

많은 작품을 색칠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려고 했는데, 한 작품 칠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군요.

예전의 제가 아닌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섬세한 부분을 칠할 때는 노안이라 안경을 벗고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칠해나갔습니다.

루나레나에게 색을 입혀가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완성.

다음엔 어떤 그림에 색을 입혀볼까요.

두근두근.


네이버 블로거 인디캣님의 서평 이벤트로

용감한까치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컬러링북을 직접 살펴보고 채색하여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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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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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으로 4536수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만요슈는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로서의 가치도 무척 높아서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고전의 사상이나 생활사 연구에까지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연호는 지금까지 중국의 고전에서 따왔었으나 이번의 새연호 '레이와'는 처음으로 일본 스스로의 고전에서 따왔는데요. 바로 만요슈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는군요.

<만요슈 선집>에서는 그 모든 만요슈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엄선하여 - '만요슈'의 정신, 일본적 성격, 국민성 등은 논외로 하고 작품 본연의 모습을 즐길 수 있도록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사 하나하나, 동사나 특정 소절 하나하나에 대해 상세히 고찰(p.5 서문) 합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품에 대한 감상이 핵심이고 비평과 주석은 두 번째 문제(p.4)로, 해설을 읽기 전에 작품만 뜻 모르고 읊조려도 지은이의 마음에 맺힌 심상이 그려지는데, 이는 지은이의 솜씨인지, 저자의 실력인지, 번역자의 실력인지 몰라도 참 좋습니다.

해설과 주석에 있어서 일본어를 몰라서 - 어쩌면 안다 하더라도 - 어려운 부분이 많고 낯선 이름과 지명들이 있어서 상당 부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한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가요를 힘들게 이해하고 공부했던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 일본어를 모르는 탓이 아니라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읽다 보니 어려운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문법적인 표현을 설명하는 그런 부분들은 어려웠지만 때로는 역사의 사건 한 귀퉁이라거나 일본 옛사람의 생활을 엿보거나 할 때는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은 한 번에 쭈욱 읽어 나갈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만에 읽어보려 했었는데,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며칠간 조금씩 시간을 쪼개어 읽어가며 마음속에 풍경이나 그리움 같은 것을 품어보았습니다.

따뜻한 날보다 오히려 서늘한 날에 더 와닿았달까요.

차곡차곡 읽는 것도 좋지만, 어느 날 문득 아무 쪽이나 펴들고 느닷없이 만나는 부분을 조용히 읊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산 넘어 바람이 때 없이 불어오니

밤이면 밤마다 아내가 맘에 걸려 홀로 시름에 겨워

-p.27

동쪽 들녘에 동트는 새벽 햇살 환히 빛나서

뒤돌아 바라보니 서쪽에 달 기우네

-p.101

가을 산이여 단풍이 무성하여

길 잃으신 그대 찾아 떠나는 나도 길을 모르네

-p.224

이와레 연못 울고 있는 오리를

오늘까지만 바라보고 난 이만 구름 너머로 가나

-p.319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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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돼지의 눈
제시카 앤서니 지음, 최지원 옮김 / 청미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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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덕후, 정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지만 지금은 약간 주춤대고 있는 젊은 하원 의원 윌슨의 집으로 땅돼지 박제가 배달됩니다. 땅돼지를 보낸 이는 탬피코라는 예술가로, 얼마 전 그와 헤어진 유명한 게이입니다.


탬피코는 전화를 받지 않고, 무작정 땅돼지 박제를 싣고 달리던 그는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으로 검문을 받다가 땅돼지 박제를 들키게 되는데, 레이시 법에 근거해서 체포당합니다.



그리고 이 윌슨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 윌슨이 가지고 있는 땅돼지가 박제되어 영국을 떠나기까지의 사연이 진행됩니다.


빅토리아 시대, 학자인 오슬릿은 자신의 절친 다우닝에게 땅돼지를 보내고 다우닝은 정성을 다해 땅돼지를 박제로 만들지만 땅돼지의 눈만큼은 어떤 재료를 사용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동감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좀처럼 재료를 구하지 못하던 어느 날, 간헐적 안구 탈구증을 앓다 결국 그에게로부터 달아난 것 같은 안구 한 쌍을 오슬릿의 아내로부터 건네받습니다. 그의 젊은 아내는 한 쌍의 안구만을 남기고 마치 자신의 눈을 찾아 헤매듯, 양쪽 눈에 붕대를 하고 어슬렁거리는 오슬릿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다우닝은 그 눈을 적절한 처리를 통해 땅돼지의 눈으로 삼고, 땅돼지는 천연의 갈색 눈 대신 푸른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장갑 낀 손으로 겸자를 천천히 움직여 긴 속눈썹이 달린 눈꺼풀을 내리고, 말의 이에서 추출한 액상 접착제를 바른다. 옛 연인의 눈알을 만지는, 살면서 다시없을 섬뜩하고 으스스한 순간이지만 이게 바로 사랑이라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p.102



그래요. 다우닝은 오슬릿을 사랑했습니다. 오슬릿 역시 그랬기에 아마도 다우닝에게 땅돼지를 보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우닝은 정성스레 만든 땅돼지 박제를 아주 비싼 가격에 팔아치우길 원했습니다.



다우닝을 떠난, 오슬릿의 눈을 가진 땅돼지는 시간과 공간을 떠돌다 결국 페덱스를 타고 윌슨의 집에 도달하게 된 것인데요. 윌슨은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땅돼지를 보낸 탬피코가 자택에서 자살을 했다지 뭔가요.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요. 사실 절대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동성애를 나누던 친구가 있어왔던 윌슨은 탬피코와도 그런 관계였고, 적극적으로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그로부터 결별 선언과 비슷한 일을 하고서 그를 떠났던 것뿐인데, 탬피코는 자신에게 땅돼지를 보내고 자살해버렸습니다.


만약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자신의 정치생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땅돼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일로 체포당한 사실은 기자들에게 - 예상보다도 빠르게 알려졌고, 기자들은 벌떼처럼 그의 집 앞으로 달려가 진을 칩니다.


윌슨의 정적들은 땅돼지를 빌미로 맹공격을 퍼붓는데요. 기자들은 윌슨의 사치품- 중고로 사들였다 해도 본래 시세를 들먹이며 -에 중점을 두며 논점을 벗어난 보도를 시작합니다. 정적의 입김이 닿았다는 건 불 보듯 뻔합니다.


이제 오슬릿의 눈을 가진 땅돼지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상을, 윌슨을 바라보다 또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작가는 독자가 윌슨 의원인 것처럼 '당신은'이라고 서술합니다. 이를테면 '당신은 상자를 들어보려고 한다.'처럼. 독자를 버지니아주 하원 의원으로 만들어 블랙아웃 상태의 8월의 찌는 듯한 더위에 던져놓습니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그것도 백인 남자였다면 작품 속에 더 빠져서 윌슨과 같은 난감함에 빠질 뻔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독자를 작품 속에 사로잡아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현재형이나 현재 진행형으로. 모든 현재 상황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듯합니다.


나는 땅돼지 앞에서 어쩔 줄 모르다가 차에 싣고 달리다 경찰과도 마주치고, 애인과 함께 기자들 앞에서 약혼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죽어버린 이에 대한 염려, 연민, 정치생명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무척 괴롭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보다 더 괴로울 오슬릿과 다우닝을 봅니다. 그들도 현재형으로 서술되지만, 그들의 경우 각자의 이름을 두며 진행하기에 과거의 인물이라는 인상이 또렷합니다. 그러나 윌슨과 탬피코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혹시 오슬로와 다우닝이 그들로 환생한 것은 아닌가, 세기를 거치면서 똑같은 안타까움을 가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책인가 하시겠지만, 이 책은 정치 풍자 소설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것은 원수의 옷일까, 영웅의 옷일까?


-p.150


청미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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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박소현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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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아침 6시 40분, 태블릿으로 웨이브 앱을 열고 LIVE  에서 명품 클래식 채널을 열고 세탁, 청소 등 집안일을 합니다. 해설자 없는 라디오 방송이기에 흘러나오고 있는 곡이 어떤 곡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무척 상쾌한 아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침 가사 노동을 마치고 여전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커피가 되었든 한방차가 되었든 간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두고 책을 읽으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원래부터 클래식을 즐겼던 것은 아닙니다. 클래식은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눈을 감고 감상한 후 감상문을 적어낼 때나 듣는 음악으로, 어쩐지 사람들이 멋진척할 때나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클래식을 하는 멋쟁이 대신 재즈나 뉴에이지 곡을 연주하는 멋쟁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클래식을 나의 BGM으로 깔고 책을 읽는 이 순간만큼은 멋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흐뭇하게 아침 시간을 보냅니다. 



요즘은 클래식이 멋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자동차가 후진하면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내보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관념이 깨진 것 같습니다. 이웃집 세탁기가 세탁을 마쳤다고 슈베르트의 송어를 노래하거나 개그콘서트의 '달인' 오프닝으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 사용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86년 송년의 밤 때 사라 브라이트만에게 반해버린 그날부터 클래식은 제 곁을 맴돌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개구쟁이 스머프를 보고 있을 때조차 클래식 음악은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를 읽으며 이런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깊숙이 누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클래식이었습니다.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는 우리 주변에서 늘 함께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상 속에서, 대중음악 속에서, TV나 영화 속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속에서, 문학 속에서,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클래식 음악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몰라 궁금했던 우리에게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책이 바로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입니다. 스카이캐슬에서 흘러나오던 곡이라거나 띠로리~하고 좌절할 때 들리던 음악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누구의 어떤 곡이고 어떤 배경에서 탄생하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해줍니다. 어렵지 않게, 쉽게 설명해 주는 건 저자가 칼럼니스트이면서 강연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대중에게 친절히 설명하듯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읽다가 글로만 설명되어 있는 음악이 빨리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책의 곳곳에 있는 QR코드를 읽히면 됩니다. 


QR코드는 저자 박소현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영상물로 연결되는데,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설과 함께 합니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요. 책 읽는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저자의 설명을 스킵하고 음악만 듣는 것도 좋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두 번째 읽을 때 음악과 함께 해도 좋겠습니다. 아니면 순서를 바꾸어서 음악을 듣고 감상한 후 책을 계속 읽어도 좋습니다. 어떻게 하든 음악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요.



흔히 꼬리를 무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역시 그러한데, 그 범위는 책과 책의 꼬리에 국한되지 않고, 책과 음악, 책과 영화, 책과 애니 등 여러 장르의 문화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클래식이 사용된 pop - 일례로 레이디 가가의 알레한드로 라거나 - k-pop을 직접 유튜브에서 검색해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알레한드로 뮤직비디오의 기괴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뭐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하니...



이 책 덕분에 봐야 할 영화도 늘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그리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 그 영화들을 보면 이번엔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오겠죠.



어렵다고 생각했던 클래식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늘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어려울게 무언가요. 제가 연주할 것도 아니고 감상문을 써 낼 것도 아닌데요. 그냥 들리는 대로 들으면 그만인 것을. 고정 관념이 저와 클래식 사이에 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컬쳐300 으로 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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