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별의 금화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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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엔 왜 이리 사건 사고가 많은지. 일본 미스터리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지만, 독일의 미스터리 스릴러는 좀 더 깊게 무섭습니다. 독일의 미스터리하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텐데요. 이 책 <클럽 별의 금화>에 등장하는 악역 중 한 명이 타우누스에 산다길래, 아니 타우누스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했습니다. 얀 제거스의 이 소설은 <너무 예쁜 소녀>로 시작한 미스터리 스릴러 '마탈러 시리즈'인데요.

마탈러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작가가 힘을 내어 후속작을 발표, <클럽 별의 금화>는 그 네 번째 권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 책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예쁜 소녀>가 제겐 좀 산만한 것 같아 얀 제거스라는 배우에 대해 저평가를 했었습니다. 후속작인 <한 여름밤의 비밀>을 반신반의하면서 읽은 후 작가의 기량이 상당히 높아졌기에 기뻤습니다. 탄탄한 구조와 스릴 있는 흐름이 독자를 놓아주지 않더군요. 그렇기에 후속작인 <클럽 별의 금화>를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탈러라는 형사는 참 매력적이거든요.

그렇지만 연인과는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자친구가 브뤼셀에 있는 또 다른 형사와 마탈러, 양다리를 걸치거든요. 그런 식으로 연인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마탈러가 수용할 수 있을지. 이건 남자 입장이건 여자 입장이건 너무 싫은 거 아닌가요.

여자친구가 그를 떠날 준비를 할 때, 안나라는 기자가 찾아옵니다. 유명한 저널리스트 헤를린데가 연락이 안 된다며. 안나와 함께 헤를린데를 찾아 호텔을 방문한 마탈러는 이미 살해당한 그녀의 시신과 마주합니다. 상당히 현장에 빨리 나타난 로텔 형사는 마탈러의 라이벌인데요.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자입니다. 편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결코 좋은 경찰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인데요. 로텔에게 열받은 마탈러 팀은 지방 범죄 수사국에 대해, 그리고 로텔의 뒤를 캐며 비밀리에 수사를 하기로 합니다. 로텔은 마탈러가 헤를린데 살인사건에 가까이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었는데요. 오른쪽 눈을 관통한 총알의 의미는 뭘까요. 헤를린데는 무얼 캐고 있었기에 살해당했을까요. 안나가 찾아낸 헤를렌데의 노트북과 자료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클럽 별의 금화'라는 장소와 사건이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 소설 <클럽 별의 금화>는 좀 뜻밖의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로서는 약간 의아하지만, 스릴러로서는 꽤 괜찮은 소설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몰입감 흡인력이 좋습니다. 초반의 쥘레만이 목격한 교통사고, 정치적인 요소들, 그리고 연쇄 성폭행 사건, 저널리스트의 살해, 부정한 경찰 등 여러 가지 사건이 잘 어우러지면서 마탈러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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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2.0 - IoT시대를 위한 리더의 조건 기업스토리 12
시마 사토시 지음, 장현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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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정의가 대표로 있는 소프트뱅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지식이 거의 전무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지요. 과거 뉴스에서 쿠팡에 대한 투자라거나 현재 넥슨의 향방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 소프트뱅크라는 이름을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2015년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 투자자였는데 1조 원이 넘는 적자 때문에 지분을 매각했다는 뉴스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후 비전 펀드를 통해 2조 2500억을 추가 투자했다는 기사도 읽었는데요. 도대체 무슨 회사길래 로켓 배송으로 말이 많은 쿠팡에 투자를 - 제주도 무료배송해주니 고맙습니다만 - 하는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무슨 회사냐고 묻는다면, '정보혁명 회사'라고 대답합니다. 정보 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가 태어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정열을 바치고, 생애를 바칠 것입니다."

-- 손정의 스피치 중에서 p.55

손정의는 어린 시절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재일교포 출신으로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꼭 교사가 되고 싶으니 국적을 일본으로 바꿔달라고 부탁드렸으나 거절당한 후 자신의 꿈을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며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이면서 개발해낸 프로그램을 샤프에 판매할 정도로 총명하고 미래지향적이었던 그는 어쩌면 빌 게이츠 같은 노선을 걸을 수도 있었음에도 소프트웨어 개발 대신 그것을 유통하는 쪽을 택합니다. 그의 전략이 적중했던 것이지요. 검색 엔진은커녕 가정마다 pc가 필수품으로 보급되기 전, 그는 이미 야후 재팬을 설립합니다. 적자에 시달리던 야후에 150억 엔을 투자해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불과 3년 후 36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립니다. 그 후로도 기업에 대한 투자를 하여 성공을 거두는데요. 그는 반드시 7할의 성공률을 확신한 시점에서 투자를 해왔습니다.

"5할의 확률에서 하는 것은 어리석다. 9할의 성공률이 기대되는 것은 이미 시기를 놓친 것이다. 7할의 성공률을 예견할 수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

-p.205

손정의는 현재 싱귤래리티와 IoT에 주목을 하고 있는데요.

싱귤래리티는 '기술적 특이점'을 의미합니다. AI 등의 기계가 보다 훌륭한 기계를 스스로 만들고, 그 기계가 더 훌륭한 기계를 만든다고 하는, '기계가 자동으로 진화하게 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p.63) 손정의는 사장직을 후계자를 육성해 넘기는 대신 자신이 계속하는 이유로 싱귤래리티를 들었습니다. 인류사상 최대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 것이며 그 도래를 앞두고 경영에 묘한 욕심이 생겼다는 겁니다.(p.63) 손정의는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소프트뱅크의 사장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투자하고 있는 사업의 기술 부분에서는 완전히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신문은 직접 읽지 않고 참모를 통해 듣고 있지만 모든 것을 통달하고 있는 데다 영업적인 대인 기술도 좋아서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에도 유명인, 사업가와 부딪히며 일을 추진해왔던 것입니다.

IoT는 일반적으로 '사물 인터넷'으로 불리며 '신변의 각종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p.123)

컴퓨터, 휴대폰의 연동뿐만 아니라 집안의 스마트 기기들이 서로 연동되기 시작한 현대에서 머지않아 웨어러블이라거나 집안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통제될 것을 떠올리면 손정의가 그리는 미래 산업 투자는 - 가끔은 허황된 것 같아 보여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경제나 IT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는 제가 볼 때도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만, 한가지 의아한 건 막대한 빚입니다. 손정의에 대해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투자 규모도 상당하지만 부채도 상당하더군요. 기록 시점에서 달라지긴 하지만 작은 나라 일 년 예산과 맞먹는 정도의 빚을 품은 적도 있는데요. 저 같은 개복치는 숫자만으로도 기절하고 말 겁니다. 혹시 저 회사가 무너지는 날에는 일본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들었는데요.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미칠 테니 무시 못 할 일이죠. 저자인 시마 사토시는 사장실 실장 시절 이점에 대해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후계자일 뻔 했던 아로라 역시 부채를 빨리 변상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저만 불안해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럼에도 손정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이자 동향은 신경 쓰면서요.

손정의는 슘페터가 말하는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몽상과 의사'를 확실히 갖고 있다. 이것은 내가 8년 동안 사장실 실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것이다.

"일본의 빌 게이츠가 아니라 세계의 손정의가 되고 싶다."

손정의가 상장 직후부터 계속 해온 말이다. 그야말로 이 말의 실현을 위해, 손정의 2.0은 나아가기 시작했다.

-p.118

어쩐지 멋있습니다. 일본의 '누구' 이기보다는 자신으로서 우뚝 서고 싶은 포부. 그리고 자신감은 대단합니다. 손정의 1.0에서 버전 업된 손정의 2.0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자신이 회사의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더 잘 아는 인사를 영입하고, 잠도 아껴가며 - 그러나 체력 훈련은 잊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그의 저력이 타임지 선정 2018년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0인에, 포브스 선정 2018년 일본 부호 랭킹 1위에 들 게 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세세한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플래그를 붙여두었다가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보며 책을 이해했습니다. 경제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꼭꼭 씹어가며 흐르듯 읽었을 텐데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약간 제 자신이 약간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제부턴 포니 1.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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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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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로 문을 엽니다.

이별을 오래 붙잡고 있는 편이 아닌 저는, 몇 번의 이별을 했어도 이 시만큼 아려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반복된 '이별하는 순간'에 견딜 수 있게 단단한 갑옷을 입은 탓일까요.

그래도 이 글에 스며있는 아픔은 알고 있습니다. 이별 직전까지 그 후에도 괜찮으려는 수많은 준비를 마음속으로 마쳤기 때문입니다.

모두 잊고자 잠을 청하고, 청하고, 청해본다.

흐르는 기억을 막으려 애써본다.

-p.49

그림이 예뻐서 더 아픈 책입니다.

<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는 그라폴리오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은의 첫 번째 에세이집으로 감성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은은하고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데, 글귀마저도 가슴을 적십니다. 팬텀싱어 음악을 들으며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이 맑은 날 다시 펼쳐보아도 여전히 마음속에 비가 내립니다.

사랑을 해본, 이별을 해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책입니다.

이별로 문을 연 감성 에세이집은 두 번째 방에서 마음을 다독이며 눈물로 찬 가슴을 덜어냅니다.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겠죠.

인생은 어쩌면

나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p.135

마지막 네 번째 방에선 희망을 보았습니다.

사랑도 꿈도 다시 나아갑니다.

어쩌면 깎이고 깎인 진심이 담긴 말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p.184

저도 그가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흐름이 참 좋은 책입니다.

감성에 젖어 커피 그리고 음악과 함께 조금씩 읽어나가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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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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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읽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p.60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았던 '나' 사쿠라 신지의 행복은 열다섯 살에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발 빠른 축구 선수로 매니저와 사귀기도 했고, 단란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었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이유로 다리를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후로 불행은 연이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때 정치를 했던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던 중 폭력 사고를 쳐서 체포되고 신용 하락으로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운송업에 종사하게 된 탓에 집에 자주 들어올 수도 없는 데다 막대한 빚 때문에 정말이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날을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받습니다.

사신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시급은 겨우 300엔, 학생이니 하루 4시간 근무. 임금은 매일 선지급.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조건인데다가 추가 근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추가 수당은 없다고 합니다. 계약 조건을 따지기 전에, 사신 아르바이트라니. 엉뚱한 사이비 종교 권유인지도 모릅니다. 권유하는 사람이 미소녀인 하나모리니까 더 수상한데요. 함께 파트너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해보자니... 돈을 모아 쓸데가 있었던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결국 사인하고 맙니다. 반신반의 끝에 사인을 했지만 정말로 '사신' 일일 줄이야.

사쿠라가 해야 하는 사신 아르바이트는 우리의 강림이나 해원맥, 덕춘처럼 사람을 염라대왕에게 데리고 가는 일도 아니고, 블리치의 이치고처럼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호로와 싸워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 아직 떠나지 않은 '사자'와 함께하며 그의 미련을 찾아내고 해결해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갈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사자'는 자신이 죽은 그 시점에서 추가된 시간을 계속 살아갑니다. 자기가 죽지 않았더라면 살아갈 수 있던 날들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인데요. 평행이론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죽었더라도 미련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계속 삶을 살아가며 고등학생으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요. 결국 미련을 해결하고 세상을 떠나면 추가로 살았던 시간은 사라집니다. 그동안 남겨두었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신에게는 추억 혹은 아픔으로 남겨집니다. 접촉했던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져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지만 사신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신 아르바이트는 육 개월 한정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사신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고, 사신도 원래의 시간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접촉했던 많은 사자들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사쿠라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사연과, 많은 아픔과, 많은 사랑을 저쪽 편에 두고 이쪽으로 돌아옵니다.

사신은 '사자'를 구원하는 자.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무래도 진실은 하나가 아닌 듯하다.

사신이 '사자'를 구원한다.

덧붙여 '사자'를 통해 사신도 구원받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실 아닐까.

-p.183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은 라이트 노벨 느낌이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무겁습니다. 세미 라이트라고 해도 좋을까요.

사자가 재구성한 세상과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의 접점을 넘나드는 사신. 임무의 시간이 끝나면 기억은 사라지겠지만 육 개월간 느꼈던 감정들은 분명 사신을 성장시킬 겁니다. 생전의 미련을 해결하고, 그때 몰랐던 것들을 비로소 깨닫고 세상을 떠나는 사자에 비하면 얼마나 은혜로운가요. 사랑도 눈물도 모두 자신의 것이니까요.

너무 즐거워서 행복이란 잃고 나서야 깨닫는 법임을 깜박했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p.226

일상이 갑자기 사라져 사자가 된다면 저는 시간을 재구성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아직 미련이 너무너무 많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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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 : 세종·문종·단종 - 백성을 사랑한 사대부의 임금 조선왕조실록 3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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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역사를 모른다는 소리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펜을 들고 시작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역사를 차곡차곡 읽다 보면 내게도 얻어지는 무언가가 있겠지 싶었거든요.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정신 바짝 차리고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읽다 보면 흐름이 느껴지고 왕과 대신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거든요. 조금 심각한 소설을 읽듯이 자연스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건 펜이 아니라 놓치기 싫은 마음으로 붙일 플래그 스티커뿐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만족하며 내려놓는 걸 보고 아이가 "책이 아니라 고슴도치네?"라고 말할 정도로 페이지마다 플래그가 덕지덕지. 그렇게 즐거웠습니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전편은 읽지 못한 채 3권- 세종, 문종, 단종 편 - 을 먼저 접하게 되어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역사는 흐름이라더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과 노상왕인 정종, 그리고 세종까지 세 왕이 함께 연회장에서 춤을 추는 장면, 게다가 신하도 함께 춤을 추었다니 상상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근엄한 모습의 왕들만 상상해왔기에 서로 함께 춤을 추는 대목에서 현대식 춤으로 상상되어서 괜히 웃겼거든요. 그렇지만 늘 즐거웠던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왕실은 늘 시끄러웠잖아요.

책의 초반부터 깜짝 놀랄만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세종 하면 백성을 위하는 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금부민고소법'이라는 수령고소금지법을 예조에 명하다니. 충격적이었어요. 수령고소금지법이라는 건 말하자면, 아전을 포함한 백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고을 수령을 고소할 수 없는 법인데요. 만일 이를 어긴 자는 장 100대에다가 3000리 유배를 보낸다는 겁니다. 세종의 이미지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후에 한글이라 불리는 언문을 만들고 재주(능력)만 출중하다면 신분 차별 없이 등용하여 썼다는 점 등으로 존경해 마땅하지만, 수령고소금지법이라거나 노비제에 있어서 종모법으로 개혁을 시도했다는 건 전혀 몰랐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대하는 명나라가 종부법인데도, 사대부의 이권이 보장되는 - 나아가서 나라의 세금이나 병력에 손실이 되는 종모법을 추진했다는 것은 모른 채 노비에게 출산휴가 주었다는 점만 부각시켜서 '애민 군주'라고 말하다니. 얼마 전 출산휴가와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감동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선의 건국을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했던 태종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세종은 그렇지 않았기에 전형적인 재벌 2,3세 마인드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 시비의 기준이 다르니 지금의 잣대로 잴 수는 없겠지만, 현대를 사는 백성인 제 기준으로는 백성을 사랑했다기보다는 사대부를 사랑한 왕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젠 세종이 싫어졌다는 건 아닙니다. 눈에 씐 콩깍지가 떨어졌을 뿐입니다. 누가 뭐래도 세종은 역사 덕후였고, 언어 학자로서의 자질을 발휘해 한글을 만드셨기에 제가 한자를 잘 몰라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역시 세종도 사람이었구나 하여 인간미도 느꼈습니다. 100 퍼센트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죠.

세종의 아들 문종은 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도 아주 좋아했고, 소문난 미남이었다던데 일찍 죽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오래도록 살아서 나라를 다스렸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단종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즉위했다면... 아... 제가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군요.

이 책은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머리에 쏙쏙 박히고 감정을 오르내리게 하는 역사 책을 만났어요. 조선왕조실록 1, 2권도 구해서 읽어야겠어요. 근간 출간될 후속들도 모아야겠습니다. 읽고 들려주고 권하고 싶은 책이거든요.

실은 이 책이 어려울까 봐 사두고 묵혀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먼저 읽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니 설민석의 책도 읽어서 큰 흐름을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가 스포라지만, 제가 알고 있던 일들의 배경이라거나 내막을 알고 나니 시야가 조금 넓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여 옳니 그르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과거를 알고 고찰을 한다면 미래의 향방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는 것을 이번에 실로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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