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 인공지능이 만드는 인간의 미래
이종호 지음 / 북카라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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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로봇을 좋아했습니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로봇이 나오는 만화나 영화,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했지요. 나쁜 놈들이 쳐들어오면 당장 출동해서 싸우지만 금세 수세에 밀리고, 연구 중이지만 테스트를 못 했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거나 발사해 이깁니다. 처음부터 사용하면 너무 빨리 이겨서 우리가 재미없어 할까 봐 그런가 봅니다. 그때보다 현실감이 생긴 지금에 와선 전쟁에 로봇이 사용되면 그것이 소형이건 대형이건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지만, 어릴 땐 그저 시원하게 싸워 이기면 그게 좋았습니다.


인간이 탑승해서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로봇들도 매력이 있었지만,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많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날아오는 <짱가>, <우주소년 아톰> 같은, 누가 봐도 로봇인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을 슈퍼 히어로처럼 여기면서 좋아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별나라 손오공(스타징가)>의 손오공도 로봇이었는데, 그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화과산의 돌 원숭이처럼 별난 존재로 여겼을 뿐이었죠. 그렇게 로봇과 안 로봇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충격적인 작품을 만났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었는데요. 인공지능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이건 <터미네이터>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로봇(그리고 인공지능>에게 파괴당하고 지배당하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같은 영화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인간이 느끼지 않아도 좋을 고통까지 감당해야 하는 인공지능형 로봇에 대한 아픔이 너무 깊게 느껴졌기 때문에, 과연 이 정도까지의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다가가려 하다간 바벨탑과 같은 결말을 맞는 건 아닌가 하는 비약도 했습니다. 그 뒤로도 재미 삼아 보던 AI 물들은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 주연의 

며칠 전 <채피>를 봤습니다. 재미있다고 추천받은 지 한참 지나서였죠. 폐기 직전인 경찰 로봇과 함께 갱스터에게 납치당한 과학자가 실험 중인 AI를 로봇에 장착하고, 로봇은 갱에게 채피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리고선 갱스터처럼 커나가는 그런 코믹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저는 인과 신의 경계, 창조와 재창조에 대해 생각하는 우울함을 안게 되었습니다.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라는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채피 생각이 났습니다. 책에서는 상상 속의 로봇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로봇, AI를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미처 생각지 못 했던 것들까지 로봇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반자동 시계인 자격루도 로봇의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니, 우리나라는 진작부터 로봇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장영실의 후예인 우리 로봇 산업 규모는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업용, 의료용, 극한용 로봇 등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은 멋있습니다. 좀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죠. 공산품 역시 더욱 정밀해지고 빠르게 원활하게 생산될 테고요. 그렇지만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인간은 바보가 아니니까 새로운 직업들을 만들어내겠죠. 군사용 로봇은 눈으로 볼 때는 멋있지만, 실제로 사용한다면 - 실은 드론도 두렵습니다. 아이언 맨이 마구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가정용 로봇은, 바라 마지않습니다. 제발 나 대신 청소 좀 해다오.


이런저런 분야에서 로봇이 생겨나 널리 보급되는 것은 좋지만, 에러를 일으키면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그러니 SF 공포물에서의 상황이 생각납니다. 편리함과 공포 속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고민하는 저는 바보인가 싶지만, 과학자들도 그런저런 면들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인간과 한없이 가까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지 않거든요. 덕분에 책에서 뇌과학과 호르몬의 영역까지 다뤄줍니다. 인간의 뇌와 생각, 반응에 대해 알아야 그것을 기반으로 AI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인간의 뇌에 대해 다룰 때까지만 해도 쉽고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맨 마지막 챕터는 좀 어려웠습니다. 설명은 쉽게 되어 있었지만, 제가 이해하기엔 좀 낯선 분야였나 봅니다.


20세기엔 21세기 초만 되어도 로봇들이 사람과 함께 생활할 거라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섭섭해하며 안도합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세상일지, 그건 직접 만나봐야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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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음식책 - 귀 얇은 사람을 위한
조 슈워츠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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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에 유행이 있다는 게 참 희한한데요. 몇 십 년간 죽 지켜본 바로는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그 주기가 좀 긴 편이었어요. 정책적으로 외국에서 유명한 우리나라 박사나 교포 박사를 초대해옵니다. 그분은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하거나, 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여해서 특별한 지식을 소개하곤 했죠. 그러면 사람들은 갑자기 식탁에서 지방을 몰아내고, 갖가지 색의 채소를 마련하거나 현미식, 심하게는 생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순 없어요. 분명 좋은 점들이 많겠죠. 하지만 학자들은 정말로 좋은 점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안 좋은 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부분과 세분화된 부분을 알게 되었거든요. 좋은 줄 알았는데, 실은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거라면 다행인데, 문제는 좋다와 그렇지 않다는 양쪽 의견이 대립할 때 생깁니다. 학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일반인인 우리들은 어쩌면 좋을까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추면 좋을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식품이 건강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해서 잔뜩 사다 두었더니, 오늘 방송에서는 그걸 먹으면 죽는답니다.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음식이래요. 그럼 그걸 또 치우고 새로이 떠오르는 슈퍼푸드를 가까이합니다. TV를 잘 안 봐서 모르는 소비자도 요새 어떤 식품이 주목받는지 마트에 가면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로 비싸지 않았던 식품이 오늘 마트에 갔더니 갑자기 비싸요. 그럼 십중 팔구, TV에서 몸에 좋다고 방송 탄 식품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먹고 운동을 하고 비타민이나 미네랄을 챙기면서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무척 훌륭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줏대는 있어야 합니다. 건강에 관한 정보가 마구 쏟아지는 요즘은 더욱 그렇고요. 우리 세대들도 뭐가 좋다더라, 아이에겐 뭐가 좋고, 여자에겐, 남자에겐... 이러면서 많이 챙깁니다. TV 정보보다는 인터넷에 의존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정보의 반 이상이 쓰레기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찾아다닙니다. 가공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의 효능을 설명하는 건 약사법 위반이 될 수 있으므로 그중 메인이 되는 유효 성분에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데요. 그것이 정말로 우리 몸에서 어떤 기작으로 활성화되거나, 혹은 타 성분을 비활성화 시키는 방법으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지는 실은, 글을 쓴 사람들도 모를 수 있다는 겁니다. 몸을 살리려고 먹었는데 실은 간을 혹사시키는 일일지도 몰라요. 무척 신중해야겠죠. 도대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걸까요? 

어르신들의 경우엔 더 심각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를 잘 드시던 분이 갑자기 육식을 끊습니다. TV에서 고기 먹지 말라고 했대요. 그러더니 며칠 후 갑자기 버터에 돼지고기를 튀겨 드십니다. 탄수화물이 나쁘고 지방은 몸에 좋대요. 그러심 안됩니다.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느끼셨잖아요. 뭐든지 극단적인 건 좋지 않다는 걸요.


갈팡질팡.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저는 간단하게 제안합니다. 가공식품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요. 아질산염이니 뭐니 설명하는 것도 복잡하고, 이해하는 것도 귀찮잖아요. 보툴리누스 균이 소시지에 잘 생기고... 이런 건 그냥 넘어가요. 아, 얼굴에 맞는 보톡스가 이 녀석이구나 그냥 그렇게 알면 좋겠어요. 니트로소아민이 어쩌구 저쩌구.. 육가공품에만도 못 알아들을 녀석들이 그렇게 많거든요. 

그냥 라벨링을 확인 안 해도 되는 것들만으로 식단을 꾸리는 걸 첫걸음으로 하면 좋겠어요. 저라고 식단에 가공식품을 사용 안 하겠어요? 물론 합니다. 냉동만두를 좋아하거든요. 오늘도 냉동만두에 기름을 살짝 발라 오븐에 구워 군만두를 만들어 반찬으로 먹었어요. 대신 밥에 신경을 좀 썼죠. 원래 귀리와 도정이 덜된 쌀을 메인으로 밥을 하는데요. 오늘은 거기에 코코넛 오일, 다시마, 그리고 마늘을 잔뜩 넣어 구수하고 향긋한 밥을 지어보았어요. 되도록 가공식품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공식품을 만드는 연구자분들은 되도록 사용해주었으면 하겠지만요. 그분들도 되도록 몸에 나쁘지 않은 음식을 만들려고 하실 거예요. 하지만, 이런저런 첨가물들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낼지는 불확실하니, 나쁜 결과의 확률을 줄이는 방법은 덜먹는 거겠죠.

신선 식품들만 챙긴다고 건강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를 챙기는가 하는 균형도 무시 못할 거예요. 두 번째 걸음은, 정보에 너무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 잘 못하면 메고 가는 당나귀 꼴이 될 수도 있어요. 


<똑똑한 음식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들어왔던 정보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2009년에 나왔던 <식품 진단서>의 개정판이라고 하는데요. 2016년 나온 이 책의 정보가 최신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요. 지금도 연구는 계속되고 있을 테니까요. <똑똑한 음식책>은 재미있게,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정리되어 있어요.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긴 해요. 소리 내어 읽어보았더니, 앞에 있는 사람이 외계어인 줄 알았다고 하네요. 실제로 식품 과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화학명이 많이 나와요. 그렇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일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관심이 있거나 어느 정도 용어를 몰라도 나는 괜찮다는 사람은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전문적이지만 대중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에 기적의 식품은 없다. 좋은 식단과 나쁜 식단이 있을 뿐이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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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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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하늘이 맑게 개었지만 여전히 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작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슈퍼문의 기운에 지지 않고 빛나는 별들이 참 대견한데요. 아직 덜 마른 돌바닥도 빛을 받아 빛납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것인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나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흐트무지크가 연인의 세레나데가 되어주거든요. 연애 세포가 증발해버렸어도 괜찮습니다. 현악기의 선율은 다른 세포를 그 녀석인 척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요. 작은 밤의 음악,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와 함께 그런 세상을 구경해보지 않으실래요?

이사카 고타로가 연애소설을 썼다고 하니 좀 걱정되었습니다. 네, 제가 바로 연애 세포가 증발해버린 그 사람이거든요. 남의 사랑을 코웃음 치거나, 좋~을때라며 비아냥거리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로맨스 소설이나 연애소설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애타게 기다려왔는데 연애소설이라니! 청천벽력이죠.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니까...뭔가 다른 연애소설을 보여줄 거라고 믿고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이 책에는 애절한 사랑도 오글거림도 없었어요.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눈치챘답니다. 이 책은, 책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걸요. 이사카 고타로의 <가솔린 생활>이라는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가솔린 생활>과는 전혀 다른 흐름인데도, 생각하고 말하는 자동차 같은 건 나오지 않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냥 이사카 고타로의 책이기 때문일까요?

이 글을 쓰면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듣고 있습니다. 부디 음악이 끝나기 전에 글을 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괜찮아요. 혹시 음악이 끝나면 잠시 사이토 가즈요시의 음악을 찾아 듣고 오지요 뭐.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로 돌아와 끝내죠. 왜냐하면 이 소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도 '아이네 클라이네'로 시작해서 '나흐트 무지크'로 끝나니까요. 소설은 연작 단편으로 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이야기 '아이네 클라이네'는 사이토 가즈요시라는 가수가 연애를 테마로 한 노래의 작사를 부탁했더니, '가사는 쓸 수 없지만 소설은 쓸 수 있다'며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단편 '라이트 헤비'는 2007년 발매된 사이토 가즈요시의 앨범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의 초회 한정판 부록으로 수록된 소설이라고 하니 이 소설에서 음악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군요. 지금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를 듣고 있는데요. 어머나, 모차르트의 분위기와 전혀 달라요. 흥겹군요. 가사는 전혀 못 알아듣지만요. 여담이지만, 명탐정 코난 극장판 17기 절해의 탐정 오프닝을 부른 가수랍니다. 이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사카 고타로가 어떤 느낌으로 글을 썼는지 조금 더 알게 되었어요. 경쾌하고 흔들림 없는 템포로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그런 기분이 드는데요. 라이트 헤비에 등장하는 사이토 아무개 씨가 이 가수 본인이 맞는 것 같아요. 지하철역 바로 옆 골목에 탁자 하나를 놓고 음악을 들려주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지금 어떤 기분이다', '이런저런 상황이다'라는 말을 하면 기가 막히게 선곡해서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 음악을 듣고 나면 치유가 된다죠? 가사를 못 알아듣는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데, 실제로 제대로 선곡해서 기분에 맞춰 연주해주거나 들려준다면 확실히 좋아지겠네요.

'아이네 클라이네' 에는 백업 데이터를 선배와 함께 날려먹고 업무에 시달리는 사토가 등장하는데요.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에서 지갑이라거나 손수건을 주워 주고, 그 인연으로 만남을 지속하여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사이 있잖아요. 그때 주워 준 사람이 당신이라 다행이었어...라며, '라이트 헤비'에는 마나부의 누나 소개로 인연을 이어가는 미나코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그 인연을 전화 통화로만 이어가고 있는데요. 무려 1년이나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나부는 이번에 일본 헤비급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면 그녀에게 고백하겠다고 합니다. 미나코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사람은 싫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도쿠멘타'에는 사토와 함께 백업 데이터를 날려버린 그 선배, 후지마가 5년에 한 번 운전면허 갱신 날마다 마주치는 여인과의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둘이 뭐 잘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각자 잘 되어야 행복한 거 아닐까요? 후지마의 아내는 가출했고, 그녀의 남편은 가출했었으니까요. 5년에 한 번 마주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인연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룩스라이크'는... 이런 이런, 두 쌍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오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 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 분이 어느 댁 따님인 줄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라니. 진짜로 그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쯤 보고 싶어요. '메이크업'에서는 그래요. 연애 이야기가 주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연애라니. 복수 아닌 복수가 되어 기쁘더군요. 드디어 모두를 안아줄 '나흐트무지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사이토 가즈요시의 음악에서 모차르트로 돌아왔고요. 마지막 장 '나흐트무지크'에서는 앞서의 모든 인연들이 교차되며 20여 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흘러갔는지 보여줍니다. 연애라는 게 술술 잘 풀리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 모두가 잘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20년간 함께한 사람들, 그 사이에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흐트무지크를 타고 저마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게 어찌나 유쾌하고 사랑스럽던지. 

연애 소설이라뇨. 아니에요. 치유물이에요. 마음이 좋아지는 걸요. 
잔잔하게 행복해집니다. 재미있고, 사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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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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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보편적인 인생의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표준화된 것 같은 흐름이 있는데요. 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제시간에 맞춰 그 흐름을 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고, 잘 못 된 사람처럼 여깁니다.

개울물도 유속이 서로 다른데, 각자의 인생 역시 다른 속도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때로는 보에 막혀서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는 폭우에 다른 길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째서 그 자리에 있느냐 타박합니다. 굵은 줄기를 타지 못한 자들에게 끊임없이 이리 오라 합니다. 그 자리가 그에게 어울리건 어울리지 않건 간에요. 그들처럼 되는 것만이 정상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같지 않은 사람은 차마 '난 다른 길을 가고 있어요.'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정말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잘 못된 일이 아닐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p.98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라는 소설엔 게이코라는, 타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한 사건에 대한 '처리 방식'이 남다른 데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소설에서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졌나 봅니다. 다소 공격적인 면을 보인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타인의 생각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 스스로 매뉴얼화해서 움직입니다. 졸업 후 게이코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됩니다. 

매뉴얼화되어있는 접대 방식이라거나 판매 방식, 진열법 등이 그녀에게 딱 맞았습니다. 게이코도 이곳에서라면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뛰어난 직원이었지요. 점장님 말씀을 숙지하고, 그대로 지키며 매뉴얼에 따라 점포가 활성화 되도록 하는 것에는 그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지만 안정적인 이곳에서 그녀는 18년 동안이나 일했습니다. 그 사이 함께 근무하는 동료를 관찰하며 평상복이라거나 소품들을 남들과 다르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말투도 동료 몇 명의 것을 섞어서 어울리게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친한 친구와는 말투가 닮아가니,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이코는 편의점에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게이코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 여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동창들은 여전히 게이코가 결혼하지 않는 것도, 벌이가 좋은 곳에 취직하지 않는 것도, 그래 결혼은 둘째 치더라도 연애조차 하지 않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걱정해주었습니다. 세상 쓸데없는 게 남 걱정인 거 같은데 말이죠. 아무리 게이코라지만 남들과 또 다르게 보이는 자신이 걱정되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열네 번이나 "왜 결혼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왜 아르바이트를 해?"라는 질문은 열두 번 받았다. 우선 들은 횟수가 많은 것부터 소거해보자고 생각했다.

-p.113




그때, 인간 말종 쓰레기 시라하가 들러붙습니다. 제발 그녀의 인생에서 꺼져다오.



남들과 다른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게이코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폐라도 되는 건가요? 왜 일을 하고 있는데 취직을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건가요. 그들과 다른 삶의 형태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우리는 영원히 갈 곳 없어 헤매어야만 하는 건가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안 되나요.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주면 안 되나요?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그냥 모른체해주면 안 되나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타인의 눈에는 의아하게 보이거나 때로는 형편없게 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딱 맞는, 마땅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의 틀에 억지로 욱여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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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의 달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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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날달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래할 일이 생기면 날달걀의 뾰족한 부분과 둥근 부분을 젓가락으로 톡톡 깨어 호르륵 빨아먹던 아버지를 보고, 어린 시절 몇 번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목으로 휘릭 넘기고서 메슥거림을 다스리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럼 날계란을 먹은 보람이 없잖아요. 일본 미식 만화를 봤더니 날달걀에 간장을 넣어 밥을 비비거나, 버터까지 넣어서 비벼 먹더군요. 정말 맛있을까 궁금해 따라 해봤는데.... 결국 그 밥을 프라이팬에 부어 볶아 먹었습니다. 전, 안되겠어요. 날달걀 간장밥은.


그런데 이 날달걀 간장밥으로 마을의 부흥을 꾀하는 청년이 있지 뭡니까. <히카루의 달걀>이라는 소설에서요. 무민처럼 생겨서 무상이라고 불리는 무라타 지로인데요. 그냥 시골도 아닌 깡촌에서 사랑을 담뿍 담은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닭을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클래식을 들려주고 직접 배합한 사료를 주면서 좋은 달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의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사람이 좋다는 건데요. 아마 그의 자상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이렇게나 사람이 좋을 수 있을까, 긍정적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마을 청년회의 평균연령이 65세가 넘어가는 - 남의 일이 아닌 거 같은 이 시골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무상의 작전은 바로 달걀밥을 제공하는 가게를 여는 것이었는데요. 이 일로 단짝 친구 다이키치와 크게 싸우고 말도 안 섞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쨌든 가게를 열게 됩니다. 모든 신장개업 집들이 그렇듯이 초반엔 반짝 실적이 좋았다가 금방 쇠락해버립니다. 무상은 가게 오픈 자금을 대출받을 때 담보를 잡혀둔 양계장을 처분해야 할 위기에 처하지만, 갑자기 광고 회사에서 연락이 와, 방송을 탄 후로 급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더욱 번창하는 가게, 무상은 제2의, 제3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그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마을의 모두가 활기차고 행복해지는 것이거든요. 달걀 밥집도 자신의 부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읊기엔 좀 부족합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데다가 복선들이 마구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고, 어느 부분을 빼야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섭니다. 위의 이야기도 요리조리 피하면서 떠벌인 건데요. 중간에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제가 주요 포인트를 발설할까 봐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습니다. 직접 읽어보는 게 좋으니까요.


모리사와 아키오가 에세이는 무척 웃기게 쓰지만, 소설은 잔잔하고 서정적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시골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곰을 닮은 남자거든요. <쓰가루 백 년 식당>에서 처음 만난 그의 소설들을 펼 때마다 살짝 두렵습니다. 조금 전까지 피 튀기는 소설을 읽었는데, 이렇게 피에 물든 손으로 아름다운 책을 읽어도 좋은 것인가. 하지만, 피폐해진 마음을 그의 소설로 달래며 다시 선한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그에겐 그런 힘이 있습니다. 잘못된 마음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마음으로 돌려주거든요. 이상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유복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히카루의 달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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