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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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월요일이 오고 말았습니다.

아아....


일본에는 사자에씨 증후군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일요일 저녁 방송되는 이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나면 월요일이 곧 들이닥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그런 감정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개그콘서트 엔딩곡인 스티비 원더의 'Part Time Lover'를 들으면 그렇습니다. 예전엔 무척 좋아했던 곡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개그콘서트를 안 본지 꽤 되었습니다. 하지만, 월요일은 어김없이 오더군요. 지금이 바로 월요일 새벽이잖아요. 심지어 동이 트기도 전에 깨버려서 조금 더 빨리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아요. 아침 기온이 꽤 낮아서 선선한 바람을 맞았더니 기분이 풀렸으니까요. 그리고 저에겐 월요일을 함께 맞아줄, 이겨내게 도와줄 동지들이 있잖아요.


회사일을 한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업무를 진행해야 함과 동시에 인간관계라는 감정노동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가 점점 쌓이게 되죠. 하고픈 말을 속시원히 할 수 없을 땐 더 그렇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죠. 그러다 보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 관두자... 가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 그만 살자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없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주인공 나, 아오야마 다카시는 반복되는 회사일에 지쳐버렸습니다. 일에 진척도 없고 자신감이라는 게 원래는 존재했던 걸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력해져버렸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에 서서 멍하니 서있다가 기우뚱. 야마모토라고 하는 남자가 붙잡아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라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날 이후 야마모토와 다카시는 자주 만나면서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야마모토의 조언 덕분에 생활도 일도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어, 그런데... 이 야마모토라는 사람은 누굴까요? 정말 동창일까요? 아니, 아니잖아??? 동창이 아니네요? 그럼, 누굴까요? 누구면 어떻습니까. 이제는 동창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친구가 되었는걸요.


그러던 어느 날, 다카시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상사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지요. 선배가 수습해줘서 다행이었는데요. 상사는 더 이상 그를 믿지 못하게 된 모양입니다. 다카시는 낙담하고, 괴로워하며 불면의 밤을 보냅니다. 아아아... 어쩌란 말이냐... 



-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일과 삶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였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직접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는 말 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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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모노레일 - 제1.2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
윤여경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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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진 후 좌절하는 주인공에게 '앙리(타나카 나오키)'가 나타나 리셋하겠냐고 묻죠.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공을 그의 인생 어떤 한 지점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매회 다른 주인공들이 앙리의 속삭임에 넘어가지만 대부분 끝이 좋지 않습니다. 한 번은 시간 되돌리기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는데요. 그때 적잖이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드라마 전편을 다 보고 나서 '이 자식 앙리, 분명 친절한 악마일 거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과연 시간을 되감기 한다고 해서 지금과는 다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시간을 되감아 본 적도, 시간 여행자도 만나 본 저기 없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실은 이미 만났었지만, 시간의 축이 틀어져서 기억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시간을 되돌려본다면 어떨까. 실제로 해 볼 수 없기에 영화나 소설, 만화의 도움을 받습니다. 과거로 날아가 시대에 갇혀버리는 것도 재미있어하지만, 반복되는 시간의 바퀴 위에 얹혀 있는 것도 좋아합니다. 패럴렐 월드 한쪽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다른 쪽에 영향이 생기는 것도 좋아하고요. 어쩌면,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랑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거나, 차라리 그를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몰라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내가 구하지 못한 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인생의 어느 지점으로 시간을 되돌려 정정하며 살고 싶을 때도, 아니... 이건 저도 가끔 그렇긴 한데요. 잠시 상상하다가 이내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난 세월을 다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럴만한 용기나 배짱이 없어요. 그때보다 인생을 더 살았기에 오히려 겁이 많아진 저는, 지금보다 더 씩씩할 자신이 없거든요. 게다가 악연이라도, 그들 중 한 사람만이라도 내 인생에서 빠져버린다면, 제일 사랑하는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저를 작아지게 만들어요. 시간을 다시 산다고 해서 운이 반드시 정방향으로 흐른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러니 저는 두렵습니다. 제 자신이 시간 여행자가 되는 꿈은 이미 몇 년 전에 접었어요.


직접 여행하는 대신 앞으로도 책이나 영화, 만화의 도움을 받을 겁니다. 이번에 읽은 <러브 모노레일>처럼요. 이 책은 '제1,2회 타임리프 공모전'의 수상 작품집인데요. 각기 개성 있는 단편들이 모여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꾼다면...이라는 상상력으로 쓰인  글들이 저의 상상력 역시 증폭시켰는데요. 사랑에 관한한 상대를 만났던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기에 - 후회는 하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쪽을 선택했지만요 - 저에겐 표제작 '러브 모노레일'의 이야기가 수많은 레고 인형들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역시 사랑 이야기는 사랑할 수 있을 때 읽어야 하나 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가 동시에 떠올라 기분이 우울해진 '그날의 꿈'. 주인공 같은 생각이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을 거예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사건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러자 후회가 - 진동했다. 진동은 세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육면체 따위를 평면에 펼쳐 그리는 것과 비슷하면서 더 복잡한 과정이 파동의 너울마다 일어났다. 선택은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발자국을 찍는다. 여태 찍어 왔던 발자국이 세상과 함께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p.214

 


'세이브','어느 시대의 초상','별일 없이 산다' 모두 재미있고, 흥미롭고... 그리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있었지만 저는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가 정말 슬펐어요. 운명의 수레바퀴 위해 올라앉은 그들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비 오는 날, 차가운 더치커피 한 잔과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좋을 단편집 <러브 모노레일>. 두께도 적당하고 단편집이라 휴가철에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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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 스토리콜렉터 2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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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를 시작으로 마지막 윈터만을 남겨놓고 있는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 <크레스>를 읽었습니다. 조만간 <윈터>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아껴두고 있던 크레스를 서둘러 읽었던 것인데요.

사실, 재미있게 읽었던 신더와는 달리 스칼렛에서는 진도가 더뎠드랬습니다. 이상하게 잘 읽히지 않았었죠. 그래서인지 블로그에 리뷰도 하지 않았더군요. 재미없었다기보다는 그래요. 별로 뭔가를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신더 이후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레스를 -솔직히 말하자면- 아껴두었다기보다는 미뤄두었던 거예요.

읽기를 잘했습니다. 키 작은 소녀 크레스에게 푹 빠져버렸거든요.


<크레스>는 <신더>에서 잠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잠깐. 하지만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그녀는 지구의 궤도를 도는 작은 인공위성에 갇혀 지내며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내고, 그것을 루나의 마법사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루나인, 즉 껍데기로 태어나 격리 수용되던 차에 해커로서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시빌에게 끌려와 벌써 7년간 인공위성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창밖의 세상, 아름다운 지구를 동경하면서요. 그리고 카스웰 함장에 대한 동경과 사랑도 키워나가고 있었죠. 신더와 연락이 닿은 그녀는 자신을 이곳에서 구출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시빌에게 들켜버리고, 카스웰과 크레스는 인공위성째로 뜨거운 사막에 추락하다시피 착륙합니다. 라푼젤의 왕자처럼 카스웰은 눈이 멀고 말죠. 라푼젤의 사랑으로 눈을 뜨게 되는 왕자처럼 카스웰도 눈을 뜨게 될까요? 시빌에 의해 납치된 스칼렛은 고초를 겪게 되고 신더는 동료들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게다가 레바나 여왕과 카이토 황제와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신더는 목숨을 걸고 이 결혼식을 막아야 합니다. 지구를 위해서, 루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크레스는 확실히 신더나 스칼렛 같은 강함은 없습니다. 파괴적인 강함 같은 그런 건 없지만, 내면에서 발산되는 강인함이 겉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체구도 작고, 7년이나 홀로 지냈기에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한데 스스로 극복해나갑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자꾸만 어린아이처럼 느껴지지만 사랑을 하기엔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무척 좋았습니다. 상상력을 끌어내기에도 충분했고요. 크레스를 따라 인공위성에 갇혀보기도 하고, 뜨거운 사하라 사막을 헤매보기도 했습니다. 왕궁에 쳐들어가보기도 하고요. 그녀들은 분명 점점 더 강해질 겁니다. 마지막 이야기 <윈터>가 무척 기대되네요. 무려 900여 페이지라고 하는데요. 크레스 같은 속도감을 지녔다면 금방 읽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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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스토리콜렉터 37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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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바른 습관을 들여주기 위한 교훈적 동화라고 하는데요. 그런 것치고 참 잔인합니다. 아이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교육인가 본데, 당시의 관점으로는 그럴싸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인식으로는 아동학대 수준의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동화가 다 있나 싶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겁주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같은 거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지금은 절대 적용해서는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를 모티브로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가 있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흉내 내며 무척 잔인하게 살해하는데요. 납치, 감금, 고문, 살인이 한 세트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더벅머리 페터가 무서운 이야기라는 걸 인식하지 못 했던 어른들도 이제는 알게 되겠지요.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지. 희생자 중 세 번째로 발견된 중년 여성이 주인공 자비네의 어머니입니다. 형사 자비네는 어머니 살인의 용의자로 이혼해 따로 살고 있던 아버지가 지목되자, 어머니의 범인을 찾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실은 형사 동료들이 그녀의 개입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나요. 분명 정의 구현보다는 복수를 위해 움직일 테니까요. 이때 마리화나 중독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천재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가 등장합니다. 그는 베네딕트 컴배배치의 셜록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지만 천재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비네와 슈나이더는 함께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요. 서로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나중엔 참 손발이 잘 맞는 콤비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헬렌이라는 여의사도 등장합니다. 한때 프로파일러도 겸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프로파일러직에서 물러나 정신상담의로 일하고 있는데요. 그녀에게 한 여자의 손가락이 배달됩니다. 더벅머리 페터가 보내온 선물이죠.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48시간. 그 사이에 손가락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는 왜 그녀를 납치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같은 미션이지만 그녀는 점점 진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리고 범인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되지요.


범인의 과거는 정말 슬픕니다. 범인 역시 희생자였지요. 어른들에 의한 희생자. 트라우마로 똘똘 뭉쳐진 그의 삶이 어떠한 계기로 스위치가 켜져버리고 그는 잔인한 방법으로 그가 알던 여자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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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미스터리 스릴러물이었습니다.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영상화하는 걸 말리고 싶을 정도의 잔혹함을 지닌 스릴러였지요.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라는 모순된 제목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48시간을 드릴게요.

답을 찾아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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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바벨의 도서관 27
허먼 멜빌 지음, 김세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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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27 번째 책 <필경사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단편입니다. 

허먼 멜빌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모비 딕>의 저자인데요. <모비 딕>에서의 고독과 광기가 이 책에서도배어 나옵니다. 처음에는 고독도 광기도 눈치 채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묘한 분위기가 있다는 정도만 느껴지지요. 하지만 기묘함은 광기가 되고 그것은 고독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두 작품의 유사점은 아마 두 주인공의 광기와 그런 광기를 전염시키는 환경의 비현실성에 있는 것 같다. 포경선 피쿼드의 선원들은 선장의 무모한 모험에 미친 듯 휘말린다. 월스트리트의 변호사와 다른 필경사들은 바틀비의 결정을 이상하리만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에이햅과 필경사의 광기 어린 고집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들이 내보이는 어두운 그림자의 주변에 다른 구체적 인물들이 있음에도 두 주인공은 외롭다.

-p.12

 


보르헤스가 책을 여는 장에서 미리 이야기 했음에도 저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에 그 광기에, 그리고 어둠에 발을 적십니다.


책 속의 나는 변호사입니다. 말하자면 그저 그런 변호사죠. 나이는 60세 전후입니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소문나 있는 극도의안전제일주의자이죠. 내 사무실에는 이미 두 명의 필경사가 있습니다. 터키와 니퍼인데요 둘 다 좋은 성격은 아닙니다. 진저 넛이라는 사환도 데리고 있지요. 이 세명은요. 아주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변호사인 나의 성격이 나빴다면 이미 잘렸을겁니다. 그렇게 그런저런 속에서 엉망인 직원들과 함께 일을 꾸려나가던 중, 갑자기 늘어난 업무 때문에 필경사를 한 명 더 뽑기로 합니다.

 "창백할 정도로 말끔하고, 가련할 정도로 점잖고,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한 그 모습!(p.32)" 인 청년 바틀비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왔고, 단번에 채용됩니다. 무척 견실하고 조용한 그는 늘 얌전히 사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합니다. 심지어 정직해서 중요한 서류를 맡기기엔 그 만한 사람이 없지요. 하지만 그는 너무 근면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글씨만 계속 쓰던" 그가 내 지시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업무 거부를 하는 겁니다. 뭐지? 아주 진지하게 거부합니다. 다만,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부당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필경사가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검토 같은 것을 '확실하게'거부하다니.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하기 싫으므로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업무 거부를 하지요. 정말 그놈의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빼면 일처리는 완벽한 사람일 텐데...

일요일 오전 우연히 사무실에 들른 나는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기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서 마치 비품처럼 조용히 계속 내내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우수나 고독과 그 모습이 겹쳐져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지나치면 거부감이 이는 법. 바틀비의 존재가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그런데, 바틀비가 지나쳤습니다. 이제는 필사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이 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틀비는 해고 통지도 무시합니다. 나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어쩌자는 걸까요? 

바틀비는 분명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바틀비 자신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곳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을까요? 


얼마 전 대만의 한 수의사가 자신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물을 살리고 싶어서 수의사가 된 그녀가 몇 년 동안 수백 마리의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을까요. 그런 그녀에게 계속된 악플은 결국 그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끌고 갔었죠.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나서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바틀비도 그녀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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